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as native American RAW novel - chapter (345)
342화
내가 살아있는 게 신기한 듯 뒷걸음질을 치는 그를 보며 비웃음이 가득한 미소를 날렸다.
“물어볼 게 많으니까, 앉아.”
“어… 어떻게?”
“독살 임무를 맡은 너도 궁금한 게 많을 거야.”
내가 편한 자세로 앉으며 다시 한 번 상단 직원에게 손짓했다.
여유로운 내 모습과 반대로 자리에 앉은 그는 잔뜩 기가 눌렸는지 내 눈도 쳐다보지 않았다.
‘특성 – 음침하지만, 충직함. 독을 잘 다룸.’
심안으로 본 상태 창에서 그의 성정과 특성이 간략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하지만, 증거는 없었다.
단지, ‘독’이라는 단어만 있을 뿐.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다 얘기해 봐.”
이틀 전, 친위대 전사들을 데리고 포우하탄 부족 마을에 도착한 나는 자경단 건물에서 조사를 받는 ‘머리카락’ 상단 사람들을 심안으로 다 관찰했다.
아무래도 ‘머리카락’ 상단이 카토바 부족에 최근에 방문만 상단이라 이들을 당연히 의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
그의 눈동자가 내 눈치를 보며 이리저리 굴리는 게 보였다.
잠깐의 침묵이 흐르자 내 뒤에 있던 ‘세찬 눈보라’와 ‘우직한 곰’이 진한 살기를 날리며 상단 직원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난 여전히 여유로운 자세로 이번 독살 사건의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 그가 알아서 자백하기를 기다렸다.
“휴우! 사경을 헤매고 있다는 걸 일… 부러 흘리신 걸 보면… 황제 폐하께 서 다 알… 고 오신 거겠죠?”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들을 준비가 됐다는 듯 팔짱을 꼈다.
“황…제 폐하를 독…살하려 했으니 사…형은 피할 수 없겠네요.”
상단 직원 입에서 내가 그리 원했던 독살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글쎄, 자네가 혼자 억울하게 죄를 다 뒤집어쓰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 지금 내 앞에서 참회하는 모습을 보이며 지난 과거의 독살 사건까지 사실대로 얘기하면 사형까지는 안 갈 수도 있지.”
과거의 독살 사건까지 한 번 찔러보자 상단 직원의 눈가 주변이 순간 움찔했다.
‘역시나 과거의 독살도….’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지만, 기대 이상으로 대어가 낚일 것 같은 느낌이었다.
깊은 고민에 잠긴 듯 상단 직원이 바짝 타들어 가는 입술을 연신 혀로 닦았다.
이럴 때일수록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세찬 눈보라! 담배 하나 가지고 와.”
“네.”
‘세찬 눈보라’가 자신의 소매에서 휴대용 담뱃대와 담뱃잎 가루를 꺼내 들더니 그 자리에서 바로 담뱃불을 붙었다.
“시간도 많고, 할 얘기도 많으니까. 하나 펴!”
“감사합니다…. 황제 폐하…!”
상단 직원이 ‘세찬 눈보라’가 건넨 담뱃대를 입에 가져가 깊게 들이마셨다가 내뱉었다.
폐 속까지 들어간 하얀 연기가 공중으로 서서히 흩어졌다.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이 임무를 하달받은 건, 두 달 전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상단 직원이 나에 독살 사건에 관해 하나도 빠짐없이 얘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내용은 무척 흥미롭고 다채로웠다.
뒤에서 나와 함께 상단 직원의 자백을 듣고 있던 ‘세찬 눈보라’와 ‘우직한 곰’이 감정의 변화를 실시간이라도 보여주기라도 하듯 중간중간 씩씩거리며 살기를 날렸다.
“……상단주를 포함해 다른 상단 직원들은 이 일에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전부 다 윗사람에 지시를 받고 제가 혼자 벌인 일입니다.”
얘기는 계속됐다.
자정이 지나고, 날이 밝았다.
“사실대로 얘기해줘서 고맙군. 또, 생각난 게 있으면 여기 자경단 전사에게 얘기하고. 쉬게!”
나를 독살하려 했던 상단 직원이 어색한 자세로 일어나 인사를 건넸다.
* * *
자경단 건물 2층.
포우하탄 부족 마을 사람들은 내가 워낙 극비로 움직여서 몇몇 소수의 사람만 알뿐, 이 마을에 방문한 지도 모른다.
소문에 의하면 여전히 난 정신을 잃고 사경을 헤맨 채 수도로 이송 중이었으니까.
“충격이긴 하군.”
등잔 밑에 어둡다고 했나?
