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438
* * *
전장의 지휘관은 미카엘이었다.
처음부터 역할이 그렇게 정해져 있었던 건 아니었다. 다만, 랭커들을 통솔할 만한 마땅한 적임자가 없었기에 분위기에 이끌린 것뿐이었다.
“열 명 이상 포지션을 맞춰서 조를 만든다! 빈 공간에 다른 대열이 인원을 나눠서 합류해!”
“악마와 천사를 구분하지 마라! 지금은 모두 같은 아군이야!”
“욕심은 금물이다! 힘든 쪽은 대열을 유지하는 데 집중해!”
“하이랭커는 이인일조로 팀을 이뤄서…….”
쉼 없이 검을 휘두르고, 쉼 없이 전장을 살피며 전장을 지휘한다.
어느새 전장은 미카엘의 지휘에 맞춰 움직이고 있었다. 오랫동안 천마대전을 겪으며 쉼 없이 전쟁을 겪은 미카엘의 지휘 능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나 혼자만으로는 버겁다.’
아무리 그래도 이 많은 숫자의 랭커들을 미카엘 혼자서 적재적소에 투입해 활용할 수는 없었다.
더구나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각개전투를 했다가는 산양들의 밥이 될 뿐이었다.
하나의 입과 두 개의 눈으로는 이 넓은 전장을 통솔하기에 한계가 있었다.
실제로도.
‘전열이 무너진다.’
싸움이 지속될수록, 조금씩 산양들에게 밀려 가는 게 보였다.
“전군 진격!”
그때였다.
척, 척-.
질서 있는 동작과 함께 단단한 갑옷으로 무장한 랭커와 플레이어 들이 전장에 합류한 것은.
“이 싸움은 천계만의 싸움이 아니다! 그런 즉, 이번 싸움에서는 적의 섬멸보다는 아군의 엄호를 최우선으로 두도록!”
전장을 뒤덮는 굵은 목소리.
같은 지휘관으로서 모를 수가 없는 목소리였다.
“이랑진군인가.”
이랑진군.
투신과 함께 천계를 이끌어 가는 최상위 랭킹의 하이랭커.
그는 뛰어난 무장임과 동시에 천계의 전장을 통솔하는 대장군이기도 했다.
척-.
천계의 병사들을 이끌고 나타난 이랑진군이 미카엘의 옆으로 다가왔다.
기다란 언월도를 한쪽 어깨에 가볍게 걸친 채, 그는 미카엘의 노고를 치하했다.
“너무 많은 걸 맡기고 있었군.”
“잘하셨습니다. 지금은 천계의 병사들처럼 전열이 가다듬어진 병력이 필요하던 참이었으니.”
이 전장의 문제는 너무 여러 길드가 섞여 있다는 점이었다.
또한, 자유분방한 마족들이나 종교에 가까운 형태를 띠고 있는 데바는 천계와 같은 명령 체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당연히 그만큼 전장이 어수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이랑진군의 합류 덕에, 전장은 어느 정도 모양을 찾을 수 있게 됐다.
이랑진군은 서두르지 않았다.
그는 천계의 병사들을 모아, 길드가 아닌 하나의 군대로 만드는 시간을 가졌다.
그만큼 늦어지긴 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저쪽은 완전 난장판이군.”
쿠구궁-.
슈브 니구라스와의 싸움이 한창인 곳.
오딘과 제우스, 헤라클레스와 디아블로가 팀을 이뤄 싸운다. 수많은 전쟁터를 전전한 이랑진군이었지만 그 역시 생에 이런 장면을 눈으로 보게 될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예, 어중간한 마음가짐으로는 끼어들 수도 없을 정돕니다.”
“저쪽도 저쪽이지만 이쪽도 중요하다. 네 역할은 아군의 지휘라는 걸 잊지 말아.”
“알겠습니다.”
이랑진군의 말에 미카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랭킹은 비슷하지만 이랑진군은 미카엘보다 몇 배나 많은 세월을 살아 온 고대의 하이랭커.
같은 장수로서 존경심이 드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파앗-.
미카엘이 날갯짓과 함께 그 자리에서 바람이 되어 사라졌다. 이랑진군의 도움으로 한숨 돌렸다고는 해도 아직 바쁘게 움직여야 할 때였다.
척-.
이랑진군 역시 계속 놀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지휘 체계는 그렇다 쳐도, 저 빌어먹을 산양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역시 하이랭커급의 실력자가 필요했다.
그리고 이 어수선한 전장에서.
“이럴 때 그 원숭이가 있으면 좋으련만…….”
