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435
성에 들어간 한제는 선력을 거두지 않고 여유롭게 걸었다.
성의 각 문에는 호위병이 있었다.
한제는 그간의 경험으로 수련계에서는 모든 것이 힘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과 너무 무르게 굴었다가는 얕잡아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길게 늘어선 줄을 기다리다가는 몇 시진이 지나도 들어가지 못할 것 같았다.
이에 한제는 사람들을 헤치고 곧장 성문으로 향했다. 십삼과 후포는 그 뒤에 바짝 따라붙었다. 후포는 약간 긴장한 듯 보였으나 십삼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곧 호위병들이 다가왔다. 이들은 고요성 좌익 장군 휘하 요병(妖兵)으로 축기기 수련자에 상당했다. 이들이 보기에 체내에서 조금의 요력도 찾아볼 수 없는 한제는 보통의 야만인과 다를 게 없었으나, 그 뒤에 선 두 사람의 요력은 대충 보아도 3갑 이상은 될 것 같았다. 그러니 보통의 야만인이 두 고수를 호위처럼 달고 있는 모습은 무척 신비로웠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규칙을 어기게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한제가 문 안으로 들어서려 하자 한 호위병이 앞으로 나섰다. 검은 갑옷을 입고 손에 긴 창을 든 그가 창을 앞으로 겨누며 냉랭하게 말했다.
“물러나라!”
“무엄하다!”
한제가 입을 열기도 전에 십삼이 앞으로 나서며 주먹을 뻗었다. 그에게 한제는 절대적인 권위였다. 그러니 한제에게 불손하게 구는 자는 그에게 적이었다.
쉬잇!
거마족의 신체 단련술을 익힌 몸으로 날린 주먹이 허공을 갈랐다. 그 주먹은 기이한 힘을 품은 채 마치 유성처럼 빠르게 날아들었고. 이에 호위병은 무형의 힘에 속박된 듯 피할 수조차 없었다.
허나 산전수전 다 겪은 그는 본능적으로 손에 든 긴 창을 앞으로 내찌르며 최대한 뒤로 몸을 뺐다.
쾅!
주먹과 창이 맞부딪쳤건만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박살이 난 쪽은 창이었다.
호위병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몸을 속박하던 힘은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뒤로 몇 걸음 물러나다가 겨우 몸을 멈춘 그의 입에서 선혈이 주루룩 흘러내렸다.
몇몇 호위병이 달려와 얼른 그를 부축했으나, 그들의 얼굴 또한 하얗게 질려 있었고 몸은 덜덜 떨렸다.
그때 성문 안에서부터 수많은 호위병이 몰려나와 한제 일행을 에워쌌다. 몇 명은 벌써 상부에 보고를 하러 달려 나갔다.
성문 밖에서 차례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이 광경을 보고 재빨리 자리를 피했다. 허나 그들은 재미난 구경거리라도 보는 듯 흥미로운 표정이었다.
“십삼.”
한제가 조용히 부르자 십삼은 얼른 앞으로 나와 공손하게 옆에 섰다.
“방금 그 주먹질은 잘못됐다!”
한제의 목소리는 한없이 묵직했다.
십삼은 고개를 숙였으나, 당당하게 답했다.
“선조 어르신께 불손한 자는 모두 저의 적입니다!”
한쪽에 서서 이를 지켜보던 후포는 심정이 여러 번 바뀌었다. 처음에는 십삼처럼 바로 나서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가 한제의 반응을 보고는 나서지 않은 게 다행이라 생각했다.
한제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보기에 방금 주먹에는 4할의 힘만을 쏟은 것 같더구나. 전력을 다했다면 저 호위병의 숨통을 확실하게 끊어놓을 수 있었을 것이다.”
십삼은 흠칫 놀라더니 고심하는 표정으로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이 무렵, 몰려든 호위병의 수는 수십 명에 달했다. 그들은 모두 살기등등한 모습이었다. 이어 그들은 곧 분노에 찬 기합을 지르며 무기를 들고 달려들었다.
“저놈들을 잡아라!”
성문 밖에서 요력을 품은 공격이 오가면서 모래 먼지가 사방으로 일었다. 요병들은 모두 전투 경험이 많은 자들로 상대의 수준이 그들보다 높더라도 큰 차이가 나지 않는 이상 물러서지 않았다.
“잘 보아라. 연혼술과 법력의 신통함은 다르지만 서로 통하는 데가 있지. 나는 신체 단련을 하지 않았지만 주먹질 한 번으로 신체 단련을 한 것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
말을 마친 한제는 주먹을 심드렁하게 앞쪽으로 뻗었다.
그 일격은 허공을 때렸지만 곧 그 주먹을 중심으로 파문이 일어났다. 이 파문이 확산되자 사방에서 몰려들던 요병들을 제자리에 못 박힌 듯 멈춰 섰다. 허나 곧 그 파문들은 격렬하게 번득였고 요병들은 몸을 덜덜 떨며 달려들었을 때보다 몇 배는 빠른 속도로 달아났다. 그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고 피를 토하는 이들도 있었다.
요장(妖將)의 시험
한제는 뻗은 주먹을 거두지 않고 손바닥을 펼쳤다. 순간 사방의 요병들이 토해낸 선혈은 기이하게 꿈틀거리며 핏방울이 되더니 빠른 속도로 한데 뭉쳐 한제의 오른손 위에서 붉은 구체가 되었다.
한제가 손을 앞으로 뻗자 그 붉은 구체는 번개처럼 성벽을 향해 날아갔다.
“흥! 어딜 감히!”
피로 이루어진 구체가 성벽에 떨어지려던 순간, 냉랭한 코웃음 소리가 들려오더니 뒤이어 붉은 인영이 성문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가 오른손으로 허공을 두드리자 성벽에 떨어지려던 붉은 구체는 곧장 무너져 내리듯 사방으로 흩어져 사라졌다.
