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416
“이 형, 어서 오시구려. 오래 기다렸습니다.”
탐랑
하늘 저쪽에서 한 줄기 보라색 빛이 하늘을 가르며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더니 허운산 일행 근처에 착지했고 그 안에서 한제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는 길에 시간이 좀 지체됐군요. 이리 오래 기다리시게 할 줄은 몰랐습니다.”
한제는 빙그레 웃으며 포권을 했다.
“하하! 아닙니다. 본래 어제 출발하려 했으나 이 형이 이번에 천운자 선배님께서 내정하신 진입자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함께 가는 것이 좋을 듯해 기다렸지요.”
한제는 온화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폐를 끼쳤습니다!”
인사를 마친 허운산은 곁에 있는 사람들을 한제에게 소개했다.
“여기 세 사람은 우리 현연파의 장로로 이번 여정에서 제 안전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 형처럼 수준이 높지 못해 위험하기 때문이지요. 아버지의 명이 아니었다면 저는 그곳에 가지 않았을 겁니다.”
한제는 엄살을 떠는 허운산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허운산은 이어 의아한 표정으로 곁에 서 있는 여인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쪽은 제 여동생인 허양라입니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동생을 향해 눈을 부릅뜨며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분은 천운자 선배님의 직계 제자인 이한제 도우시다. 어서 인사드리거라!”
허양라는 코를 찡그리더니 한제를 향해 예를 살짝 갖추면서 옥구슬 굴러가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선배님을 뵙습니다!”
“반갑습니다. 이한제입니다.”
한제는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한 뒤 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허운산은 즉시 한제의 의중을 알아차린 듯 말했다.
“이 형, 시간이 많지 않으니 이만 출발합시다!”
한제는 고개를 끄덕였고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진의 중앙으로 향했다.
“현일!”
허운산의 짧은 부름에 현일은 곧장 몸을 돌려 진으로 다가왔다. 다른 두 노인 역시 진 안으로 들어섰다. 이제 진 밖에는 허양라만 남아 있었다. 그녀는 심통이 난 듯 발을 구르며 앙칼지게 소리쳤다.
“오라버니, 나도 데리고 가!”
“안 돼! 자 어서 진을 활성화시켜라!”
허운산은 생각해볼 것도 없다는 듯이 대꾸하고는 명을 내렸다. 그러자 진 바깥쪽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던 수백 명의 제자들이 두 눈을 번쩍 뜨더니 체내의 영력을 일으켰다. 그들의 영력은 몸에서 빠져나와 진으로 미친 듯이 흘러들었다.
이것은 보통의 진이 아니라 우주의 진으로 활성화하는 데 필요한 영석이나 선옥양이 엄청났다.
콰르릉!
진에서 요란한 소리와 함께 엄청난 힘이 폭풍처럼 쏟아져 나와 멀리까지 확산됐다.
수백 명의 제자들의 옷이 그 힘에 미친 듯이 펄럭였고 얼굴은 하나같이 창백해졌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길이가 1천 척에 이르는 붉은 빛 한 줄기가 진 안에서 하늘을 향해 솟아올라 구름을 꿰뚫었다. 또한 수많은 빛 고리가 사방으로 확산되면서 점차 이 수련성 하늘의 절반 정도를 뒤덮었다.
쏴아아.
약 1각 후, 청명한 소리와 함께 파문이 서서히 흩어져 사라졌다.
허나 진 안에 들어가 있던 자들도 바깥에서 영력을 쏟아붓던 제자들도 그 자리의 그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다. 진에서 나타난 붉은 빛이 하늘을 꿰뚫던 순간, 그때까지 진 밖에 얌전히 서 있던 허양라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저물대에서 옥패 하나를 꺼내 들었음을.
“흥! 허락하지 않는다면 몰래 쫓아가는 수밖에… 아버지의 이 견인전송 옥패를 훔쳤던 것처럼 말이야. 이게 있으면 나도 오라버니를 따라갈 수 있다지. 내가 거기서 어떤 보물을 찾게 될지 누가 알아?”
