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583
* * *
유원은 지금껏 화안금정을 전투에만 활용해 왔다.
상대의 움직임을 읽고, 수를 꿰뚫고, 나아가 상대의 행동을 자신의 뜻대로 만들어 내기도 한다.
수 싸움, 그리고 상대의 약점을 파악하는 능력.
하지만 화안금정이 지닌 본질적인 힘은 그보다 훨씬 포괄적이었다.
진실을 꿰뚫는 눈.
그게 바로 화안금정이 가진 진짜 효과였다.
‘이런 식으로 이 눈을 쓰는 건 처음인가.’
처음 사용되는 방식 때문일까.
좀처럼 오르지 않던 숙련도가 상승하며, 눈이 한층 더 맑아진 기분마저 들었다.
유원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관리자를 비롯한 수많은 심부름꾼들.
바유를 앞세워 그들이 이 자리에 나타난 이유야 뻔했다.
‘이 자리에서 끝장을 낼 생각이었나.’
그들은 알고 있었다.
비슈누가 살아 있다는 바루나의 말이 거짓이라는 걸.
이 자리에는 비슈누는 물론, 올림포스가 깔아 놓은 그 어떤 덫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말이다.
화륵-.
바유를 향해 걸어가던 유원의 시야에 수많은 랭커들의 표정이 들어왔다.
유원은 이런 자리를 원했다.
어수선하고, 혼란스럽고.
표정을 숨길 수 없거나 숨기지 않아도 되는 자리를.
‘그래야 읽기가 더 쉬우니까.’
화안금정은 탑에서 손꼽히는 높은 랭크를 지닌 스킬이었다.
그런 만큼 숙련도를 올리기란 쉽지 않았고, 유원이 지닌 화안금정의 숙련도는 아직 손오공에 비해 낮은 편이었다.
그런 만큼 가만히 있는 상대의 속내를, 그것도 백 단위에 달하는 다수의 하이랭커의 속내를 파 악하는 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난장판이라면.
“고맙다, 바유.”
저벅-.
바유의 앞으로 다가온 유원은 그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덕분에 자리가 난장판이 됐어.”
“……?”
바유는 눈씹 한쪽을 치켜뜬 채, 의아한 표정으로 유원을 노려보았다.
자리를 망쳤다는 말처럼 들렸으나 유원의 표정은 전혀 불쾌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 상황을 반기는 표정에 더 가까웠다.
더군다나 누구인지 모를 처음 보는 얼굴.
‘뭐 하는 녀석이지?’
야마와 바루나의 사이에 서 있던, 검은 머리의 남자.
모르는 얼굴이라 딱히 신경 쓰지 않고 있었는데 이리 건방지게 나올 줄이야.
이상했다.
아까까지 느껴지지 않던 묘한 위화감이 들었다.
데바의 랭커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억 속에도 없는 녀석.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녀석이 등장한 순간부터 야마에게서도 느끼지 못한 불안감이 샘솟았다.
“넌 뭐냐?”
부채를 들어 올리며 묻는 바유.
금방이라도 바람을 날려 목을 베어 내겠다는 위협에 유원은 손을 들어 자신의 얼굴로 가져갔다.
“아, 이래선 못 알아보겠네.”
스윽-.
유원은 그렇게 두 눈에 쓰고 있던 렌즈를 빼, 다시 바유와 눈을 마주쳤다.
“이러면 소개가 좀 되려나.”
“……!”
바유의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갑자기 유원의 얼굴을 알아보거나 한 건 아니었다.
렌즈를 벗고 드러난 그의 눈.
붉은 적안과 황금빛의 금안.
화안금정(火眼金睛).
제천대성의 상징과도 같은 그 눈이, 지금 눈앞에 있는 사내에게서 발현된 것이다.
“그 스킬을 어떻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저벅-.
잠시 멈춰 섰던 유원이 다시금 바유를 향해 다가갔다.
“니들, 이젠 쥐새끼처럼 숨기엔 늦었어.”
단순히 대화를 나누기에는 가까워진 거리.
다급해진 바유는 서둘러 부채를 휘둘렀다.
아니.
휘두르려고 했다.
콱, 콱-!
부채를 휘두르려던 팔과 목이 붙잡혔다.
유원의 손이 바유의 몸을 들어 올리며, 목을 붙잡고 숨통을 조여 왔다.
‘언…… 제?’
보이지도 않았다.
반응할 수도 없었고, 저항할 수도 없었다.
