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293
“망할 자식, 겨우 영변기 초기로 간신히 승급됐으면서 어딜 감히! 넌 나와 이야기를 나눌 자격도 안 된다.”
손태는 눈을 부릅뜨며 일갈했다.
이원봉은 잡아먹을 듯이 손태를 노려보았다. 그는 영변기로 승급된 뒤 설역국의 지존으로 등극한 인물이었다. 이토록 자신을 무시한 사람은 없었다.
허나 그가 분노하건 말건 손태는 신경도 쓰지 않고 거마족 노인을 바라보았다.
거마족 노인은 어두운 눈빛으로 한참이나 손태를 주시하다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안 된다. 그자는 죽어야만 해. 그리고 그 시체 역시 내 것이다.”
이원봉은 흠칫 놀라 거마족 노인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천우의 시체를 누가 가질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한 마디도 나눈 적이 없었다.
“시음종 사람도 아니면서 시체가 어디 필요하더냐!”
손태는 코웃음을 치며 소리쳤다.
“따로 쓸 데가 있다.”
거마족 노인은 손태를 노려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분명 그랬다. 사실 그는 천우의 본명이 이한제라는 것도 알고 있었고 설역국의 종주가 찾아와 진을 배치해 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더라도 암암리에 손을 써서 한제를 죽일 작정이었다. 성라반을 되찾겠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가리기 위한 구실에 지나지 않았다. 그의 진정한 목적은 5백 년 전 조나라에서 역외 전장의 통로를 열었던 거마족이 가져온 소식에 있었다.
‘당시의 정보에 따르면 이한제가 천역주를 가지고 있다. 천역주는 수련연맹에서도 탐냈던 보물! 그것을 손에 넣어 수련연맹에 바친다면 거마국은 분명 6성 수련국이 될 것이다. 때가 되어 주작성을 떠나 거마성을 성립하게 되면 우리 거마 지부는 문정기 족군(族群)을 가질 자격도 가지게 되겠지!’
그는 당시 그 소식을 보고한 거마족을 그 자리에서 죽인 후 그 영혼을 뽑아 자세히 살폈고 이 사실에 대해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음을 알게 됐다. 또한 그 일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까지 확인한 그는 몰래 한제를 찾을 준비를 했다.
하지만 그의 신통한 법력에도 불구하고 한제는 마치 증발한 것처럼 사라져 버렸다. 주작성은 너무나 넓었기에 찾기란 쉽지 않았다. 마지막 단서에 따르면 이한제는 역외 전장의 균열 안에서 소멸됐다고 했다.
사실을 확인하고자 직접 역외 전장을 방문하기도 했으나, 수백 년을 탐색해도 아무런 수확이 없었다. 여러 정황상 이한제는 흔적도 없이 죽었고 천역주 역시 다시 실종된 듯했다.
허나 천우라는 자가 나타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치호의 보고에서 뭔가 수상함을 느낀 그는 선조로서 협박한 끝에 치호에게서 결국 진실을 들었다. 의심스러운 부분에 대해 조사를 진행한 그는 천우가 바로 이한제임을 확신했다.
너무도 기쁜 사실이었으나 주작국이 끼어드는 바람에 행동에 나설 수 없었다. 공연히 나섰다가 주작국의 눈총을 사면 말짱 꽝이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기에 자신들에게 해가 오지 않으면서 이한제를 붙잡을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공교롭게도 바로 그때, 설역국의 이원봉이 그를 찾아와 도움을 청해온 것이다.
이제 주작국이 따지고 들더라도 설역국이 책임을 지는 형국이 갖춰졌다. 그리고 그 틈을 타 아무도 모르게 이한제가 가지고 있는 천역주를 차지할 생각이었다. 때가 되어 숨을 거둔 한제의 시체만 취하면 될 일이었다.
이런 거마족 노인의 속셈과는 상관없이 손태는 코웃음을 치며 한제가 있는 곳으로 날아들었다.
이원봉이 앞으로 나서며 저물대를 두드려 구리 종 하나를 꺼내어 그를 저지하려 했다.
손태가 소리쳤다.
“썩 꺼져!”
하늘을 뒤흔들 듯한 거대한 힘이 그의 체내에서 미친 듯이 발산됐다. 중년 남자는 안색이 변한 얼굴로 움찔 멈추었다.
“감히!”
거마족 선조가 오른손을 휘두르자 우르릉 소리와 함께 검은색 소용돌이 하나가 나타나더니 손태를 향해 몰아쳤다.
손태는 오른손으로 결인을 하면서 허공에 뜬 관을 가리켰다. 순간, 관 뚜껑이 열리더니 비쩍 마른 시체 하나가 나와 거마족 노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기회를 틈타 손태가 왼손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한제의 몸이 곧장 그의 손에 들어왔다. 극도로 허약한 상태로 두 눈을 감은 한제의 낯빛은 회색이었다.
