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436
사내는 굳은 눈빛으로 웃으며 말했다.
“이곳에 대해 제법 잘 알고 있는 모양이군. 내직과 외직에 대해서도 알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야.”
나운의 기억에는 그의 선조가 남긴 기록이 있어 한제는 사내의 말대로 이 요령의 땅에 대해 어지간한 자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 기억에 따르면 이 요령의 땅에는 내직과 외직이 있는데 내직인 집사나 장로 등은 병권을 가지지 못했다. 병권은 도총이나 총령만이 가질 수 있었다.
“요제께서는 일찍이 너희 같은 외부자들의 경우 수준만 높다면 어떤 직위든 주라고 하셨지. 허나 외직을 얻고 싶다면 네 진짜 실력을 보여야 할 것이다. 방금 그 술법으로는 충분치 않아!”
한제는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더 알아보십시오.”
한제의 패기에 사내는 만족한 듯 웃어 보이더니 곧바로 주먹으로 허공을 때렸다. 그리고는 얼른 거둔 주먹을 다시 한 번 휘둘렀다.
그렇게 찰나에 열 번의 주먹질을 한 그의 앞쪽 허공은 무너질 기미를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곳의 공간은 매우 단단해 완전히 무너져 내리지는 않았다.
“이 열 번의 공격을 막아낸다면 도총으로 임명해주마!”
사내는 크게 외친 뒤 열 번의 주먹질을 한 곳을 꽉 움켜쥐더니 맹렬히 휘둘렀다. 한 번의 주먹질이 더해질 때마다 위력은 변화를 겪었고 그렇게 열 번의 변화를 겪은 힘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에 이르렀다. 온 수련계를 통틀어도 보기 드문 이 신통력은 한제로서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제는 그 열 개의 위력 안에서 실마리를 파악하고는 뒤로 몇 걸음 빠르게 물러나갔다가 발을 굴러 솟아올랐다. 그리고 어느새 오른손에는 회색 기운이 맴돌고 있었다. 살육 선결을 이용할 생각이었다. 동시에 오른손 검지를 폈다. 화마지였다.
한제는 체내의 선력을 순간적으로 변화시켜 줄기줄기 마기로 만들어 검지에 응집시켰다.
한제가 사도환에게서 배운 세 가지 필살기는 사도환이 만들어낸 것으로 그 근간이 마도(魔道)에 있었다. 그러니 자연히 마도의 성질을 띠었고 이를 사용하는 사람의 마음에 마도의 성질이 없다면 필살기의 완전한 정수를 발휘할 수 없었다.
허나 한제의 도와 사도환의 도는 분명 달랐다. 때문에 한제가 적멸지와 화마지를 사용한다 해도 사도환이 직접 사용할 때와는 위력이 달랐다. 사실 사도환은 그래서 적멸지와 화마지 사이의 몇 가지 신통력을 한제에게 가르쳐주지 않은 것이었다. 그것들을 모두 알려줬다가는 한제의 도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세 가지 필살기 중 마지막 황천지의 위력은 나머지 두 개보다 훨씬 강해 하급 선술에 거의 근접하다 할 수 있었다.
당초 사도환은 이 황천지를 가르쳐줄 때 상당히 망설였는데 이 황천지의 위력이 막강해 문정기 수련자를 위협할 정도인 데다가 이를 여러 번 사용할 경우 한제의 도심에도 분명한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 사도환은 한제에게 일러둔 바가 있었다. 때문에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한제가 황천지를 사용한 것은 단 한 번, 문정기 중기 수준인 자계 여섯째 진도와 싸울 때 뿐이었다.
좌익 요장이 날린 열 번의 주먹질은 허무에서 기인했으며, 하늘에 녹아들어 형태가 없었다. 그러나 허공을 부술 것만 같은 그 위력은 죽음의 그림자와도 같았다.
한제가 오른손 검지를 펼친 순간, 그의 체내에서 선력이 미친 듯이 거꾸로 돌면서 대량의 마기를 손가락에 응집시켰다. 이때 그의 손가락은 작열하는 태양도 투시할 수 없을 만큼 시커먼 빛으로 뒤덮여 있었다.
순수한 마기의 색이었다.
검지로 허공을 두드린 그 순간, 한제는 엄청난 위력을 품은 주먹질의 힘을 또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첫 번째 주먹질의 위력이 엄습했다.
하늘과 땅이 한제를 중심으로 그대로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엄청난 기운이 사방에서 미친 듯이 쏟아졌다.
한제의 오른손에서 검은 빛이 번쩍였다. 그의 체내에서 선력이 거꾸로 도는 속도는 불가사의할 정도에 이르러 있었는데 바로 그 순간, 한제의 오른손 검지에서 번득이던 검은 빛이 돌연 확산되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전신을 뒤덮었다.
콰르릉! 쾅!
하늘을 뒤흔들 정도로 요란한 소리가 고요성 전역에 울려 퍼졌다.
한제는 창백해진 얼굴로 몇 걸음 밀려난 뒤에야 겨우 안정을 찾았다. 그의 손은 약간 떨렸고 저린 느낌도 들었다.
