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538
* * *
95층이 발칵 뒤집어졌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발생한 비슈누의 싸움은 지난 평화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95층의 절반가량이 숲으로 뒤덮였다.
거인족들의 나라에 솟은 나무처럼, 하늘을 가려 버린 나무로 인해 95층 대부분의 공간의 빛이 차단되었다.
거주민들은 갑작스러운 비슈누의 난동에 생각했다.
대체 상대가 누구일까, 하고.
그리고 그 싸움이 끝난 직후.
“쿠에에엑-!”
몸을 피해 94층의 관리국으로 도망쳐 내려온 95층의 관리자가 피를 토하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94층의 관리자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한심하기는.”
95층의 관리자와 똑 닮은 얼굴.
머리색이 은색으로 조금 다를 뿐, 둘은 쌍둥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지금 뭐라, 우웁…….”
“꼴이 그게 뭐냐?”
“후우…… 네가 싸워 봐. 나니까 겨우 이 정도지. 고작 94층 주제에.”
“뭐야?”
94층의 관리자는 눈에 불을 켜며 자신과 똑 닮은 관리자를 노려보았다.
관리자들의 서열은 층으로 나누어진다.
가장 위대한 100층의 관리자부터 가장 낮은 1층의 관리자까지.
숫자야말로 그들의 계급을 나누는 척도라고 할 수 있었다.
“한 층밖에 차이 안 나거든?”
“어쨌든.”
“에이 씨.”
할 말이 없어진 94층의 관리자는 짜증과 함께 자리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그렇게 셌어? 비슈누가?”
“대단하던데.”
“셋 중 하나는 슈브 니구라스와 싸우면서 소멸했잖아?”
“그러니까.”
어이가 없다는 듯, 그녀는 헛웃음을 지었다.
“우리 생각이 맞았어.”
“그러게.”
“더 시간을 끌면 안 돼. 너무 강해져 버렸어.”
“어쨌거나 녀석들은 니알라 토랩과 요그 소토스를 막아 냈으니까.”
“이대로라면…….”
재생되지 않는 상처를 매만지며 관리자가 중얼거렸다.
“사냥개들에게 우리가 잡아먹힐지도 몰라.”
토사구팽(鬼死拘烹).
토끼를 사냥한 뒤, 사냥이 끝나 쓸모가 없어진 개를 삶아먹는다.
아우터와의 싸움이 끝난 후. 올림포스와 데바를 비롯한 거대 길드와 랭커들은 이 탑에 군림하고 있었다.
예상대로였다면 그들은 아자토스를 비롯한 아우터와의 싸움에서 대부분 힘을 잃었어야 했다.
한데 웬걸.
오딘의 전사 외에, 거대 길드의 타격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갑작스레 생겨난 변수 때문이었다.
“시간 축을 넘어올 줄이야…….”
갑작스럽게 등장한 다른 시간의 랭커들.
미래의 오딘을 필두로 한 그들의 존재는 전황을 완전히 뒤집어 버릴 정도였다.
“대체 그 녀석들은 여기로 왜 온 거야?”
“요그 소토스에게 패배한 세계선에서 왜 여길 간섭한 건지, 아직 이유는 찾지 못했다.”
“그게 말이……! 으윽.”
흥분해 소리를 지른 나머지 상처가 덧나고 말았다.
비슈누에게 입은 상처는 쉽게 재생이 되질 않았다.
아니, 재생이 되지 않기는커녕 독에라도 당한 것처럼 그 부위가 계속해서 찢어지고 피가 나고 있었다.
엉망이다.
아직까지도 싸움은 끝나지 않은 기분이었다.
“진정하고 일단 쉬어. 그런 상처로 뭘 어쩌려고.”
“그래도 오늘은 좀 동생 같네?”
“네가 동생이라니까.”
그렇게 한 마디를 던진 94층의 관리자가 자리를 벗어났다.
관리국은 넓고, 수많은 심부름꾼들이 자리에 모였다.
그들은 모두 95층의 관리자의 몸을 회복시키는 데 마력을 퍼붓기 시작했다.
‘비슈누라…….”
데바의 신이자 ‘창조의 창조자’라는 신화를 쓴 존재.
한때, 오딘과 제우스를 제치고 이 탑에서 가장 위대한 랭킹을 가졌던 자.
“그래도 첫 폭죽으로 시시하진 않네.”
할짝-.
* * *
유원은 플레이어 키트를 살폈다.