손태는 곧장 몸을 돌려 하늘로 향했고 눈 깜짝할 사이에 공간의 균열 안으로 사라졌다. 이원봉은 어두운 얼굴로 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허나 거마족 노인은 이를 보고 그냥 넘길 리 없었다. 큰 기합과 함께 요란한 소리가 나더니 이내 그의 몸은 눈 깜짝할 사이에 백 척이 넘는 크기로 변했다. 그의 손에는 하늘을 쪼갤 듯 거대한 도끼도 들려 있었는데 그것을 한 번 휘두르자 하늘이 울렸다. 거대한 도끼날에서 살기가 번득였다.
손태의 안색이 변했다. 일찍이 거마족 노인을 처리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알고 있던 그는 결인한 손으로 앞을 두드렸다.
쾅!
거대한 소리와 함께 손태는 공간의 균열로부터 튀어나갔다.
거마족 노인은 크게 소리를 지르며 몇 걸음 만에 균열에서 빠져나오더니 손태를 뒤쫓았다. 곧 주작 대륙 북부에서는 두 갈래 빛이 미친 듯이 질주했다.
한동안 질주하던 손태가 돌연 어두워진 얼굴로 욕을 지껄였다.
“이 몸이 진심으로 나서줘야겠느냐!”
그는 맹렬히 몸을 돌리며 오른손을 허공으로 뻗어 한 줄기 봉인을 만들어 한제의 미간에 찍은 뒤 아래로 내던졌다. 한제의 몸은 빽빽한 숲으로 떨어져 내렸다.
땅에 떨어진 순간, 한제는 발버둥을 치며 두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 단약을 복용한 뒤 호흡하면서 전력을 다해 체내에 남아 있는 이원봉의 경지와 손태의 봉인에 저항했다. 그는 진즉 정신을 차렸으나 손태가 자신을 구해주기는 해도 결코 좋은 마음을 품고 있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기에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 것이다.
거마족 노인은 다시 한 번 거대한 도끼를 휘둘렀다. 도끼에서 튀어나온 한 줄기 은빛이 번득이며 요동쳤고 우르릉 소리와 함께 손태 앞의 허공을 붕괴시켰다. 붕괴한 공간에 여러 갈래의 균열이 나타났다.
손태는 욕을 내뱉으며 오른손으로 허공을 두드렸다. 순간, 그의 저물대에서 세 개의 푸른빛이 튀어나왔다. 그 푸른빛은 세 구의 마른 시체가 되어 거마족 노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폭발!”
손태가 낮게 외쳤다.
펑, 펑, 펑!
격렬한 진동이 하늘을 뒤흔들 듯했다. 세 구의 마른 시체는 곧장 자폭하며 강렬한 기류를 일으켰고 이에 거마족 노인은 수십 척 뒤로 밀려났다.
손태는 흉악한 얼굴로 몸을 날림과 동시에 오른손을 휘둘러 거대한 손도장을 만들어서는 거마족 노인을 향해 내리눌렀다.
거마족 노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거마족 특유의 강건함과 신통력이 있으니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영변기 초기에 불과한 그가 감히 영변기 중기 수련자에게 대항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한제의 시체는 너무도 중요했기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자신에게 달려드는 손도장에는 영변기 중기 수련자의 엄청난 영력이 깃들어 있었다. 영변기 수련자들은 세상에 존재하는 영력이 아니라 선기(仙氣)를 통해 수준을 높이는 이들이니 그 공격에도 당연히 선기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원봉과 거마족 노인은 한제를 상대할 때 선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선기는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일단 소모되면 오직 선옥(仙玉)으로만 보충할 수 있는데 이 선옥은 상당히 얻기 어려운 물건이기 때문이다.
이는 영변기 수련자들을 제한하는 몇 안 되는 요인 중 하나였으며, 동시에 영변기 수련자들 사이의 싸움이 드문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일단 사용하기만 하면 선기의 위력은 상당했다.
손태의 이 손도장은 별다른 신통술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으나 선기를 품고 있었기에 그 위력은 엄청났다.
거마족 노인은 눈을 번득이며 순간적으로 체내의 선기를 끌어올려 오른손에 응집시킨 뒤 도끼를 휘둘러 그 손도장에 맞섰다.
쾅!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대지 곳곳에 균열이 일었고 하늘에 수많은 일곱 빛깔 광채가 나타났다. 무지개처럼 번쩍이던 선력의 파문이 사방으로 확산됐다. 거대한 산봉우리의 절반이 그 파문에 무너져 내려 재로 흩어졌다.
그 파문은 나타났을 때만큼이나 순식간에 사라졌기에 그리 멀리까지 퍼져나가지는 못했다. 애초에 두 사람 모두 선력을 많이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마족 노인은 몸을 부르르 떨며 입가에 피를 흘렸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손태를 무시한 채 이미 크게 무너져 내린 숲으로 향했다.
“내 정말 너를 죽이지 못해 놔둔 것이라 생각하느냐? 좋다, 이리된 이상 네놈을 죽여주마. 거마족이니 육신도 비싸게 팔아먹을 수 있겠지.”
손태는 코웃음을 치며 앞으로 몸을 날림과 동시에 오른손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그의 체내에서 다시 한 가닥 선기가 솟아올랐다.
