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569
* * *
“……?”
찡그려진 표정의 바유가 의아한 눈으로 바루나를 바라보았다.
실실 웃고 있는 바루나.
그는 계산을 잘못했다며 자신을 비웃고 있었다.
“무슨 말이냐?”
“나중에 알게 될 거다. 근데, 후회할 각오는 하고.”
빠직, 빠직-.
바유의 이마에 힘줄이 돋아났다.
바루나의 약 올리는 재주는 여전했다.
오래전부터 친구였던 녀석이지만, 바유는 언제 바루나와 틀어져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게 바로 지금인 거고 말이다.
“아직도 여유만만이군.”
“이 난리가 일어났는데 어디 데바가 가만히 있겠어?”
바루나의 집은 데바의 거점과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시간만 좀 끌면 돼. 설마 내가 너한테 오 분, 십 분을 못 버티겠냐?”
비록 망설임 탓에 손해를 입었다지만 바루나와 바유의 랭킹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원래대로라면 두 사람의 실력은 백중세.
밤을 지새워 싸워야 겨우 결판을 볼 수 있을 정도로 근소한 차이였다.
그런데.
“생각이 짧군.”
“응?”
예상외로 바유의 반응은 담담했다.
마치, 무언가 또 다른 믿는 구석이 있는 듯이 말이다.
“넌 나 하나뿐이라고 생각하지?”
“뭐?”
놀란 눈으로 고개를 드는 바루나.
그의 시야에 저 멀리, 새벽노을 위로 떠오른 불빛이 보였다.
‘설마, 바유 말고도 또-.’
땅 위에 타오르는 불길.
데바가 다스리는 마을이 타들어가고 있었다.
부우웅-.
그 순간 뻗어 온 주먹.
퍼어억-!
급하게 활을 들어 올린 바루나가 바유의 주먹을 막아 냈다.
제아무리 한눈이 팔려 있다 한들, 같은 이유로 두 번 당할 순 없는 일이었다.
꾸우욱-.
바유의 손이 바루나의 활을 움켜잡았다.
바유가 처음과는 달리 섬뜩하게 변한 얼굴로 바루나를 향해 고개를 들이밀었다.
“내가 바보도 아니고 말이야. 설마하니 나 혼자 움직였겠어?”
스으으으-.
바유의 머리카락이 스멀스멀 위로 솟아올랐다.
자신을 향해 쏘아져 오는 바유의 살기에도 불구하고 바루나의 시선은 불타오르는 데바의 마을로 향해 있었다.
‘또 누구냐, 대체.’
* * *
치지, 치지지-.
헤라클레스의 몸에 감출 수 없는 전격의 기류가 흘렀다.
방금 전, 제우스.
그의 입에서 나온 이름.
김유원.
“당신이 어떻게 그 이름을 아는 겁니까?”
분명 제우스는 유원의 이름을 모르고 있었다.
그랬기에 그는 하르간의 소식에 유원을 시험했고, 아테나를 통해 유원의 존재를 확인했다.
그가 처음부터 유원을 기억하고 있었다면 그런 번거로움을 감수할 리 없었다.
“알게 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왜, 알면 안 되는 이름이 더냐? 그렇다면 서운하구나.”
의미심장한 시선으로 유원을 바라보는 눈.
“날 처음 추락시킨 것도, 날 다시 왕좌에 올린 것도. 내 벼락을 빼앗아 간 것도…….”
웃는 건지, 아니면 노려보는 건지.
“모두 저자인 걸 아는데 말이다.”
제우스의 표정은 도통 보는 것만으로는 알 수가 없었다.
‘역시 방심할 수 없군.’
혹시나 싶기는 했다.
다른 녀석이라면 몰라도 제우스.
제우스라면 자신을 기억해 내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물론 단지 느낌일 뿐, 마땅한 근거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랬기에 정말로 혹시나. 만에 하나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인데.
쿵, 쿵-.
헤라클레스가 제우스를 향해 걸 어갔다.
발소리가 무거워진 걸 보니 적잖이 흥분한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그 역시, 제우스가 유원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 모양이었다.
“그런 말이 아니라는 걸 알지 않습니까?”
“그럼?”
“당신과 어울리지 않게 빙빙 돌리지 마시죠. 전 어떻게 알았는지를 묻는 겁니다.”
