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ne Station RAW novel - chapter 646
한데 그때, 선선족의 선조 노인이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상선님, 안 됩니다!”
그 순간, 한제의 눈빛이 굳어졌다. 황천 안에 녹아든 안개가 제련되지 않고 한데 모여 한 인간의 형상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인간 형태의 안개는 아직 윤곽뿐이었고 그 안에서는 안개들이 요동치고 있어 제대로 된 모습이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존재가 등장한 것만으로도 황천력은 작용을 잃은 듯했다. 그리고 인간 형태의 안개는 한달음에 황천 밖으로 빠져나왔다.
황천 밖으로 나온 그것은 아직 이목구비는 완전히 갖춰지지 않은 상태로 얼굴에는 오른쪽 눈뿐이었다.
선선족 선조와 부족원들도 분분히 땅으로 내려섰다.
노인은 인간 형태로 응집된 안개의 오른쪽 눈을 보더니 화들짝 놀라 외쳤다.
“상선님, 돌아오십시오! 선진(仙陣)을 가동하겠습니다! 그것은 인간 형태의 안개 마수입니다! 단번에 녀석을 죽일 수 있는 법술을 발휘해야만 합니다. 두 번째 공격은 녀석에게 아무런 작용도 하지 못해요!”
그 말에 한제는 재빨리 뒤로 물러서려 했다. 한데 인간 형태의 안개 마수가 곧장 그를 추격해왔다.
한제는 싸늘한 눈으로 안개 마수를 노려보다가 체내에 천둥번개의 위엄을 응집시켰다. 눈 깜짝할 사이 주먹만 한 번개 공 수십 개가 나타나더니 한제의 손짓에 따라 천둥소리와 함께 안개 마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번개 공이 다가오자 안개 마수는 주먹을 휘둘렀다.
마수의 주먹이 번개공과 맞부딪히려는 순간, 한제가 낮게 외쳤다.
“응결!”
순간 번개 공들은 하나로 응집되더니 곧장 안개 마수에게 떨어졌다.
콰르릉!
거대한 소리와 함께 마수는 무너져 내렸지만 곧바로 다시 모여들어 인간의 모습을 이룬 채 한제를 향해 계속해서 달려들었다.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은 것처럼 보였을 뿐만 아니라 녀석의 몸에는 천둥번개의 힘까지 흐르고 있었다. 마치 한제의 신통술을 똑같이 베껴낸 듯 보였다.
전광에 힘입어 마수는 더욱 빨라졌고 단번에 한제를 따라잡았다.
“한낱 미물 주제에…”
한제는 싸늘한 살기를 내뿜으며 저물대에서 선검을 꺼내 쥐고는 곧장 휘둘렀다.
그 순간 참라결이 안개 마수를 가격했다. 이에 우뚝 멈춰 선 마수는 무척 놀란 듯했고 곧장 뒤로 물러나려 했다. 그러나 이내 둘로 갈라지면서 대량의 안개를 분출했다.
“끄아아!”
안개 마수의 비명을 들으며 한제는 선검을 마구 휘둘렀다. 참라결의 위력이 줄기줄기 나타났고 안개는 끊임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러나 잠시 후, 안개는 무너져 내리는 속도가 점차 느려지더니 심지어는 다시 모여들 기미를 보였다.
“흠… 번거로운 마수로군.”
조용히 중얼거린 한제는 오른손을 앞으로 뻗으며 외쳤다.
“정(定)!”
정신술이 발휘되자 모여들던 안개는 그대로 멈춰버렸다. 그때 한제의 손등에 새겨진 문양이 꿈틀대더니 마수의 뼈의 허상이 튀어나왔다. 그러더니 짙은 살기(煞氣)를 사방으로 퍼뜨렸고 안개는 곧장 잿빛 돌로 변해버렸다.
한제는 두 손가락으로 돌이 된 안개를 두드리며 체내의 원력을 가동시켰다. 그러자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석화된 안개는 완전히 무너져 내렸고 셀 수 없이 많은 조각이 되어 흩어졌으며, 그러는 사이 또 한 차례 무너져 내려 완전히 파괴됐다.
선선족 부족원들은 완전히 넋을 놓은 채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 지금껏 진을 이용하지 않고는 인간 형태의 안개 마수를 상대조차 할 수 없었던 그들로서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한제는 그리 힘들어 보이지도 않았다.
특히 타산은 몸을 가늘게 떨었다.
“이… 이것이⋯⋯ 선인의 힘인가⋯⋯?”
한제의 신통력들은 모든 선선족의 상상을 초월한 것들이었다. 심지어 선조 노인의 눈 역시 휘둥그레졌다.
“자모도고⋯⋯.”
한제는 안개 마수가 사라진 곳에서 시선을 거두고는 선조를 바라보며 덤덤하게 말했다.
“이제 현음정이 있는 곳으로 가지!”
노인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지금까지의 공손함에 경외심까지 담아 얼른 허리를 굽혔다.
“이쪽입니다!”
말을 마친 그는 자리를 박차고 떠올라 건물들이 있는 곳을 향해 나아갔다.
한제는 조용히 노인을 쫓아갔고 이제 더 이상 누구도 그를 막아서지 않았다. 타산 또한 한참이나 숨을 몰아쉬더니 한제를 뒤따랐다.
