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1492
제산의 구제 대천존은 두 눈을 형형하고 빛내고 있었다.
“열세 번째 궁전까지 통과했다면 포섭할 가치가 충분하지. 한데 명도 존의 압박까지 가해지다니, 재미있군. 이한제 저자가 과연 어떻게 반응할까? 보아하니 열세 번째 궁전도 힘겹게 통과한 듯한데⋯⋯. 허나 그것만으로도 저자의 이름은 온 선강 대륙을 진동시킬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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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주 황성.
황궁의 용상에 앉아 있던 선황은 허상의 장막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슬쩍 말아 올렸다.
“열세 번째 궁전을 통과한 것만으로는 걱정할 것이 못 되지! 명도 존은 고고하고 거만해 절대 다른 약천존이 자신을 뛰어넘도록 두지 않을 터. 좋아, 명도 존이 이한제에게 교훈을 주도록 둬볼까? 열세 번째 궁전을 통과한 것만으로는 황성에 와서 납작 엎드려야 한다는 사실을 똑똑히 알려주면 좋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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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아홉 번째 궁전 근처까지 내려와 있던 한제는 우뚝 멈춰 서더니 저 앞의 냉랭한 얼굴의 청년을 바라보았다.
“자넨 누군가?”
한제가 물었다. 당연히 상대의 목소리에 담긴 적의를 감지한 터였다.
“명도다!”
검은 옷을 입은 청년이 서늘하고 거만한 목소리로 답했다.
“멈출 생각이냐고 물었다!”
한제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는 고민에 잠겼다.
‘열세 번째 궁전을 통과함으로써 당시의 자신을 뛰어넘은 것에 자존심이 상한 모양이군. 약천존에 이르고도 저렇게 거만한 자는 드물 텐데⋯⋯.’
명도 존을 훑어보던 한제의 눈빛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살짝 번득였다.
‘거만함을 도에 녹여 넣고 고고한 마음을 유지한 채 수행하고 있군. 그 누구라도 자신을 뛰어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해. 심장과 심신이 거만함으로 가득 차 있어. 세상 그 어떤 것에도 신경 쓰지 않고 오직 거만함의 도에만 몰두하다니, 과연 약천존 중 최강자가 된 이유가 있군.’
생각을 정리한 한제는 명도 존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몸을 훌쩍 날려 도일 대천존과 무봉 대천존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두 대천존을 뵙습니다. 한데 급한 일이 있어 이만 가보려 합니다.”
한제는 명도 존을 아예 무시한 채 두 대천존을 향해 포권을 했다.
“열세 번째 궁전을 통과했다는 건 선족 약천존 중 최강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이지. 이한제, 내가 너를 찾아갈 것이다!”
무봉 대천존이 미소를 지으며 한제를 향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하하, 이 도우, 당시의 약속을 기억하고 있겠지? 나 역시 찾아갈 테니 구체적인 조건은 그때 이야기하도록 하지.”
도일 대천존은 대견하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두 대천존을 향해 다시 한 번 포권을 한 뒤 돌아선 한제는 명도 존에 대해서는 여전히 무시한 채 곧바로 오래된 전송진으로 돌진했다. 당장 이곳에서 빠져나갈 생각이었다.
이미 뜻밖의 충격을 안겼으니 원래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게다가 허무에 남겨둔 분신의 힘까지 쓰지 않았더라면 절대로 천외 흉수의 영혼 아홉 개에 맞서 열세 번째 궁전을 통과하지는 못했을 터. 그래서 열네 번째 궁전으로 향하지 않은 것이다.
한제의 이러한 행동에 약간 실망한 듯한 천존들도 있었다.
“이한제 저자 명도 존을 건드리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군. 하긴, 열세 번째 궁전이 한계라면 명도 존의 상대는 아닐 테니, 현명한 건가?”
“하지만 명도 존이 좀 심했어.”
“심했다니, 무슨 뜻인가? 수련자 사이에서는 강자가 우선이지 않나. 게다가 명도 존은 대천존 아래 최강자이니 오히려 그런 명도 존을 무시한 이한제가 버릇이 없는 거지.”
사방의 천존들은 더 이상 신식이 아닌 말로 서로의 의견을 나누었다. 이에 따라 웅성거리는 소리가 한제의 귀에도 들어갔다.
