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405
마지막 소문은 대혼문의 역대 제자들이 수집해온 모든 정보를 바탕으로 정리한 것이었다. 다만 그 내용이 너무도 충격적이었기에 청우 진인은 그것을 ‘소문’이라고 칭했다.
“중주 황성의 국사 상도현 일맥이 수련하는 술법의 이름이 도연혼이라지⋯⋯.”
청우 진인은 불안한 마음에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묵묵히 좌선을 이어갔다.
★ ★ ★
장혼각에서 나온 한제는 대혼문을 가로질러 여러 산봉우리를 지나쳤다.
한제가 지나갈 때마다 산봉우리에서는 줄기줄기 신식이 튀어나와 마치 친한 벗을 대하듯 공손히 포권을 했다.
한제는 본래 자신을 존중해 주는 이에게는 똑같이 존중을 보였기에 그때마다 마주 포권을 하며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그가 타오르는 산봉우리에 이르렀을 때, 반산몽은 여전히 그 근처에 머물러 있었다. 매우 지친 모습이었지만 원래의 자리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은 상태였다.
그녀를 슬쩍 훑어본 한제는 덤덤한 얼굴로 산봉우리에 이르더니 말했다.
“들어와라. 동굴 상태가 엉망이니 정리를 좀 해줘야겠다. 적당한 동굴을 찾아 처소로 삼고 있다가 언제든 부르면 내 부름에 응하도록!”
고개를 숙이며 예하고 대답한 반산몽은 이를 악물고는 타오르는 산봉우리로 들어갔다. 뜨거운 열기가 훅 하고 느껴져 더 많은 땀이 흘렀지만 애써 참아낸 그녀는 저 멀리 떠나가는 한제의 뒷모습을 노려보며 끓어오르는 원망을 억눌렀다. 그리고 한제의 분부에 따라 산봉우리의 동굴들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산봉우리 꼭대기의 동굴로 돌아온 한제는 가부좌를 튼 채 세 개의 상자를 소환했다. 청우 선조에게서 받은 선물이었다.
“지금까지는 대혼문의 대접이 괜찮군. 스승님을 뵈러 가기 전에 조금 더 머물러도 될 것 같아. 게다가 스승님이 지금 어떤 상황인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불쑥 찾아간다면 불만을 갖는 자가 생길 터. 갈등이 빚어질 수도 있으니 그전에 최대한 수준을 높여놓을 필요가 있어!”
한제는 자신이 도고 일맥에서 큰 시련을 마주하게 되리라는 것을 어렴풋이 직감했다. 점술을 통해 예측만큼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는 직감이었다.
“우선 내가 대혼문에 올 것을 예측했다는 사람이 무슨 선물을 남겼는지 좀 볼까!”
한제는 번득이는 눈으로 첫 번째 상자를 바라보았다.
비단으로 만들어진 상자는 매우 평범해 보였다. 허나 모든 신식을 차단하고 있다는 것은 이 상자가 결코 범상치 않다는 증거였다.
상자에는 너무나 오래돼 색이 노랗게 바랜 종이가 한 장 붙어 있었다. 봉인 역할을 하는 종이가 여태 남아 있는 것을 보면 누구도 이 상자를 열지 않았던 것이 분명해 보였다.
한제는 종이를 뜯어낸 순간 발산된 기이한 힘이 체내로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빠른 속도로 그의 체내를 한 바퀴 돈 뒤 돌아간 그 힘은 마치 이 상자를 열기 위해 봉인을 뜯어낸 사람의 정체를 확인하는 듯했다.
봉인은 그간 억눌러 놓았던 세월을 정통으로 맞은 듯 재로 부스러지며 흩어져 사라졌고 이제 상자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한데 봉인을 뜯어낸 순간 상자로부터 한 줄기 파동이 흘러나온 것을 어렴풋이 느낀 한제는 경계심을 곤두세웠다. 파동은 매우 흐릿하여 자세히 살피지 않는 이상 그 존재를 간파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내 한제가 손을 휘두르자 상자가 열렸다.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은 주먹만 한 검은색 돌 하나였다. 불규칙하게 생긴 이 돌은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그 표면에는 수많은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고 아주 흐릿하면서도 약한 파동을 발산했다.