그 목소리를 들은 한제는 빙긋 웃었다.
“같은 곳에서 온 사람을 만날 줄은 몰랐는데 정말 반갑군.”
붉은 빛이 사라지면서 한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동시에 요병들은 분분히 한쪽 무릎을 꿇더니 공손하게 외쳤다.
“요 총령님을 뵙습니다!”
여인의 눈은 봉황 같았고 눈썹 끝은 약간 치켜 올라가 있었으며, 눈처럼 하얀 옷을 입고 있었다. 검은 비단과 같은 머리카락을 어깨 위로 늘어뜨린 그녀는 냉랭한 눈으로 한제를 바라보며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이한제!”
한제의 눈이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살짝 번득이며 여인을 자세히 살폈다. 일전에 동해 요령의 문 밖에서 보았던 여인이었다. 홀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상당히 눈에 띄었던 자였다. 여인의 수준은 곧 절정에 이를 것 같은 영변기 후기였다.
“천운성에서 내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는 모양이군!”
한제는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그 한 걸음에 돌연 거친 기운 한 줄기가 한제의 뒤쪽에서 나타나 성난 파도처럼 사방을 향해 확산됐다.
하얀 옷의 여인은 냉랭한 눈으로 한제를 바라보다가 미간을 찌푸리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천요군에 있었을 줄은 몰랐군. 고요성에 온 것을 보면 직위를 얻어 전공을 세우려는가본데 우리 둘의 싸움은 의미가 없지!”
말을 마친 그녀는 몸을 돌려 성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한제는 빙그레 웃으며 성문 안으로 훌쩍 들어섰다. 십삼과 후포가 그 뒤를 바짝 따랐다.
하얀 옷의 여인은 서두르지 않았고 성문 안으로 들어가더니 곧장 성으로 향하지 않고 오른쪽으로 꺾었다. 그곳에는 광장이 하나 있었고 그 위에는 거대한 전송진이 있었다.
전송진을 지키던 호위병들은 여인을 보자마자 한쪽 무릎을 꿇으며 공손히 인사했다.
전송진 안에서 몸을 돌려 한제를 바라보던 여인은 냉랭하게 말했다.
“날 따라오면 좌익 요장님을 만날 수 있어. 고요성의 주인이시기도 하지. 직위를 얻으려면 그분의 허가를 받아야 해.”
한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십삼과 후포에게 말했다.
“너희는 성으로 들어가 날 기다려라!”
말을 마친 그는 진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러자 진은 곧장 활성화됐고 하얀 빛을 뿜어내며 한제와 그 여인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 ★ ★
전송진에서 나오자 구름을 뚫고 높이 솟은 거대한 건축물이 하나 보였다.
그 거대한 궁전 내부에는 갑옷을 입은 사내의 거대한 조각상이 구름을 뚫을 듯 우뚝 서 있었다. 강렬하고 요사스러운 기운이 그 조각상으로부터 뿜어져 나왔는데 그 기운에 공기 중의 요력이 뒤섞여 회오리들이 생겨났다.
하얀 옷의 여인이 진에서 걸어 나가며 말했다.
“요장님, 제가 누구를 좀 데리고 왔습니다!”
여인의 말이 떨어지자 호쾌한 웃음소리가 궁전 안에서 흘러나왔다. 뒤를 이어 거대한 조각상에서 하나의 인영이 나타났다.
인영은 빠른 속도로 다가와 허공에 머물렀다. 외모는 평범했으나 용맹함이 흘러넘치는 듯한 자로 보라색 옷을 입은 두 팔은 우람했고 가만히 서 있는데도 위엄이 느껴졌다.
그는 한제를 보더니 크게 웃었다.
“하하하! 자네가 나의 요병들을 괴롭혔다는 그 외부자인가?”
한제의 두 눈동자가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살짝 졸아들었다. 거구의 사내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요력은 상당해 한제는 단번의 그의 막강함을 알아챌 수 있었다. 상대의 요력은 적어도 수십만 갑에 달할 듯했다. 말하자면 그는 문정기 혹은 그에 상당하는 수준인 셈이었다.
요령의 땅 안에서는 3성이 1갑에 해당하며 3갑은 축기기에 상당하는 수준이었다. 30갑은 결단기, 300갑은 원영기, 3000갑은 화신기, 3만 갑은 영변기, 그리고 30만 갑은 문정기에 상당하는 식이었다.
“그렇습니다!”
한제는 고개를 들며 변함없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거구의 사내는 껄껄 웃으면서 앞으로 몇 걸음 나서더니 오른손을 앞으로 뻗었다.
“좋다. 그렇다면 어떤 재주가 있는지 봐야겠구나!”
그의 손은 마치 번개 같았지만 어떤 기이한 느낌이나 기척도 없었다. 그 손은 허공을 때렸지만 그 힘은 허공을 타고 한제에게 달려들었다.
한제는 전혀 당황한 기색 없이 소매를 휘둘러 오른손 엄지로 허공을 꾹 눌렀다.
“적멸지!”
곁에 있던 하얀 옷의 여인이 두 눈을 번득이며 중얼거렸다.
손짓 한 번에 한제를 중심으로 1천 척이 죽은 듯 고요해졌다. 그러나…
꽝!
순간, 한제와 사내 사이의 허공에 돌연 거대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뒤로 세 걸음 정도 밀려난 한제는 서늘한 두 눈을 번득였다.
허공의 사내는 주먹을 거둔 채 살짝 휘청거리더니 웃었다.
“좋다. 그 정도라면 내 휘하의 장로가 될 수 있겠다!”
한제는 덤덤한 눈빛으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내직(內職)은 필요치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