한제의 몸에 쏟아진 엄청난 힘은 썰물처럼 빠르게 물러났지만 곧 전보다 열 배는 더 강한 위력이 다시금 허공에서 회전하며 나타났다.
두 번째 주먹질의 위력으로 속도 또한 첫 번째 주먹질보다 몇 배는 더 빨라 거의 순식간에 사방에서 밀려들었다.
한제의 오른손 검지는 약간 떨렸다. 화마지로 저항할 수 있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었다.
‘저 정도 위력의 법술이라면 문정기 수련자 중에서도 손꼽히는 실력자나 가능한 것이다!’
두 번째 위력은 첫 번째보다 열 배는 강한 것 같았다.
어느덧 반경 1만 척의 허공은 모래바람으로 뒤덮인 듯 어두워졌다.
한제가 낮게 기합을 넣자 오른손에서 두 갈래의 회색 기운이 나타났다. 그러자 한제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살육 선결을 쏘아 보냈다.
쉬익!
두 마리의 용이 곧장 튀어나가더니 회오리를 이루었다. 그 중심에는 한제가 있었다.
두 번째 위력은 그 회색 회오리에 떨어지자 점차 약해졌고 그와 동시에 살육의 기운이 회색 회오리 안에서 미친 듯이 확산됐다. 살육의 기운은 놀랄 만큼 강력해 두 번째 위력에 한 줄기 길을 뚫어 틈새를 만들어냈다.
하늘을 뒤덮을 듯한 살육의 기운이 마침내 두 번째 위력을 밀어낸 것이다.
한제는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며 마치 유성처럼 그 자리에서 튀어나가 오른손을 움켜쥐어 회색 기운의 회오리를 흩어버렸다. 흩어진 회오리는 두 갈래의 회색 기운이 되어 한제의 오른손으로 돌아왔다.
“응결!”
한제가 낮게 외치자 두 갈래의 회색 기운은 곧장 응결되어 7척 길이의 회색 검이 되었다. 검에서는 끓어 넘칠 듯한 엄청난 살육의 기운이 풍겼다.
한제는 그 검을 쥔 순간, 마치 다른 사람으로 변한 듯했다. 그의 몸에서는 더 이상 선인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살육의 기운뿐이었다.
그는 손에 살육의 검을 든 채 파죽지세로 허공을 가르며 곧장 좌익 요장에게 달려들었다.
“허허! 재미난 놈이로군.”
좌익 요장은 피식 웃었다.
“좋아! 열 번의 주먹질로 인한 위력에 반격을 한 이는 몇 되지 않지. 나머지 여덟 개의 위력을 처리하고 내 앞으로 접근할 수 있는지 보자!”
한편, 멀리 떨어져서 이를 지켜보던 혈성의 딸 요석설은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3년 전 맞닥뜨려봤기에 그녀는 저 열 개의 위력이 얼마나 강한지 잘 알고 있었다. 뒤로 갈수록 저항하기는 더욱 힘들어져 그녀는 네 번째 위력에서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만약 아버지가 전수해준 혈술(血術)이 아니었다면 다섯 번째 위력에 견디지도 못했을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결국 여덟 번째 위력 앞에 무릎을 꿇었고 좌익 요장은 필사적으로 버텨낸 점을 높이 사 그녀를 총령에 임명했다.
도총은 요장의 자리에 버금가는 직위로 고요성에는 단 네 명의 도총이 있을 뿐이었다. 반면 총령은 열여섯 명이었다.
마념(魔念)
한제는 살육의 빛이 번득이는 눈으로 검을 든 채 허공을 갈랐다.
허나 아직 그가 넘어야 할 장애물은 여덟 개나 됐다. 세 번째 위력은 두 번째 위력의 열 배에 해당하는 힘을 품은 채 사방에서 몰려들더니 마치 무수히 많은 거대한 산봉우리가 위에서 짓누르듯 쏟아져 내렸다.
핏발이 한제의 선 눈에 살육의 빛이 더욱 짙어졌다. 그는 전혀 두려운 기색 없이 전의를 불태우며 살육의 검을 높이 쳐들었다.
“다 부숴버린다!”
살육의 검이 회색 빛을 발산했다. 1백 척이 넘는 길이의 이 빛은 한제의 몸까지 뒤덮은 채 마치 타오르듯 한 줄기 유성이 되어 튀어나갔다.
꽈릉!
세 번째 위력에는 순간 한 줄기 틈이 생겼고 한제는 검과 하나가 되어 곧장 그 틈을 뚫고 나왔다.
좌익 요장은 전보다 더욱 밝은 눈빛을 번득이며 웃었다.
“하하! 좋구나! 좋아!”
그때, 네 번째 위력이 들이닥쳤다. 이는 첫 번째 위력의 천 배에 달해, 보통의 영변기 수련자는 버틸 수가 없었다.
네 번째 위력이 나타나자 하늘의 기세가 변했다. 동시에 한제의 살육 선결을 무너뜨렸다. 한제의 손에서 살육의 검이 분리됐고 그와 동시에 네 번째 위력이 불어닥쳤다. 이 번째 위력 앞에서 한제는 성난 파도 속의 조각배와 같았다.
