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166
“와라, 이한제!”
노부자는 형형한 눈빛을 번득이며 외쳤다. 그는 상대의 담담함이 마음에 걸렸지만 애써 불길함을 억누른 채 돌진했다. 뒤에서는 풍의 선계에서 수많은 선인의 허상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부러진 검 역시 쉭 소리를 내며 노부자를 따라 한제에게로 달려들었다.
진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회전했고 수련성의 혼 역시 함께 회전하기 시작하면서 우주가 거꾸로 뒤집힌 듯한 느낌을 주었다.
하지만 한제는 끝까지 덤덤하게 지켜보다가 노부자가 코앞까지 온 순간 미간에서 일곱 개의 반점을 회전시켰다. 그러자 세 번째 단계 수련자에 비할 정도로 강력한 7성급 고신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가 7성급 고신의 완전한 기운을 숨김없이 발산하는 것은 나천성역에 돌아온 이래 처음이었다.
노부자는 두 눈이 바짝 졸아들었으나 그럼에도 물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덜컥 두려움이 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대체 어떤 숨겨진 한 수가 있는 것이냐!’
노부자가 짧지만 깊은 갈등에 빠져 있던 그때, 한제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오른손으로 미간을 두드려 천황로를 소환했다.
“영동!”
그 순간 천황로에서 어스름한 빛줄기가 튀어나오더니 한제 앞에 이르렀다.
영동상인에게서는 진정한 세 번째 단계 수련자의 기운이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그의 위로는 거대한 균열이 나타났는데 그 안으로는 하늘을 뒤덮을 듯 넘실대는 보라색 바다와 그 안을 거의 가득 채운 향불을 볼 수 있었다.
“세 번째 단계 수련자!”
노부자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는 우뚝 멈춰서더니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영동상인을 바라보았다.
“이게 바로 저자의 믿는 구석이었구나! 그토록 침착할 수 있었던 진짜 이유였어! 대체 어떻게… 세 번째 단계 수련자를 노예로 삼은 것인가!”
그러나 노부자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영동상인의 상공에 나타난 균열에 가득한 향불이었다. 그 향불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고 짙었다.
‘햐, 향불이 저렇게나 많다니! 저자는 대체 어떤 자인가! 계내의 세 번째 단계 수련자 중 내가 모르는 이는 없다. 그렇다면 설마⋯⋯?’
노부자가 이렇게 놀랐을 정도이니 다른 이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뇌신전의 수련자 수만 명은 숨이 막힐 듯한 압박감에 심신이 떨려왔고 개중에는 피를 토하며 수천 척을 밀려나는 자들도 있었다.
심지어 염뇌자와 열운자 혈신자마저 지금 상황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넋이 나간 상태였다.
“이, 이게 대체⋯⋯?”
“저… 정말 세 번째 단계의 수련자란 말인가?”
“선조님과 똑같은 기운… 틀림없는 세 번째 단계 수련자야!”
“나천성역에 세 번째 단계 수련자가 동시에 세 명이나 나타나다니, 말도 안 돼! 수만 년간 나천성역의 세 번째 단계 수련자는 선조님뿐이었는데⋯⋯.”
“더 말도 안 되는 건 이한제 저자야. 대체 어떻게 세 번째 단계 수련자를 노예로 삼을 수 있단 말인가!”
곳곳에서 탄성인지 경악인지 알 수 없는 웅성거림이 터져 나왔다.
그 무렵, 놀라움을 애써 억누른 노부자는 싸늘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좋아, 인정하마. 내 너를 우습게봤구나. 세 번째 단계 수련자를 노예로 삼다니. 게다가 저자의 수준은 나와 비슷할 뿐만 아니라 나보다 더 많은 향불을 가지고 있어. 나 혼자서는 절대 대적할 수 없는 상대다!”
크지는 않았으나 그의 목소리에 담긴 힘이 퍼져 나가면서 주위의 수련자들은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했다. 그의 목소리는 모든 수련자들의 귀에 또렷하게 닿았다.
“하지만 저자에게는 대적할 수 없다 해도 너와는 싸울 수 있지. 향불의 제약만 없었다면 난 벌써 공열 중기, 어쩌면 후기에 이르렀을 터! 비록 향불이 부족해 수준은 정체되어 있지만 난 지난 수만 년간 많은 법보를 제련해왔다! 여기에 이 진의 힘까지 더한다면 충분히 네놈과 맞서 싸울 수 있다!”
노부자가 우렁차게 외치며 소매를 휘두르자 거대한 진이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강력한 기운을 발산했다. 이 기운은 거대한 폭풍을 형성해 우주를 휩쓸었다.
콰르릉!
