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veling with the Gods RAW novel - Chapter 594
* * *
치익-.
무언가 밖으로 나왔다.
관리국이 통째로 날아가는 중에도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태연하게.
끝이 조금 그을린 머리카락의 주인.
아난타는 눈앞을 가득 메운 군대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여긴 또 어떻게들 알고 오셨데요? 먹음직한 분들께서.”
그렇게 말한 아난타의 시선이 제우스와 헤라클레스에게로 향했다.
맨주먹을 부딪치며 투기를 끌어 올리는 헤라클레스를 보며 아난타는 이 군대의 핵심이 그들 두 사람임을 알아차렸다.
“미안한데 제가 지금 배가 불러서. 더 안 먹어도 기분이 좋거든요.”
쫘아악-.
캬아아아아-!
아난타의 한쪽 팔에서 노란 비늘을 가진 용이 튀어나왔다.
유난히 큰 울음소리와 함께 전장에 위압감을 퍼뜨리는 용.
수많은 랭커들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며 아난타는 친근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다들 돌아갈래요? 그럼 안 죽고 몇 년은 더 살 수 있을 건데.”
고작 몇 년.
그 말 속에는 얼마 안 가 플레이어들을 공격하기 시작할 거라는 선전포고가 섞여 있었다.
하지만.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치지지지-.
애초부터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제우스는 창을 만들어 내며 아난타를 도발했다.
“너희 괴물들은, 예나 지금이나 그저 플레이어들의 경험치일 뿐이야.”
“경험치라…….”
그리고 그 도발은, 꽤 잘 먹혀들었다.
캬아아아-!
괴성을 지르는 용.
제우스를 노려보던 아난타의 모습이 사라진 건 그때였다.
파짓-.
콰아앙-!
제우스와 아난타의 중간 지점에서 들려오는 굉음.
헤라클레스와 아난타가 부딪치는 소리였다.
“이번에는 도망칠 수 없을 거다.”
콱-.
헤라클레스가 아난타의 팔에서 솟아난 용의 이빨을 움켜잡았다.
곧장 제우스를 향해 달려가던 아난타는 그 말에 고개를 저었다.
“그럴 생각도 없었습니다.”
파짓-.
또다시 사라지는 둘.
쾅, 쾅, 쾅-!
헤라클레스와 아난타가 연달아 부딪쳤다.
전격을 끌어올려 속도를 높이며, 헤라클레스는 거인화의 힘을 온몸에 퍼뜨렸다.
[거인의 힘이 전신에 깃듭니다.] [벼락의 힘이 전신에 깃듭니다.]치치치치치-!
전격을 뿌리며 헤라클레스는 발을 움직였다.
그는 힘의 상징과도 같은 랭커였다.
그렇기에 벼락을 얻고 난 후, 헤라클레스는 그 힘을 파괴력을 높이는 데 집중해 왔다.
하지만.
‘더 빨라져야 한다.’
얼마 전의 일로 헤라클레스는 자신이 더 강해질 필요성을 느꼈다.
만약 그때 자신이 아난타에게 밀리지 않았더라면.
아난타를 붙잡아 놓을 수 있었더라면, 녀석을 놓치지 않았을 거라고 말이다.
그렇게 그날 이후.
헤라클레스는 십 년 만에 처음, 제 발로 제우스를 찾아갔다.
–“전격을 다루는 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제우스.
그는 누구보다 이 힘을 능숙하게 다루는 존재였다.
무식하게 힘을 방출하는 게 전부인 헤라클레스는 제우스에게 벼락을 다루는 법을 배웠다.
–“힘을 쓰는 방식은 여러 가지다. 네가 나처럼 꼭 창을 던질 필요는 없어.”
–“그럼 뭘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아. 무엇보다 이미 네 힘은 완벽하지. 옛날부터 말이야.”
거인화를 다루는 헤라클레스의 힘을 뛰어넘을 수 있는 존재는 탑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대력왕이라 불리는 우마왕도, 제천대성이라 불리는 손오공도 마찬가지였다.
강인한 육체와 힘.
그것이 바로 헤라클레스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었다.
–“속도를 높여라. 지금보다 더.”
파지지지-!
그렇게 말하며 제우스는 어울리지 않게 주먹을 뻗었다.
헤라클레스의 눈에는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힘을 사용하는 관점만 바꿔도, 지금과는 다른 세상이 보일 거다.”
그게 전부였다.
제우스가 헤라클레스에게 가르쳐 준 건.
하지만 ‘관점’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지금껏 잘못 사용하고 있던 힘이 올바른 길을 찾자, 비로소 날개를 활짝 폈다.
