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089
“어느 바위조각 위에서는 누군가의 머리를 보기도 했어. 그 길이만 해도 수천 척에 달할 정도로 거대하고 흉측한 머리였고 미간에는 반점이 있었지. 천황로는 그곳에서 발견했다. 그 도가니 안에서는 향이 피어오르고 있었지. 마치 방금 전까지 제(祭)라도 치렀던 것처럼 말이야.”
여기까지 설명한 탐랑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그곳 너머로 들어갈수록 더 많은 머리가 있더군. 그 머리들은 하나하나 짙은 원기와 불만을 품고 있었고 개중에는 뿔이 한두 개 달린 것도 있었어. 어떤 머리 앞에는 법보도 놓여 있기도 했지!”
탐랑의 두 눈에 서서히 두려움이 차기 시작했다.
“그 조각상과 장천목령을 제외한 나머지 법보는 모두 그 머리들로부터 얻었지. 허나 그곳에 머문 수백 년간 나는 신중하게 가장자리만 돌아다녔을 뿐, 그 안으로 들어갈 엄두는 내지도 못했어. 그러니 그 안쪽에 무엇이 있는지는 알지도 못하지. 한데 어느 날, 두 개의 바위 조각 사이를 지나던 중 수많은 공간의 균열을 보게 됐어! 내 수준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재빨리 물러나 숨는 것밖에 없었지.”
그때의 위기감이 다시 떠오른 것인지 탐랑은 몸을 가늘게 떨었다.
“내부의 가장자리에 진입하자마자 사방에서 미친 듯이 들려오는 고함 소리에 심신이 떨릴 지경이었어. 그건 영혼으로부터 기인하는 떨림이었다. 그곳에서는 감히 멋대로 쏘다닐 수도 없었지. 몇 년 후에야 그곳을 빠져나오려고 시도할 수 있었어. 내부 깊은 곳은 내가 갈 만한 곳이 아님을 더 들어갔다가는 죽게 되리라는 것을 예감했으니까.”
한제는 묵묵히 탐랑의 이어지는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한데 조심스럽게 그곳을 빠져나오려는데 갑자기 폭풍이 몰아쳤고 나는 중상을 입고는 의식을 잃었지. 정신을 차려보니 거대한 숲속이었어. 죽은 것처럼 모든 것들이 완벽하게 시들어 있었지만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드넓은 숲이더군. 신식을 펼쳐도 숲 전체를 살필 수 없을 정도였어. 난 잔뜩 긴장한 채 걷기 시작했지. 그렇게 몇 년이 지났을까? 나는 드디어 처음으로 완전히 말라 죽지 않은 나무를 한 그루 발견했다!”
그때의 흥분이 떠올랐는지 탐랑의 눈이 빛났다.
“그 나무에는 노랗게 말라버린 나뭇잎이 딱 하나 달려 있더군. 내가 그곳에서 본 처음이자 마지막 나뭇잎이었지. 난 그 나무와 나뭇잎을 저물대 에 챙겼다. 허나 그 숲이 대체 어디 있는 건지도 몰랐으니 그저 걸을 수밖에 없었어. 한참을 걸은 후에야 나무들이 점점 더욱 바짝 말라 있다는 것을 알게 됐지. 나중에는 툭 건드리기만 해도 재가 되어 풀썩 쓰러지기도 하더군.”
한제는 궁금한 것들이 있었으나 말을 끊지 않고 듣기로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난 숲의 중심에 이르렀어. 중심인 걸 어떻게 알았냐고? 거기서 조각상을 하나 봤거든. 그 순간, 난 숲이 바짝 말라 죽은 게 그 조각상 때문임을 알 수 있었다! 범상치 않은 물건임을 직감하고는 챙기려 했으나 조각상을 들어 올린 순간 회오리가 나타나더군! 내가 그곳에 들어갔을 때 봤던 회오리와 똑같았지.”
이쯤 되자 한제도 이야기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난 기쁘고도 놀라운 마음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 안으로 몸을 던졌어! 그리고 회오리를 따라 어딘가로 나오게 됐지! 한데 시간이 흘러서 알고 보니 봉계의 밖이더군.”
탐랑은 말을 마치고는 조용히 한제를 바라보았다.
한제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탐랑은 이야기의 중반 무렵부터 움직임을 제한하던 힘이 사라졌음을 느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정신술의 영향이 다소 약해진 것이다.
유금표
탐랑은 한제가 생각에 잠긴 틈에 잔뜩 긴장한 채 조심스럽게, 천천히 물러났다.
‘됐다!’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린 그는 곧장 도주하려 했다. 허나 그때, 한제가 가볍게 손을 들어 허공을 움켜쥐었다.
“컥!”
한제의 오른손이 흡입력을 발휘하면서 탐랑은 끌려갔고 기이한 힘이 탐랑의 머릿속으로 스며들었다.