한제는 고개를 홱 돌려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의 매서운 눈빛에 천존들이 입을 다물자 한제는 그제야 전송진으로 향하던 걸음을 마저 옮겼다.
급격한 전환
또다시 명도 존의 목소리가 한제의 발목을 잡았다.
“그냥 이렇게 내빼려는 것인가? 내가 이미 두 번이나 물어봤는데도!”
순간 멈칫한 한제는 잠시 고민하다가 돌아서 명도 존을 바라보았다.
“그래, 멈출 생각이네. 그리고 바로 이곳을 떠날 생각이야. 그게 자네와 무슨 상관인가?”
“상관은 없지. 그저 자네가 열네 번째 궁전에 마저 도전한 뒤 실패를 하거든 그때 떠나기를 바라는 것뿐이야.”
명도 존은 한층 거만한 기색으로 비웃었다.
허나 한제는 그 말에 웃음을 터뜨리더니 더는 명도 존을 상대하지도 않겠다는 듯 몸을 날렸다. 발아래 전송진이 밝게 번득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 돌연 명도 존의 두 눈이 살기로 번득였다.
“버르장머리 없는 놈!”
명도 존은 오른손으로 전송진을 가리켰다. 그러자 바르르 진동하는 듯하던 천존열에서는 거대한 손가락의 허상이 불쑥 나타나 전송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천존열에서 전투는 금지되어 있었다. 이는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던 규칙으로 선조가 정한 것이 아니라 그 후손이 정한 것이었다. 때문에 직접적인 공격을 하더라도 천존열의 변화를 야기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이 규칙을 감히 어기려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허나 명도 존은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그 규칙을 무시했다.
거대한 손가락 허상은 나타나자마자 사방에 존재하는 힘을 동원했고 이에 주위의 천존들은 분분히 찬 숨을 들이마시며 놀란 얼굴로 물러났다.
“대천존들이 정한 규칙을 어기다니! 명도 존, 과연 담도 크군!”
그 무렵, 거대한 손가락이 우렁찬 소리와 함께 전송진 안의 한제를 향해 돌진했다. 만약 한제가 저항하지 않는다면 전송진을 통해 전송되는 과정에서 그의 신식은 타격을 입을 것이고 심지어 그대로 무너져 내릴 가능성도 있었다. 허나 그렇다고 공격을 피하기 위해 전송진을 벗어난다면 천존열에서 나갈 수가 없었다.
말하자면 이것은 천존열에 있는 이들 앞에서 한제가 이전까지 쌓아 올렸던 명망을 해치기 위한 묵직한 한 방이었다. 동시에 명도 존 자신의 강력함을 더 많은 이들에게 효과적으로 알리는 방법이기도 했다.
약천존 사이의 갈등은 많지 않은 편이지만 설사 갈등이 일어난다 해도 지나치게 커지지만 않으면 대천존도 굳이 간섭하지는 않을 것임을 명도 존은 알고 있었다.
실제로 도일 대천존은 미간만 살짝 찌푸릴 뿐,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반면 무봉 대천존은 차게 코웃음을 치며 오른손을 휘둘렀다.
“명도 겁도 없구나! 감히 이곳에서 공격을 하다니!”
그때, 어디선가 누군가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뒤이어 한 천존 수련자의 온몸을 뒤덮듯 나타난 금빛에서 하나의 허상이 드러났다. 금색 도포를 입고 왕관을 쓴, 선황의 허상이었다.
특수한 신통술을 사용해 이곳에 나타난 선황은 오른손을 휘둘러 방금 무봉 대천존이 발휘하려 했던 위력을 흩어놓았다.
한편, 이 무렵 전송진 안의 한제는 고개를 번쩍 쳐들며 서늘한 눈빛과 함께 살기를 번득였다. 문제를 일으킬 마음은 없었지만 먼저 걸어온 공격을 마냥 참고 견딜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한제는 거대한 손가락 허상이 전송진을 향해 달려든 순간 전송진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러자 손가락 허상은 그의 앞에서 흩어지듯 사라졌다. 처음부터 한제를 죽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저 그를 놀리기 위한 술수에 불과했던 모양이었다.
“선황, 이게 무슨 짓인가!”
무봉 대천존은 지면으로부터 날아올라 천존 수련자의 몸 밖으로 쑥 빠져나온 선황의 허상을 노려보며 일갈했다.
