Let’s Take a Bath Together, Duke! RAW novel - Chapter 60
60화
일라리아 백작 가문의 저녁 식사는 제법 무난하고도 성대하게 지나갔다. 사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일라리아 백작은 아내의 실수를 무마하기 위해 애썼으며, 클로드의 등장으로 다소 계획이 어그러진 소피아 일라리아는 저녁 식사 자리에서 몸을 사렸으니까.
소피아 일라리아는 저녁 식사를 하는 내내 친근함과 정중함 사이를 오가며 내게 말을 걸었고, 나 역시 비슷한 태도로 그녀를 대했다.
“아, 공녀님. 시간이 너무도 빨리 지나가네요.”
“그러게요, 부인. 부인의 입담이 너무 뛰어나서 정말 시간 가는 줄 몰랐지 뭐예요.”
“아이, 공녀님도 참! 다음에 또 시간을 내어 주시면 기쁘게 달려가겠습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약간의 가식과 가면을 쓴 채 나의 첫 초대는 별일 없이 넘어갔다. 생각 외로 이번 사건에 대해 펄쩍 뛴 것은 줄리엔과 헤르잔이었다.
나는 제법 치사한 사람이라서, 굳이 이 어이없는 영애들의 행태를 숨길 필요를 못 느꼈거든.
더 정확하게는 클로드가 ‘그래서 그 자리는 대체 뭐였습니까?’라고 물어본 게 시작이었지만.
아, 물론 일라리아 백작 부인의 ‘동기’는 대충 권력욕 같은 것으로 숨겼다. 그 추측까지 말하면 너무 일이 커질 것 같았던 탓이다.
아무튼, 나는 일라리아 백작가에서 있었던 일을 조잘조잘 늘어놨고 내가 겪은 일들을 들은 줄리엔과 헤르잔은 그 자리에서 대경실색하며 분개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제 에스코트를 거론하면서 각하의 안부를 물었다니요? 그게 각하와 나디아 님 두 분을 동시에 무시하는 처사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맞아요. 게다가 나디아 님께 대화가 무료하냐고 대놓고 핀잔을 주기까지 했다는 거잖아요, 그 일라리아 백작 부인이요! 세상에!”
나는 저 두 사람이 이렇게까지 잘 맞는 사이인 줄은 처음 알았다. 얼마나 흥분한 건지 자리에서 일어나기까지 한 두 사람을 손으로 진정시키며, 나는 내가 처음에 논의하고자 했던 바를 꺼냈다.
“두 사람 말이 다 맞아. 맞으니까 우선 진정해. 내가 이 말을 꺼낸 건 그 어린 영애들이나 일라리아 백작 부인을 벌하고 싶어서가 아니니까.”
“하지만 나디아 님! 그들을 저대로 놔두면…….”
“알아. 하지만 지금 내가 저들을 벌하기 위해 쓸 수 있는 카드가 뭐가 있지?”
일전에 말했던 것처럼, 나는 클로드의 약혼자라는 호칭 없이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수도에서부터 가지고 있었던 권한들을 휘두른다면 분명 여기서도 어느 정도는 통하겠지.
하지만 줄리엔과 헤르잔은 내가 말하는 ‘카드’가 이러한 것들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마치 카르테인이 북부에서 ‘북부의 주인’이라는 명칭 하나로 모든 것을 정리하듯, 내게도 그런 힘이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내가 진정으로 북부를 내 터전으로 삼으려면.
“아, 물론 신의 기적의 헌신이라는 카드가 있기는 하지. 하지만 그건…….”
“두 분의 결합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기는 하지요.”
“게다가 사업이면 몰라도 귀족들을 휘어잡을 카드이지는 않고 말입니다.”
나는 두 사람의 덧붙임에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내 사람’이야, 줄리엔.”
클로드가 헤르잔을 필두로 가신을 모으고 조사원을 거느리고 있는 것처럼, 내게도 나의 사람들이 필요했다. 심지어는 클로드보다도 나를 더 먼저 생각할 그런 사람 말이다.
물론, 그런 사람들을 찾기는 하늘의 별 따기겠지만…….
‘이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해야지, 뭐.’
처음부터 다 준비되어 있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심지어 목욕과 관련된 일들도 하나씩 하다 보니까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내가 하나하나 발로 뛰고 고생하고 또 설득하면서.
하물며 일도 아닌 사람을 얻는 일이 어떻게 쉽겠어. 유비 같은 사람도 제갈량을 얻기 전까지 수십 년을 고생하고 삼고초려까지 했는데.
‘아, 나는 수십 년을 기다릴 인내심은 없지만.’
대충 로맨스 판타지 세계니까 괜찮지 않겠냐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이야기를 전부 듣고 있던 클로드가 천천히 가볍게 턱을 괴고는 나를 또렷하게 바라보았다.
“무슨 말인지 잘 알겠습니다. 그대가 원하는 북부의 변화를 위해서는 그대의 사람이 필요하다는 뜻 아닙니까. 돕겠습니다.”
“아, 네! 어… 네……? 클로드가요?”
“예. 이 북부에서, 그대가 하고 싶은 걸 막을 사람은 없을 거라 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나디아 그대의 길은 곧 제 길이기도 합니다.”
나는 불현듯 떠오르는 기억에 슬쩍 미소를 지었다. 그랬다. 내가 ‘변화’시키고 싶다고 했을 때 그가 그런 말을 했었지. 거기에 나는…….