한제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 이때 그는 온몸이 무궁무진한 힘에 억눌린 듯 엄청난 압박을 느끼는 중이었다.
그는 자신의 실력으로는 이 네 번째 위력에 당해낼 수 없음을 직감했다. 살육 선결을 제외하면 이 네 번째 위력에 대적할 수 있는 방법은 황천지뿐이었으나, 이는 정말로 위급한 순간에만 써야 했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다!’
한제는 무언가를 결심한 듯 이를 악물더니 오른손을 펼쳤다. 살육의 검은 두 줄기 회색 기운으로 변해 그의 손을 따라 체내로 들어갔다. 순간 그의 미간에 두 개의 회색 문양이 나타나 빠르게 퍼져 나가더니 순식간에 그의 온몸을 뒤덮었다. 동시에 두 개의 생의 낙인으로 인한 보호막이 형성됐다.
바로 그때, 네 번째 위력이 그를 휩쓸었다.
“크윽!”
첫 번째 위력의 천 배에 달하는 엄청난 힘이 쏟아져 내렸다. 한제는 그 네 번째 위력에 존재하는 주먹질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 기운에는 한 줄기 신념이 어려 있었다.
“신념이라⋯⋯.”
순간, 한제의 두 눈이 밝아졌다. 그 눈빛은 마치 영혼을 태우면서 깨달음을 얻었던 당시 주일의 눈빛과도 같았다.
한제는 그 열 번의 주먹질에 담긴 신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는 요장이 오랫동안 전쟁터를 누비며 수많은 적을 죽임으로써 형성한 필승의 신념이었으며, 아주 오래 전부터 지금까지 이 열 번의 주먹질에 패퇴했던 모든 자의 마음이 모여 이루어진 신념이었다.
‘열 개의 위력이 이렇게 강한 것은 그 신념 때문이었어. 저자가 죽이고 패퇴시킨 사람이 많아질수록 그 위력은 더욱 강해질 터. 좌익 요장은 나를 패퇴시켜 자신의 공격력을 진화시키려는 거야. 열 번의 주먹질이 한계였으나 이제는 열한 개를 향해 가고 있구나.’
상상을 초월하는 막강함을 가진 신념을 품은 네 번째 위력이 덮쳐들던 순간, 한제의 심신 역시 그 신념의 여파에 휘몰아치게 됐다.
저항할 수 없는 좌절감이 용솟음쳤다. 하지만 그런 마음은 곧장 사라졌다.
한제의 몸은 거대한 힘에 밀린 듯 곧장 1만 척 밖으로 날아갔다. 지면에 떨어진 순간 몸을 돌린 한제는 왼손 손가락 끝을 땅에 그었다. 그러자 날카로운 소리가 몇 초 동안 울려 퍼졌고 한제는 수백 척이나 더 밀려난 후에야 안정을 찾았다.
이때 한제의 전신은 그의 미간에서 시작된 문양으로 뒤덮여 있었고 그 문양은 네 번째 위력을 막아낸 뒤 곧장 흩어져 사라졌다. 이제 그의 미간에 남은 것은 반 정도에 불과한 문양뿐으로 그마저도 색이 어두워져 있었다.
살육 선결을 수련하여 만들어낸 생의 낙인은 이제 다 흩어지고 반만 남은 상태였다.
“영변기 중기의 수준으로 네 번째 위력까지 막아내다니, 훌륭하군. 허나 도총의 지위는 네가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너는 장로에나 어울려!”
좌익 요장이 밝은 눈빛을 번득이며 뒷짐을 진 채 덤덤하게 말했다. 표정은 약간 좋지 못했지만 말투의 변화는 없었다.
반면 한제의 두 눈은 밝은 빛을 뿜어냈다. 수련자가 도심을 승화시키면 그 도심을 원신과 융합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원신을 진화시킬 수 있었다. 원신을 진화시켜 도심에 섞으면 심신에 한 줄기 신념이 남게 되는데 이 신념은 너무나 견고하여 세상 모든 것에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신념의 신통력이었다.
“신념의 신통력!”
한제는 조용히 고개를 들어 먼 곳에 있는 좌익 요장을 바라보았다. 어스름한 눈빛에는 지혜와 깨달음이 어려 있는 듯했다.
한제의 눈빛은 천천히, 갈수록 밝아졌다. 그는 조용히 오른손을 들어 올려 검지를 폈는데 이는 화마지의 준비동작이었지만 이전과 어딘가 달랐다.
“허!”
한제를 보던 좌익 요장은 어이없다는 듯 혀를 찼다.
“저건⋯⋯?”
그는 한제의 의도를 알아챈 듯했다.
요석설 또한 표정이 변해 한제를 주시했다. 그녀의 마음속에서는 파도가 몰아쳤다. 문득 한제를 주의하라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그때, 한 줄기 마기(魔氣)가 한제의 체내에서 발산됐고 그의 몸에서 검은 안개가 생겨났다. 또한 그의 두 눈도 점차 어두워졌다.
그 어둠 속에는 음산함과 마성(魔性)이 어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