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302
그녀는 훌쩍 뛰어오르며 아홉 마리의 불새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칼은 곧장 무너져 내려 아홉 조각으로 갈라지더니 불새들을 잠시 저지했다.
그 틈에 한제는 왼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어 이광의 활을 소환함과 동시에 오른손으로 시위를 쥐었다. 뒤이어 두 눈에 금빛을 번득이며 이마에 푸른 핏줄이 돋아날 정도로 힘차게 시위를 당겼다.
사실 장존의 예측은 틀리지 않았다. 한제에게 남아 있던 힘은 두 발의 화살을 쏠 정도에 불과했다. 허나 한제에게 선인 혈맥의 피가 한 방울 더 있다는 것을 장존은 몰랐다. 바로 당시 허이국과 유금표가 광인을 속여 얻어냈다가 한제에게 압수당한 것이었다. 이 피에 담긴 혈맥의 힘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장존의 계산을 틀어지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웅-!
순식간에 화살이 매겨졌다. 그리고 화살이 막 형태를 갖춘 순간, 한제는 손을 놓았다. 그러자 화살은 곧장 쏘아져 나갔다.
쐐액!
화살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모든 소리를 압도했다.
반산로의 곁을 지나친 화살은 곧장 아홉 마리의 불새와 충돌했다.
콰콰쾅!
충돌의 강력한 충격에 반산로는 피를 토하며 물러났다. 한제는 그녀의 팔을 붙잡은 채 화살의 향방은 살필 틈도 없이 달아났다.
“전방 4백만 리 떨어진 곳에 내 동굴이 있어. 그곳의 금제라면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을 거야!”
반산로가 신식으로 다급하게 외쳤다.
이내 한제와 여인의 모습은 사라졌고 어느새 2백만 리를 이동했다. 그 무렵, 한제의 얼굴은 더없이 창백했다. 그렇다고 멈출 수는 없었다.
“저자가 칠채선존인가?”
한제는 이동하는 와중에도 신식을 통해 반산로에게 물었다.
“맞아. 하지만 아니기도 해. 저자는⋯⋯.”
반산로의 답이 채 끝나기도 전, 두 사람의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난 칠채선존이 맞다. 너를 죽이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저 활을 돌려받고 싶을 뿐. 마지막 기회를 주마. 활을 내놔라.”
저 멀리 우주에서 허상으로 나타난 칠채도인이 천천히 다가왔다. 그의 표정은 한없이 덤덤해 이광의 화살에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은 것 같았다.
한제는 보이는 그대로 믿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지금 상대의 진짜 모습을 관찰할 때는 아니었다. 더욱이 상대가 진실을 숨기기를 원한다면 한제로서는 파악할 방법도 없는 상황이었다.
“좋다. 죽기를 원한다면 어쩔 수 없지.”
칠채도인은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몇 번 젓더니 손을 들어 한제와 반산로를 가리켰다. 그러자 그의 손끝에서는 일곱 색채의 빛을 번득이는 결정이 하나 나타나 곧장 한제와 반산로를 향해 돌진했다.
쾅!
순식간에 날아든 결정은 요란한 소리와 함께 흩어졌고 그 순간 일곱 색채의 빛이 반경 1만 척을 뒤덮었다. 한제와 반산로는 꼼짝없이 그 빛에 휩싸이고 말았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저 멀리까지 일곱 색채의 빛으로 가득했다. 아마도 조금 전 흩어진 줄 알았던 그 결정에 갇힌 모양이었다.
그때, 결정이 급속도로 수축하기 시작했다. 쩌적 소리와 함께 한제는 끔찍한 고통이 밀려드는 것을 느꼈다. 어마어마한 압력이 사방에서 조여 왔다.
반산로의 얼굴도 창백했다.
그 순간, 반산로는 오른손을 들어 결인을 그리더니 채옥칠수인을 다시 발휘한 뒤 그 위에 한 움큼의 피를 토해냈다.
“언니, 도와줘!”
그녀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우주가 진동했고 외부에서 온 듯 다소 생소한 기운이 허공에 나타났다.
반산몽!
선강 대륙, 얼음으로 봉인된 땅.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인 데다가 계속해서 눈이 내리고 있는 이곳은 너무도 추워 모든 생명은 그대로 얼어버릴 것만 같았다. 심지어 수련자라도 이곳에서 살아가기는 쉽지 않을 듯했다.
그중 어느 빙산 안, 반산로와 완전히 똑같이 생긴 한 여인이 가부좌를 틀고 있다가 두 눈을 번쩍 뜨더니 오른손으로 미간을 두드렸다. 그러자 일곱 색채의 빛 한 줄기가 미간에서 튀어나왔다.
