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604
쩌적! 쩍!
석상의 균열은 점점 더 많아지고 있었고 그 안에서는 원한의 기운과 하얀 빛이 끊임없이 서로 섞여들었다.
바로 그때, 숨을 깊게 들이마신 이원이 저물대에서 그림 족자를 꺼내 휘둘렀다. 그러자 족자는 곧장 펼쳐졌다. 그 그림이 드러난 순간, 붉은 화염에 휩싸인 석상은 격렬하게 경련을 일으켰으며, 그 안에서 흘러나오는 소생의 기운도 점점 더 짙어졌다.
“지금일세! 이 그림 족자로 저 선인의 석상에 남아 있는 불멸의 혼을 봉인해주게!”
이원이 외쳤다.
허나 한제는 정신술을 발휘하기는커녕 냉소를 지으며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이원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도우, 뭐하는 겐가!”
이때 석상의 균열은 점점 더 많아져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했다. 그 안에서 흘러나오는 소생의 기운도 더욱 짙어졌고 화염 안의 원한의 기운은 이미 반 이상 석상에 흡수되었으며, 옥병에서 흘러나온 하얀 빛 역시 석상 안으로 완전히 녹아들어 사라진 상태였다.
원한의 기운과 하얀 빛은 마치 양분처럼 그 석상에게 자유의 힘을 부여하고 있었다. 다만 그곳에도 한 층의 봉인이 남아 있어 자유의 몸이 되려는 석상을 저지하는 중이었다. 봉인은 그 안에서 차라리 석상과 함께 무너져 내리기를 원하는 것 같았다.
한제는 속도를 높여 순식간에 1천 척 이상 물러났다. 이원은 분노로 이를 갈며 몸을 훌쩍 날렸다. 순식간에 그의 온몸에서 폭발적인 기운이 뿜어져 나왔는데 문정기 절정 수준에 불과했지만 그 기운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순간이동을 하듯 돌진하여 곧장 한제를 따라잡은 그가 외쳤다.
“도우, 어째서 물러나는 거지?”
“이 도우의 이야기는 감동적이었네만 자네의 목적은 가문의 봉인을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 선인 석상을 부활하게 하려는 것 아닌가?”
그때, 한제의 그림자에서 선위 꼭두각시가 나타나 이원에게 엄청난 기세로 주먹을 날렸다. 허나 이원은 비웃는 듯한 얼굴로 결인을 그린 두 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러자 그의 앞에서 한 줄기 검은 선이 나타났는데 이 선은 순식간에 뻗어 나가면서 삼각형을 이루었다. 선위 꼭두각시의 주먹이 날아든 순간, 검은 삼각형 도안이 요사스러운 빛을 번득이면서 그 앞을 막아섰다.
순간, 그 도안은 미친 듯이 확대되더니 곡선으로 변해 선위 꼭두각시의 주먹을 덮고는 눈 깜짝할 사이 선위 꼭두각시 전신의 피부로 퍼져나갔다.
선위는 검은 빛을 발산하면서 벗어나려 발버둥 쳤지만 소용없었다.
“겨우 하급 선위를 가지고 나를 막으려 들다니!”
이원이 냉소했다.
한편, 한제는 여전히 덤덤한 얼굴로 이원을 마주보았다.
“아까 했던 말 중 거짓이 있는 거로군!”
이원은 한제를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일세. 허나 자네를 죽일 마음은 없어. 얌전히 돌아가서 우의 선계에서 얻었던 정신술을 발휘해. 그러면 약속했던 대가를 지불하겠다.”
한제는 재미있는 농담을 들었다는 듯 피식 웃었다.
“주인의 후손까지 죽인 자의 약속을 믿으란 말인가?”
말을 마친 한제는 순간이동으로 멀리 달아났다.
이원은 껄껄 웃더니 앞으로 한 걸음 내딛었다.
“내가 자네를 과소평가한 모양이군! 하지만 자네는 절대로 도망치지 못해!”
이원이 손을 휘두르자 그의 미간에서 빛이 번득이더니 한 줄기 금제가 튀어나왔다. 그 순간, 하늘의 구름층이 일렁이는가 싶더니 사방으로 흩어졌고 공간이 왜곡되면서 다시 한제의 모습이 나타났다.
허나 이원의 앞에 다시 나타난 한제는 전혀 당황한 기색이 아니었다. 마치 이 모든 것이 자신이 세운 계획의 일부라도 되는 것처럼.