이랑진군은 한 명의 얼굴이 간절하게 떠올랐다.
* * *
콱-.
헤라클레스가 슈브 니구라스의 뿔을 잡았다.
어느새 허리 아래까지 길게 내려온 뿔. 크기가 커진 만큼 손으로 잡는 것도 쉬워졌다.
하지만.
“아마 꽤 무거울 게다.”
슈브 니구라스의 몸은 헤라클레스의 힘으로도 쉽게 들리지 않았다.
대체 왜 이 작은 체구가 산보다도 무겁게 느껴지는 건지.
“상관없다.”
꾸득, 꾸드득-.
혈관이 부풀어 오르며 헤라클레스의 양팔에 힘이 깃들었다.
[‘거인화’가 발현됩니다.] [‘거인 학살자’가 발현됩니다.] [‘거인화’가 강화됩니다.]거인화.
그리고 헤라클레스만이 가진 최상위 등급의 칭호, 거인 학살자.
두 개의 힘에 더해.
[‘기간토마키아의 종결자’가 발현됩니다.]부우웅-.
헤라클레스의 손아귀에 잡힌 슈브 니구라스의 몸이 위로 떠올랐다.
“후우웁-!”
헤라의 열두 과업 중, 히드라를 들어 올려 바닥에 내다 꽂았던 그때처럼.
헤라클레스는 있는 힘껏 들어 올린 슈브 니구라스의 몸을 바닥에 내던졌다.
콰아아아앙-!
땅속 깊이 처박힌 슈브 니구라스.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구덩이가 생겨났다.
그리고 그 구덩이 속으로.
“비켜 있거라.”
콰릉-!
하늘에 자욱이 낀 구름에서 벼락이 떨어져 내렸다.
쾅, 콰릉, 콰르릉-!
쿠구구궁-!
구덩이 속으로 떨어져 내리는 벼락이 높은 황금색 빛의 기둥을 만들었다. 그렇게 하늘에 올라 벼락을 뿌리던 제우스의 머리 위로, 오딘이 몸을 구부리며 나타났다.
“비켜 있어라.”
파지, 파지지지-.
궁니르가 시동되기 시작한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휘말리기 십상.
조금만 고집을 부려도 아마, 궁니르는 제우스마저 한꺼번에 휩쓸고 지나갈 것이다.
콰웅-!
요란한 소리와 함께 궁니르가 다시 한 번 시동되었다.
벌써 두 번의 시동.
궁니르의 새하얀 창격은 황금빛의 기둥을 덮고.
콰우우우-!
그보다 더 높은, 그 끝을 알 수 없는 빛의 기둥을 만들어 냈다.
미리 약속되어 있던 합.
궁니르의 범위를 피해 서둘러 거리를 벌려 제우스와 같은 구름에 올라와 있던 헤라클레스는 새삼 느꼈다.
‘오딘의 궁니르는 탑을 꿰뚫는다더니.’
힘과 맷집만큼 절대적으로 자신이 있던 그였다.
특히나 헤라클레스는 이번 시험에서 기간토마키아의 종결을 겪고, 신화에 따른 신격을 얻으며 그 강인함은 몇 단계나 더 높아진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라클레스는 저만한 위력의 창을 몸으로 받아 내고도 무사할 자신이 없었다.
실로 파괴적인 일격.
제우스가 날린 수십, 수백 발의 벼락이 작고 초라해 보일 지경이었다.
하지만.
쭈아아악-!
퍼억-!
그럼에도 슈브 니구라스는 죽지 않았다.
예상은 하고 있었다.
이 정도로 죽을 상대였다면, 아마 오딘과 제우스가 그리 경계를 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꾸득, 꾸득-.
겨우 손을 뻗어 막아 낸 거대한 검은 송곳.
‘뿔…… 인가?’
그것은 뿔이었다.
슈브 니구라스의 머리에 나 있던 것과 같은 형태의 뿔. 다만 다를 게 있다면 그 길이가 탑을 뚫고 올라갈 듯 길다는 것이었다.
상당한 위력이었다. 막아 내는 힘이 조금만 약했어도 어깨를 꿰뚫렸을 것이다.
헤라클레스는 힐끗, 궁니르가 떨어진 구덩이 속에서 솟아오른 뿔‘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오딘과 제우스가 올라와 있는 구름 위.
치지, 치지지-.
제우스는 손을 뻗어 전격의 막을 만들어 냈다. 거의 코앞까지 도달한 뿔은 한 뼘도 채 되지 않는 가까운 거리만을 남긴 채 제우스의 머리를 꿰뚫지 못하고 멈췄다.