★ ★ ★
선강 대륙 얼음의 땅에 가부좌를 튼 여인의 미간에서 일곱 색채의 빛이 튀어나온 순간, 동부계 운해성역 균열 안 반산로의 미간에서도 같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콰쾅 하는 소리도 울려 퍼졌다.
반산로는 그 힘을 이용해 채옥칠수인을 확장했다. 낙인은 곧장 1천 척, 1만 척, 순식간에 수만 척에 이르도록 커지면서 수축하고 있는 결정을 받쳤다. 그러자 한제와 반산로를 가둔 채 압박해오던 결정은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그 순간, 거대한 낙인이 튀어나가 칠채도인을 향해 돌진했다.
“난 이제 모든 힘을 다 썼어!”
반산로가 비틀거리며 외쳤다. 한제는 그런 그녀를 한쪽 팔로 안아 든 채 몸을 훌쩍 날려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다음 순간 다시 모습을 드러낸 이들은 또다시 단숨에 2백만 리에 가까운 거리를 뛰어넘은 상태였다.
저 앞에는 일반인의 도시에 버금가는 거대한 배 한 척이 떠 있었다. 전체적으로 보라색을 띤 배는 매우 장엄해 보였고 사방으로는 겹겹의 보호막이 둘러져 있었다. 특히 바람 한 점 없이 나부끼는 배의 깃발에는 슬쩍 보기만 해도 간담이 서늘해질 법한 귀신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한제는 반산로를 안아 든 채 겹겹이 둘러쳐진 보호막 안으로 들어섰다. 반산로의 몸에서 발산된 빛 덕분에 두 사람은 아무런 저항 없이 들어설 수 있었다.
“저자는 대체 누구지?”
배 갑판에 이른 한제가 물었다. 아주 오랫동안 억눌러온 의문이었다.
창백한 얼굴의 반산로는 비틀거리다가 곧장 가부좌를 틀고는 결인을 그린 두 손을 무릎 위에 얹고 눈을 감았다. 몸에서는 일곱 색채의 빛이 번득였다. 특히 미간에는 눈부신 칠채가 응집돼 어렴풋이 회오리를 형성한 상태였다. 그 회오리 안에서는 일곱 색채의 빛뿐만 아니라 서늘한 한기도 발산됐다. 이 한기에 거대한 배의 갑판에는 쩌적 소리와 함께 서리가 생겼고 하얀 안개가 피어올랐다.
한제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그때, 반산로의 얼굴이 돌연 붉어지는가 싶더니 한 움큼 피를 왈칵 토해냈다. 그 피는 미세하고 빽빽한, 붉은 얼음 결정으로 변해 갑판 위에 뿌려졌다.
뒤이어 그녀의 미간에서 나타난 회오리가 확대되면서 급속도로 회전했다. 두 눈을 번득이던 한제는 그 회오리에서 어떤 얼굴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반산로와 거의 똑같은, 매우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그 얼굴이 나타난 순간, 반산로는 고통으로 표정이 일그러졌고 푸른 핏줄까지 돋아나 흉측하게 변했다. 동시에 그녀는 두 눈을 번쩍 떴는데 그러자 회오리가 그대로 무너져 내려 미간으로 돌아갔다. 그 안에서 나타났던 아름다운 얼굴 역시 함께 사라져 버렸다.
“꺄아아악!”
피범벅이 된 반산로의 입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흘러나왔다. 그녀는 두 손으로 결인을 그린 뒤 눈을 감으며 다시 좌선하기 시작했다.
곁에서 지켜보던 한제의 표정이 매우 진중해졌다. 그는 언뜻 뭔가를 추측했지만 아직 확신할 수는 없었다.
한제는 신식을 펼쳐 이 거대한 배를 뒤덮었다. 거대한 배에는 한제가 보기에도 기이한 금제가 잔뜩 있었다. 심지어 한제는 이 배가 거의 금제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님을 확인했다. 갑판마저 그랬다. 말하자면 이 배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금제 진법인 셈이었다.
배 주위를 겹겹이 둘러싼 빛의 장막은 이 배를 이루고 있는 금제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빽빽하게 중첩된 보호막을 뚫기란 결코 쉽지 않아 보였다.
한제는 계속해서 신식으로 배를 살피다가 금제의 중심을 어렴풋이 파악했다. 돛대에 달린 깃발이었다. 깃발에 그려진 귀신 얼굴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생동감이 넘쳤고 신식으로 훑었을 때는 두 눈동자가 죽일 듯 노려보기까지 했다.