허나 한제는 이 돌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신식을 펼쳐 돌 쪽으로 천천히 뻗었다. 한데 그의 신식은 돌 근처에 이르자마자 그 표면의 수많은 작은 구멍 안으로 재빨리 흡수됐다.
한제는 눈앞의 돌이 자신의 신식을 흡수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덕분에 천천히 돌 내부를 볼 수 있게 된 그의 표정이 순간 급변했다.
“이건⋯⋯?”
작은 돌 안에서 한제가 본 것은 수많은 공간이었다. 돌을 뒤덮은 하나하나의 작은 구멍은 각각 독립된 공간을 이루고 있었다.
“이것은 공간석(空間石). 내가 자네에게 주는 첫 번째 선물이네. 이제 막 동부계에서 건너온 자네의 저물공간은 분명 열기 어렵겠지. 공간석 내의 공간 하나를 대가로 삼아 저물공간을 망가뜨리지 않고 그 안에 든 물건을 하나 꺼낼 수 있네. 허나 기회는 단 한 번뿐. 욕심을 부리다가는 공간석 내의 공간이 불안정해져 붕괴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네.”
돌 안에서 어느 노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공간석에는 또 다른 능력이 있지. 바로 천도를 사육할 수 있다는 것. 자네에게 완전하지 않은 천도가 하나 있을 터. 녀석을 이 안에서 사육한다면 서서히 완전한 상태로 만들 수 있을 게야. 이 첫 번째 선물이 자네 마음에 들면 좋겠군.”
노인의 목소리가 천천히 흩어져 사라졌고 아무리 공간석 안을 뒤지고 살펴도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한제는 공간석으로부터 신식을 거둔 뒤 손에 든 돌을 응시했다. 그의 눈에는 고민에 빠진 듯한 빛이 어려 있었다.
그는 경거망동하지 않고 돌을 한쪽에 내려놓고는 두 번째 상자로 시선을 돌렸다. 이 상자 역시 종이로 봉인이 되어 있었다.
한제가 손을 휘두르자 종이가 떨어져 재로 흩어졌고 상자가 열렸다.
그 안에 든 것은 안개로 휩싸인 옥패였다. 마치 이 옥패 자체가 안개로 이루어져 있는 것만 같았고 상자가 열리자 이 안개는 기이하게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안개 속의 옥패를 바라보던 한제는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안개에 휩싸인 옥패가 휙 튀어나와 그의 손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 순간, 방금 전 그 노인의 목소리가 또다시 한제의 심신 안에 울려 퍼졌다.
“이것은 자네를 위해 준비한 두 번째 선물이네. 내 평생 수련한 혼연도로 만들어낸 옥패로 자네를 위해 선강 대륙에 한 번의 변화를 일으키거나 한 가지를 예측할 수 있도록 도와줄 걸세. 하지만 단 한 번뿐이야.”
목소리는 금방 사라졌다.
한제는 말없이 옥패를 바라보았다. 그는 그 안에서 수많은 인영을 볼 수 있었다. 원하기만 한다면 그중 한 사람을 지목해 그 사람에 대한 예측을 할 수 있었다.
첫 번째 선물은 분명 유용하겠지만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두 번째 선물은 달랐다. 첫 번째 선물보다 훨씬 귀중한 물건이었다. 만약 노인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 옥패를 사용해 딱 한 번 그나 다른 사람의 과거 혹은 미래를 예측해낼 수 있다는 것인데 이는 소중한 기회였다. 어쩌면 중요한 순간 목숨을 구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한제는 두근대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세 번째 상자로 시선을 돌렸다.
“앞선 두 개의 선물은 매우 귀중한 것들이었지. 그렇다면 세 번째 선물은 어떨까?”
옥패를 한쪽에 내려놓은 한제는 세 번째 상자를 향해 손을 뻗어 움켜쥐었다. 그러자 상자는 빠른 속도로 그에게 달려들었고 그 위의 봉인은 연기처럼 흩어져 사라졌으며, 심지어 상자 역시 무너져 내렸다.
여덟 번째 본원
세 번째 상자에서 드러난 것은 손톱 크기의 반짝이는 물방울이었다.
셀 수 없이 많은 안개를 품고 있는 듯한 물방울은 아름답게 반짝였다. 누구라도 눈을 떼지 못할 만큼 아름다웠다.
