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468
돌진
사흘이 지나는 동안 여러 천존이 오갔지만 대부분은 떠나지 않고 이곳에 머물렀다. 그리고 그동안 죽림 천존은 한 번 더 도전했다가 역시 여덟 번째 층에서 실패하고 말았다.
나흘째 되는 날, 한제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첫 번째 궁전으로 향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대부분에게 첫 번째 궁전은 너무도 간단한 관문이기 때문이다. 일전에 한제와 맞붙어본 적이 있는 수련자들만이 그에게 관심을 가졌다.
“백발 천존, 첫 번째 궁전에 들어선 것을 보니 이곳은 처음인 모양이지? 몇 번째 층까지 이를 수 있을지 궁금하군.”
“기이한 자야. 수준은 그리 높지 않으나 전력은 놀라울 정도로 강력하지. 난 저자의 적수가 되지 못했어. 정말 몇 번째 층까지 올라가려나.”
“이한제. 지난 수십 년간 남주에 이름깨나 떨쳤지. 듣기로는 도일 대천존이 일찍이 포섭하려 했지만 거절당했다던데…”
한제는 이들의 웅성거림에 신경 쓰지 않고 궁전에 들어섰다.
그 순간, 한제는 눈앞에서 세상이 바뀐 듯한 느낌을 받았다. 궁전 안에 펼쳐진 것은 다름 아닌 하나의 우주였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드넓은 우주에는 수많은 별이 반짝였다. 그리고 그는 지금 그 별들 가운데에 선 상태였다.
그때, 기이한 쉭 소리가 가까워졌다. 이어서 맹렬히 고개를 쳐든 한제의 두 눈이 서늘하게 번득였다.
아홉 개의 별이 기이한 힘에 의해 궤적을 바꾸어 여러 방향에서 날아들었다. 이 거대한 아홉 개의 수련성은 눈 깜짝할 사이 코앞까지 이르렀다.
갑작스러운 변고에 한제는 몸을 훌쩍 날리며 자리를 피했지만 아홉 개의 거대한 수련성은 순식간에 방향을 틀어 그를 쫓았다.
“이것이 천존열의 첫 번째 관문인가!”
한제는 눈을 번득이더니 달려들고 있는 수련성 중 하나를 향해 돌진했고 동시에 주먹을 날렸다.
“호풍!”
아홉 개의 호풍을 품은 주먹이 온 우주를 휩쓸 법한 폭풍을 형성했다. 뒤이어 이 폭풍은 흑룡으로 변하더니 그 수련성과 충돌했다.
콰쾅!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수련성은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부서진 파편이 사방으로 흩어지는 와중에 방향을 튼 한제는 두 번째 수련성을 걷어찼다. 동시에 몸을 날린 한제는 연달아 주먹을 휘둘렀다.
콰르릉! 쾅!
요란한 소리에 온 우주가 진동했다. 그의 주먹에 맞은 수련성들은 하나하나 부서졌지만 바로 그때 우주에서 돌연 나타난 한 줄기 강력한 힘이 체내로 전달돼 한제를 우주 밖으로 내보내려 했다.
순간 이지러진 시야가 잠시 후 또렷해졌을 때, 한제는 자신이 첫 번째 억지로 밀려나 궁전 밖 지면에 이르렀음을 알게 됐다. 그 후로도 수천 척을 밀려난 뒤에야 겨우 몸춰 섰다.
“실패인가?”
한제는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궁전에서는 아무런 빛도 발산되지 않았다. 이는 한제가 첫 번째 층을 통과하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이 광경에 주위의 천존들은 모두 의아해했다. 특히 한제와 맞붙어본 적이 있는 천존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첫 번째 궁전도 통과하지 못했다니!”
“첫 번째 궁전도 통과하지 못하는 경우는 처음 보는군!”
“이럴 수가! 저자가 얼마나 강한데!”
모든 천존의 시선이 한제에게 쏠렸다. 그 눈빛에는 의아함과 경멸, 냉소가 섞여 있었다. 이곳의 모든 이들은 첫 번째 궁전을 아주 간단하게 통과한 상태였다. 그러니 첫 번째 관문조차 넘어가지 못한 한제의 모습을 비웃는 이도 많았던 것이다.
저 멀리서 죽림 천존도 한제를 힐긋 보더니 아예 두 눈을 감아버렸다.
생각에 잠겨 있던 한제는 거대한 검은색 궁전을 바라보다가 다시 한번 첫 번째 궁전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를 본 사방의 천존들 대부분은 속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일단 한번 실패한 상황에서 곧장 다시 시도해봐야 소용없어. 시간 낭비일 뿐. 차라리 조금 더 수련을 한 다음 오는 것이 낫지.”
