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native American RAW novel - chapter (202)
202화
아무래도 주술사는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서둘러 상부에 보고해야겠군.’
방금 신전에 들어온 환자를 주술사가 안내했다.
“고맙습니다. 여러분들은 저쪽에 가서 다른 주술사하고 얘기를 나눠야 할 것 같습니다. 그냥 가벼운 질문이니 그리 불안해할 필요 없습니다.”
번화가에 쓰러진 사람을 데리고 온 사람들을 주술사가 안심을 시킨 뒤 뒤돌아섰다.
“환자를 이쪽으로 누우시고, 깨끗한 물과 소독 약초를 가지고 오세요.”
신전에 배치된 치료사들이 주술사의 지시에 분주하게 뛰어다녔다.
잠시 후, 마을 회관에서 긴급한 소식이 전해졌다.
“방금 전염병이라고 하셨습니까?”
이 마을을 이끄는 피쿼트 부족 추장이 놀란 눈으로 되묻자 전염병이라고 보고했던 주술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환자들의 상태를 전부 다 똑같은 증상을 보입니다. 토하거나 병세가 악화하면 입에서 출혈까지 발생합니다.”
이번에는 마을 회관 긴급회의에 참석한 대의원이 신중한 표정으로 물었다.
“같은 증상을 보이는 환자는 몇 명입니까?”
“서른 명이 조금 넘습니다.”
“그 정도면 전염병으로 보기에는 환자가 너무 적은 게 아닙니까?”
“그렇게 합니다만, 만일 나중에 전염병으로 확인된다면 그때는 어떤 대책으로도 막을 수 없을 겁니다.”
주술사의 마지막 말에 마을 회관에 있던 사람들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조용해졌다.
아주 먼 과거에도 전염병은 있었다.
그렇기에 다들 전염병의 무서움을 잘 알고 있었다.
판단을 잘 못 한다면 마을 사람들이 전멸할 수도 있고, 나아가 ‘하늘의 태양’ 전체가 전염병에 휘말릴 수도 있었다.
그때, 생각을 정리한 피쿼트 부족 추장이 이 마을의 전사들을 지휘하는 대전사에게 물었다.
“환자들을 따로 분리할 공간이 있습니까?”
“막사에는 없습니다. 하지만, 없으면 만들어야 하죠.”
“최대한 빨리 임시 치료소를 만들어줬으면 합니다.”
“알겠습니다.”
피쿼트 부족 추장이 이번에는 대의원에게 말했다.
“상부에 급보로 지원 요청을 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러죠.”
“자경단과 소방대에서도 협조 부탁드리겠습니다.”
전염병에 관한 긴급회의는 마을 전체에 비상사태를 발동하며 끝이 났다.
* * *
‘크고 중간 위에 있는 땅(안드레스 섬)’ 섬.
루카얀 부족 마을에서 머문 지 닷새가 흘렀다.
충분한 휴식도 취했고, 루카얀 부족 마을에서 뭘 키우는지 알아보기도 하고, 어떤 물건을 거래할지도 정했다.
이제는 떠날 때가 됐다.
이틀 전, ‘조개껍데기 목걸이’ 추장한테 이미 떠난다고 얘기를 해 놔서 딱히 문제가 되는 것은 없었다.
“황제 폐하께서 특별한 지시가 있었으니 목화씨가 바닷물에 잘 젖지 않게 조심히 다뤄.”
“네, 천인장님!”
“카사바는 실었어?”
“지금 나무 상자에 담는 중입니다.”
아침부터 루카얀 부족 마을에서 거래한 물품들을 코그 배에 싣느라 우리 일행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난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조개껍데기 목걸이’와 인사를 나누었다.
“이게 뭡니까?”
“우리가 사는 사람들은 이 무기를 ‘신의 무기’라고 하더군요.”
루카얀 부족은 대륙과 떨어진 섬이라 타이노 부족만 빼고 다른 부족과의 교류는 거의 없는 듯했다.
순순히 이 섬의 환경에 맞춰 삶을 이어가고 있어서 무기도 동물 뼈와 나무로 만든 창과 작살밖에 없었다.
심지어 섬에 사냥할 대형 초식 동물도 거의 없어서 활과 화살도 없었다.
“유리 구슬도 그렇고, 비누도 그렇고… 많을 걸 받았는데, 이런 귀한 무기까지 주시다니.”
우리를 환대한 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조개껍데기 목걸이’는 무척 감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더구나 거래였다.
물론, 물건에 대한 값을 더 쳐주긴 했다.
더해서 ‘신의 무기’라는 선물까지.
“몇 개밖에 못 드렸는데…”
“아닙니다. 정말 잘 사용하겠습니다.”
이렇게 루카얀 부족 마을에서 대충 정리가 끝이 낫다.
잠시 후, 소형 바이킹 배로 가는 나와 일행들을 루카얀 부족 마을 사람들이 다 나와 배웅했다.