옥패는 하얀 빛을 발하더니 순식간에 허양라의 온몸을 뒤덮었다. 한 줄기 하얀 빛이 번쩍이더니 그녀의 몸은 얇은 실처럼 변했고 이내 하늘로 솟구쳐 올라 붉은 빛 속으로 녹아들며 자취를 감추었다.
★ ★ ★
천운성 동부, 동해 요령의 문 앞.
이제 문이 열릴 때까지는 이틀이 남았다.
사방은 수련자로 가득했다. 적게 잡아도 1만 명은 넘을 듯했으나, 모두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은 그저 관전하러 온 이들이었다. 음양이의의 단계에 접어들지 못하는 이상 5천 년 이상을 살 수는 없으니 대부분에게는 평생 한 번이나 볼까 말까 한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평소 보기 힘든 수준 높은 수련자들이 홀로 또는 제자들과 함께 속속 모여들었다. 엄청난 기운을 내뿜는 이들은 주위 사람들은 신경도 쓰지 않고 제멋대로 굴었으나, 누구도 그들에게 대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행히도 이런 강력한 수련자들은 서로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각자의 자리를 차지한 채 서로 마찰을 일으키는 일은 매우 적었다. 지금 혈성의 요석설이 차지한 곳 반경 1천 척 안으로는 누구도 침범하지 않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였다.
이날, 천운성 상공의 우주에서 별과 같은 수많은 빛이 나타났다. 그 수가 어찌나 많은지 언뜻 보면 우주의 모든 별이 전부 이곳을 향해 돌진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콰르르!
그 빛들은 엄청난 위압감과 함께 마치 거대한 폭풍처럼 허공을 가르며 다가왔다.
다가오는 빛들은 본 모든 수련자의 얼굴에 긴장감이 어렸다. 심지어 요석설 역시 다소 긴장한 모습이었다.
“검존⋯⋯.”
요석설이 조용히 읊조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멀리서부터 다가온 빛들은 하나하나가 질박한 검으로 변했다. 그 검들은 하나같이 엄청난 위압감을 풍기고 있었다. 수련자들은 곧바로 그 검들에 길을 비켜주었다. 어느 수련자가 왔을 때보다도 공손한 모습이었다.
수많은 검광 속에서 거대한 기린 마수 한 마리가 쉭 소리를 내며 달려들었다. 그 기린 마수 위에는 검존 능천후가 가부좌를 튼 채 형형한 눈빛을 번득이고 있었다. 그의 등 뒤에서 번득이는 허상의 검광 네 개가 위엄을 한층 드높였다.
능천후의 뒤로는 열두 명이 따르고 있었다. 이들이 각자 등에 메고 있는 오래되고 질박해 보이는 검에는 각종 마수들의 허상이 떠 있었다. 총 열두 개의 허상이 모습을 드러낸 상태였다.
“검초십이자(劍肖十二子)!”
수련자들 중 누군가가 외쳤다.
천운성 사람들은 검존 능천후와 천운자가 일평생 대적했고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은 셀 수 없을 만큼 오랜 세월 지속되어 왔음을 알고 있었다. 또한 그 오랜 시간 검존은 줄곧 천운자에게 패배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대적하려 하고 있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천운자에게 천운칠자가 있다면 검존 능천후에게는 대나검종의 검초십이자가 있었다. 천운칠자가 선술을 전수받는다면 검초십이자는 요령(妖靈)의 보호를 받았다.
검존의 등장에 먼저 그곳에 모여 있던 수련자들이 비켜서면서 동해 요령의 문 바깥쪽에는 커다란 터가 생겨났다. 이제 검존과 검초십이자의 반경 1백 리 안에는 그들 13명 외에 아무도 남지 않았다.
