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 up with luck RAW novel - Chapter 253
254화
‘재사용 대기시간은 다 돌아왔고…컨디션은 그리 좋지 않군.’
언럭키는 레그녹스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며 몸 상태를 점검했다.
24시간 동안 던전 안에서 사냥하며 보냈다.
심지어 그냥 사냥도 아니다.
어떻게든 뽕을 뽑겠단 마음으로 가장 효율적인 동선을 짜고, 쉬는 시간도 없애가며 굴렀다.
그 결과 만족할 만한 경험치를 얻었지만, 사람인지라 지칠 수밖에 없었다.
집중력이 고갈되고 머리가 핑 도는 느낌.
슬쩍 옆엘 봐보니 벨라와 아세린도 그리 좋아보이지 않았다.
역시나 마찬가지로 눈가에 다크서클이 짙게 껴 있었는데, 그럼에도 언럭키를 도와 싸울 준비에 착수했다.
마음 맞는 파티원들의 존재란 이렇게 도움이 된다.
언럭키가 묵묵히 레그녹스를 쳐다봤다.
“크훅…크훅….”
백색의 거대한 트롤.
놈은 시뻘개진 눈으로 이 쪽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원래 크기로 돌아온 입가에는 침이 줄줄 흐르고 있었는데, 자신이 토해낸 무언가들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것에 당황한 모습이었다.
한동안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
-쿵! 쿵!
그러다가 레그녹스가 조금씩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의외의 모습에 언럭키는 경계했다.
‘뭐하는 거지?’
도약이나 돌진하기 위해 거리를 벌리는 건가?
아니. 그래도 딱히 뒷걸음질 칠 필요까지는 없는데…
더 고민할 시간은 없었다.
-쿵! 쿵! 쿵! 쿵!
레그녹스가 몸을 돌려 달려가기 시작했다.
워낙 덩치 크고 다리도 긴 놈이라 순식간에 거리가 멀어진다.
언럭키는 아직 체감을 잘 못하지만, 그에게서는 지금도 ‘군주의 기세’가 풍겨 나오고 있었다.
군주의 증표에 내장된, 지옥의 군주들만이 내보일 수 있는 기세.
레그녹스는 지옥 군주들과 맞붙어본 적이 있었다.
살아남긴 했지만 부상도 입었고, 지옥 군주의 무서움은 잘 알았다.
가뜩이나 생전 처음 겪어보는 구토로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닌데, 군주의 기세를 풍겨내는 적과 싸울 수는 없었다.
레그녹스가 도망을 친 이유였다.
‘…후. 다행이군.’
언럭키는 자세한 상황까지는 짐작하지 못했지만 속으로 안도했다.
시청자들한테는 저 놈까지 잡니 어쩌니 했지만 컨디션이 정말 안 좋았다.
‘그리고 군주의 증표를 얻어 강해졌다고 해도, 저 무지막지한 놈과 싸워 이길 자신도 없고.’
주먹질 한 대에 데스나이트도 퍽퍽 터져나가는 놈 아니던가.
아직은 녀석을 상대하려면 레벨을 더 올려야했다.
물론 그걸 티 내지는 않았다.
“도망쳤네요. 저 놈까지 잡고 경험치랑 템 좀 얻으려고 했는데.”
언럭키가 괜시리 시청자들 앞에서 어깨를 으쓱였다.
속마음이야 어쨌건, 시청자들이 보기엔 눈싸움 좀 하다 보니 트롤이 도망친 것처럼 보였으리라.
레그녹스가 얼마나 강한지는 지금껏 칼리스먼이 호들갑을 떨어온 것도 있고, 던전 입장 전에 붙어봐서 시청자들도 잘 알았다.
그런 녀석을 지그시 쳐다보는 것만으로 간단히 격퇴시키다니.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뽕 차오르게 만드는 게 있었다.
* * *
방송을 종료한 후, 언럭키 파티는 작별 인사를 나눴다.
“저 진짜 이대로 걍 눈 감으면 잘 거 같아요.”
“저도….”
“두 분 다 너무 고생했어요. 푹 주무시고 내일은 일어나는 시간 보고 만나시죠.”
접속기에서 벗어난 백현은 그대로 구석에 있는 휴게실 침대로 이동해 쥐 죽은 듯이 잠에 빠졌다.
그 다음 날.
“미친. 뭔 잠을…14시간을 자버렸네.”
일어나서 시간을 본 백현은 깜짝 놀랐다.
진짜 오래도 잤던 것이다.
지난 몇 달간 항상 일정한 패턴대로 살았다.
오전 6시쯤 일어나서 씻고 간단하게 밥 먹고 바로 월드 사가에 접속했다.