“보아하니 요행을 바라는 모양인데? 내버려 둬. 첫 번째 궁전이야 운 좋게 통과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하하하!”
이들의 이죽거림을 뒤로 한 채 엄청난 속도로 궁전에 진입한 한제의 눈앞에는 곧 방금 전 보았던 그 우주가 나타났다.
침착한 한제의 표정에서는 방금 전 실패에 대한 치욕 따위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번득이는 눈으로 전방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때 전방에서 기이한 휙 소리가 다시 들려오더니 곧장 아홉 개의 거대한 수련성이 벼락처럼 날아들었다.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선 한제는 신식을 펼쳐 사방을 뒤덮었다. 그리고 아홉 개의 수련성이 수천 척까지 다가온 순간, 주먹에 아홉 개의 호풍을 녹여 넣어 휘둘렀다.
콰쾅!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아홉 개의 수련성은 일제히 진동하기 시작했다. 아홉 마리의 흑룡이 거대한 수련성들을 집어삼키려 들었고 아홉 개의 수련성은 동시에 무너져 내렸다.
그 순간, 수련성 안에서는 무궁무진한 금빛이 발산됐다. 이 금빛은 온 우주를 뒤덮고 첫 번째 궁전을 가득 채우더니 그 너머까지 퍼져 나갔다.
이에 궁전 앞에 가부좌를 틀고 있던 천존 수련자들이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사이 궁전의 천장을 통해 튀어나온 한제는 엄청난 속도로 두 번째 궁전을 향해 솟구쳐 올랐다.
“성공한 건가?”
“첫 번째 시도에서 실패했는데 곧장 이어진 시도에서 성공을 거두다니, 운이 좋았던 모양이야. 허나 두 번째 궁전에서는 요행이 통하지 않을 걸?”
한데 그 순간, 두 번째 궁전에서 눈부신 금빛이 뿜어져 나왔다. 심지어 첫 번째 궁전에서 발산된 금빛이 아직 흩어지지도 않은 상태였다.
“엇! 이게 대체…?”
예상치 못한 광경에 천존들은 흠칫 놀라고 말았다.
“첫 번째 궁전에서도 실패한 자가 두 번째 궁전을 단번에 성공하다니!”
두 번째 궁전에서 발산된 금빛에 휩싸인 채 튀어나온 한제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곧장 세 번째 궁전으로 향했다.
이제 대부분의 천존이 한제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세 번째 궁전을 통과하려면 스물일곱 개의 신통술을 체내에 녹여내야 하지. 이 관문의 스물일곱 개 수련성에 포함된 금색 수련성이 중점이야!”
“그 금색 수련성은 나머지 수련성들을 전부 다 합친 것에 비견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하지.”
한데 잠시 후, 이들의 입에서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한제가 세 번째 궁전으로 들어선 지 두 호흡이 채 지나기도 전에 그곳에서는 눈부신 금빛이 뿜어져 나왔다.
심지어 첫 번째와 두 번째 궁전에서 흘러나온 금빛이 채 사라지기도 전이었다. 첫 번째 층에서 세 번째 층까지 확산된 금빛은 마치 자라나고 있는 한 마리의 용처럼 보일 정도였다.
하늘을 뒤덮고 사방을 비추는 이 금빛에 천존들의 눈빛이 번득였다.
“엄청난 속도야!”
“한데 어째서 첫 번째 궁전에서는 실패를 겪었던 거지?”
“과연 몇 번째 궁전까지 밝힐 수 있을까?”
세 번째 궁전이 발산하는 금빛 속에서 튀어나온 한제는 여러 천존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채 네 번째 층으로 곧장 돌진했다.
‘천존열 시험장에서 중요한 것은 동시에 모든 수련성을 파괴하는 것이다. 내가 처음 그랬던 것처럼 하나씩 파괴하면 실패로 간주된다!’
한제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사실 앞선 세 개의 궁전은 그리 큰 부담이 아니었다.
이때 죽림 천존 역시 다시 두 눈을 뜨더니 세 번째 궁전에서 흘러나오는 금빛과 네 번째 궁전을 바라보았다.
천존열 시험장의 네 번째 궁전은 하나의 분수령이었다. 선족 내의 1천여 천존 중 네 번째 궁전을 통과할 수 있는 사람은 2백 명이 채 되지 않았다. 상당수가 이 관문에서 발목을 잡히는 것이다. 즉, 네 번째 궁전에 발을 들이기만 해도 천존들 사이에서는 강자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시간이 천천히 흘렀다. 첫 번째 궁전에서 세 번째 궁전까지 연결된 채 번득이던 금빛은 아래쪽에서부터 점차 옅어지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완전히 흩어져 사라질 것 같았다.