동시에 이 물방울에서는 줄기줄기 짙은 물의 본원의 기운이 흘러나와 동굴을 채웠고 타오르는 산봉우리를 뒤덮었다. 산봉우리를 불사르고 있던 불바다는 물의 본원의 기운과 충돌하면서 당장이라도 꺼질 듯했다.
한제는 눈동자가 바짝 졸아들었고 마음속에서는 거친 파도가 몰아쳤다.
세 번째 선물은 이전의 두 가지 선물보다 훨씬 유용하고 필요했으며 심지어 그가 꿈꿔오기까지 한 물건이었다.
한제의 체내에 담긴 물의 본원은 오행성에서 약간 응집된 이래 조금도 성장하지 못했고 그의 수준도 공령기 후기에 멈춰 있었다.
화염의 본원은 진신으로 응집됐지만 이는 그의 신통술을 좀 더 강력하게 해줬을 뿐 수준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일곱 개의 본원에 물의 본원까지 완성한다면 여덟 개가 된다. 수준도 공령기 절정에 이르게 될 거야. 여기에 또 다른 본원을 완성한다면 공현기 수준의 수련자가 되겠지. 그럼 지금처럼 신통술에 의지하지 않아도 공겁기 초기 수련자와 충분히 맞서 싸울 수 있어. 공현기 후기에 이르러 아홉 차례의 현겁도 한꺼번에 연달아 관통할 수 있을 거야!”
한제는 자신의 길이 다른 수련자의 길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향불 없이 깨달음과 남에게서 빼앗은 것들로 성장해온 그가 이 방식으로 아홉 개의 본원을 완성해 공현기에 이른다면 같은 수준에 이른 다른 사람과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일 것이다.
한제의 수련에서 가장 중점이 되는 것이 바로 본원이었다. 그러나 본원은 얻고 완성하는 데 큰 어려움이 따른다. 그렇기에 세 번째 상자 안에서 물의 본원으로 이루어진 물방울을 본 순간 한제는 가슴이 벅차오른 것이다.
지금 그의 손에 들린 물방울은 당시 천운자로부터 얻은 물방울과 비교도 않을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자네를 위해 준비한 세 번째 선물이라네. 천하주(天河洲)의 강 99개를 응집해 만들어낸 뒤 물의 본원을 가진 여러 수련자의 체내에서 자양한 결과물이지. 자네가 이것을 흡수해 물의 본원을 완성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분명 큰 도움이 될 걸세. 만족했으면 좋겠군. 부디 우리 대혼문을 잘 지키고⋯⋯ 내 후손이 중주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길 바라네.”
눈을 번득이던 한제는 심신에 울려 퍼진 노인의 목소리가 사라진 뒤 물방울을 꼭 움켜쥐었다. 그리고 그 안에 신식을 주입해 자세히 살핀 끝에 아무런 문제도 없음을 확인했다. 뒤이어 두 눈을 번득이며 고개를 든 그의 시선은 동굴의 천장을 관통해 그 너머의 하늘에 닿았다.
“만약 내가 후에 대혼문을 지킬 능력을 갖게 된다면 반드시 그렇게 하도록 하지요!”
꽈릉!
한제의 목소리에 응답하듯 대혼문 상공에서는 천둥번개가 내리쳤다. 그 소리가 어찌나 우렁찼던지 폐관수련을 하던 수련자들은 화들짝 놀라 깨고 말았다. 특히 청천봉 동굴에 가부좌를 틀고 있던 청우 선조는 벌떡 일어나더니 바짝 졸아든 눈으로 하늘에서 내리치는 천둥번개를 바라보았다.
“1대 선조⋯⋯.”
그때, 한제가 왼손으로 결인을 그렸다. 그러자 한 줄기 강력한 위압감이 체내에서 발산되어 산봉우리를 뒤덮었다.
“본원 진신, 날 보호하도록!”
뒤이어 그는 오른손으로 결인을 그렸다. 그러자 산봉우리를 불사르고 있던 화염이 모두 동굴 앞에 응집해 화염 진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이 화염 진신은 그 자리에 가부좌를 틀었다.
그 무렵, 반산몽이 번득이는 눈으로 화염이 응집된 산꼭대기를 바라보았다.