허나 능천후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사실 그는 날짜가 되기 전에 오고 싶지는 않았다. 허나 요령의 문은 그에게 너무도 중요했다.
부유물들의 바다를 살피는 능천후의 눈빛이 변했다.
그는 선계에서 얻은 검혼의 위력이 그토록 줄은 몰랐다. 결국 그 검혼을 동해 요령의 문으로 끌어와 비술(秘術)을 이용해 봉인하는 게 전부였다.
이번에 그는 문 안으로 들어가 그 검혼을 동해 깊은 곳에 집어넣어 다시는 나올 수 없게 할 작정이었다.
‘그 검혼은 선계에 있던 그 여왕의 것이다. 처리할 수 없는 정도는 아니나 절대 얕잡아 볼 수는 없지. 혹여 다른 자의 손에 들어가게 둘 수는 없다. 특히나 천운자에게는 더더욱!’
한데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능천후의 표정이 의아하게 변하더니 고개를 들어 먼 곳의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서는 대량의 음산한 한기가 나타났다. 짙은 녹색의 한기가 질주하듯 달려들면서 수많은 거대한 두개골이 나타났는데 그 수가 못해도 수천은 될 것 같았으며, 살점이 붙어 있는 것도 있었다.
그중 상고 시대 마수의 것으로 보이는 유독 커다란 두개골 위에 한 중년 남자가 앉아 있었다. 죽음의 기운으로 온몸이 뒤덮여 있어 생김새를 제대로 볼 수는 없었으나, 그의 주위를 숲처럼 빽빽하게 차지한 두개골에서는 기이한 빛이 번득였다.
그는 곧장 날아와 능천후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크하하! 이게 누구신가? 능천후 도우!”
중년 남자가 거친 목소리로 크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능천후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탐랑!”
탐랑, 그는 주작성에서 상고 시대 수련자를 삼켜 수준을 회복하고 한 줄기 천벌을 추적하려 했던 자이자 한제를 찾고 있는 자였으며, 당시 사도환에게서 석주를 빼앗으려 했던 자들 중 하나였다.
사도환을 피하기 위해 주작성을 떠난 그는 오랜 친구인 능천후에게 의탁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다.
“어찌 그리 심한 상처를 입었는가?”
능천후는 한눈에 탐랑이 큰 상처를 입었고 아직 치유되지 않고 있음을 알아보았다.
“말하자면 길지. 대나검종으로 자네를 찾아갔는데 이미 출발했다더군. 그래서 얼른 달려왔다네. 이번에 자네와 내가 힘을 합친다면 천운자를 제압하기 훨씬 쉽지 않겠나?”
탐랑은 교활한 미소를 지으며 은근히 떠보듯 말했다.
능천후가 눈을 번득이며 조용히 말했다.
“무엇이 자네에게 그런 마음을 먹게 했는지 모르겠군!”
탐랑은 잠시 고민하다가 이를 갈았다.
“수만 년 전이었지. 수련 연맹에서 어떤 구슬을 찾는다고 했던 것을 기억하는가? 완전한 상급 선술을 상으로 걸었지. 상급 선술이라니, 수련 연맹이 수립된 이래 그렇게 큰 상을 약속한 적은 없었어! 아마도 수련 연맹에서 보유하고 있는 완전한 상급 선술이라 해도 열 개가 채 되지 않을 테니까!”
묵묵히 듣고 있던 능천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기억나는군. 자네 부상이 그 구슬과 관련이 있는 모양이지?”
탐랑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 이야기는 이쯤 해두지. 나의 수준은 부족하나 검존 자네가 도와준다면 반드시 해낼 수 있을 걸세!”
능천후는 고개를 들어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다가 한참 뒤에야 조용히 말했다.
“그 일에 대해서는 요령의 문이 닫히고 난 뒤에 다시 이야기해도 늦지 않겠지. 일단 지금은 탐랑 자네가 날 위해 일을 하나 해줘야겠어.”
탐랑은 눈을 번득이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