오딘이 뿔을 막아 낸 방식은 헤라클레스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손아귀에 힘을 강화하는 마법을 두른 그는 완력을 이용해 뿔을 막아 냈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의 앞으로.
-훌륭하였다.
지이이익-.
제우스의 앞에 멈춰 선 뿔의 끝자락.
그 위로, 슈브 니구라스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너희 셋 모두. 합은 그리 좋지 않더라도 하나하나, 모두 훌륭한 격을 지녔다.
슈브 니구라스의 음성이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오딘이 한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짧은 시간 안에 두 번이나 궁니르를 시동한 탓에 마력이 급속도로 바닥이 난 탓이었다.
-한 녀석은 아직 무기에 의존을 많이 하는 것 같지만 말이지.
눈과 코가 사라진, 잔뜩 망가진 얼굴의 슈브 니구라스.
얼굴뿐만이 아니었다.
성한 곳이라고는 한 군데도 보이지 않았다. 한쪽 팔은 완전히 날아가고, 다른 한 팔은 너덜너덜해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우스는 놀랐다.
아직 그녀가 본체를 드러내지 않고 있었기에.
-그러니 저쪽은 일단 내버려 두어도 될 것 같고.
스으으으-.
슈브 니구라스와 눈을 마주친 제우스의 주위로, 검은 배경이 펼쳐졌다.
-너는 조금 가둬 놓아야겠구나.
주위에 있던 모든 게 바뀌었다. 풍경도, 공기도, 세상을 이루고 있는 마력까지도.
제우스는 자신이 서 있게 된 새로운 공간을 둘러보았다.
까만 하늘과 땅. 그리고 벼락이라도 맞은 듯, 검게 탄 나무들로 이루어진 숲.
‘천 마리의 새끼를 거느린…….’
저벅-.
그 숲을 걸으며, 제우스는 슈브 니구라스의 또 다른 이름을 떠올렸다.
‘검은 숲의 염소.’
아무래도 여기가 그 ‘검은 숲’인 모양이었다.
대체 자신이 왜 여기까지 오게 된 건지.
기이잉-.
머릿속이 흔들렸다. 의식을 잡고 있던 끈이 위태롭게 끊어질 것만 같은 느낌에 제우스는 발걸음을 재촉해 움직였다.
메에에-.
메에에에-.
메에에에에-.
검은 숲에 울려 퍼지는 산양들의 울음소리.
그 울음소리를 듣는 순간, 제우스는 자신의 손에 까만 재가 되었던 산양들을 떠올렸다.
‘이곳에서 만들어진 거였군.’
천 마리의 산양을 거느린 슈브 니구라스.
그리고 이 숲은 그 산양들이 사는 집과 같은 곳. 슈브 니구라스는 그 검은 숲에 제우스를 초대했다.
“나를 가둬 놓겠다라.”
파짓, 파지지-.
제우스의 몸에서 흘러나온 황금빛의 전류가 검은 숲을 밝혔다.
산양들의 울음소리가 거세졌다. 한 번도 빛을 받지 못했던 숲에 나타난 전격은 그들에게 있어서 낯선 위협이었다.
하지만 그런 산양들의 울음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런 거라면 장소를 잘못 골랐다.”
파직, 파지지지-!
쿠르르-.
검은 숲의 하늘에 재앙이 찾아왔다.
“나를 네 집에 초대했으니 말이야.”
검은 구름으로 뒤덮여 있는 하늘에 천둥번개가 치기 시작한다. 위로 높게 뻗은 제우스의 손짓을 따라 구름에 낀 벼락이 꿈틀거리며 뇌룡(雷龍)의 형태를 이룬다.
“전부 태워 주마.”
이 숲을 벗어날 방법은 하나뿐.
숲 전체를 태워, 슈브 니구라스로 하여금 자신을 다시 꺼내도록 하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자신에게는 충분히 그럴만한 힘이 있었다.
쿠릉-!
그렇게 제우스가 막 검은 숲 위로 뇌룡을 떨어뜨리려는 순간.
저벅-.
검은 나무들로 이루어진 숲속에서 누군가가 걸어 나오는 게 보였다.
파싯, 치치-.
제우스의 마력이 동요로 흔들렸다.
당연히 산양이겠거니 하며 무시하려 했건만, 그럴 수가 없는 녀석의 얼굴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제우스를 보며 물었다.
“네가 왜 여기서 나와?”
그 말이야말로 제우스가 가장 묻고 싶었던 말이었다.
네가 왜 여기서 나오는 거냐고.
“……김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