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443
* * *
이그드라실.
우주수(宇宙樹)라는 이름으로도 불리우는, 탑에서 가장 크고 위대한 나무.
세상의 모든 나무와 풀이 가진 생명은 이그드라실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을 만큼 이그드라실은 생명의 근원이 되는 존재였다.
“미미르.”
“응?”
“나, 꿈을 꿨다.”
어느 날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탑을 오르던 오딘이 65층에서 뜻 모를 말을 꺼냈다.
“무슨 꿈인데 그러냐?”
“거대한 나무가 있었다.”
“나무?”
“엄청 컸다. 말로는 다 설명하지 못할 만큼.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마 몇 개의 층을 관통할 정도일 거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그걸 어떻게 다 눈으로 담냐?”
“그러게 말이다. 나도 신기해.”
처음에는 그것이 단순히 꿈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렇지 않은가.
현실로서는 일어날 수 없는 게 상상력을 빌려 꿈속에 나타나는 건 흔한 일이니까.
“그런데 말이다, 그 나무의 뿌리가 내 몸속에 심어졌다.”
“좋겠군. 이제 그게 자라서 네 콧구멍으로 가지가 나오겠어.”
끌끌 웃으며 커피를 마시는 미미르.
하지만 평소와 같은 농담에 오딘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장난하는 거 아니다.”
“뭐야. 반응이 왜 그래?”
“넌 아마 모를 거다. 그걸 단지 꿈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내 기분을. 그 꿈은 지금 너와 차를 마시고 있는 이 현실보다도 더 생생했다.”
별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때의 대화는 미미르에게도 꽤 강렬했다. 탑을 관통하는 거대한 나무. 그리고 현실보다 더 현실같은 꿈을 꾸었다는 오딘.
하지만 역시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일까.
미미르는 당시의 대화를 오래지 않아 잊어버렸다. 아마 막 탑을 정복해 랭커가 될 즈음이었을 것이다.
“이그드라실이었다.”
오딘의 몸속에 심어진 나무가 뿌리를 내린 것이.
* * *
-마아아아아-.
검은 숲의 염소가 고개를 들었다.
슈브 니구라스를 향해 다가가는 오딘의 한 걸음 한 걸음에 죽은 숲의 생명이 깃들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새삼스레 다시 느껴졌다.
저것이 얼마만큼이나 큰 재앙인지.
“이런 걸 두고 데자뷰라고 한다지.”
오딘의 머릿속에 처음 슈브 니구라스의 본체와 마주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리 오래 되지 않은 일이라고는 하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나는 장면이었다.
“그때와는 상황이 다르지만 말이다. 너도, 나도.”
[‘이그드라실의 뿌리’가 몸에 깃듭니다.]몸 안에 충만하게 차오르는 활력감.
이 기분을 느끼는 건 정말 오래간만이었다.
그만큼 이그드라실을 사용했던 게 오래 전의 일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쿵-.
두 다리를 땅에 단단히 박아 넣고, 슈브 니구라스의 앞에 선다.
산처럼 높게 솟아오른 몸집과 마왕 디아블로의 것보다 더 날카롭게 솟아오른 여덟 개의 뿔은 지금껏 오딘이 보아온 그 어떤 괴물보다도 더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쾅-!
이그드라실의 앞에서 모든 생명체는 그저 한없이 작고 초라한 우주의 먼지에 불과했다.
“후웁-!”
앞으로 내지르는 정권.
툭-.
그것이 슈브 니구라스의 미간자리에 다다르는 순간.
쩌엉-!
-마아아아아아-.
슈브 니구라스가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머리를 흔들었다. 오딘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다른 한 손에 쥐고 있는 궁니르를 있는 힘껏 휘둘렀다.
부우웅-.
쫘아아아-!
슈브 니구라스의 허벅지 위쪽이 종잇장처럼 갈라졌다. 위로 솟아오른 핏물을 뚫고 슈브 니구라스의 품안으로 깊숙이 뛰어든 오딘의 주먹에 마법의 힘이 실렸다.
우웅, 우우웅-.
수십 겹.
아니, 수백 겹에 달하는 마법진들.
“너처럼 덩치가 큰 녀석들은…….”
그 마법진들의 속성은 하나로 통일되어 있었다.
활짝 펴지는 손바닥.
그리고 그것이 슈브 니구라스의 머리 위를 내리치는 순간.
“그 몸이 가진 무게야말로 가장 큰 약점이 되지.”
구우웅-!
쩌어어어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땅 위로 쓰러진 몸이 숲을 깔아뭉갰다.
중력.