나를 죽이려고 했던 범인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있었다.
마침, 수도에서 ‘찬란한 노을’에게 연락이 왔다.
“여기 있습니다.”
나를 담당하는 정보감찰부 전사가 문 바깥으로 나서려다가 뒤돌아섰다.
“……정말 다행입니다. 황제 폐하!”
짧은 말이었지만, 그의 복잡한 감정이 다 담겨 있었다.
난 나가는 그를 보며 가볍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문이 닫는 소리가 들리며 난 ‘찬란한 노을’이 보내온 내용을 빠르게 읽어내려갔다.
그녀가 세운 대책들은 내가 세운 계획과 거의 일치했다.
대의원들의 협조, 병력으로 카토바 부족을 압박, 상단 압수수색 등등.
“역시 천재야!”
난 그녀에게 보낼 종이에다 내가 살아있다는 내용과 몇 가지 지시사항을 적었다.
솔직히 내 생존 소식을 미리 알려줄 수 있었지만, 일부러 그녀를 시험해봤다.
‘찬란한 노을’이 배신할 거라 전혀 생각하지 않았지만, 내부가 적이 누구인지 모르는 상황이라 나로선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젠 범인만 잡을 일만 남았군.”
정보감찰부 전사에게 수도에 보낼 지시사항을 건넨 뒤, 집무실에 혼자 남은 나는 순간 긴장이 풀렸는지 정신적인 피로감이 몰려왔다.
“며칠간 쉴새 없이 달려왔더니 피곤하네. 잠깐 눈 좀 붙여야겠어.”
난 조사실 한쪽에 배치된 간이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 * *
잠을 잔 지 한 시간 정도 흘렀을까?
수도에서 급파한 천일교 대주술사 ‘바람과 구름’을 오랜만에 만날 수 있었다.
반가움도 잠시 나의 몸 상태를 확인하던 ‘바람과 구름’이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말 독에 중독되긴 했습니까?”
“그렇다니까. 왜 내부에 독이 아직 남아있어?”
‘바람과 구름’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더니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오히려 전보다 몸이 더 좋아진 것 같습니다. 영도 맑고, 선한 정령들도 여전히 황제 폐하를 보호하고 있습니다.”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늘어놓는 ‘바람과 구름’을 보며 몸을 일으켰다.
“좋은 거지?”
“네.”
상의를 입고 있는 나를 가만히 쳐다보던 ‘바람과 구름’이 조심스레 얘기를 꺼냈다.
“황제 폐하께서 건강하다는 사실을 알려야 하지 않을까요? 저뿐만 ‘하늘의 태양’ 사람들 모두 황제 폐하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안 돼.”
“혹시 내가 모르는 정치적인 이유가 있는 겁니까?”
“그것도 포함되긴 하지.”
“…그렇다면 저 역시도 당분간은 조용히 입 다물고 있겠습니다.”
“다른 주술사나 치료사들도 내가 여전히 사경을 헤매고 있는 거로.”
“그들에게도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그래. 그나저나 수도에 도착할 때까지 매일 보겠네. 참고로 새벽과 늦은 저녁에 진찰했으면 해.”
“알겠습니다.”
포우와탄 부족 마을에서도 이젠 떠날 준비가 됐다.
도착할 때도 그렇지만, 떠날 때도 밤늦은 시간에 조용히 떠날 계획이다.
“수도까지 전속력으로 달려야겠군.”
* * *
‘하늘의 태양’, 카토바 강 유역.
국경선인 카토바 강을 중심으로 ‘하늘의 태양’의 세 개의 사단이 배치되었다.
사단 위치는 카토바 강을 따라 북쪽과 서쪽, 그리고 남쪽.
각 사단은 사단장의 지시하에 임시 주둔지를 건설하며 언제든 카토바 부족 땅으로 쳐들어갈 수 있게 모든 준비를 끝마쳤다.
수십 개의 정찰대가 카토바 강을 밤낮으로 드나들며 카토바 부족의 동태를 관찰했다.
“국방부 수장님이 도착했습니다.”
“충!
남쪽에서부터 서쪽까지, 사단을 차례대로 방문한 ‘용감한 늑대’가 북쪽에 배치된 사단에 모습을 드러냈다.
“다들 수고하는군. 바로 중앙 막사로 가지.”
“네, 수장님! 이쪽입니다.”
사단장과 참모진들이 ‘용감한 늑대’를 직접 마중 나와 중앙 막사로 안내했다.
잠시 후, 사단장이 벽보에 붙인 큰 지도를 보며 작전 계획을 설명했다.