한제가 그런 반산몽에 대해 모르고 있을 리 없었다. 그럼에도 그녀를 자신의 산봉우리 안에 들인 것은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었다.
폐관수련을 시작하려던 한제는 오른손을 뻗어 공간석을 움켜쥐었다.
한제의 저물공간 안에는 꺼내고 싶은 물건이 아주 많았다. 하지만 저물공간을 파괴하지 않은 채 물건을 꺼낼 기회는 단 한 번뿐이었다.
한제는 이미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지금 그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될 것은 거의 공겁기 초기 수준에 이른 꼭두각시 이사였다.
공간석을 쥔 한제는 그 안에 신식을 주입하며 공간석 안에서 저물공간을 열었다.
그 순간, 공간석은 바르르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그 안의 여러 공간 중 한제의 저물공간을 대체한 공간이 콰쾅 하고 무너져 내렸다.
붕괴의 순간, 하늘을 뒤덮을 듯 강력한 기운 한 줄기가 한제의 저물공간에서 튀어나왔다. 그것은 어스름한 빛을 번득이며 한제의 옆에 이르더니 긴 팔다리와 붉은 혀를 가진 인영을 드러냈다. 비쩍 마른 원숭이처럼 보이는 그것은 꼭두각시 이사였다.
“캬오오오!”
우렁찬 포효와 함께 강력한 기세가 꼭두각시의 체내에서 발산됐다. 허나 붉은 두 눈으로 한제를 죽일 듯 응시하던 녀석은 그제야 상대의 정체를 알아차렸는지 천천히 포악한 눈빛을 거두었다.
“이사, 날 보호하도록!”
한제의 명이 떨어지자 이사는 몸을 홱 돌려 동굴 바깥쪽을 바라보았다. 녀석의 길고 붉은 혀는 땅에 질질 끌리면서 끊임없이 꿈틀거려 상당히 역겨워 보였다. 이제부터는 누구라도 이 동굴에 발을 들인다면 이 꼭두각시의 광기 어린 공격을 받아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제는 아직 안심할 수 없다는 듯 자신의 팔에 새겨진 흡혈마수의 문양을 내려다보았다. 그런 그의 시선을 느꼈는지 흡혈마수의 문양 역시 서늘한 빛이 어린 두 눈으로 한제를 바라보았다.
흡혈마수는 폐관수련을 진행할 한제를 위한 최후의 보호막이었다.
녀석을 보고 나서야 마음이 놓인 한제는 가부좌를 튼 채 격앙된 눈빛으로 손에 든 물방울을 바라보았다. 이어서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그 물방울을 미간에 댔다.
그 순간, 한제는 온몸의 피가 끓어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의 몸에 숨겨져 있던 물의 본원은 새로운 물의 본원과 융합해 놀라운 변화를 일으켰다.
이 변화에 한제의 몸은 빠른 속도로 말라가기 시작했다. 마치 체내의 모든 수분과 피까지 응집되고 있는 것 같았다.
단 1각 만에 한제는 해골 같은 몰골로 변했다. 머리카락마저 바싹 마르고 온몸이 주름으로 뒤덮인 그는 죽은 지 몇 년은 지난 시체 같았다. 그런 그의 체내에서 응집되면서 수분과 피까지 흡수한 물의 본원은 끊임없이 반짝였지만 체내에 숨겨져 있는 탓에 밖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물의 본원의 응집과 흡수는 언제나 이런 식으로 피 역시 일종의 물이기에 물의 본원을 응집하려 한다면 육체에는 여러 변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눈 깜짝할 사이 7일이 지났다. 그동안 가부좌를 튼 한제는 정말 죽은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만약 그의 기운이 계속해서 왕성해지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정말로 무슨 일이 있는 것 아닌가 했을 것이다.
이틀 뒤, 비쩍 마른 시체 같은 한제의 몸이 돌연 바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동시에 그는 두 눈을 번쩍 떴지만 눈동자는 매우 혼탁했다. 눈 안의 수분 역시 싹 사라진 것이다.
“물의 본원, 해산⋯⋯.”
한제의 입에서 거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어서 해골처럼 앙상한 두 팔로 결인을 그리자 체내에서 최대로 응집된 물의 본원이 콰쾅 하고 폭발했다. 이에 따라 한제의 몸은 진동하며 급속도로 회복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