같은 배수의 힘이더라도 몸이 무거울수록 더 큰 힘으로 작용하기 마련이었다. 오딘의 손에 깃들었던 무수히 많은 마법들은 슈브 니구라스의 머리에 닿는 순간 그의 몸을 짓눌렀다.
쿵-.
그렇게 슈브 니구라스의 머리 위에 서서.
“헛수작 부리지 말거라.”
오딘은 그를 두 발로 짓누르며 물었다.
“이놈이 전부가 아니지 않으냐?”
우우우웅-.
오딘의 손안에서 마력이 흩어졌다. 무수히 겹쳐진 마법진에 어떤 힘이 개입해, 그것을 강제로 흩어냈다.
-마아아아아-.
-마아아-.
슈브 니구라스의 울음소리가 반복적으로 울려 퍼졌다.
오딘의 발밑에 깔린 슈브 니구라스의 몸 위로 나무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오딘은 그럼 그렇지 하는 생각에 혀를 차며 재차 주먹을 내리쳤다.
콰앙-!
뿌리째 부서지는 나무들.
오딘의 몸에 초록빛의 마력이 넘실거렸다. 이그드라실의 힘이 검은 숲의 힘에 저항을 시작했다.
“……역시.”
꽈악-.
숲이 생명력을 빨아간다. 자신은 겨우 그걸 이그드라실이 막아 주고 있다지만, 다른 이들은 아니었다.
“끄으으-.”
“어쩐지…… 숨이 막히는…….”
“난 몸에서 힘이…….”
숲에 갇힌 랭커들이 하나 둘 정신을 잃어갔다.
슈브 니구라스의 울음소리가 실체화되어 나타났다.
스륵, 스으-.
검은 숲의 나무들이 오딘을 향해 가지를 뻗어왔다. 오딘은 그것들을 손으로 쳐내며 슈브 니구라스의 울음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쿵-.
묵직한 발소리.
또 다른 염소들이 검은 숲에 모습을 드러냈다. 슈브 니구라스는 하나가 아니었다.
아니.
‘정확히는, 저것들 역시 녀석의 일부일 뿐이라는 거겠지.’
검은 숲은 그저 슈브 니구라스가 살아가는 터전일 뿐인 게 아니었다.
그 속에 있는 산양들. 그리고 거대한 염소의 형상까지 모두, 슈브 니구라스 그 자체였다.
슈브 니구라스를 이루는 일부분들.
본체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더욱 두려웠다.
오딘은 그 사실을 슈브 니구라스가 이 세계에 나타났던 그 순간에 알아보았다.
쾅-.
“전부 때려 부숴 주마.”
어차피 이미 다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달라질 건 없었다.
검은 숲 저편에서 다가오는 슈브 니구라스들.
이그드라실이 그들에 맞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 * *
쾅-!
오딘의 주먹이 슈브 니구라스의 머리를 내리찍었다.
그와 거의 동시였다. 또 다른 슈브 니구라스의 꼬리가 오딘의 머리 위로 떨어진 건.
쩌엉-!
꼬리에 맞고 날아가 땅에 처박히는 오딘. 그의 몸에 둘러진 녹색의 기운이 서서히 흐려졌다.
“흐읍-!”
오딘의 손에 쥐어진 궁니르가 빛을 뿜었다.
시동까지는 금방이었다. 그의 손을 떠난 창끝이 슈브 니구라스의 가슴을 꿰뚫었다.
콰우웅-!
벌써 오늘만 다섯 번째 시동이었다.
멀리서 그 싸움을 지켜보던 미미르도 슬슬 걱정이 될 지경.
“괜찮은 겁니까?”
계속 참고 있던 헤라클레스의 질문이었다.
홀로 검은 숲 한복판에 서서 슈브 니구라스와 싸우는 오딘은 분명 대단했다.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어째서 그가 단 한 번도 랭킹이 떨어져 본 적이 없었는지 알 것도 같았다.
그렇지만 오늘만큼은 상대가 좋지 않았다.
츠츠, 츠-.
당장 숲이 문제였다.
몸을 회복하고 벼락의 힘에 조금이라도 더 익숙해지려던 헤라클레스였다. 하지만 이 숲이 등장하면서부터 그는 어딘가 회복이 어려워진 걸 느꼈다.
검은 숲이 살아있는 생명력을 빨아들였다. 정신력이 약한 자들은 힘을 잃어버리는 걸 넘어, 이상한 헛소리를 하며 환각을 보았노라 호소하기도 했다.
이대로라면 시간은 누구의 편일까.
예상하건대, 절대 자신들의 편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미미르 역시 그 정도쯤은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린 한 방이 필요하다.”
미미르의 생각은 헤라클레스와는 조금 달랐다.