“무봉, 진정하게. 명도가 누굴 다치게 한 것은 아니니 엄밀히 말하자면 규칙을 어긴 것이라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천존 수련자의 몸 밖으로 나온 선황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지만 그 모습에서조차 알 수 없는 묵직한 위압감이 느꼈다. 그는 전송진 밖으로 나온 한제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있었다.
“그걸 말이라고 하는가! 방금 이한제가 전송진 밖으로 빠져나오지 않았더라면 분명 신식을 다치고 말았을 것 아닌가! 이는 천존열의 규칙을 어긴 행위일 뿐만 아니라 아주 비열한 행위이기도 하지!”
무봉 대천존은 소매를 휘두르며 두 눈을 형형하게 빛냈다.
“무봉, 말을 삼가게. 그래서 저자가 지금 다쳤나?”
선황은 여전히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무봉은 그런 선황을 싸늘한 눈으로 바라볼 뿐, 대답하지 않았다.
“다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까지 나설 필요가 있겠는가? 무봉 자네가 저자를 마음에 들어 하는 건 알겠네. 나로서는 저자를 가로챌 마음은 없어. 저런 수련자는…”
선황은 그제야 고개를 숙여 한제를 힐끗 보며 말을 이었다.
“그저 계륵일 뿐이지. 혼개가 없었더라면 약천존이 되지도 못했을 터!”
선황이자 팔극 대천존인 그의 말이 갖는 무게는 다른 대천존을 훨씬 능가했다. 그런 그의 말이 천존열 시험장을 폭풍처럼 휩쓸었다.
대부분의 천존과 약천존은 한제가 혼개를 가지고 있음은 알지 못했다. 그렇기에 한제가 자신의 힘만으로 열세 번째 궁전까지 통과한 것으로 알고 있던 이들 사이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혼개를 가지고 있었다니! 부끄럽지도 않은 모양이지?”
“어쩐지 엄청난 속도로 난관을 뚫더라니. 다 혼개 덕이었던 거야. 우리야 어떻게든 속일 수 있다지만 대천존까지 속일 수는 없었겠지!”
“저자에게 속았군! 저 염치도 없는 놈! 약천존은 무슨, 그냥 평범한 천존이잖아! 혼개가 없다면 내 상대도 되지 못할 놈이야!”
“어쩌면 천존에도 이르지 못했는지도 모르지. 구제 대천존이 나타나지도 않은 게 저자의 본래 수준을 간파했기 때문 아니겠는가!”
천존 수련자들이 이토록 분노한 이유는 질투였다. 이전까지 한제와의 거대한 간극으로 억눌려 있던 질투가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는 선황의 폭로에 여과 없이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온 것이다.
약천존 수련자들의 표정도 기이하게 변했다.
“혼개를 착용하고 있었다니⋯⋯. 허나 그렇다고 해도 열세 번째 궁전을 통과했다는 건 그만한 능력이 있다는 뜻이야.”
“3대 약천존 반열에 올라 막 이름을 떨치게 된 순간 선황에 의해 들통이 나버리다니… 혹시 선황과 무슨 악연이 있는 걸까?”
“뭔가 이상해. 정말 혼개의 힘으로 이룬 결과라면 도일 대천존과 무봉 대천존은 왜 이곳까지 와서 저자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던 거지?”
이 무렵, 한제는 약간 창백한 얼굴로 묵묵히 서 있었다.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불과 1각 전과 비교해보면 전혀 달라진 상태였다.
한제가 명성을 쌓지 못하도록 막는 것, 이것이 바로 선황의 목적이었다. 중요한 순간 혼개의 존재를 폭로하며 훼방을 놓는 데 성공한 그는 사방의 천존과 약천존들이 중얼거리는 이야기를 들으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랬군. 열네 번째 궁전에 도전하지 않고 다급하게 도망가려 했던 것도 혼개의 유효 기간 때문이었던 거야. 한심한 놈. 너 같은 놈은 내 앞에 있을 자격도 없다. 썩 꺼져!”
명도 존은 냉소하더니 소매를 휙 휘둘렀다.
수련자들의 웅성거림과 경멸 어린 눈빛에 도일 대천존은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이 순간 이후 선족 구역에 한제의 이름이 불명예스럽게 퍼지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