★ ★ ★
뇌의 선계 중심의 크지 않은 어느 조각. 그 조각 대륙 주위의 가장자리에서는 줄기줄기 전광이 마치 철창처럼 대륙 전체를 포위하고 있었다.
이 대륙의 중심에는 거대한 진이 하나 있었고 그 앞에는 네 명의 노인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머리가 하얗게 세어 있었지만 온몸은 엄청난 원력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때, 진이 돌연 격렬하게 번쩍이기 시작했다. 허나 노인들은 미동조차 없었다.
잠시 후, 진 안에서 붉은 허상 하나가 나타났다. 동시에 사방에 피 냄새가 진동했고 앉아 있던 네 노인은 진중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이한제 이 녀석아, 내가 왔다!”
허상이 차차 실체화되면서 붉은 옷에 머리와 눈썹도 모두 붉은 중년 사내, 혈조의 모습이 나타났다.
★ ★ ★
이원은 모든 상황을 다 파악했으면서도 자신감이 넘치는 한제를 보며 의아함과 동시에 뭔가 수상함을 느꼈다.
“흥! 부딪혀보면 알 일이지.”
차갑게 코웃음을 친 이원은 곧장 앞으로 한 발 내딛었다. 동시에 오른손으로 결인을 그려 금제 하나를 만들어냈는데 이 변화막측한 금제는 열여덟 갈래로 갈라져 있었다. 또한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약간 무너져 내리면서 이원의 마음대로 통제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붕괴의 기미는 아주 깊은 곳에 숨겨져 있어 알아채기가 쉽지 않았다.
순간, 허상으로 나타난 열여덟 개의 조각상이 각 금제의 자리에서 실체화되었다. 마치 선신(仙神)처럼 보이는 이 조각상들은 일제히 한제를 향해 눈을 번득였다. 이 조각상 안에서는 금제의 빛이 번득이면서 순식간에 한제를 포위해버렸다.
“이것이 바로 매화십팔금이다. 잘 봐라!”
이원은 서늘한 눈빛을 번득이며 오른손으로 앞을 가리켰다.
허나 한제는 당황하기는커녕 이원을 비웃었다.
“주인의 후손을 죽인 행동만으로도 부끄러워해야 마땅하거늘, 이원, 네가 선인의 석상에 갈홍의 피를 바친 그때, 그 석상 안에서 발산된 깊은 슬픔을 느끼지 못했느냐? 고개를 돌려 네 주인의 오른손이 어떤 모양을 취하고 있는지 봐라!”
“내 신념을 해하려 들지 마라! 내가 한 모든 일은 주인님의 부활을 위한 것! 네 녀석이 어찌 나의 뜻을 다 이해할 수 있겠느냐!”
이원의 눈이 음침하게 빛났다.
한제는 자신의 추측을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갈홍은 석상으로 만들어진 선인의 후손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원의 선조는 이곳에서 어떤 이유로 죽었고 갈가 사람이 그 법기를 가지고 돌아갔을 것이다.
한편, 이원이 선위를 알아봤다는 점에 의혹을 느끼고 있었던 한제는 이 모든 상황의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파악하게 되었다.
“넌 네 자신조차 기억하지 못하는구나. 넌 이원이 아니다!”
그때, 사방에 있던 열여덟 개의 선신 조각상이 달려들었다.
한제는 저물대에서 바위를 꺼냈다. 바위는 순식간에 거대해져 작은 산을 이루었고 그 안에서 혼백의 오래된 기운을 발산했다. 한제가 그 작은 산이 된 바위를 내리치자 그 안에서 빠져나온 혼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다가오는 것들을 밀어냈다.
“이원은 이가의 후손으로 평생 가문에 찍혀 있는 노예 낙인을 제거하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너는 오히려 그와 반대되는 일을 하고 있지. 넌 노예 낙인을 제거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가문 모든 사람들에게 찍혀 있는 노예 낙인을 이용해 네 주인을 부활시키려 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네 주인의 후손을 제물로 바쳐 잠든 채 봉인되어 있던 주인의 혼을 소환시키는 것이겠지. 넌 대체 누구냐!”
이원은 냉랭한 표정으로 결인을 그리더니 오른손을 뻗었다. 열여덟 개의 선신 조각상이 일제히 진동하더니 열여덟 송이의 매화가 되어 한제를 둘러싼 채 빠르게 회전했다. 그러자 한제를 중심으로 한 회오리가 생겨났고 그 안에서는 끔찍한 기운이 피어올랐다.