주위는 고요했으나 한제는 귀신의 두 눈이 자신을 향한 순간 거친 포효 같은 소리가 심신을 관통하는 것을 느끼고는 표정을 구기며 몇 걸음 물러났다.
‘세월금, 생사금, 고혼금, 파멸금⋯⋯ 이곳에는 4대 금제뿐만 아니라 생소한 금제들도 걸려 있다! 시간만 충분하다면 이 금제들을 파악하고 연구했을 텐데… 그렇게 할 수 만 있다면 금제의 본원을 얻게 될지도 몰라!’
한제는 금제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이 동부계 내에서 본 금제 대부분은 결함이 있었다. 그런 금제들을 억지로 연구해봐야 시간 낭비일 가능성이 컸다.
허나 이 배에 드리운 금제들은 마치 한제를 위한 것과도 같았다. 만약 이 금제들을 모두 깨닫는다면 금제의 본원을 손에 넣는 것도 가능할 터였다.
한제가 금제들을 관찰하고 있을 때, 저 멀리 우주에서 일곱 색채의 빛이 번득이더니 칠채도인이 걸어 나왔다.
“이 배⋯⋯ 어딘가 익숙하군.”
칠채도인은 기억을 더듬는 듯한 눈으로 거대한 배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어디서 봤는지는 떠올릴 수 없었다.
“기억을 완전히 되찾지 못한 것이 안타깝군.”
칠채도인은 낮게 혀를 차더니 이내 오른손을 크게 휘둘렀다.
콰쾅!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갑판이 격렬하게 흔들렸다.
한제는 겹겹이 싸인 빛의 장막 너머 일곱 색채의 빛을 바라보았다. 그 빛 아래, 세상 어떤 일에도 침착함을 잃지 않을 듯 덤덤한 모습의 칠채도인이 있었다.
쾅!
다시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갑판이 흔들리면서 가장 바깥쪽의 보호막 한 겹이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그 충격에 거대한 배는 수백 척을 밀려났다.
‘이 배의 금제는 강력하지만 지금으로서는 2할의 위력만을 겨우 발휘할 수 있을 뿐. 그 정도로는 칠채도인을 막을 수 없다.’
한제의 두 눈이 번득였다. 실로 어마어마한 위기였다.
‘저자는 어째서인지 나를 죽이러 온 것이 아니라 이광의 활을 돌려받겠다고 했다. 허나 나는 절대로 이광의 활을 넘겨줄 수 없다. 호시탐탐 나를 노리는 공현기 수준의 적들을 상대할 유일한 무기다.’
게다가 한제는 자신의 생사에 대한 선택권을 상대에게 넘겨주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삶이 상대의 의사에 휘둘리게 둘 마음도 없었다.
“이 배, 혼마주(魂魔舟)가 강성했을 때라 해도 저자를 고작 며칠 막는 데 그쳤을 뿐이야. 허나…”
뒤에서 돌연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반산로였다.
“비록 혼마주의 금제가 3할도 안 되는 위력밖에 발휘하지 못하지만 저자 역시 당시와는 달라. 아마 사흘 정도는 막을 수 있을 거야.”
서늘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잇는 동안 두 눈으로 서늘한 빛을 드러낸 그녀는 배 밖에 자리한 칠채도인을 응시했다. 복잡한 한이 느껴졌다.
“도우는 반산로가 아니로군.”
한제는 그녀를 가만히 응시하다가 불쑥 입을 열었다.
여인은 밖으로 향했던 시선을 한제에게로 돌리더니 대견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내 동생의 선택을 받은 자답구나. 난 반산로의 언니인 반산몽이다.”
한제는 상대를 자세히 살피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 신분에 대해서는 동생을 통해 들었겠지. 난 칠채도인의 아내다.”
말을 마친 여인은 오른손으로 결인을 그리더니 전방의 보호막을 향해 휘둘렀다. 그러자 그녀의 손에서 피어오른 일곱 색채의 빛이 보호막으로 달려들었다.
그 빛이 빛의 장막과 융합된 순간, 강력한 한 줄기 기운이 배에서 발산됐다. 그러자 보호막은 곧장 두터워지기 시작했고 그 너머에서 울려 퍼지던 쾅 소리도 거의 단절됐다.
“우리 자매에게 협조했으니 속이지 않겠다. 당시 선강 대륙 아홉 태양 중 도일 대천존과 고국의 현라 대천존, 두 사람이 우리 칠도종 근처에 나타났다. 그 전설적인 인물들이 태고 신경(神境)에서 어떻게 튀어나왔는지 모를 저물조각 하나를 두고 다투고 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