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469
해자
산해를 바라보던 한제는 훌쩍 몸을 날려 해룡 위에 올라탔다. 그러자 해룡은 포효를 내지르며 산해를 향해 돌진했다.
전력이 천존 수준에 이른 수련자에게 선족 구역에서 대천존과 마흔여덟 명의 약천존이 있는 곳을 제외하면 가지 못할 곳은 없었다. 심지어 봉인된 오래된 혼들과도 충분히 싸울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한제는 산해 밑에 있는 산해수를 취하러 가는 중이었다. 천존의 전력을 갖추기 전에는 시도조차 하지 못했을 일이었다.
허나 이 산해에는 일흔 개의 신통술을 주먹 하나에 녹여 넣은 해자 천존이 머물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제는 이곳에 발을 들인 것이다.
해룡은 엄청난 속도로 곧장 산해에 들어섰다. 해룡답게 바닷속에서도 물고기처럼 빠르고 여유로운 움직임이었다. 그 엄청난 속도로 인한 날카로운 소리가 적막한 밤중에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천우 혼개는 오래 착용하고 있을 수 없어. 아마 지금은 반 시진 정도가 한계일 거야. 해자 천존은 강력하지만 혼개의 위력과 속신결을 함께 사용한다면 내게도 승산이 있다. 다만 그녀를 이기려면 속전속결이 필수야.’
해룡의 엄청난 속도로 인해 일어난 파동에 바닷물로 형성된 거대한 소용돌이가 우렁찬 소리를 냈다. 산해의 흉수들은 해룡의 위압감에 놀라 곧장 자리를 피했다.
잠시 후, 한제를 태운 해룡은 산해 중앙 근처에 이르렀다. 그때, 돌연 하늘을 뒤덮을 듯 엄청난 파도가 일어나 바닷물로 이루어진 거대한 벽을 세웠다. 해룡의 전진을 막으려는 것 같았다.
“캬오오오!”
해룡은 불쾌한 듯 포효하며 거대한 머리로 벽을 들이받았다.
콰쾅!
우렁찬 소리와 함께 벽은 그대로 무너져 내렸고 해룡은 곧장 그 너머로 돌진했다. 바닷물은 마치 끓어오르듯 마구 일렁였다.
그때, 바다 깊은 곳에서 끈적이는 점액으로 뒤덮인 줄기줄기 거대한 촉수가 튀어나왔다. 이 촉수들이 서로 뒤얽힌 채 꿈틀대는 사이, 해수면 위로 폭이 10만 척에 이르는 섬이 하나 떠올랐다.
허나 이는 섬이 아니라 거대한 문어의 머리였다. 금존 수련자에 상당하는 수준의 기운이 녀석의 몸에서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 문어의 머리 위에는 아름다운 여인이 서 있었다. 녹색 치마에 가려진 여인의 몸이 아름다운 굴곡을 그리고 있었다. 한손에 옥색 피리를 쥔 그녀의 이마에는 오색 불가사리 한 마리가 점처럼 붙어 있었다. 덕분에 그녀의 아름다움은 더욱 배가 됐다.
그녀는 머리를 틀어 올린 채 한제를 노려보았다.
“이한제! 여긴 또 무슨 일이냐! 난 산해수의 영혼을 필요로 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네게 넘길 마음은 없다!”
여인은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무너진 벽 너머의 한제를 향해 외쳤다.
해룡은 포효했지만 그 포효는 여인이 아니라 그녀를 태운 문어를 향한 것이었다. 거대한 문어 역시 음산한 눈빛을 번득이며 해룡을 노려보았다. 이 바다의 패주들이 만난 것은 처음이 아닌 모양이었다.
“그 산해수의 영혼은 내게 아주 큰 쓸모가 있다. 게다가 내가 원하는 것은 그저 일부일 뿐이야. 그것은 네게 필요한 것도 아니고 이곳 산해에 어떠한 해도 끼치지 않을 것이다. 한데 어째서 나를 막느냐! 게다가 그것은 해자 천존 너의 것이 아니라 당시 선조가 이곳에 봉인해둔 것에 불과하다. 이곳을 소굴로 삼았다는 이유만으로 네 소유는 아니란 말이다!”
