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132
33. 세상에 나쁜 용은 없다 (5) >
***
북해와 독일 인근을 영지로 둔 고룡 칼리에테르가 독대를 요청했을 때, 젠킨슨은 친분이 희미했던 그녀가 만남을 제안한 사실보다 상대가 몸소 홍콩까지 왔다는 점 때문에 더 놀랐다.
칼리에테르의 자녀는 아직 해츨링으로 분류된다. 획일적 성년 기준이 없는 드래곤은 부모가 독립에 동의한 순간 해츨링 딱지를 떼는데, 그 아이는 남들보다 많이 느린 편이긴 했다. 어쨌거나 칼리에테르는 해츨링의 보호자이므로 용족 회의 참석을 면제받았다. 아이는 로드와 혈연관계가 없으니 장례식에 꼭 올 필요도 없었다.
그런 그녀가 뒤늦게 홍콩까지 날아온 것이다. 해츨링을 레어에 둔 채.
‘뭐가 급해서?’
떠오르는 이유는 하나였다.
‘설마 해츨링을 둔 어미가 로드 자리에 출마하려는 건가? ···드래곤 하트가 그리 탐이 나서?’
앞으로의 일은 유언에 따라 진행될 것이다. 다음 용족 회의는 99일 후 홍콩에서 다시 열릴 예정이며, 그 자리에서 차기 드래곤 로드 선출 및 유언에 따른 뒤처리가 이루어질 터.
직계 상속자들은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차피 나나 형제들이나, 나이를 생각하면 차기 로드로 선출될 가능성이 전무해.’
‘엉뚱한 자에게 유산이 넘어가는 걸 보고 있을 순 없다. 어서 범인을 찾아야 한다!’
한편, 엔델리온의 공주는 위원회가 소유한 카이탁 터미널 지하에 로드를 봉인했다.
=접촉할 수는 없으나, 희망하는 드래곤 누구나 그를 볼 수 있도록 조치했습니다.=
봉인된 터는 인공적으로 시간의 흐름을 멈춘 영안실과 같았다.
=관리 상태에 의구심이 든다면 언제든지 직접 확인 가능하니, 참고하시길.=
그 말을 남기고 자리를 비웠지만, 그녀의 결계를 감히 건드리려는 객기 충만한 드래곤은 없었다.
직계 상속자 외 대부분의 드래곤은 레어로 돌아가는 대신 홍콩에 남기로 했다. 다들 바쁜 몸이었지만 지금 상황보다 중요한 안건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들 다수는 이렇게 생각했다.
‘어차피 드래곤 하트는 차기 로드에게 넘어갈 거야!’
최고령 드래곤의 심장을 분할하지 않고 통째로 상속받는 그는 앞으로 지구 권력 구도를 뒤집고 압도적인 실세가 될 것이다. 권력에 민감한 드래곤들은 그 과정을 면밀히 관찰하거나, 아예 과정의 일부가 되고 싶어 했다.
그 결과 홍콩에서는 로드직에 출사표를 던진 후보자들의 각축전이 펼쳐질 예정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관심도 보이지 않았을 용들까지 뛰어들었다.
‘블레어, 우리도 한동안 홍콩에 머물 걸세.’
젠킨슨 역시 부하 및 ‘증인들’과 함께 계속 홍콩에 남기로 했다.
심사숙고한 끝에 로드의 유지를 잇기로 결정한 것이다.
경쟁에 참전한다.
그는 면담을 요청한 칼리에테르 역시 경쟁에 참가하려는 의도로 판단했다. 오늘 독대도, 결국 이런저런 조건을 내밀며 그 대가로 기권을 종용하려는 것일 터. 전해 들은 그녀의 성격이라면 그러고도 남았다.
최악의 경우 싸움을 걸어올 수도.
거기까지 각오한 젠킨슨은, 폴리모프 한 그녀가 호텔 방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칼리에테르는 예상처럼 후보 자격 포기 각서를 들고 오지 않았다. 대신 쥐고 있는 것은 품질 좋은 와인 한 병과 와인 잔 두 개였다.
“······.”
젠킨슨이 인사 대신 묻는다. 미심쩍은 표정으로.
“그건 왜 가져왔지?”
칼리에테르는 눈썹 한 번 꿈틀거리지 않고 대답했다. 등장한 순간부터 무표정을 유지한 채.
“왜긴? 마시려고.”
칼리에테르는 테이블 위에 잔을 놓았다. 손을 대지도 않고 그저 눈길을 줬을 뿐인데, 뽕! 코르크 마개가 뽑힌다. 그녀는 차분한 손길로 술을 따른 뒤 내밀었다.
“들지.”
인간이었다면 독살 시도를 의심했을 것이나, 젠킨슨은 다른 건 걱정해도 그것만큼은 염려하지 않았다.
드래곤은 만독불침이다. 그리고 용이 폴리모프 할 때는 본체의 장점과 변신한 종족의 장점만을 취사선택했다. 따라서 지금 둘은 어떤 독에도 면역인 동시에 용 상태에서는 제대로 느낄 수 없는 와인의 향과 맛을 만끽할 수 있다.
권하는 대로 한 모금 마신 젠킨슨의 눈이 조금 커졌다. 그리고는 감탄을 뱉었다.
“···좋군.”
“내 와이너리에서 일하는 드워프 노예들을 수십 년 들볶은 끝에 탄생한 걸작이다. 내게 종속시켜 쇠고랑을 채우는 데에는 돈이 효과적이지만, 더 좋은 성과를 뽑는 데엔 공포가 더 효과적이더군.”