“주… 죽이지 않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탐랑은 두려움에 잔뜩 질려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 순간, 한제의 오른손이 그의 정수리에 닿았다.
한제는 상대의 체내에 신식을 불어 넣어 혼과 기억을 마구 뒤졌다. 동시에 우주를 맴돌던 천둥번개가 한제의 오른손으로 응집되더니 탐랑의 원신으로 달려들었다. 천둥번개의 본원의 힘을 이용해 탐랑의 원신을 씻어낸 것이다.
탐랑은 바들바들 떨었고 온몸이 순식간에 땀으로 흠뻑 젖었다. 곧이어 한제는 오른손을 들어 올리더니 탐랑을 저 멀리 내던져 버렸다.
“아무런 대가도 없이 법보만 챙길 수는 없지. 가라!”
창백해진 탐랑은 혀끝을 물어 피를 뿜어내더니 속도를 높여 한 줄기 긴 빛을 그리며 사라져갔다.
탐랑은 억울하고 분했으나 여전히 한제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했기에 이를 악물고 참는 수밖에 없었다.
‘저자에게만 대부분의 법보를 빼앗긴 게 벌써 두 번째다! 내 생에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하겠다! 그나저나 법보를 잃은 내게 타락의 땅은 너무 위험해! 동굴로 돌아가 숨겨둔 것을 챙겨서 곧장 떠나야겠군.’
탐랑은 순간이동을 몇 차례나 반복해 한제가 자신을 쫓아오지 않는다는 확신이 든 후에야 목적지인 어느 수련성으로 향했다.
그는 곧장 높은 산봉우리 가장자리로 몸을 날리더니 소매를 휘둘렀다. 순간 산봉우리에는 콰쾅 하는 소리와 함께 한 줄기 균열이 일어났다.
탐랑은 곧장 균열로 향했다. 허나 그 안의 동굴에 들어선 순간, 그는 우뚝 멈춰 섰다. 하마터면 정신을 잃을 뻔할 정도의 지독한 악취가 덮쳐온 것이다.
“어… 어째서 냄새가 이렇게⋯⋯.”
그는 바르르 떨면서 얼른 코를 움켜쥐었다.
한데 그때였다. 그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내 몸에서 나던 악취가 사라졌다! 그간 마비되었던 후각도 돌아왔어!”
탐랑의 눈빛은 희열 그 자체였다. 지난 수백 년간 그를 괴롭혀온 냄새였다. 한제 때문에 만년 전갈의 시체를 얻을 기회가 사라지며 절망했으나, 뜻밖에도 악취가 사라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한제가 분명 아무런 대가도 없이 법보를 챙길 수는 없다고 했지.”
자신을 놓아주기 전 한제가 했던 말이 떠오르자 탐랑의 표정이 기이하게 변했다.
한편 한제는 다시 암갈족 수련성으로 향했다. 그가 탐랑을 살려준 것은 단순히 강력한 법보들을 손에 넣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모처럼 같은 계내 출신을 만나자 돈독한 사이가 아니었음에도 반가운 마음이 든 것이다.
‘탐랑은 내게 복덩어리와 같은 자다. 그러니 죽일 수는 없지. 그래야 다음에 만나게 됐을 때 더 많은 법보를 손에 넣을 수 있을 테니까.’
한제는 미소를 지으며 암갈족 수련성에 들어섰다.
천 명에 가까운 운둔족은 감히 도망칠 엄두도 내지 못하고 멀거니 있었다. 그 사이 기운을 차린 종대홍은 수준 높은 운둔족 수련자 몇몇을 데려다 자신의 상처를 치료하게 하고는 오만한 자세로 누워 있었다. 그가 비릿한 표정으로 콧방귀라도 뀔라치면 운둔족 수련자들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허나 이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종대홍이 아니라 한제였다. 특히 그가 꺼낸 옥패를 본 운둔족 족장의 반응을 목격했기에 자신들이 감히 건드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님을 명확히 알고 있었다.
이에 그들은 자신들이 쫓아냈던 암갈족 수련자들을 공손히 데려와 단약을 내주면서까지 치료를 해주었고 장 노인 역시 지극히 모시고 있었다.
“처음부터 이럴 것이지. 내 분명 말하지 않았느냐!”
두 명의 운둔족 여자 수련자에게 어깨 안마를 받으며 종대홍이 거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깟 놈들은 주인님이 나서실 필요도 없이 내가 손짓 한 번만 해도 모두 날려버릴 수 있다!”
종대홍이 턱을 쳐들며 호통을 치자 사방의 운둔족 수련자들은 연거푸 허리를 숙였다. 고고한 이들도 부족의 위기 앞에서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운둔족 족장과 장로들은 공손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부디 용서해주십시오. 저희가 대인을 몰라뵜습니다. 주인님께도 잘 말씀해주신다면 섭섭지 않게 사례해 드리겠습니다.”