한제는 덤덤한 얼굴로 여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눈앞의 이 아름다운 여인과는 3년 전에 이미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그녀는 한제 평생 보았던 여인 중 유일하게 모은미와 겨룰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게다가 그녀에게서는 천존 특유의 기질도 느껴졌다.
“난 이곳에 머무르고 있고 그러니 산해의 모든 것은 곧 내 것이다! 네가 날 이긴다면 이 안의 무엇이든 자연히 취할 수 있겠지. 허나 과연 그럴 수 있겠느냐? 3년 전, 모든 진신을 소환하고도 세 차례의 공격을 채 막아내지 못하고 치욕스럽게 패하지 않았던가?”
아름다운 여인은 턱을 살짝 치켜들고는 서늘한 눈으로 한제를 바라보며 오른손으로 전방을 가리켰다.
그러자 하늘과 땅의 기색이 변하고 해수면에서는 콰쾅 소리가 울려 퍼졌다. 동시에 그녀와 한제 사이의 바닷물에서 70개의 거대한 소용돌이가 나타났다. 각 소용돌이에는 그녀의 신통술이 하나씩 담겨 있었다.
처음부터 가장 강력한 공격을 해오는 것을 보니 해자 천존은 단번에 한제를 꺾으려는 것 같았다.
한제의 눈빛이 어스름하게 번득였다. 동시에 천우의 문양이 발산한 빛이 눈 깜짝할 사이 그의 온몸을 뒤덮었다. 50여 년 만에 혼개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천우 혼개가 나타난 순간, 한제의 온몸에서 발산된 기운이 증폭했다. 한제는 곧장 몸을 날려 해룡의 등에서 훌쩍 날아오르더니 서늘한 눈으로 해자 천존을 내려다보았다.
“혼자(魂者)!”
해자 천존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난 번 맞붙었을 때, 상대가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는 것은 알아차렸지만 약천존보다도 희귀한 혼자(魂者)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천존이면서 혼자(魂者)라니⋯⋯. 허나 그렇다고 짧은 시간 안에 나를 제압하지는 못할 터! 네가 그 혼개를 입고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두고 보겠다!”
아름다운 여인은 단숨에 한제의 약점을 파악하고는 하늘을 향해 뻗은 고운 손을 휘두르며 외쳤다.
“나는 널 이길 생각은 없다. 그저 움직이지 못하게만 하면 그만이지!”
한제는 몸을 훌쩍 날리며 다섯 갈래의 신맥을 급속도로 회전시켰다. 그러자 상공에는 아흔일곱 개의 잔영이 떠올랐다. 본체까지 합치면 총 아흔여덟 명의 한제였다.
너무도 빠른 속도로 인해 나타난 각각의 잔상은 본체와 똑같이 생겼을 뿐만 아니라 본체만큼이나 생생했다.
“정!”
“정!”
“정!”
아흔일곱 개의 잔상과 하나의 본체는 동시에 정신술을 발휘했다. 그와 동시에 아흔일곱 개의 잔상은 빠른 속도로 응집하더니 본체와 융합해 하늘을 떠받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손가락의 허상이 되었다.
이 손가락은 곧장 해자 천존을 가리켰다.
50년 전, 한제는 혼개를 입은 상태에서 속신결을 발휘해 아흔여덟 개의 신통술을 체내에 녹여 넣음으로써 도마종 천존 선조를 물리쳤다. 심지어 그의 일격을 막기 위해 도일 대천존의 신식이 흘러나오기까지 했다.
그리고 50년이 지난 지금, 그동안 다른 천존들과 이어온 싸움으로 한제는 증폭된 수준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게 됐다. 덕분에 현재의 그는 혼개를 입지 않고서도 도마종 천존 선조를 꺾을 수 있었다.
이 상태에서 혼개까지 착용하고 속신결을 발휘해 아흔여덟 개의 신통술을 하나로 합친 위력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급격한 변화에 해자 천존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한제가 전력을 다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거대한 손가락 허상이 가리킨 순간, 세상 만물이 멈춰버린 듯했다. 쉬지 않고 불던 바닷바람도 철썩이던 파도도 조용해졌다. 온 세상의 운행이 정지된 것만 같았다.