붙잡힌 손에 힘을 조금만 더 주면 그대로 목이 부러질 걸 알기 때문이었다.
순식간에 바유를 제압한 유원의 등장에 분위기가 달라졌다.
관리자의 편에 선 랭커들.
그들을 보며, 유원은 화안금정의 불꽃을 더 크게 태웠다.
그리고 그 순간.
화아아-!
하늘이 열리며, 그 속으로 하나의 눈이 떠올랐다.
[‘멸망을 가져오는 밤의 별’이 노래합니다.]그로스에게서 빼앗은 이름.
그 별이 노래하며, 지상에 검은 빛을 비췄다.
“뭐, 뭐야 저건?”
“눈?”
“이 빛은 뭐-.”
지상에 쏟아진 수많은 검은빛들.
그것은 유원이 지정한 대상을 비춰 움직였다.
바유를 비롯한 데바를 배신한 랭커들에게 말이다.
“이건 낙인이다.”
그 말과 함께, 유원은 붙잡고 있던 바유의 목을 놓았다.
털썩-.
“컥, 커헉-.”
한동안 숨통이 옥죄어져 있던 바유는 자리에 주저앉아 거친 호흡을 내뱉었다.
빛은 바유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하늘에 떠오른 눈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지정된 대상을 비추었다.
“그리고 넌, 내가 아니라 다른 녀석의 손에 죽을 거다.”
그 순간.
추아아악-!
바닥에 주저앉은 바유의 목이 날아가며, 피분수가 위로 뿜어졌다.
눈에 살기를 띈 야마가 그 뒤에서 낫을 휘두른 뒤였다.
후두둑-.
절단된 바유의 목에서 튄 핏물이 야마의 얼굴에 묻었다.
하지만 야마는 얼굴 대신, 낫에 묻은 피를 털어 내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말했잖습니까? 참고 있기 힘들었다고.”
“……그래.”
반응을 보니 어지간히 참고 있기 어려웠던 모양.
그가 얼마나 비슈누를 따랐는지 알기에, 유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서 괜찮겠냐?”
“혼자는 아닐 거라 믿습니다.”
척-.
야마의 옆으로 바루나와 하누만이 다가왔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었다.
“잠시 정신이 나갔었던 모양이다.”
“나도 손을 보태마, 야마.”
“저 망할 새끼들. 죽더라도 몇 놈은 데려간다, 꼭.”
결의를 불태우는 랭커들.
한순간에 바유를 제압한 유원의 활약 덕인지, 아니면 야마가 움직인 것에 힘을 얻은 것인지 그들은 싸우기로 마음을 먹은 듯했다.
“그러네.”
유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야마의 어깨를 짚었다.
“한 가지는 알고 있어.”
“뭘 말입니까?”
“저 녀석들이 데바를 배신한 건, 단순히 목숨이 아까워서만은 아닐 거다.”
유원의 말에 야마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럴 거라 생각은 했습니다.”
꽤 많은 숫자가 관리자들의 편으로 넘어갔다.
단순히 목숨이 아까워 넘어갔다기엔 많아도 너무 많았다.
아마, 단순한 협박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을 터.
“그래도 결심이 선 거냐?”
“만약, 지금 제 행동이 잘못된 거라면…….”
스카악-.
두 자루의 낫을 교차하며, 야마는 다시금 결의에 찬 눈빛을 보였다.
“지옥에 가서 저들에게 사죄하겠습니다.”
“그래, 뭐…….”
저벅-.
발걸음을 돌린 유원은 고개를 들어 하늘에 나타난 관리자를 올려다보았다.
“그건 니들끼리 알아서 하고.”
애들 싸움에 더 낄 생각은 없었다.
자신의 역할은 여기까지.
적아를 구분할 수 있게 된 이상, 이제 내부의 싸움은 야마를 비롯한 데바의 랭커들이 알아서 할 일이었다.
지금부터 유원이 할 일은 하나.
“내려 와.”
심부름꾼들과 함께 나타난 관리자.
그녀의 목을 베어 내는 것이다.
“아니면 내가 갈까?”
유원의 도발 때문일까.
심부름꾼들을 뒤로 물린 관리자가 유원을 향해 아래로 내려왔다.
세계의 마력이 그녀를 따라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이렇게 상위 층계의 관리자를 만나는 건 유원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당신이 김유훈인가 보네요.”
할짝-.