이른 아침부터 느낌이 좋지 않았다.
관리자가 올림포스에 경고를 했다는 말을 듣고 난 직후라 그럴까.
기우였으면 한다는 생각에 키트에 뜬 소식을 살피는 순간.
“……너무 늦었나.”
유원은 어제의 불안이 사실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데바의 수장, 랭킹에서 사라지다.] [상대는 누구? 아우터의 재림인가?] [일부 랭커들, 관리자와의 싸움을 예고.] [전쟁의 서막인가, 혹은 개인과 데바만의 문제인가.] [정말 비슈누는 죽었는가?]수많은 기사들이 쏟아졌다.
랭킹에서 사라진 데바. 쑥대밭이 된 95층.
사진을 통해 본 전장의 모습에서는 누가 봐도 비슈누의 싸움을 떠올릴 수 있었다.
‘거대한 나무로 뒤덮인 세계. 어지간히도 난동을 피웠나 보군.’
제아무리 비슈누가 슈브 니구라스와의 싸움으로 약해진 비슈누라지만, 한때 이 탑에서 가장 위대했던 존재였다.
제아무리 관리자라 한들, 그런 비슈누를 상대로 쉽게 이길 수는 없을 터.
무엇보다 비슈누의 옆에는 항상 야마가 붙어 있었다.
그렇다는 건…….
“심부름꾼들을 준비해 놓았나.”
대충 어떤 그림이었는지는 알 것 같았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야마는 살아 돌아온 것 같았다.
“심부름꾼? 무슨 말입니까?”
바삭-.
구운 토스트에 잼을 발라 입에 넣으며 바루나가 물었다.
키트를 어디다 버려뒀는지, 아직 그는 소식을 접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비슈누가 죽었다는데.”
“아하, 비슈…… 켁!”
씹고 있던 빵과 함께 침이 튀었다.
유원은 급히 접시를 들어 바루나의 침을 막아냈다.
“뭐, 뭐라고요? 누가 죽어요?”
침은 더럽지만 저 반응이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비슈누가 누구던가.
그는 만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데바의 수장으로서 그들을 다스리던 위대한 하이랭커였다.
그리고 바루나는 그런 데바의 간부 중 한 명.
아무래도 비슈누의 죽음에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비슈누.”
“그분이 왜 죽어요? 왜?”
“관리자와 싸웠다더군.”
“관리자와……?”
어제의 대화를 떠올린 바루나의 안색이 하얗게 변했다.
제우스에게 전한 관리자의 경고.
그리고 전면전으로 이어질 거라던 유원의 판단.
그 직후 전해진 건, 비슈누의 사망 소식이었다.
“설마-.”
바루나는 급히 키트를 꺼내 확인했다.
부재 중 메시지가 수십 통.
문자를 확인할 겨를도 없이 바루나는 기사를 검색했다.
비슈누의 사망 소식은 이미 비밀 같은 게 아니었다.
데바는 비상사태에 돌입했고, 관리자와 심부름꾼, 그리고 데바는 언제 싸움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뒤늦게 메시지를 확인한 바루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 봐야겠습니다.”
“어딜?”
바삭-.
이 상황에서도 한쪽에 수북이 쌓아 둔 토스트를 집어먹으며 손오공이 물었다.
“데바로요.”
“잘 가.”
관심 없다는 듯, 손오공은 손을 흔들었다.
먹을 거에 눈이 팔린 손오공을 보며 바루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이 중대한 상황에도 그는 아무런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하긴. 제천대성과 우리 데바 사이에 무슨 연이 있는 건 아니니…….’
바루나는 아쉬운 눈으로 유원과 손오공, 판도라를 바라보았다.
함께 몇 번 식사를 했다고 해서 저들과 연을 만들었다고 할 순 없었다.
애초에 이 자리에 있는 것 역시 자신의 억지였을 뿐, 이들이 자신을 도와야 할 이유 따위는 없었다.
물론, 그렇다 해서 자리를 뜨는 발이 가벼운 건 아니었다.
‘일단 돌아가자.’
저벅-.
바루나가 자리를 벗어났다.
집 밖으로 나가는 그를 배웅하는 사람은 없었다.
유원과 손오공, 판도라 모두 묵묵히 식사를 이어갈 뿐이었다.
그렇게 바루나의 기척이 모두 사라진 후.
“진짜 죽었을까?”
손오공이 먼저 의문을 품었다.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다.
“원래였다면 죽었다고 생각했겠지.”