처음엔 작업장에 갇혀 강제로 그렇게 해야 했지만, 프로 플레이어가 되었기에 거길 벗어나서도 패턴을 유지했다.
이런 식으로 늦잠잔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이번에 얼마나 피곤했는지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그래도 시간이 아깝거나 하지는 않았다.
개운했다.
나름 운동 하고 체력 관리를 한다지만, 정신을 혹사시키는 가상 현실 게임은 절대 쉽지 않다.
하물며 24시간동안 방송을 계속 켜고 사냥에 열중했으니…
-똑똑
그때 사무실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백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구세요? 용승 씨?”
-저에요. 세린.
“세린 씨?”
그녀가 여기 올 이유가 없는데?
문을 열자 이세린이 운동복 차림으로 서있었다. 레깅스에 가벼운 탑을 착용한 모습이었다.
그녀가 씩 웃어보였다.
“역시 지금쯤 일어나계실 줄 알았어요. 헬스 가려는 길에 들러봤는데, 같이 가실래요?”
“지금 막 일어났습니다. 조금만 더 일찍 오셨으면 노크 소리도 못 들었을 거예요.”
“그럼 저 혼자 갈까요?”
“아뇨. 같이 가죠. 서로 보조해주면 좋으니까요. 잠시만요. 저 아직 눈곱도 못 떼었어요.”
“그래도 잘생기셨는걸요.”
“하하….”
백현은 간단하게 세안만 하고 그녀와 함께 지하의 헬스장으로 출발했다.
나가는 길에 보니 사무실 한 구석 소파에서 이용승이 웅크린 채 담요만 뒤집어쓰고 자고 있었다.
“용승씨도 주무시네요?”
“저 왔을 때도 그러시더라고요.”
“어제 밤새서 작업하셨나? 아깝네요. 용승씨도 같이 운동가면 좋을 텐데.”
백현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게요. 참 아쉽네요. 푹 주무시는 것 같은데 어서 가요 우리.”
이세린이 묘하게 활짝 웃어 보이며 걸음을 빨리했다.
그러면서 내려가는데 백현의 시야에 문득 이세린의 흑단같은 단발머리가 찰랑거리는 게 보였다.
살짝 향기도 나는 게, 아예 일찍 일어나서 씻고 온 모양이다.
‘덜 피곤하셨나? 엄청 부지런하시네.’
아침 헬스는 운동하고 씻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다는 백현 입장에서는, 그녀가 참 부지런하다고 느껴졌다.
* * *
한편, 어젯밤 백현이 겨울잠 자는 곰처럼 자고 있던 그 시각.
이용승은 그 때부터 본인의 일을 시작했다.
편집자의 업무는 스트리머의 방송이 끝났을 때부터 시작한다.
보통은 그 전후로 휴식을 취하거나 일 할 준비를 하는 편이다.
그러나 이용승은 편집자이기 이전에 언럭키의 플레이에 반한 한 명의 팬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최초로 24시간 노방종 방송을 하다니!
나중에 편집하면서 봐도 되지만 도저히 기다릴 수가 없었다.
그렇게 백현과 같이 잠 한숨 안자고 영상을 봤다.
다행이라고 한다면 그 덕에 편집점을 중간 중간 잘 잡아놨다는 점이랄까.
자기가 감탄한 명장면들 위주로 편집하면 그렇게 시간을 오래 잡아먹지는 않을 것 같았다.
‘문제는 그런 장면이 한 두 개가 아니라는 점이지만…’
아무래도 몇 번에 걸쳐 나눠서 영상을 올려야 할 듯하다.
어쨌거나 라이브를 끝내고 백현이 잠에 빠져든 그 시간. 그 때부터 이용승은 편집 작업에 들어갔다.
작업을 하면서 피곤도 잊고 불타올랐다.
이 훌륭한 영상에 자신이 조미료를 쳐서 더 완벽하게 만들고 싶다!
그런 욕심이 들어찬 것이다.
그 결과 얼마 걸리지 않아 1차 분량을 끝내고 업로드를 올렸다.
-띠링!
[NEW! ‘스트리머 언럭키’ 채널에 새로운 영상이 등록되었습니다.] [제목 : 레전드 24시간 노방송 라이브 1탄]다소 유치하지만 라이브를 봤던 시청자라면 누구나 이 같은 제목에 동의할 것이다.
영상이 올라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댓글들이 우후죽순 달렸다.
-와. 여기 채널 편집팀은 사람이 몇 명이길래 방금 전에 끝난 라이브를 이렇게 편집해서 올림?