“지금 네가 나가서 달라질 게 뭐가 있지? 아직 그 힘도 제대로 못 다루는 녀석이?”
“한 손이라도 거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거들어야지. 거들어야 하고 말고.”
“그럼 대체 뭐가…….”
“아직은 아니야.”
대체 무엇을 기다리는 걸까.
미미르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머리에 손을 올린 채 이마를 계속해서 찡그리고 있었다.
마치, 참을 수 없을 만큼 아픈 두통이라도 온 것처럼.
“오딘, 저 녀석이라면 버텨 낼 거다. 조금만 더 기다려라.”
미미르의 말은 거기까지였다.
헤라클레스는 고개를 끄덕인 채 제 손으로 허벅지를 짚었다. 그렇지 않았다가는 금방이라도 자신도 모르게 앞으로 뛰쳐나가게 될 것 같아서였다.
퍼어억-!
오딘의 몸에 슈브 니구라스의 뿔이 박혔다.
쩍, 쩌저저-.
그의 몸에 둘러져 있던 황금색의 갑옷에 금이 생겨났다. 그것은 아스가르드에서 가장 단단한, 절반의 아다만티움과 절반의 미스릴을 섞어 만들어 낸 최상급의 아이템이었다.
“쿨럭!”
오딘의 입에서 핏물이 밖으로 터져 나왔다.
다행히 외상은 그리 크지 않았다. 갑옷이 부서지면서 뿔에 몸이 관통되는 것만은 피한 것이다.
하지만 갑옷에 둘러져 있던 수많은 마법들이 깨어지며 그의 몸속에 흐르던 마력이 반대로 역류했다. 그리고 그것은 피가 거꾸로 흐르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이그드라실의 뿌리’가 마력의 흐름을 안정시킵니다.] [‘검은 숲’이 ‘이그드라실의 뿌리’를 감염시킵니다.]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를 메시지들.
슬슬 끝이 다다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속에 심어 놓은 뿌리가 썩어 힘이 다 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을 것 같았다.
콱-.
두 팔로 갑옷을 부순 뿔을 붙잡는다. 그대로 있는 힘껏 슈브 니구라스를 들어올려, 위로 멀리 내던졌다.
부우우웅-.
그렇게 위로 높게 떠오른 슈브 니구라스를 향해.
파즈즈-.
궁니르가 다시 한번 빛을 뿜어냈다.
콰우웅-!
슈브 니구라스의 몸을 꿰뚫은 궁니르의 창격.
이것으로 하루 만에 벌써 여섯 번째의 시동이었다.
‘이그드라실 덕분에 시동 시간을 많이 줄이긴 했지만…….’
덜, 덜덜-.
창을 던진 팔이 떨려온다. 이젠 정말 슬슬 한계가 임박해 왔다.
‘하루에 여섯 번이라.’
이렇게 궁니르를 많이 던진 적이 대체 언제 있었던가. 오래 전, 수르트와의 싸움에서도 세 번이 최대였던 걸 생각하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숫자였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 부족했다.
궁니르가 다시 오딘의 손안으로 돌아왔다. 오딘은 덜덜 떨리는 팔을 다른 한 손으로 붙잡아 진정시키고는 검은 숲을 노려보았다.
“아직 멀었다.”
아직 자신은 더 싸울 수 있었다.
이그드라실도.
이따위 검은 숲에는 절대로 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오딘이 다음 발을 내딛으려는 순간.
콱, 콱-.
오딘의 팔과 다리를 검은 숲의 나무들이 붙잡았다.
분명, 다 죽은 나무들이라고만 생각했는데.
“흡…….”
슈륵, 슈르륵-.
땅 밑에서 솟아오른 나무들이 오딘의 몸을 묶었다. 이따위 마른 나무들 쯤은 손도 쓰지 않고 빠져나올 수 있을 텐데, 그러질 못했다.
‘힘이…….’
오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나마 오딘의 몸을 지탱하고 있던 힘이 사라지고.
슈아아악-.
검은 숲의 나무가 오딘의 눈동자를 꿰뚫어 왔다.
그리고 그 순간.
콰릉-!
어디선가 날아온 황금빛의 벼락 하나.
그것이 오딘을 향해 뻗어오던 나무를 가로막았다.
“이 광경을 네놈의 백성들이 봤어야 하는 건데 말이다.”
비웃음이 섞인 말투.
다른 때 같으면 그 말투가 목구멍에 걸려 영 거슬렸을 테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보다 더 믿음직할 수가 없었다.
저벅-.
검은 숲 안쪽에서 걸어 나오는 두 명.
“……늦었구만.”
유원과 제우스를 보며, 오딘이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