“왜?”
“랭킹에서 사라졌으니까.”
랭킹의 기준은 절대적이었다.
랭킹 관리국은 백 명의 관리자들과 천만이 넘는 심부름꾼들이 관리하는 기관으로서, 그들의 눈을 속일 수 있는 존재는 어디에도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가 관리자들에 의해 움직이는 기관이라는 거지.”
“신뢰할 수 없다?”
“그래.”
관리자들이 돌아섰다.
이미 비슈누와 싸운 이상, 다른 길드들 역시 관리자를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랭킹은 이제 랭커들의 순위를 정하는 지표로서 신뢰하기 어려운 숫자가 됐다.
어느 랭커의 랭킹을 올리거나 내리고, 또는 랭킹을 지우는 등 여러 전술로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대로 있을 거냐?”
까득-.
이빨이 갈리는 소리와 함께, 손 오공의 눈빛이 돌변했다.
비슈누는 미래에서 유원과 손오공과 꽤 오랫동안 함께 싸운 동료였다.
심지어 어리석은 혼돈과의 마지막 싸움에서 자신을 희생했고, 끝내 녀석을 잡는 결과를 만들었다.
강한 상대라면 누구든 가리지 않고 도전하던 손오공이었으니, 그는 비슈누와도 몇 번이나 싸운 적이 있었다.
“야, 잠깐만! 이렇게 끝내는 게 어디 있어?”
“못 움직이게 된 순간 네가 진 거다. 패배를 받아들여.”
“와, 씨. 치사한 놈. 야! 너 다음에 다시 해!”
“벌써 세 번째다. 이만 받아들이는 게 어때?”
처음 손오공은 비슈누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당시 비슈누는 시바와 브라흐마의 영혼을 모두 가진 완전한 상태였고, 손오공은 지금보다 더 약했다.
백전백패.
손오공과 비슈누의 전적은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거 봐.”
손오공은 결국, 이겨 내고 말았다.
“이번엔 내가 다를 거랬지?”
백한 번째 싸움.
그 싸움에서 손오공은 결국 비슈누를 이기는 데 성공했다.
당시에만 하더라도 비슈누는 탑에서 가장 위대한 하이랭커로 알려져 있었다.
아스가르드의 왕, 오딘조차도 비슈누에게는 한 수 접어 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런 비슈누의 패배는 역사에 기록될 만한 일.
데바의 하이랭커들에게 둘러싸인 손오공은 승자치고는 꽤 많이 다치고 지쳐 있었다.
“그렇군. 다르긴 달라.”
“그치?”
“그럼 이제 어쩔 거지? 내 목을 칠 건가?”
“아니?”
손오공은 그날, 비슈누에게 손을 내밀었다.
“친구끼리 그런 짓을 왜 해? 다음에 또 놀자고.”
푸욱-.
주먹을 너무 세게 쥔 나머지, 손톱이 살을 파고들었다.
손오공의 분노를 느낀 판도라는 분위기를 살피다 물었다.
“싸우는 거야?”
“아마도.”
“그럼 싸우는 거네.”
불확실한 유원의 대답에 판도라는 확신하듯 말했다.
아마도, 라는 그 대답이 조금이나마 자신을 안심시키기 위한 말임을 알아차린 것이다.
탁’
찻잔을 내려놓은 판도라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계단을 올라가는 그녀의 발걸음에서 만전 상태의 기세가 느껴졌다.
비슈누의 사망 소식 직후부터 그녀 또한 싸울 준비를 시작하고 있었다.
“우리도 몸 좀 풀어야겠어.”
먼저 말을 꺼낸 건 유원이었다.
그리고 그 말에, 손오공이 깜짝 놀라 물었다.
“네가 먼저 웬일이냐?”
“좀 오래 쉬긴 했지.”
10년이었다.
놀아 달라는 손오공의 요청을 질기게도 거절해 온 것이.
녀석과 재미로 한 번 싸우면 좋든 싫든 랭커와 관리자들의 눈에 띌 수밖에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니.’
더군다나 다행히도 적당한 장소가 생겼다.
“95층엔 지금 관리자가 없을 거다.”
비슈누가 죽었다.
제아무리 관리자라고 해도 몸이 멀쩡할 수는 없을 터.
“장소는 거기가 어때?”
“어떻기는.”
씩 말려 올라가는 입꼬리.
그 어느 때보다도 눈을 반짝이며, 손오공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완전 환영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