치지지-.
더 빠르게.
더 효율적으로.
‘더, 더, 더.’
파지짓-.
번개처럼 이동한 헤라클레스의 주먹이 아난타를 향해 뻗어 갔다.
콰릉-!
천둥소리와 함께 사라지는 아난타.
그런 아난타를 쫓기 위해 헤라클레스는 속도를 높여갔다.
‘더 빨라질 수 있다.’
파짓-.
헤라클레스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간에 들어왔다.
모두가 느려진 가운데, 오직 움직이고 있는 건 헤라클레스와 아난타뿐.
그리고 그 사이.
또 다른 한 발의 전격의 창이 날아왔다.
콰릉-!
빗나간 창은 아난타의 옆을 스치고 날아갔다.
순식간에 점이 되어 보이지 않게 된 창.
창을 피해 움직임을 멈춘 아난타의 뒤로, 헤라클레스의 주먹이 꽂혔다.
콰릉-!
천둥과 함께 날아가는 아난타.
땅에 처박힌 자리에 넓은 구덩이가 생겨났다.
몸을 보호하기 위해 펼친 전격의 장막도, 헤라클레스의 힘에는 무용지물이었다.
욱씬-.
주먹에 얻어맞은 등에서 느껴지는 통증.
구덩이에 처박힌 아난타는 헤라클레스와 제우스의 연계를 떠올렸다.
‘점점 합이 맞고 있다.’
제우스와 헤라클레스.
같은 종류의 힘을 사용하는 두 사람은 가족이라 믿기 어려울 정도로 합이 엉망이었다.
1과 1이 더해져 2조차도 되지 못하는 연계.
하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합이 들어맞고 있었다.
스윽-.
자리에 드러누운 그대로 아난타는 자신의 배를 어루만졌다.
묵직한 마력이 배 속에서 꿈틀거리는 게 느껴졌다.
기분 좋은 포만감이 올라오며 아난타의 입꼬리가 을라갔다.
씨익-.
“슬슬 소화가 됐나.”
급하게 먹어 치운 네 명의 관리자들.
그들의 피와 살, 그리고 마력까지.
덩치가 컸던 만큼 소화가 이루어지기까지 걸린 시간 역시 짧지 않았다.
그렇게 가만히 누워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던 중.
쿠르르르-.
자욱한 먹구름이 꿈틀거리며 위협적인 소리를 흘렸다.
이어질 상황을 미리 알아차린 아난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격이라…….”
제우스와 헤라클레스.
탑의 랭킹 1, 2위를 기록한 플레이어의 우두머리들.
하필이면 그들이 다루는 힘이 자신과 같은 결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에 아난타는 재미를 느꼈다.
“오늘은 과식하겠어.”
쿠르릉-!
먹구름 아래로 넘쳐흐른 한 줄기 작은 벼락이 떨어지는 순간.
그 빛에 비춰진 아난타의 그림자가 용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 * *
올림포스의 랭커들이 제우스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졌다.
처음 관리국을 통째로 날려 버릴 때도 그랬지만, 가까이 다가갔다간 휘말려 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였다.
치지, 치지지지-.
제우스에게서 뿜어진 전격이 구름 위로 올라갔다.
먹구름이 점점 커져 갔다.
황금색 안광을 쁨어내며 제우스가 한 방을 준비했다.
“무슨 꿍꿍인지는 모르겠다만…….”
헤라클레스에게 얻어맞고 저 멀리 날아간 아난타.
제우스는 굳이 그를 쫓거나 하지 않았다.
최강의 창지기인 그에겐 거리는 멀고 시간은 많을수록 유리하니까.
“이번엔 아까와는 다를 거다.”
쿠르르-.
제대로 된 한 방을 쏟아 내기 위해 먹구름에 모은 마력이 넘쳐 땅 위에 무작위로 벼락이 떨어졌다.
그 과정에서 제우스의 상태가 무방비하게 되었지만 상관없었다.
그의 앞에는 헤라클레스가 있었으니까.
치지, 치지지-!
먹구름에서 뿜어진 전격은 한 번에 쏟아지지 않았다.
황금빛의 전류가 모아져 거대한 창의 형태로 변화했다.
손가락 끝으로 힘을 제어하며, 제우스는 최고로 날카롭고 강력한 창을 만들어 냈다.
‘설마…….’
먹구름에서 느껴지는 마력과 조금씩 형태를 갖춰지는 전격을 보며, 하데스가 소리쳤다.
“제우스! 이쪽의 피해는 생각하지 않을 셈이냐?”