이 모든 것을 멈출 수 있게 하는 힘이 해자 천존의 몸에 닿은 순간, 그녀 역시 온몸을 바르르 떨었다. 들어 올렸던 오른손은 허공에 멎어버렸고 체내의 원신 또한 꼼짝할 수 없었다.
한편, 한제의 얼굴은 약간 창백한 상태였다. 손짓 한 번에 모든 힘을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신술을 아흔여덟 번이나 사용한 지금 한제에게는 일종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도일 대천존의 신식으로 그의 분신이 나타났을 때 모든 것이 멎어버리던 상황과 상당히 비슷했다.
“우리 사이에는 원한이 없으니 죽이지는 않겠다!”
한제는 멈춰 있는 해자 천존을 힐긋 보더니 곧장 바닷속으로 달려들었다. 어찌나 빠른지 그의 모습은 곧 사라져 볼 수가 없었다.
당시의 그는 아흔여덟 개의 신통술을 하나로 합칠 수는 있어도 완벽하게 융합하지는 못했다. 때문에 대천존의 한 줄기 신식으로 이루어진 분신의 주먹질 한 번에 모든 신통술이 파괴된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한제는 진신을 소환하지 않고도 아홉 개의 신통술을 체내에 녹여 넣을 수 있고 진신까지 소환한다면 서른여섯 개의 신통술까지 융합할 수 있다.
덕분에 그 위력도 전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당시에는 우두머리 없이 흩어진 한 무리의 병사와 같았다면 지금은 한 명의 장군이 통솔하는 군대가 된 것이다.
해자 천존을 멈춰놓기는 했지만 정신술이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임을 알았기에 한제는 속도를 최대로 높였다. 그리고 넷을 세기도 전에 해저 맨 밑바닥에 이르렀다. 보통의 수련자라면 육신이 곧장 터져버릴 만큼 강력하고 묵직한 압박이 느껴졌지만 도고의 육신을 가진 한제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한제는 주먹으로 바닥을 힘껏 내리쳤다. 그러자 바닷물은 떠밀려 나가면서 아흔여덟 개의 소용돌이를 형성했고 이 소용돌이들은 곧장 해저로 돌진했다.
콰쾅!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무너져 내린 해저에서는 거대한 구멍이 생겨났고 대량의 바닷물이 그 안으로 밀려들었다. 마치 그 안에서 엄청난 흡입력이 뿜어져 나오고 있는 것 같았다.
한제는 머뭇거리지 않고 눈 깜짝할 사이 그 구멍 안으로 사라졌다. 지난 3년 동안 산해를 관찰하고 어떻게 하면 산해를 떠받치고 있는 산해수를 찾을 수 있을지 파악해둔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때까지도 해자 천존도 그녀를 태운 금존 수준의 문어도 움직이지 못했다. 심지어 눈조차 깜빡이지 못할 정도였다.
해룡은 그 옆에서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문어를 바라보며 포효하고 있었다. 바다 흉수들끼리만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여덟을 셀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 때, 한제는 이미 산해 가장 아래쪽 구멍에 이르러 있었다. 그곳에는 바닷물에 잠긴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이 나무는 산해의 절반에 달할 정도로 거대해 한눈에 담을 수 없을 정도였다. 줄기는 말라 있었지만 자라난 가지는 쭉 뻗어 산해를 떠받치고 있었다.
한데 이 나무는 죽음의 기운으로 뒤덮여 있었을 뿐만 아니라 겹겹이 봉인으로 싸여 있었다. 일찍이 수많은 살육을 저지르기라도 한 것인지 짙은 살육의 기운도 사방으로 풍겼다.
말라버린 거대한 가지를 에워싼 봉인의 바깥쪽에는 일곱 개의 녹색 빛 덩어리가 둥둥 뜬 채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각각의 빛 덩어리는 주먹만 한 크기로 거대한 나무 자체에 비하면 한참 작았다.
허나 한제가 원하는 것은 바로 그 녹색 빛 덩어리였다. 산해수의 혼이 죽어 형성된 산해수의 영혼. 저 영혼이 그에게 나무의 본원을 선사해줄 것이었다.