“저는 골드게이트가 황금 길의 개척자라고 말했고요.”
“길의 개척자라.”
내 말을 들으며 입가에 악당 같은 미소를 그린 그가 담담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나디아, 판이 복잡해 보일 때 제일 쉽게 정리하는 방법이 뭔지 아십니까?”
아니, 그게 뭔데? 나는 대답을 기다리는 그를 향해 짧게 고개를 내저었다.
“그게 뭔데요?”
“판 그 자체를 뒤엎어 버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밥상 뒤엎기를 하자고요?
내가 머릿속에서 너무나도 친숙하게 그려지는 그림을 떠올릴 때쯤, 잠시 고민하던 클로드가 천천히 자세를 바르게 했다. 그러고는 다시금 입을 열었다.
“우선은 부모님께 연락을 넣을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부모님이라면… 전대 공작님과 공작 부인이요?”
“네. 지금으로서는 정상적으로 사교계에 자리를 잡기 어려울 테니까요. 부모님이 공작가로 오시고 나면 일라리아 백작 부인이 세워둔 체계를 흔드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음, 정말 맞는 말이다. 그 전대 공작 부부 내외가 나를 마음에 들어 할지는 미지수지만.
“지금 연락한다고 해도 오시는 데는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아마 제일 유력한 건 정식으로 충성 서약을 받는 연회 때겠군.”
“그때는 직접 오실 필요가 있으니까요.”
클로드의 말에 살을 덧붙인 헤르잔이 잠시 생각난 듯이 손을 들고는 내게 물었다.
“그렇다면 나디아 님, 일전에 사람을 보내 달라고 말씀하셨던 타냐와 에이포드 역시 이것과 관련이 있습니까?”
“아, 아아! 응! 있어! 그 두 사람은 꼭 데리고 와야 해. 그들은 사교계는 아니고, 사업과 관련해서 정말 중요한 사람들이야.”
그 사람들이 있어야 비누를 만드는 방법도 고안해 내고, 민간요법에서 벗어나서 하면 안 되는 것들을 정리할 수 있다.
내 진심 어린 당부를 들은 헤르잔은 더 깊게 이유를 묻는 대신 그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그럼 말씀하신 대로 빠르게 사람을 보내보겠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두 사람을 만난 이후에 정할 생각이신 것 맞습니까?”
“응, 맞아. 고마워.”
“저어……. 자신의 사람을 만드는 건, 새로운 이들을 만나는 것으로도 가능하지만 이미 알고 있는 이와 관계를 돈독하게 하는 것도 포함이겠지요?”
줄리엔이 꺼낸 말에 나는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그쪽이 더 수월한 방법이기도 했다.
내 격한 동의를 확인한 줄리엔이 작게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 두 개를 펼쳤다.
“그렇다면 나디아 님이 연락해야 할 분이 세 분 정도 계실 것 같은데……. 신의 축복 때 나단을 방문하셨던 대신관님과 달튼 자작님, 그리고 네펠리 영애님이십니다.”
“네펠리?”
“달튼 자작?”
말이 끝나자마자 튀어나온 나와 클로드의 반응에 줄리엔이 잠시 멈칫했다. 자신이 무언가 잘못한 게 있는지 확인하는 듯하던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게 세 분이요.”
“아니, 그런데 줄리엔. 갑자기 네펠리는 왜……?”
나머지 두 사람은 나름대로 이해가 갔다. 이곳에 큰 전염병이 휩쓸고 간 이상, 결국 언젠가는 다시 신전과 교류를 해야 할 텐데 대신관님은 현재로서 목욕에 호의적인 유일한 신관님이 아니신가.
“아이작 의사 선생님도…….”
“저는 반대입니다.”
내가 아이작 달튼의 장점에 대해 고민하려던 순간, 클로드의 입에서 단호한 반대가 떨어졌다.
너무나도 확고한 그의 태도에 줄리엔이 살짝 고개를 기울이며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하지만 각하, 달튼 자작님은 나디아 님의 주치의 아니십니까. 게다가 의료계에 오래 계셨던 만큼 그 분야에서 명망이…….”
“아니, 기각한다.”
정확한 이유를 말해달라는 듯한 표정에 클로드가 슬쩍 눈썹을 밀어 올렸다.
“나디아는 이미 에이포드라는 의사를 데리고 오겠다고 결심했다. 근데 내 기억상 그 의사는 분명 다른 의사들에게서 쫓겨났다고 했어. 줄리엔 너는 달튼 자작이 에이포드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은가? 성이 있다지만, 평민에 가깝고 심지어는 떠돌이 의사인 그를?”
“그건, 확실히 그렇군요.”
“달튼 자작은 꽤 생각하는 게 복잡하고 꼬인 사람이다. 분명 나디아가 하고자 하는 일에 도움이 되지 않을 테지.”
클로드의 주장을 가만히 듣다 보니 일전부터 궁금했던 것이 불쑥 생각났다. 나는 잠시 이걸 말할까 말까 고민하다 슬쩍 클로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찌푸려진 미간과 굳은 얼굴, 서늘함이 담긴 눈빛과 비틀린 입술. 체류 허가를 받을 때와 똑같은 모습을 확인한 나는 결국 그에게 궁금한 걸 물어보기로 결심했다.
“그런데요, 공작님.”
“음?”
“왜 그렇게 아이작 달튼 자작님을 싫어해요? 혹시… 질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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