거대한 소리가 우주 전역에 울려 퍼졌다. 그러자 영동상인의 등장에 넋이 나가 있던 뇌선전 수련자들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탄성을 내질렀다.
“나천성역의 선조 나천이시여!”
하나로 합쳐진 이들의 목소리는 그들 자신과 나천을 진작시켰다.
우렁찬 목소리는 마치 밀물처럼 넘실거리며 형용할 수 없는 기세를 형성했다. 그와 동시에 그들의 정수리에서는 향불의 힘이 흘러나와 노부자에게 모여들었다.
“어디 한번 붙어보자! 크하하하!”
노부자는 하늘을 향해 거칠게 웃으며 손으로 진을 가리켰다. 그러자 폭풍이 된 진 안에서는 길이가 1만 척에 달하는 긴 창과 칠흑처럼 검은 칼이 한 자루씩 나타났다. 뒤이어 둥그렇게 엮인 아홉 개의 구슬이 번득이며 모습을 드러냈다.
눈 깜짝할 사이 총 열여덟 개의 법보가 모습을 드러냈는데 그때마다 엄청난 힘이 발산됐다.
이렇게 응집된 어마어마한 힘은 곧 한제와 영동상인에게 돌진했다.
한제의 귓가에는 나천성역 수련자 수만 명의 포효가 꽂히고 있었다.
“나천성역의 선조 나천이시여!”
기세가 절정에 이른 노부자는 다시 한 번 한제에게 달려들었다. 동시에 그의 뒤에 나타났던 풍의 선계에서도 수많은 선인의 허상이 일제히 튀어나왔다. 뿐만 아니라 부러진 검 역시 어느새 1백 척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묵직한 검기로 한제의 미간을 노렸다.
한데 그때, 변고가 일어났다.
“주진!”
한제가 덤덤한 얼굴로 외쳤다.
그 순간, 우주가 진동할 정도로 요란한 늑대 울음소리가 천황로에서 울려 퍼졌고 곧이어 주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동시에 세 번째 단계 수련자의 강력한 기운이 발산됐다.
거칠고 피비린내 가득한 그 기운과 상의를 걸치지 않아 드러난 주진의 터질 듯한 근육은 야만적이고 포악한 느낌을 풍겼다. 또한 주진의 뒤로는 몸길이가 10만 척에 달하는 붉은 늑대가 나타나 붉은 눈을 번득이며 노부자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고 있었다.
“마… 말도… 안…”
지금까지 받았던 그 어떤 충격보다도 더 큰 충격에 노부자는 혼잣말조차 끝맺지 못했다.
한제에게 가까이 이르러 있던 부러진 검은 엄청난 힘에 막힌 듯 더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고 이내 쩌적 소리와 함께 균열이 일더니 뒤로 밀려났다. 8성급 고신인 탁삼의 육신을 꿰뚫은 검이라 해도 세 번째 단계 수련자 세 명을 동시에 막아낼 수는 없었던 탓이다.
검에 깃든 검령이 중상을 입은 것인지 찢어질 듯한 비명과 함께 노부자의 곁으로 돌아와 바들바들 떨었다. 잔뜩 겁먹은 수련자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그 무렵 노부자의 뒤에 소환됐던 풍의 선계에서 튀어나온 수많은 선인의 허상이 다가왔다. 그러자 주진과 영동이 앞으로 한 걸음 내딛으며 세 번째 단계 수련자의 강력한 기운을 발산하는 한편 향불의 힘을 뿜어냈다.
콰르릉!
그 강력한 기세에 풍의 선계 허상은 바르르 진동했고 그 안에서 나타난 선인의 허상들은 마치 연기처럼 휩쓸리다가 순식간에 흩어져 사라져 버렸다. 심지어 풍의 선계도 엄청난 위압감 아래 그대로 무너져 버렸다.
콰콰쾅!
풍의 선계가 산산조각 나 흩어져 사라지자 망연자실한 노부자만 남겨졌다.
“세 번째 단계의 수련자 노예가… 한 명도 아니고 두 명…”
다른 수련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노부자조차 완전히 넋이 나간 상태였다. 특히 주진 뒤에 나타난 허상의 붉은 늑대를 본 순간 한 가지 소문을 떠올린 그는 전투 의지를 잃은 채 가늘게 몸을 떨었다. 애초에 그에게는 세 번째 단계 수련자 세 명에게 맞설 힘은 없었다. 수련성으로 이루어진 진의 도움을 받는다 해도 무리였다.