“아직 아버지라 부르기에는 어색한 모양이구나. 이해하마.”
번쩍-!
신전 가득 빛이 터졌다.
전격을 개방함과 동시에 헤라클레스의 주먹이 제우스의 앞으로 뻗어진 순간.
토옥-.
제우스의 손가락이 헤라클레스의 주먹과 부딪쳤다.
콰웅-!
뻥 뚫린 신전의 하늘 위로 높이 솟아 올라가는 벼락.
아래에서 위로 거꾸로 솟아오르는 벼락은 꽤 장관이었다.
유원은 혹시나 판도라가 휘말리진 않을까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헤라클레스의 주먹을 손가락으로 막아 낸 제우스.
놀랄 건 없었다.
애초에 방금 전, 헤라클레스의 주먹은 진심도 아닌 단순한 위협용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분명히 말하지 않았습니까? 제가 올림포스를 돕는 건, 당신 때문이 아니라고.”
세간에 제우스와 헤라클레스는 그럭저럭 사이가 나쁘지 않은 부자관계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알려지기만 그럴 뿐.
아테나에게 말한 것처럼 헤라클레스는 영영 제우스와 화해할 수 없었다.
그가 화해가 아닌 용서해 보려 노력하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용서라는 것도 아마, 수백 수천 년이 걸리게 될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라클레스는 올림포스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힘과 이름을 활용했다.
영웅.
헤라클레스의 이름 앞에 항상 언급되는 수식어였다.
헤라클레스의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도 전쟁을 막는 억제제나 다름없었다.
아우터와의 전쟁 이후로 혼란에 빠진 탑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제우스는 헤라클레스의 힘과 이름이 필요했다.
그 사실을 헤라클레스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대외적으로는 내키지 않는 제우스의 아들 행세를 할 수밖에 없었다.
“제가 당신을 용서하려고 노력하는 만큼 당신도 똑바로 살아야 합니다. 그게 돌아가신 제 어머니에게 백분의 일, 천분의 일이나마 사죄하는 일일 테니까요.”
“그래. 약속하마.”
“약속을 그리 쉽게-!”
“헤라클레스.”
톡, 톡-.
헤라클레스에게 가까이 다가온 유원이 조심스레 그의 어깨를 건드렸다.
“내 이름 하나 기억하는 걸로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니냐? 아직 재, 아무것도 안 했어.”
“어…….”
잔뜩 흥분해 있던 헤라클레스는 주먹을 거두며 머리를 긁적였다.
생각해 보면 그건 그랬다.
제우스가 한 일이라고는 단지, 모두가 기억하지 못할 때 유원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것일 뿐.
‘아버지’라는 이름에 예민하게 반응한 건 헤라클레스 쪽이었다.
“……그러네.”
헤라클레스는 멋쩍은 헛기침과 함께 흥분을 가라앉혔다.
급히 속을 진정시키며 한 발 물러나는 헤라클레스 대신, 유원이 제우스를 마주 보았다.
제우스를 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 건 유원도 마찬가지였다.
“왜 그런 눈으로 보지?”
“넌 지금도 나만 눈에 들어오지?”
“무슨 말…….”
말을 잇던 중, 제우스의 시선이 유원의 뒤에 꼭 붙어 있는 판도라에게로 향했다.
덜덜 떨리는 손.
아무리 각오를 하고 왔다지만 아직까지도 그녀는 제우스의 앞에서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상자를 열고 말았구나.”
어느 날, 상자를 연 판도라에게 제우스가 찾아왔다.
갑자기 얻게 된 크고 불길한 힘.
그 힘에 불안에 떨고 있던 판도라에게 제우스는 손짓했다.
콰릉-!
판도라의 몸을 속박한 벼락의 사슬.
몸이 구속된 판도라를 뒤로하며 제우스는 그녀에게 사형 선고와도 같은 말을 남겼다.
“죄인 판도라를 감옥에 가둬라. 내가 따로 지시할 때까지는 풀어 주지 말고.”
그날 판도라는 제우스의 웃음을 보았다.
그것은 마치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어둡고 차가운 감옥.
마력을 봉인하고 하이랭커의 몸조차 구속할 만큼 단단한 사슬들.