“……보다시피 상부의 명령이 떨어지면, 세 개의 사단이 동시에 카토바 영토로 진입해 정복할 것입니다. 이상입니다.”
‘용감한 늑대’가 그 작전이 마음이 드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전황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앞으로도 카토바 부족의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해 작전 계획을 언제든 보완 수정할 수 있도록 해.”
“알겠습니다. 수장님!”
중앙 막사에 있는 사단장과 그의 참모진들이 힘차게 대답했다.
그것도 잠시, ‘용감한 늑대’가 어두운 표정으로 물었다.
“황제 폐하는 아직도 그대로인가?”
“네, 안타깝게도 그렇습니다.”
‘용감한 늑대’가 입술을 꽉 깨물더니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와 ‘하늘의 태양’을 대표하는 황제 폐하가 독살을 당했다. 이는 전사로써 황제를 제대로 보필하지 않은 우리 잘못이 크다. 이번에 카토바 부족이 ‘하늘의 태양’을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제대로 보여줘야 할 것이다. 지옥 끝까지 쫓아가서 복수한다!”
“네, 수장님!”
중앙 막사가 어느새 분노와 진한 살기로 가득 찼다.
* * *
카토바 강 상류, 카토바 부족 마을.
마을 광장에 있는 통나무 집에는 카토바 부족 대추장 ‘검붉은 눈동자’뿐만 아니라 원로들, 각 지역을 다스리는 추장들까지 다 모여 긴급회의를 하고 있었다.
“강 하류에도 ‘하늘의 태양’ 전사들이 배치되었습니다. 전사들 수만 해도 이만 명에 육박합니다. 그것도 하나같이 신의 무기로 무장됐고요.”
“삼천도 되지 않는 우리 부족 전사들로는 전혀 상대할 수 없을 겁니다. 까딱하다간 전사뿐만 아니라 부족이 전멸할 수도 있습니다.”
“대추장님! 카토바 부족 역사 이래 이러한 큰 위기는 없었습니다. ‘하늘의 태양’과의 전쟁은 어떻게든 막아야 합니다.”
지난날, 체로키 부족 전쟁과 달리 카토바 부족 추장들과 원로들은 전투 의지를 아예 상실한 듯 하나같이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대추장님! 우리가 독살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하늘의 태양’ 측과 대호로써 이 오해를 풀어야 합니다.”
“맞습니다. 그게 최선입니다.”
회의가 길어질수록 ‘검붉은 눈동자’의 고민도 깊어져만 갔다.
“제가 가면 달라질 게 있습니까? 설사, 우리가 독살을 계획하지 않았더라도 우리 부족에서 그 사건이 일어난 것은 사실이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손님을 제대로 모시지 못한 우리 부족을 ‘하늘의 태양’ 쪽에서 가만히 있을까요? 저라면 당장 쳐들어올 겁니다.”
“…….”
‘검붉은 눈동자’가 꽤 답답했는지 모든 원로와 추장들에게 지금의 현실을 제대로 인식해주었다.
통나무 집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안 나오는군요.”
“결국, 전쟁밖에 없는 건가.”
여기저기서 우울한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때, ‘검붉은 눈동자’가 결심한 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
“딱, 한 가지 방법은 있긴 합니다.”
“그게 뭡니까?”
“경청하겠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검붉은 눈동자’를 향했다.
“힘든 선택이 될 건데, 들어보시겠습니다.”
* * *
‘하늘의 태양’ 수도, ‘아주 큰’ 도시.
황제에 관한 좋은 소식은 없었다.
오히려 황제 폐하가 곧 죽을 거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도시 전체가 슬픔이 잠겼다.
대의원들이 머무는 건물에도 황제가 죽을 것을 대비해서 대책을 세우느라 밤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었다.
“갑자기 황제가 죽어버리다니….”
“황제 자리를 공석으로 둘 수 없지 않습니까? 안타까지만, 황제 폐하의 장례가 끝나는 대로 황제를 다시 뽑아야 합니다.”
“저도 같은 의견입니다. 여기에 황제 자리에 어울리는 분도 계시지 않습니까?”
‘붉은 머리카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그 자리에 있던 대의원들 모두 다음 차기 황제로 그를 추대했다.
“하하하! 다들 왜 그러십니까? 황제 폐하께서 아직 죽지도 않았는데.”
겸손을 떠는 ‘붉은 머리카락’이 속으로 음흉하게 웃었다.
‘황제라….’
그때, 문이 처참하게 부서지며 ‘하늘의 태양’ 전사들과 정보감찰부 전사들이 들이닥쳤다.
“다들 동작 그만! 황제 폐하 독살 범인으로 ‘붉은 머리카락’을 체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