노부자는 그저 씁쓸함을 삼키며 멍하니 눈앞의 광경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는 자신이 아주 거대한 실수를 저질렀음을 깨달았다. 바로 한제에 대한 평가를 잘못했다는 실수. 한제가 막 나천성역에 돌아왔을 때만 해도 쉽게 건드려서는 안 될 상대라 여겼으나 청령성에서 보았던 빗줄기의 검으로 인해 약간 바뀌었다.
하지만 한제는 동림성에서 단 여덟을 세는 동안 모든 금제를 뚫었다. 그때 심신의 충격을 받은 노부자는 자신이 한제에 대해 잘못 평가했음을 깨달았다. 허나 이때도 한제를 만만치 않은 수련자이긴 하나 갖가지 법보를 가진 자신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상대라 여겼다.
그리고 한제가 고신의 고함을 내질렀을 때, 그는 다시금 상대에 대한 평가를 바꾸었다. 상대가 자신보다 조금 더 강한 존재일 거라 본 것이다. 허나 그렇다고는 해도 갖가지 법보의 위력을 빌린다면 한제와 수평을 이룰 자신은 있었다.
영동상인이 나타난 순간, 그는 자신의 추측이 또 한 번 틀렸음을 깨달았다. 그럼에도 그가 한제를 몰아세운 것은 수련성으로 이루어진 진의 힘을 이용한다면 가능성이 있다 여겼기 때문이다.
허나 주진의 등장은 노부자의 마지막 남은 자신감을 완전히 무너뜨렸을 뿐만 아니라 설명이 불가능할 정도의 충격을 안겼다.
노부자의 표정은 씁쓸했고 머릿속은 텅 비어 버렸다.
이 무렵, 수련성으로 이루어진 진에서 허상으로 나타난 열여덟 개의 법보는 주진과 영동이 발산한 기세에 일제히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아우우우!”
붉은 늑대의 우렁찬 포효가 사방으로 울렸고 뇌선전 수련자들은 걷잡을 수 없는 두려움에 와들와들 떨었다. 노부자의 기세에 그들의 마음속에서 피어올랐던 자신감 역시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말도 안 돼! 수만 년에 한 번 만날까 말까 한 세 번째 단계의 수련자가 셋이나⋯⋯.”
“그런 자들을 둘이나 노예로 삼다니, 이한제 저자⋯⋯ 정체가 뭘까?”
계내의 수련자 중 지금의 상황 앞에 멀쩡하거나 담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특히 혈신자는 심신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으며 절망적인 눈으로 머뭇거리며 물러났다. 노부자마저 넋이 나가버린 모습에 그는 온 세상이 자신을 구속하는 감옥이 된 듯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한편, 영동과 주진이 뿜어낸 세 번째 단계 수련자의 강력한 기세는 나천성역을 가로질러 나머지 세 개의 성역으로까지 퍼져 나갔다.
왕족 고요의 검
운해성역 신종의 밀실. 침착한 얼굴로 가부좌를 틀고 좌선 중이던 수도자의 두 눈이 돌연 번쩍 뜨였다. 그는 벌떡 일어나 고개를 돌려 잔뜩 놀란 눈으로 먼 곳을 바라보았다. 뒤이어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넋이 나간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같은 신종 안의 거대한 봉인진. 그 중앙에는 아름다운 여인이 고개를 숙인 채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허나 그녀는 수도자를 놀라게 한 기운을 느끼지 못한 듯 눈을 감은 채 묵묵히 좌선을 이어나갔다.
★ ★ ★
운해 1급 성역의 그리 크지 않은 어느 대륙. 흉수도 인간도 살지 않는 황량한 이 대륙 깊은 곳의 산골짜기에는 붉은 옷을 입은 중년 사내가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요종의 종주와 대장로들이 공손하게 반쯤 꿇어앉은 채 그의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데 그때, 붉은 옷을 입은 중년 사내가 두 눈을 번쩍 뜨더니 충격적일 정도로 어마어마한 기운을 발산했다가 곧 거둬들여 완벽하게 억눌렀다. 뒤이어 그는 먼 곳을 한참 동안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저 녀석이 케케묵은 봉계의 지존이 의지한 자인가? 상당히 훌륭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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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맹성역의 봉인된 우의 선계. 부상을 치료하기 위해 수백 년간 폐관수련 중이던 청림이 돌연 두 눈을 번쩍 떴다. 그의 눈빛에는 약간의 의혹과 놀라움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앞에는 경건한 얼굴의 사도환이 마찬가지로 가부좌를 틀고 있었는데 그의 눈빛 또한 혼란스러워 보였다.
한편 우의 선계 가장 높은 봉우리에는 석상이 하나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지난 수백 년간 한 사람이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흑의의 중년 사내인 그는 검은 머리를 어깨 위로 늘어뜨린 채 매우 냉랭한 살기를 흘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