무대 위로 내려온 관리자는 유원을 보며 입술을 핥았다.
눈을 홀릴 정도의 아름다운 미녀가, 반짝이는 눈으로 유원을 훑어보았다.
“얼굴은 반반하게 생겼는데…… 위험한 냄새가 풍겨.”
이미 세 명의 관리자들이 유원의 손에 죽었다.
천계대전을 이용해 천계를 집어 삼키려던 관리자들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게 바로 눈앞에 있는 유원 때문이었다.
물론, 그 소식을 접했을 때만 하더라도 그녀는 다 믿지 않았다.
당연했다.
이 세계의 플레이어들은 모두 관리국의 감시하에 있었다.
시스템에 의해 시험을 치를 권한을 부여 받은 관리자들은 여러 랭커들의 정보를 얻을 수 있었고, 그중 특별한 힘을 가진 존재들을 요주의 인물로 따로 분류해 두었다.
관리자란 곧 시험을 주관하는 자들.
그런 그들이 이 정도 실력을 가진 플레이어를 놓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심지어.
“저건 어떻게 한 건가요? 당신이 무슨 수로 저 이름을 가지고 있는 거죠?”
정작 유원이 선보인 건, 플레이어가 아닌 탑 바깥의 힘이었다.
쏴아아-.
[세계의 마력이 당신을 적대합니다.]그녀의 살기에 반응해, 주위의 마력이 유원의 몸을 짓눌렀다.
“당신도 그들 중 한 명인가요?”
아우터의 이름을 가진 남자.
오랜 세월 동안, 요그 소토스를 비롯한 아우터를 두려워했던 관리자들에게 유원의 존재는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었다.
저벅-.
유원은 천천히 관리자를 향해 다가갔다.
“……너냐?”
그녀의 눈을 빤히 바라보던 유원은 대답 대신, 다른 말을 꺼냈다.
“비슈누를 죽인 게.”
고오오오-.
[‘마나의 주인’이 ‘마나의 주인’에 저항합니다.]“……!”
관리자의 눈이 커졌다.
이번 놀람은 아까보다 더 심했다.
“다, 다, 당신이 어떻게…….”
마나의 주인.
탑을 다스리는 관리자들에게‘만’ 허락되어 있는 특별한 권능.
그 권능을 바로 유원이 지니고 있었다.
‘우리들 중 플레이어 쪽에 붙은 녀석이 있는 건가? 아니, 그런 거라면 저자가 가지고 있는 이름은 뭐지? 게다가 저건 화안금정인데?’
처음엔 10년 전의 전쟁에서 살아남아 탑에 숨어든 아우터의 잔재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아우터와 관리자의 힘을 가진 걸로도 모자라, 제천대성의 상징인 화안금정까지 지니고 있었다.
“뭘 그리 놀라고만 있어? 대답은 안 하고.”
“당신이야말로 대답하세요. 당신, 대체 뭐죠?”
“이걸 말해야 대답을 하려나.”
빙빙 도는 대화에 답답함을 느낀 유원은 한숨을 쉬었다.
사실 비밀도 아니긴 했다.
애초에 감출 생각도 없었던 정체. 자신을 모르는 건 단지 그들이 자신을 잊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김유원이다.”
“김유원……?”
그게 누구냐는 듯,고개를 갸웃 거리는 관리자.
어딘가 흐릿하게 떠오를 듯한 그 이름에 한동안 물음표를 띄우던 관리자는 이내 생각이 나지 않자 되물었다.
“비슈누의 죽음은 왜 신경 쓰는 거죠? 그와 무슨 관계였기에?”
비슈누.
제우스가 신격을 얻기 이전까지 오랜 세월, 탑의 정점에 존재해 온 최고의 랭커.
그런 그의 주변은 늘 관리국의 감시에 놓여 있었다.
단언컨대, 눈앞에 있는 김유원이라는 자와 비슈누는 단 한 번도 접촉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친구다.”
눈앞에 있는 사내, 유원은 그런 비슈누와 자신이 친구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러니까 이번에는 나한테 질문하지도 말고, 딴소리하지도 말고 제대로 대답해라.”
[‘이계의 대적자’가 ‘차토구아’에게 대적합니다.] [‘이계검(2차)’가 ‘차토구아’에게 반응합니다.]오싹-.
머릿속에 떠오른 메시지와 함께, 94층의 관리자 차토구아는 지금껏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공포감을 느꼈다.
“비슈누,네가 죽였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