인과
한제는 침착하게 오른손을 들어 결인을 그렸다. 그러자 한 줄기 금제의 잔영이 나타나더니 순식간에 열여덟 갈래로 나뉘었다. 이어서 한제의 손짓에 이 열여덟 갈래의 금제는 사방으로 날아들어 그를 둘러싼 열여덟 송이 매화에 찍혔다. 그러자 회전하며 회오리를 일으키던 매화는 순간 우뚝 멈추었다.
그 틈에 한제는 저물대에서 선검을 꺼내 힘껏 내리쳤다.
“참라결(斬羅訣)!”
그 순간, 멈춰버린 듯했다.
쾅! 쾅! 쾅!
열여덟 송이의 매화 중 세 송이가 순간 무너져 내렸다. 그 사이에 한제는 그 열여덟 송이 매화로 이루어진 회오리 안에서 빠져나왔다.
“넌 선인의 종의 영혼이었구나! 노예 낙인을 따라 이가 사람의 윤회 속에 녹아들어 그 가문 사람들을 대대손손 선인의 종으로 만든 것이야! 넌 이원이 아니다! 너와 오래 전 이가에서 세 개의 법기를 만들어낸 그 선조 모두 선인의 종의 혼이면서 노예의 낙인이 되어 이가 사람의 윤회 속에 녹아 태어난 존재다!”
쇠처럼 단단한 한제의 목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그래서 수만 년 전 네가 처음으로 윤회 속에서 태어났을 때, 갈가 사람들은 너를 따를 수밖에 없었던 거야. 그로부터 수만 년이 흐른 지금, 네가 두 번째로 태어났을 때 역시 같은 방법으로 갈가 사람들을 복종하게 한 것이다. 갈가 일족의 희생을 통해 네 주인을 부활시켜야 한다는 일념 때문에! 다른 사람은 속였지만 나를 속이지는 못했다. 이 세상에 생사윤회의 도가 존재하는 한 나를 속일 수는 없어!”
한제는 형형한 눈빛을 빛내며 냉랭하게 말했다.
이원은 침묵했다. 한제의 말은 그의 마음속에서 파문을 일으켰다.
이원의 얼굴에 갈등의 빛이 나타났고 한제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산의 혼이 응축되어 만들어진 안개 덩어리를 석상을 향해 내던졌다.
“안 돼!”
이원의 외침이 터져나오는 순간, 한제는 미간을 통해 인과의 채찍을 꺼내 매섭게 휘둘렀다.
짝!
채찍은 갈등하던 이원을 후려쳤고 이원은 경련을 일으키며 얼른 뒤쪽으로 물러났다. 채찍이 때린 것은 육신도 원신도 아닌 인과였다.
“그 육신도 네게 반발하고 있지 않느냐! 그것은 너의 혼이 이가의 혼이 아니기 때문이야!”
낮게 외친 한제는 앞으로 나서며 손을 들어 이원을 가리켰다.
그 순간 정신술이 발동되었고 뒤로 물러나던 이원은 순간 우뚝 멈추었다. 그러자 인과의 채찍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다시 그에게 날아들었다.
짝!
이원은 또 다시 몸을 덜덜 떨었다. 그의 얼굴은 갈등과 고통으로 잔뜩 일그러진 상태였다.
한데 공격을 이어가려던 한제는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원의 얼굴에 나타난 갈등의 빛이 순간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나는 틀리지 않았다!”
이원은 몸을 빠르게 뒤로 물려 산혼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무렵, 석상은 더욱 더 무너질 기미를 보였다. 석상은 화염 안의 모든 원한의 기운과 하얀 빛을 모조리 흡수했고 화염마저도 수축하기 시작한 상태였다. 머지않아 전부 석상 안으로 스며들 기세였다.
“주인님의 혼을 해방시켜 윤회의 굴레로 되돌릴 것이다. 난 틀리지 않았어! 틀리지 않았다! 주인님의 후손이 모두 죽는다 해도 난 틀리지 않아!”
이원의 목소리는 점차 안정을 찾아갔다. 그는 한제를 응시하며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한 줄기 검은 선이 그의 손에 나타났다. 이는 좀 전에 선위를 옭아매었던 것과 똑같았다. 이번에도 그 선은 온전한 상태가 아닌 듯 경미하게 붕괴할 기색을 보였다.
이를 눈치챈 한제는 당황하지 않았다. 두 번의 채찍질로 이원의 마음에는 이미 커다란 틈이 생긴 상태였다. 상대는 자신의 예측대로 그저 노예 낙인에 녹아든 채 남아 있는 잔혼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