-심지어 대충 한 것도 아님. 자막 제대로 달고 이펙트도 빵빵하게 넣고 포커스도 제대로 주고…걍 사람 갈아 넣었는데?
-언럭키가 자기 영상 편집 해주는 사람들 잔뜩 고용해서 돈도 많이 주나보다.
그 누구도 이걸 팀이 아니고 개인이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혼자서 팀 역할을 할 수 있는 초인.
괜히 정신찬이 이용승이나 박세훈을 탐내는 게 아니었다.
#실시간 인기 급상승 순위 17위
영상은 올린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인급동(인기 급상승 동영상) 탭에 올라갔다.
언럭키 채널의 성장에 순풍이 불고 있었다.
* * *
이세린과 아침 헬스(아침이라고 하기엔 많이 늦었지만)를 끝낸 뒤, 제정신을 차리고 다시 월드 사가에 접속했다.
벨라도 푹 쉬었다고 하니 세 사람은 다시 월드 사가에서 만났다.
‘결국 올마스터의 비기는 못 얻었군.’
그 대신 군주의 증표라는 에픽 아이템을 얻었지만, 목적은 못 이루어서 아쉽게 되었다.
언럭키는 에오나루스에게 되돌아가기 위해 움직였다.
가는 길에 군주의 증표의 단점도 알게 되었다.
“몬스터가…다가오질 않는군?”
이게 어떻게 된 거냐는 듯 언럭키가 칼리스먼을 바라봤다.
그나마 이제는 좀 적응해서 벌벌 떨지 않게 되었지만, 칼리스먼은 여전히 언럭키를 어려워했다.
그래도 자존심이 있기에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네가 뿜어내는 기세에…겁먹은 거다.”
“겁먹어?”
“어지간한 악마가 아니라면 군주의 기세를 느끼고 다가올 수 있겠나.”
언럭키가 인상을 찌푸렸다.
‘뭐야. 그럼 이제 몬스터 만나기 더 힘들어진다는 거 아냐?’
원래는 이렇게 가다 보면 지옥의 필드 몬스터들이 알아서 달려들어 주었다.
쉽게 만난다고 보상까지 적은 것도 아니었다.
아직도 언럭키의 레벨은 지옥의 몬스터 기준으로 적은 편이었기에, 그런 놈들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경험치를 주었다.
“그건 좀 곤란한데. 혹시 몬스터를 많이 만날 좋은 방법 알고 있나?”
“글쎄. 내가 알기로는 없지만…에오나루스라면 알지도 모르겠군.”
한 때 미쳤었던 드래곤이지만 정신을 차린 지금은 아는 것도 많고 퍼주기도 잘 퍼주는 지옥의 현자였다.
최소한 언럭키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럼 어서 가지.”
언럭키가 속도를 높였다.
* * *
“오. 못 본 새에 군주가 되었어?”
에오나루스는 언럭키를 만나자마자 한 눈에 그 상태를 파악했다.
“레그녹스는 만난 모양인데…그 놈이 자네가 찾고 있는 것 대신 군주의 증표를 가지고 있었나보군.”
“정확히 보셨습니다.”
일반적인 악마라도 군주의 기세를 느낄 수는 있다.
에오나루스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갔다.
“불사의 군주가 되었군?”
“!”
그는 언럭키가 무슨 군주가 되었는지도 맞춰버렸다.
“맞습니다. 그게 보이십니까?”
“네 능력을 본 적도 있고, 전대 불사의 군주가 죽기 전까지는 나와 친하게 지냈었거든.”
그러다 문득 생각났다는 듯 말을 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그가 죽으면서 남긴 물건들이 있는 걸로 아는데…자네가 불사의 군주가 되었으니 아마 쓸 수 있을 거야. 위치를 알려줄 테니 한 번 찾으러 가보겠나?”
언럭키는 넙죽 허리를 숙였다.
“위대하신 드래곤이시여!”
믿고 있었습니다!!
“위대하신 드래곤은 무슨.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친 악룡이었는데.”
“!”
칼리스먼이 작게 속삭이는 소리였다.
다른 군주를 모시는 칼리스먼에게, 에오나루스는 좋게 볼 수 없는 존재였다.
다만 언럭키는 옆에 있었기에 들을 수 있었다.
워낙 작아 바로 옆에 있던 그에게만 들린 게 다행이었다.
-콱!
“억!?”
그가 삐딱한 태도로 서 있던 칼리스먼의 머리를 눌렀다.
갑작스럽게 눌러서 균형을 잃은지라, 놈은 아예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놈이 어이없다는 듯 언럭키를 쳐다봤다.
“나, 난 왜…?”
“어딜 위대하신 에오나루스님 앞에서 목 뻣뻣하게 서 있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