한데 첫 번째 궁전에서 발산된 금빛이 막 흩어져 사라지려는 순간, 가부좌를 틀고 있던 천존 중 수십 명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네 번째 궁전에서 이전의 세 궁전에서 발산된 빛을 압도할 정도로 밝은 빛이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첫 번째 궁전부터 네 번째 궁전까지 완벽하게 연결된 빛은 마치 용의 꼬리처럼 보였다.
“네 번째 궁전을 뛰어넘다니!”
죽림 천존 역시 놀란 눈으로 한제가 천천히 걸어 나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어째서인지 그는 한제로부터 위협을 느꼈다.
네 번째 궁전이 발산한 금빛 속에서 나타난 한제는 고개를 들어 다섯 번째 궁전을 바라보있다.
‘네 번째 궁전에서는 서른여섯 개의 수련성이 달려들었고 그중 두 개가 금빛 수련성이었다. 난 모든 분신을 소환해 그 수련성들을 동시에 처리했지. 그게 내 한계다. 만약 혼개를 착용한다면 몇 번째 층까지 오를 수 있을까? 허나 곧 산해수를 취하러 가야 하니 모든 힘을 보일 수는 없지. 산해수를 손에 넣은 다음에 다시 오겠다.’
사실 최대한 빨리 대천존의 시선을 끌어야 하는 한제로서는 천존열 시험장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이는 것이 가장 좋았다. 하지만 그에게는 다른 할 일이 있었기에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천천히 대지에 내려섰다.
거의 모든 천존의 눈빛이 한제에게 집중됐다. 심지어 죽림 천존 역시 바짝 졸아든 눈으로 한제를 응시했다.
그가 보기에 한제는 평범한 수련자가 아니었다. 천존열에 들어온 사람들은 다음 궁전을 통과할 수 없다는 것을 알더라도 그곳을 체험해보기 위해 도전했다. 허나 네 개의 궁전을 통과한 한제는 다섯 번째 궁전을 시도조차 하지 않고 돌아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런 부분까지 파악하지는 못한 듯했으나 죽림 천존은 눈치챘고 어째서인지 한제에 대한 꺼림칙한 느낌이 더욱 커졌다.
‘다섯 번째 궁전 정도는 쉽게 관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죽림 천존은 말없이 한제를 살폈다.
한제가 땅에 내려섰을 때, 지난 50년 사이 한제와 교전한 적이 있는 천존들이 축하를 전해왔다. 아직 일면식도 없지만 한제와 친분을 맺고 싶은 마음에 인사를 해오는 이들도 더러 있었다.
한제는 이들에게 일일이 포권을 마주하며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도우들, 할 일이 있어 먼저 가보겠네. 후에 기회가 생기거든 다시 만나지. 그럼 이만!”
이내 몸을 훌쩍 날린 한제는 한 줄기 빛이 되어 오래된 전송진으로 뛰어들더니 이내 자취를 감추었다.
그가 사라진 뒤에야 사방의 천존들은 각자 친분이 있는 이들과 함께 신식으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저자는 전력을 다하지 않은 것이 분명해. 네 번째 궁전까지 무척 여유롭게 관통한 것을 보면 최소한 일곱 번째 궁전까지는 가능할 거야!”
“글쎄, 30년 전에 저자와 맞붙은 적이 있는데 아마도 네 번째 층이 한계일 거야.”
“30년이라면 분명 짧은 세월이지만 혹여 무슨 행운을 얻었다면 그때보다 더 강력해졌을 수도 있지. 두고 보면 알겠지. 언젠가 다시 올 테니까.”
같은 시각, 산해주 산해 근처 산봉우리의 어느 동굴 안. 가부좌를 틀고 있던 한제는 두 눈을 번쩍 떴다. 그 순간, 그의 육신을 보호하고 있던 금존 수준의 해룡이 반가운 듯 주위를 맴돌며 쉭, 쉭 소리를 냈다. 나름 친밀감을 표하는 녀석만의 방식이었다.
한제는 그런 해룡의 머리를 몇 번 두드려준 뒤 사방의 금제를 살폈다. 이 금제 중에는 그가 일부러 남겨놓은 세월금도 섞여 있었다. 이를 통해 자신이 이곳을 떠나 있던 시간을 판단할 수 있었던 것이다.
“천존열 시험장에서의 시간과 이곳의 시간에는 차이가 없는 모양이군.”
이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난 그는 앞으로 한 발 나섰다. 해룡이 뒤를 바짝 따랐다.
한 사람과 한 마리의 해룡은 순식간에 동굴 밖에 이르렀다. 하늘에는 밝은 달이 부드러운 빛으로 철썩이는 파도를 은빛으로 뒤덮었다. 바닷바람이 한제의 머리카락을 날렸다. 달빛 아래 백발이 유난히도 밝게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