운둔족 족장은 속으로 쓴물을 삼켰다. 종대홍보다 수준이 높은 그로서는 이전 같았으면 단박에 상대를 쳐 죽였을 테지만 지금은 고개를 조아릴 수밖에 없었다.
허나 종대홍은 차게 콧방귀를 뀌며 오만하게 말했다.
“몰라보고 한 짓이라면 만회할 기회를 줘야지. 허나⋯⋯.”
운둔족 족장은 얼른 다가오며 옥병 하나를 소환하더니 못내 아쉽다는 눈으로 쳐다보다가 종대홍에게 바쳤다.
“작은 성의입니다. 부디 받아주십시오.”
종대홍은 옥병을 신식으로 슬쩍 살피고는 눈이 번쩍 뜨였으나, 이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헛기침을 하고는 저물대로 슬쩍 챙겼다.
“좋아, 족장이 그리 나온다니 내 힘 좀 써보도록 하지.”
그때, 하늘에서 파문이 일더니 한제가 나타났다. 그러자 종대홍은 표정이 급변해 얼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샐샐 웃는 얼굴로 허리를 숙였다.
“주인님, 오셨습니까? 요 며칠 주인님을 뵙지 못해 마음이 좋지 못했습니다. 좌선을 하려 해도 쉽지가 않았고 마음이 공허해 주인님의 존함을 백 번 외친 뒤에야 안정을 찾을 수 있었지요. 그럼에도 주인님에 대한 그리움을 억누를 수는 없었습니다. 저는 오직 주인님을 뵙고 주인님의 곁에 있어야지만 살 수 있습니다.”
종대홍은 열심히 아첨술을 발휘했으나, 너무 과장했다가는 오히려 역효과가 생길 수 있었기에 선을 지키기 위해 조심했다. 지금 그에게서는 방금 전 운둔족 수련자들 앞에서 보였던 고고하고 오만한 빛은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운둔족 수련자들은 이 갑작스런 변화에 입이 쩍 벌어졌다. 특히 운둔족 족장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한 사람이 순식간에 이렇게까지 바뀔 수 있다는 게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얼른 길을 비켜라! 거기 멍하니 서서 뭐하느냐! 우리 주인님의 앞길을 막지 말란 말이다!”
종대홍은 한제보다 한 걸음 앞에서 그를 안내하듯 걸으며 운둔족 수련자들을 양옆으로 물렸다. 방금 전 운둔족으로부터 받은 사례를 깨끗하게 잊기라도 한 듯한 모습이었다.
운둔족은 결국 떠나지 못했다. 한제의 허락 없이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한편 한제는 돌아오자마자 곧장 신통술로 거대한 동굴 하나를 파낸 뒤 폐관수련을 시작했다.
동굴 밖에는 금제가 드리워져 있어 반경 수백 리 안에는 누구도 발을 들이지 못했다. 또한 동굴로부터 수백 리 너머는 지위가 가장 높은 암갈족 수련자들이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운둔족 수련자들은 다른 곳에 거주지를 마련할 수밖에 없었다.
종대홍은 오만한 얼굴로 암갈족과 운둔족의 거주지를 제멋대로 돌아다녔다. 섬뇌족에서는 받을 수 없었던, 남들의 존중을 받는 것이 너무도 즐거웠기 때문이다.
한제는 가부좌를 튼 채 생각에 잠겼다. 대제의 사자가 전하기로는 세 달 뒤 타락의 땅에서 매우 중요한 낙생회 장로 재편이 있을 것이다.
그날, 누군가는 자신의 지위를 계속해서 지켜나갈 테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자리를 빼앗길 터였다.
허나 이는 한제의 관심 밖이었다. 그가 신경 쓰는 것은 오직 화작족뿐이었다.
‘미끼는 이미 뿌려두었고⋯⋯.’
한제는 눈을 감은 채 신식을 녹여내 세상의 일부가 되도록 했다.
한참 뒤, 그는 익숙한 기운을 발견했다. 그 기운은 우주 어딘가에서 빠른 속도로 계속해서 멀어지고 있었다.
★ ★ ★
타락의 땅 너머, 칠흑처럼 어두운 성역. 세 명의 화작족 수련자가 질주하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은 중년 사내로 무척 신중해 보였다.
“장로님은 내게 그 단약에 든 피를 부족으로 보내 연구하게 하셨다. 이 일은 화작족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라 절대 실수가 있어서는 안 돼. 만약 장로님이 이것이 진짜임을 확인해 주신다면 위에서 분명 어떤 명령을 내리실 거다.”
중년 사내와 두 사람은 점차 먼 곳으로 사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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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제는 두 눈을 뜨더니 신식을 흩고는 피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