“이건 우리 루카얀 부족을 상징하는 목걸이입니다. 혹시나 다른 섬에 갔을 때 타이노 부족 사람을 만나게 되면 큰 도움을 줄 겁니다.”
“여러모로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시간이 되면 우리 ‘하늘의 태양’을 방문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들과 인사를 나눈 나는 바이킹 배를 타기 위해 뒤돌아섰다.
그때, 루카얀 부족 사람들 사이에서 작은 소란이 벌어졌다.
“며‥칠 전에 약속은 잊었어요? 저‥도 데려가요.”
“가는 사람을 왜 붙잡아?”
“그냥 마음을 접는 게 나아.”
서글프게 울고 있는 루카얀 부족 처녀를 다른 여자들이 말리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 우리 일행들이 있는 곳을 쳐다봤다.
‘하늘의 태양’ 전사 하나가 발걸음을 떼지 못한 채 미련이 가득 남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 며칠 사이에 사랑이 싹텄나 보군.’
대략 어떤 상황인지 짐작이 갔다.
루카얀 부족 추장도 그 둘의 사랑을 알고 있는지 나에게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부모도 딱히 반대하지 않으니 저 아이를 데려갔으면 합니다.”
내가 쉽게 대답을 하는 못하는 와중에 전사들을 책임지는 ‘차가운 나무’가 난처한 기색으로 사과를 해왔다.
“죄송합니다. 황제 폐하! 제가 잘 관리했어야 했는데.”
“괜찮아.”
어차피 엎질러진 물이다.
혈기왕성한 남녀가 사랑한다는데, 말린다고 그게 되나.
난 고민 끝에 사고를 친 두 남녀를 불렀다.
“혹시 사랑을 나누며 미래를 약속했나?”
다시는 서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꼭 안고 있는 ‘하늘의 태양’ 전사와 루카얀 부족 처녀가 앞다투어 대답했다.
“네, 황제 폐하! 이 여자랑 함께 살고 싶습니다. ”
“저도 데려가 주십시오.”
젊은 연인의 눈빛에서 거짓이 아닌 진실인 게 보였다.
고민 끝에 결정을 내린 나는 두 남녀에게 제대로 된 약속을 받아냈다.
“이 여자를 끝까지 책임질 수 있다면, 배에 타는 걸 허락하겠다.”
기쁜 표정으로 루카얀 부족 처녀와 눈이 마주친 ‘하늘의 태양’ 전사가 힘차게 대답했다.
“네, 황제 폐하! 죽는 날까지 마쿠와를 책임지겠습니다.”
“그래. 이따가 배에서 조촐하게 결혼식을 치르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황제 폐하! 반드시 이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두 남녀의 사랑은 내 결정으로 해피엔딩으로 끝이 났다.
잠시 후, 세 척의 코그 배가 루카얀 부족 사람들이 사는 섬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목화라…’
이로써 기본적인 의식주는 완벽히 해결됐다.
이젠 ‘하늘의 태양’을 이끌고 앞만 보면 발전할 일만 남았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나는 기함 이 층 갑판 위에 서서 분주하기 움직이는 전사들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방향은 남쪽, 속도를 올려라!”
“네, 황제 폐하!”
* * *
‘하늘의 태양’ 수도, ‘아주 큰’ 도시.
기계 제작 연구소에서 또다시 시연회가 열렸다.
건설부 수장 ‘게으른 비버’가 나와 ‘하늘의 태양’을 이끄는 주요 사람들 앞에서 이번에 만든 기계를 간단히 소개했다.
“……지금 만든 기계는 수압을 이용해 지하수를 쉽게 끌어올리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시연회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되도록 쉬운 말로 설명을 끝마친 ‘게으른 비버’가 한쪽에 대기하고 있는 기술자들에게 눈짓을 보냈다.
“네, 수장님!”
두 명의 기술자들이 재빨리 나와 양수기에 다가갔다.
이미 여러 번의 검증을 통해 양수기가 성공적으로 개발됐지만,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시연하는 거라 기술자 한 명이 조금 긴장한 듯한 모습으로 양수기의 손잡이를 잡았다.
“입구에 물을 좀 넣고.”
‘게으른 비버’의 설명에 다른 기술자가 마치 긴 주전자처럼 생긴 양수기 위쪽 입구에 물을 한 바가지 정도 넣었다.
“손잡이를 위아래로 열심히 저어 주면.”
손잡이를 잡고 있던 기술자가 기다렸다는 듯이 위아래로 힘을 주며 젓기 시작했다.
끼르르르륵! 끼르르르륵!
작은 기계음이 울리며 양수기 출구 쪽에서 진한 흙탕물이 조금씩 흘러나오더니 어느새 깨끗한 물로 변해 양수기에서 콸콸 쏟아져 나왔다.