“천둥!”
우르릉 소리와 함께 한 가닥의 검은 번개가 하늘에서 내리쳤다.
“나의 경지는 막대한 대가를 들여 얻은 것이다. 천뢰성(天雷星)에서 백 년 동안의 폐관을 거쳐 깨달은 것이지. 거마족이고 뭐고 죽여주마!”
손태가 소리쳤다.
거마족 노인은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들어 우르릉 거리며 쏟아지는 천둥번개를 바라보았다. 기합을 넣자 그의 몸은 다시 30척 정도 부풀었고 노인은 번개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쾅!
또 다시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거마족 노인의 전신에서 뱀과 같은 번개가 사방으로 퍼져나갔고 얼굴이 쇠처럼 파래진 채 입가에서는 또 한 줄기 피가 흘러내렸다.
이때 이원봉은 몰래 순간이동을 하여 움직였고 좌선을 하고 있는 한제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비열한 웃음을 흘리며 오른손을 들어 한제를 죽이려 했다.
순간 한제가 두 눈을 번쩍 뜨더니 악독한 눈빛을 번득였다. 그는 경지를 회복해보려 시도했지만 이원봉이 체내에 남겨둔 경지와 손태의 봉인이 한 데 결합하여 풀어낼 수가 없었고 영력도 회복되지 않았다. 단약을 복용한다 해도 봉인에 흡수될 것이 분명해 도움이 되지 않았다.
현재 그의 체내 영력은 축기기 수준의 수련자보다도 못했다. 온갖 노력을 들인 끝에 억지로 응기 3단계 정도에 이르러 있을 뿐이었다. 게다가 그 영력마저도 끊임없이 소모되고 있었다. 이 영력이 완전히 소모되면 그는 어떤 법력도 발휘할 수 없는 일반인이 되어버릴 것이다.
원신은 더욱 약해져서 언제든 흩어질 것 같은 상태였고 심지어 몸 밖으로 나가지도 못했다. 이번에 그가 입은 부상은 등화원에 의해 육신이 소멸된 때를 제외하고는 가장 심각한 상황이었다.
이원봉은 눈을 번득이며 오른손을 휘둘렀다.
바로 그때, 갑자기 한 줄기 번개가 하늘에서 떨어졌고 이원봉은 안색이 크게 변해 얼른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전속력으로 달아났다. 하지만 그 번개는 마치 긴 눈동자처럼 끊임없이 그를 뒤쫓았다.
양쪽 모두의 손실
눈 깜짝할 사이에 번개와 이원봉은 하늘 끄트머리로 사라져 자취를 감춰버렸다.
“흥, 감히 내 눈앞에서 칼을 뽑아들려 하다니!”
손태가 냉소하며 두 손으로 결인을 하여 체내의 선기를 동원했다. 거마족 노인을 완전히 쫓아버린 뒤 안정적으로 한제를 처리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이미 한제를 철저히 봉인하여 자신의 원신을 손상시킨 죄를 묻기로 결심한 상태였다.
거마족 노인은 손태를 바라보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자를 데리고 갔다가 일주일 후에 돌려주겠다.”
“안 되지!”
손태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거마족 노인에게 한제를 보내는 것은 자신의 원신을 넘기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거마족 노인은 한참이나 손태를 노려보다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자네가 자초한 일이네. 영변기에 이른 후로는 처음으로 천부적인 신통술을 사용하게 됐군.”
말을 마친 그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다가 돌연 낮게 기합을 넣었다. 얼굴 위로 푸른 정맥이 울툭불툭 솟아올랐다. 상상할 수도 없는 고통을 받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의 뒤로 거대한 소용돌이가 하나 나타났다. 그 소용돌이 안에서 검은 빛이 느릿하게 돌아가면서 기이한 힘이 확산되어 풍겨 나왔다.
손태의 안색이 변한 순간, 거마족 노인이 찢어질 듯 소리쳤다.
“회전!”
순간 그의 뒤에 있던 소용돌이가 더욱 빠르게 회전하면서 강력한 흡인력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 흡인력은 오직 손태에게만 영향을 미쳤다.
손태는 그 소용돌이 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는 이를 악문 채 체내의 선력을 남김없이 동원해 허공을 두드렸다. 순간 하나의 붉은색 관이 허공에서 나타났다. 손태가 그 관을 내리치자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깨진 관 안에서 한 어린아이의 몸이 떠올랐다.
“회전!”
거마족 노인이 다시 소리쳤다. 얼굴 위의 푸른 정맥이 더욱 높이 솟아올랐고 몸이 경련했다. 경지가 부족한 관계로 천부적인 신통력을 사용하기 위해 소모해야 할 힘이 너무도 컸기에 힘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몇 초에 지나지 않았다.
소용돌이의 회전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비명을 내지른 손태의 몸은 그 소용돌이 안으로 날아들었다. 그는 노기 어린 눈빛을 번득이며 소리쳤다.
“마동(魔童), 저자를 죽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