스킬을 사용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다소 오래 걸리는 문제가 있지만 제우스가 만들어 내고 있는 창은 위력이 지나칠 만큼 강했다.
자칫 아군의 피해가 커질 수 있을 만큼이나 말이다.
하지만.
“그건 형님이 알아서 해 주십시오.”
애초에 그런 걸 신경 썼다면 제우스라고 할 수 없었다.
“저는 지금 꼭 이걸 날려야겠으니.”
“저 망할 동생 놈이…….”
화아아아-!
양팔을 활짝 펼친 하데스가 올림포스와 아스가르드를 보호하는 어둠의 장막을 만들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저 창이 폭발하는 여파로 몇백, 몇천 명이나 되는 랭커들이 죽어 나갈 지 모르는 일이었다.
콰르릉-!
거대한 창의 형상을 이루어 낸 벼락이 포효를 내질렀다.
날카로운 삼지창 모양의 벼락.
먹구름을 뚫고, 하늘 높이 솟아 오른 거대한 전격의 집합체.
[천벌 – 아스트라페]그것은 제우스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최강의 창, 아스트라페였다.
“처먹거라.”
고오오오-.
먹구름 아래로 모습을 드러낸 아스트라페가 아난타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그 순간.
쫘아악-.
캬아아아-!
헤라클레스에게 얻어맞고 날아갔던 아난타가, 천 개의 머리를 가진 용의 모습을 드러냈다.
콰지지지지-!
거대한 창, 아스트라페를 감싸 조르는 천 마리의 용들.
아래로 떨어져 내리던 아스트라페가 옴짝달싹못하고 멈췄다.
“아스트라페가……?”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하데스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현재의 제우스가 쏘아 낸 아스트라페라면 전성기 시절 오딘이 시동한 궁니르와 맞먹는 위력을 지니고 있을 터.
그런데 그런 아스트라페를 맨몸으로 막아 내다니,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광경이었다.
심지어.
쩍, 쩌저저저-.
견고히 굳혀진 아스트라페의 표면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꽈릉-!
아난타의 몸에 짓눌려 폭발하는 아스트라페.
그 폭발이 주위로 퍼져 나가는 건 삽시간이었다.
콰우우웅-!
파지지지지-!
창이라는 형태를 잃어 버린 아스트라페의 전격은 순식간에 폭풍이 되어 휘몰아쳤다.
하지만 다행히도 단순한 폭발의 여파 정도를 막아 내지 못할 하데스가 아니었다.
츠아아아아-.
전격의 힘을 상쇄시키는 어둠.
정반대되는 속성의 두 힘이 충돌하여 소멸되었다.
제우스가 날린 아스트라페로 인해 한바탕 진땀을 흘린 하데스.
그는 상황을 이렇게 만든 제우스의 뒷모습을 힐끔거렸다.
‘저 녀석이 이렇게 될 걸 예상하지 못했을 리가 없다.’
아스트라페의 위력은 그걸 사용한 제우스가 가장 잘 알고 있는 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렇게 큰 기술을 사용한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그만큼 여유가 없다는 뜻인가?’
하데스의 시선이 거대한 용의 모습을 드러낸 아난타에게로 향했다.
다행히 아스트라페가 폭발한 여파의 대부분은 그것을 가까이서 직격당한 아난타에게 전해졌다.
창에 몸이 꿰뚫리는 대신, 아스트라페의 위력은 폭발로서 아난타를 휩쓸었다.
하지만.
캬아아아아-!
캬아-!
정작 그 아난타는 스스로조차 다 제어하지 못할 정도로 방대한 마력을 퍼뜨리며 위협적으로 울부짖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하데스는 처음 지금과 같은 기분을 느꼈던 때를 떠올렸다.
“……십 년 전으로 돌아간 기분이군.”
십 년 전.
상식 밖의 힘을 지니고 있던 탑 밖의 존재들.
그들과 마주하며 싸웠을 때, 하데스는 꼭 지금과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래도 아예 피해가 없는 건 아닌지 몇 개의 머리가 사라지고 몸이 그을린 흔적이 보였지만.
그건 아스트라페에 정면으로 부딪친 것에 비하면 제대로 된 피해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아스트라페로 인한 공격이 실패로 돌아가자.
저벅-.
아난타를 날려 버렸던 헤라클레스는 거대해진 그를 향해 다가가며 더욱 투기를 끌어올렸다.
“잘됐군.”
쾅-!
부딪치는 두 주먹.
치지지지-!
그와 함께, 두 주먹에서 흘러나온 전격이 헤라클레스의 몸에 깃들었다.
“패는 맛이 있게 생겼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