와아아아아아!
시연회 참석한 사람들 모두 놀란 눈으로 환호를 지르며 감탄했다.
“저 양수기로 언제든지 깨끗한 물을 얻을 수 있겠네.”
“이젠 굳이 우물을 팔 필요가 없겠어.”
“나는 저 양수기로 농지에 물을 대도 될 것 같아.”
‘찬란한 노을’과 각 행정기구 수장들이 이 자리에 없는 황제 폐하를 대신해 ‘게으른 비버’와 기계 제작 연구소 사람들에게 축하와 수고했다는 말을 건넸다.
“고생하셨습니다.”
“황제 폐하께서 돌아오시면 이 양수기를 보고 분명 기뻐하실 겁니다.”
“축하해요. 수장님!”
‘찬란한 노을’의 축하에 ‘게으른 비버’가 그 어느 때보다 환한 표정을 지었다.
“가‥감사합니다.”
한편, 시연회 한쪽에서 정보감찰부 소속 전사가 ‘발 빠른 사슴’과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렇단 말이지. 수고했어.”
보고를 받은 ‘발 빠른 사슴’이 ‘게으른 비버’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찬란한 노을’에게 뛰어갔다.
“찬란한 노을! 큰일 났다. 피쿼트 부족 지역에 전염병이 발생했어.”
“네?”
웬만해선 놀라지 않은 ‘찬란한 노을’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게으른 비버 수장님! 시연회 잘 봤습니다. 이따가 긴급회의 때 다시 뵙겠습니다.”
“아? 네.”
‘게으른 비버’도 심가한 표정으로 관청으로 향하는 ‘찬란한 노을’과 ‘발 빠른 사슴’을 쳐다봤다.
“전염병이라… 진짜 큰일이 났네.”
* * *
양수기 시연회가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관청 회의장에 각 행정기구 수장들이 모여 긴급회의를 하고 있었다.
“일단, 처음 조치는 잘한 것 같습니다. 전염병이 걸린 환자를 마을 사람들과 분리했다는 것만으로도 크게 칭찬해 주고 싶습니다. 문제는 다음 조치인데…”
탁자 위에 있는 전염병에 관한 보고서를 다시 들춰본 ‘찬란한 노을’이 잠시 고민에 잠기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전염병이 발생한 마을을 통제하느냐? 아니면 그대로 두느냐인데, 제 개인적인 판단은 통제하는 게 맞는다고 봅니다. 여러 수장님들의 생각은 어떤지 듣고 싶네요.”
“최악의 상황을 피하려면 피쿼트 부족 마을을 통제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도 같은 의견입니다만, 적절한 지원도 함께해야 할 것입니다.”
“아직 전염병이라고 확실하게 단정 짓지 않았습니다. 괜히 혼란만 부추길 뿐, 조사가 끝난 뒤 전염병이라고 확인되면 그때 통제해도 늦지 않다고 봅니다.”
의견이 갈리긴 했지만, 대부분 통제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좋습니다. 지금부터 전염병이 발생한 마을을 통제하겠습니다.”
결론이 나자 ‘찬란한 노을’은 일사천리로 후속 대책을 세웠다.
“용감한 늑대 수장님! 비상사태인 만큼 전사 천 명을 급파해 피쿼트 부족 마을을 통제해 줬으면 합니다.”
“알겠습니다. 한시가 급하니 주변 마을과 성채에 주둔해 있는 전사들을 먼저 파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주시면 고맙고요.”
“자경단과 소방대도 국방부와 협조해 줬으면 합니다.”
“알겠습니다.”
이번에는 ‘찬란한 노을’이 고개를 돌려 ‘바람과 구름’에게 말했다.
“대주술사님! 주술사와 치료사를 어느 정도 보낼 수 있습니까?”
“대부분 각 지역에 파견되어 있다 보니 지금으로선 서른 명이 최대인 것 같네요.”
“알겠습니다. 아직 전염병이 최악으로 번지지 않았느니 인원이 되는 대로 계속 보내주세요.”
“네. 저도 직접 가서 환자들을 살피겠습니다.”
“재무부에선 마을을 통제하는 동안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게 아낌없는 지원 부탁합니다.”
“네, 마을 사람들이 혼란에 빠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하겠습니다.”
사태의 심각성을 잘 아는지 재무부 수장인 ‘깊고 맑은’이 비축된 재원과 물품을 아낌없이 지원할 계획이었다.
마지막으로 ‘찬란한 노을’이 회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약초치료사인 ‘멀리 돌아오는 강’을 가리키며 행정기구 수장들에게 다시 한번 당부했다.
“이번 전염병 책임자로서 ‘멀리 돌아오는 강’을 임명했으니 모두 이분의 지시를 최우선으로 따라줬으면 합니다.”
‘멀리 돌아오는 강’이 자리에서 일어나 뒷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숙였다.
“…잘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