산해수는 원래 이런 영혼을 적지 않게 가지고 있었지만 너무도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빼앗아간 탓에 지금은 겨우 일곱 개만 남은 상태였다. 또한 산해수의 영혼은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봉인 안이 아니라 봉인 밖으로 흘러나와 있었다. 나무를 에워싼 봉인은 산해수의 영혼에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열을 셀 정도가 지났을 무렵, 한제는 소매를 휘둘러 일곱 개의 빛 덩어리 중 여섯 개를 저물공간에 거두었다. 이어서 그는 곧장 몸을 돌려 이곳을 빠져나가려 했다.
한데 그 순간, 한제의 두 눈에서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눈 안의 금빛이 제멋대로 번득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 갑작스러운 변화에 한제는 우뚝 멈춰 서고 말았다.
두 눈에서 느껴지는 끔찍한 고통에는 누군가가 부르고 있는 듯한 느낌이 깃들어 있었다. 마치 산해수 안의 기이한 무언가가 한제의 두 눈에 있는 존재를 불러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한제의 두 눈에는 당시 마갈 사당의 제사장이 주었던 선극검의 조각이 들어 있었다. 덕분에 그의 눈빛은 한 자루 검처럼 강력한 위압감을 가지게 된 상태였다.
선강 대륙에 속하지 않은 영혼
한제는 돌아섰던 몸을 다시 홱 돌렸다. 두 눈에서 금빛이 번득였고 한제는 산해수 안에서 뿜어져 나온 한 줄기 빛이 자신에게 달려드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그 금빛을 목격한 순간 한제는 산해수 안의 손바닥만 한 금색 조각의 존재를 감지할 수 있었다.
“선극검의 조각!”
한제의 두 눈이 가늘게 변했다.
손바닥만 한 금색 조각이 산해주에서 곧장 한제를 향해 날아들었다. 마치 한제의 부름을 받기라도 한 것처럼.
허나 산해수를 에워싼 봉인 때문에 그 금색 조각은 나무 안을 빠져나오지 못하고 가로막혀 버렸다. 그 주위로 파문이 일어나는 사이 봉인을 뚫고 나오기 위해 애쓰던 선극검 조각은 반 정도 겨우 빠져나온 채 그 가운데에 끼어버리고 말았다.
그 순간, 한제의 두 눈에서 번득이던 금빛은 더욱 격렬해졌고 고통도 극심해졌다. 그의 두 눈에 담긴 선극검의 조각도 튀어나오려 하는 것 같았다.
“크윽! 산해수에 왜 선극검의 조각이 있는 거지?”
그는 지난 50여 년간 마갈 사당의 제사장이 자신의 체내에 녹여 넣은 물건들의 내력과 출처를 찾아보기도 했다. 자신의 몸을 완전히 장악하기 위해서는 그 안에 스며든 물건들에 대해서도 파악해야 했기 때문이다.
어느 전설에 따르면 선극검은 선조와 녹색 마갈이 싸우는 도중 녀석의 꼬리와 충돌해 부서졌다고 한다.
한제가 지난 50여 년간 들은 수많은 전설과 소문이 한결같이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거의 모든 주에 봉인된 천외 흉수가 선극검을 파괴했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선조가 실종된 후 선극검 스스로가 여러 조각으로 쪼개져 선족 구역 전역으로 흩어졌다는 전설도 있었다. 한제로서는 대체 어느 전설이 진짜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한제는 잠시 머뭇거렸다.
“이 봉인은 선조가 배치한 거로군. 그 안의 선극검 조각을 취하려면 저 봉인을 자극할 수밖에 없어!”
이미 열다섯을 셀 정도의 시간이 흐른 상태였다. 한제는 결단을 내리고는 뒤로 몇 걸음 물러나 본체는 그대로 둔 채 천둥번개의 진신을 소환했다. 진신은 곧장 선극검 조각을 향해 손을 뻗었다.
“마갈 사당에도 봉인은 있었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어. 이 봉인은 조금 다르긴 하지만 좋은 것을 얻으려면 위험을 감수해야 하지.”
천둥번개의 진신은 반 정도 삐져나온 선극검의 조각을 움켜쥐려 했다.
한데 그 순간, 산해수를 봉인한 힘이 콰쾅 하고 폭발했다.
선극검의 조각이 박힌 곳에서는 줄기줄기 파문이 일어났고 그 파문들은 하나의 거대한 얼굴을 형성했다. 묵직한 위엄이 깃든 얼굴은 한제의 천둥번개 진신을 향해 곧장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