그 오랜 시간 동안 판도라는 그 어둠 속에 있었다.
심심하고도 외롭고, 무서운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끝에.
판도라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떠 있는 공기처럼 변해 버렸다.
“맞아. 그랬지. 판도라도 있었구나.”
“도?”
기이잉-.
치지,치지지-.
[‘우라노스의 심장’이 활성화됩니다.]유원의 손에서 빛나기 시작하는 반지.
우라노스의 심장.
올림포스의 비보를 모아 만들어 낸, 벼락의 진짜 모습.
“네가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치지지지, 치지-.
반지를 찬 손끝에서 흘러나온 전격이 주먹에 휘감겼다.
오래전, 자신이 지니고 있던 진짜 ‘벼락’이 모습을 드러내자 제우스는 눈을 빛냈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우라노스의 힘을 보는 건 그도 처음이었다.
호기심을 보이는 제우스.
그래서일까.
그는 유원이 화가 났다는 사실을 뒷전으로 생각하고 말았다.
그렇게 다음 순간.
파짓-.
유원이 샛노란 황금색 선을 그리며 제우스의 눈앞으로 날아왔다.
“딱 한 대만 맞자.”
꾸우욱-.
[거인의 힘이 오른팔에 깃듭니다.]빠아아악-!
머리를 얻어 맞고 경쾌한 소리를 내며 날아가는 제우스.
텅, 터덩-.
털썩-.
바닥에서 몇 바퀴를 구른 제우스가 대(大) 자를 그리며 축 늘어졌다.
삽시간에 벌어진 상황.
“…….”
“우와아.”
짝, 짝, 짝-.
놀란 헤라클레스가 입을 벌린 채 그대로 굳고, 판도라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박수를 쳤다.
아직까지도 활성화된 스킬을 풀지 않은 채 바닥에 쓰러진 제우스를 노려보고 있는 유원.
그런 그를 향해 헤라클레스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괜찮은 거냐?”
“뭐가?”
“잘못하면 이건…….”
상대는 제우스였다.
이 탑에서 가장 위대한 왕.
방금 전 유원의 한 방은 자칫, 올림포스에 대한 선전 포고로 비춰질지도 모르는 행동이었다.
‘그 원숭이나 저지를 일을, 이 녀석이?’
이 정도 짓은 손오공이 했다 해도 놀랐을 것이다.
헤라클레스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유원이라면 필시 이유가 있어서 한 행동일 터.
지금은 먼저, 그걸 물어야 했다.
“왜 그런 거냐?”
“다짐했거든.”
유원은 어느새 떨림이 사라진 판도라를 돌아보았다.
“만나면 반드시 한 방 먹여 줘야겠다고.”
“아…….”
그제야 헤라클레스는 갑작스러운 유원의 행동을 납득할 수 있었다.
판도라.
십 년 전까지만 해도 올림포스에 의해 이름이 사라졌었던, 아름답고 고귀한 여인.
그녀의 비극은 제우스로부터 시작되 었다.
헤라클레스 자신과 어머니 알크메네의 죽음처럼 말이다.
‘문제는 저 망할 아버지지.’
스윽-.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제우스.
헤라클레스는 불안한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았다.
‘어쩌면 올림포스와 전쟁이-.’
“이걸로 속이 풀렸나?”
유원에게 얻어맞은 머리를 한 손으로 쓸어내리는 제우스.
손바닥에 피가 묻어 나오는 걸 확인한 제우스가 눈살을 찌푸렸다.
“생각했던 것보다 주먹이 맵군. 거인화까지 쓸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
헤라클레스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어찌어찌 자신이 제우스를 설득해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이리 밋밋한 반응이 나오다니.
더 놀란 건 유원의 반응이었다.
“아직 다 풀린 건 아니고.”
“더 남았나, 그럼?”
“한참.”
“그런 거면 천천히 갚도록 하지. 시간은 많으니.”
담담한 유원의 반응에 또다시 담담하게 대답하는 제우스.
정녕 이 둘이 방금 전, 주먹을 휘두르고 그 주먹에 얻어맞은 손님과 집주인이 맞나 싶을 지경이었다.
“그럼…….”
자리에서 일어난 제우스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눈짓으로 한쪽에 위치한 테이블을 가리켰다.
“어디 네가 아는 것들을 들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