현음정(玄陰鼎)
“타산, 또 말썽을 일으킬 셈이냐?”
선조 노인이 몸을 돌려 노기 어린 목소리로 외쳤다.
사실 한제는 타산을 상대할 때 손속에 사정을 두었다. 이제 막 이곳에 왔는데 섣불리 누군가를 죽여서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아닙니다, 선조 어르신. 저는 그저 현음정이 있는 곳에 같이 가고 싶을 뿐입니다. 그곳에 대해서는 제가 잘 알고 있으니까요!”
타산의 대답에 선조 노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허나 그때, 한제가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따라오너라!”
한제가 허락한 바에야 노인도 더는 막을 수 없었다.
세 사람은 빠르게 이동해 1각 정도 뒤에는 건물들 뒤편에 이를 수 있었다.
그곳에는 공터가 있었고 공터에는 제단이 하나 있었다.
크지 않은 제단의 곳곳은 균열로 갈라졌고 그 아래로 대문이 보였다. 그 보라색 문 위에 새겨진 문양이 수시로 번득였다.
노인은 대문 앞에 착지해 손가락 끝을 깨문 뒤 선혈로 대문에 새겨진 것과 똑같은 문양을 허공에 그렸다. 그러자 문에 새겨진 문양이 붉은 빛을 번득이면서 대문 안으로 녹아들었고 뒤이어 콰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대문이 천천히 솟아올랐다.
칠흑처럼 어두운 입구가 드러났고 서늘한 기운이 그 안에서 흘러나왔다. 뼛속까지 사무치는 듯한 한기였다.
노인은 한쪽으로 비켜서더니 공손하게 말했다.
“상선님, 이곳이 바로 현음정이 있는 곳입니다.”
한제는 신식으로 그 안을 한 번 훑어보았다. 안에서 불어오는 서늘하고 음산한 기운 속에는 짙은 선기가 어려 있었다.
“들어가지!”
한제의 말에 노인은 고개를 끄덕인 뒤 입구 안으로 향했다. 타산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결심한 듯 성큼성큼 나아가 선두에 섰다.
노인은 미간을 찌푸리며 호통을 쳤다.
“타산, 또 무슨 수작이냐!”
타산은 한제를 바라보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상선님, 이곳은 한기가 짙은 데다가 선조 어르신은 연로하셨으니 이 타산이 길 안내를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 말에 노인이 약이 오른 듯 소리를 질렀다.
“허! 한기가 짙다고는 하나 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러나 타산은 노인의 말이 들리지 않는 듯 여전히 한제를 바라보며 말했다.
“상선님, 저는 이 제단의 수호자입니다. 그러니 누구보다 상선님을 모실 자격이 있습니다!”
한제는 덤덤한 눈으로 타산을 힐긋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마치 타산의 마음을 꿰뚫어볼 듯 날카로웠으나, 타산은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좋다!”
한제는 시선을 거두며 고개를 끄덕였다.
타산은 허리를 꾸벅 숙인 뒤 안으로 들어갔고 한제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그 뒤를 따랐다.
노인은 타산의 생각을 어렴풋이 짐작하고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그 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입구 안으로는 긴 계단이 이어져 있었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한기가 짙어졌다. 그리고 1각 정도 지났을 때, 그들은 바닥에 이를 수 있었다.
한데 그 순간, 한제의 눈빛이 변했다.
입구의 바닥에는 또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폭이 1천 척 정도 되는 공간의 한가운데에는 1백 척에 이르는, 셀 수 없이 많은 문양들이 새겨진 솥이 하나 있었다.
검은 연기가 솥의 입구에서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그 연기는 벗어나고 싶은 듯했으나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봉인된 것처럼 솥 주위를 맴돌았다.
솥의 사방에는 인간의 두개골 아홉 개가 놓여 있었는데 하나같이 미간에는 매우 복잡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검은 빛이 그 두개골에서 번득였는데 그 때문에 아홉 개의 두개골이 하나의 진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것이 바로 현음정입니다.”
타산은 복잡한 기색이 어린 눈으로 솥을 바라보며 낮게 중얼거렸다.
한제는 신식으로 솥 주위를 한 번 훑었다. 그리고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맹렬하게 솥 안으로 신식을 주입했다. 그 순간…
“꺄아아!”
여인의 날카로운 비명이 솥에서 튀어나왔다. 그 기이한 비명은 귀로는 들을 수 없었고 오직 신식을 통해서만 느낄 수 있었다. 심지어 짙은 살기까지 배어 있는 그 소리는 폭풍처럼 강력해 하마터면 한제의 신식은 그대로 무너져 내릴 뻔했다.
한제는 몸을 훌쩍 날려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얼굴은 창백했지만 두 눈만은 밝게 빛났다.
“여기 며칠 머물러야겠군. 넌 먼저 떠나도록 해라.”
한제는 솥을 바라보며 말했다.
타산은 곧장 떠나지 않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불쑥 입을 열었다.
“정말⋯⋯ 선인이십니까?”
한제는 솥으로부터 시선을 거두고 타산을 바라보았다. 먼저 나서서 안내하겠다고 했을 때부터 짐작했던 일이었다. 타산은 분명 단둘이 있을 때 묻고 싶었을 터였다.
한제는 말없이 덤덤한 눈으로 타산을 바라보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