이런 말을 건넬 때는 사교적 미소 정도는 띄울 법도 하나, 칼리에테르는 여전히 무표정이었다. 그녀가 드디어 용건을 꺼낸 시점은 둘 다 아무 말 없이 반병 정도를 비웠을 때였다.
“후보로 나설 건가?”
젠킨슨은 망설임 없이 답했다.
“그래.”
이미 결정을 내린 지 오래였으니까.
로드가 유언장에서 그의 이름을 언급한 이상 승산이 없지는 않았다. 고인을 상종 못 할 괴짜로만 여기는 드래곤도 있지만, 의외로 몇몇 부류 사이에서는 인기가 있었으니까. 따라서 로드의 유지에 따라 젠킨슨을 지지할 자들이 존재할 것이다.
그러자 칼리에테르가 지적했다.
“쉽지 않을 거야. 일부 고룡들이 연계하고 있어. 전부 다 출마했다가는 자멸을 면치 못할 테니 일단 한 명을 밀어주고 나중에 열매를 나눠 먹겠다는 거지.”
추후 성과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 그에 대한 계획은 제각각이었다. 로드는 드래곤 하트를 분열시키지 말라고 유언을 남겼지만, 고룡 중에는 그것이 권고에 불가하다고 여기는 자들도 많았다.
또는, 쪼개는 대신 당선자가 통째로 흡수해 버리면 된다고 생각하는 고룡도 있었다. 마력을 생명의 근원으로 삼는 드래곤은 그것을 완전히 흡수한 순간 수명이 늘고 더 강력한 개체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그 뒤 협조를 한 드래곤들에게는 적절한 대가를 안겨 주는 계획.
그런데 아직 젠킨슨에게 연대하자고 다가온 고룡은 없다. 그걸 아는 칼리에테르는 상대의 눈을 깊이 들여다보며 물었다.
“만약 네가 로드가 되어서, 드래곤 하트를 손에 넣는다면 어떻게 할 거지? 유언을 무시하고 쪼개서 처분할 건가? 아니면 통째로 흡수? 그것도 아니면··· 위원회에 담보로 제공해서 거액의 달란트라도 대출받을 생각?”
그녀가 말하는 선택지는 지금 실제로 고룡들 사이에 오가는 이야기였고, 그걸 알기에 젠킨슨은 더욱 강렬한 혐오감을 내비쳤다.
“아니, 그걸로 뭘 할지는 차기 로드가 되고 나서 생각할 걸세.”
그것은 아직 갈피를 못 잡아서 우유부단하게 미룬다는 뜻이 아니었다.
“나는 로드가 이런 유언을 남긴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네. 아는가? 그가 살아 있는 동안 이상한 짓을 많이 하긴 했지만, 나중에 살펴보면 그중 쓸모없는 짓은 없었어.”
“······.”
칼리에테르는 그 말에 대한 논평 없이, 묵묵히 다음 말을 기다렸다.
“드래곤 하트를 분할하지 말라는 건, 절대 그래서는 안 될 이유가 있기 때문일 거야. 안 쪼개고 통째로 삼키면 된다고? 그건 지나친 편의주의적 발상이야. 내 생각에 분할하지 말라는 건 훼손하지도 말라는 뜻으로 해석되네.”
그렇게 의견을 밝히는 젠킨슨에게, 칼리에테르가 떠보듯 말했다. 흔들리지 않는 눈빛으로.
“그럼 로드는 왜 훼손하지 말라 했을까?”
“자원으로서의 드래곤 하트는 몇천 조각으로 쪼개도 단위 면적당 절대가치가 사라지지 않아. 금붙이나 마정석과 마찬가지로. 하지만 지금 우리가 말하는 심장은 그렇지 않다는 뜻이겠지. 그렇다면 그건 존재 자체로 가치를 지니는 자원을 넘어서, 특정 기능을 보유한 기물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어.”
“기능?”
“내가 볼 때 로드의 드래곤 하트는 어떤 일을 위해 안배한 도구 같아. 훼손되면 도구로서의 가치가 사라지는 거겠지. 애초에 자식들에게 상속할 생각은 없었다는 의견에 나도 동의하네. 이번 유언은 차기 드래곤 로드에게 심장을 넘기고, 그걸로 어떤 일을 대신 해 주기를 바라는 의도에서 작성한 것 같군. 이 가설이 제일 로드다워. 많은 고룡들은 생전의 그를 기괴한 작자로 치부하고 사적인 영역에서 깊이 교류하지 않았어. 그래서 그가 어떤 드래곤이었는지 잘 모르지. 하지만 난 다르네.”
로드는 젠킨슨과 비슷한 성향을 지니고 있었고, 둘은 평소에 뜻이 잘 통했다. 이미 민준이 목격한 것처럼 젠킨슨은 그와 혈연으로 엮인 드래곤들만큼이나 로드의 죽음 앞에서 슬퍼했다.
북해의 고룡이 무덤덤한 목소리로 묻는다.
“그 드래곤 하트로, 차기 로드가 뭘 해 주길 바라는 걸까?”
“알 수 없지. 아마 드래곤 하트를 손에 쥔 순간 알게 되지 않겠나? 그게 로드의 방식일세. 원래부터 수수께끼를 좋아했을뿐더러, 이런 종류의 비밀은 너무 많은 드래곤이 함께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지. 용들 성질머리를 잘 아니까.”
“당신은 로드의 유지를 따를 생각이고?”
“지금까지 듣고도 모르겠나? 드래곤 하트는 어차피 내가 임의로 처분할 수 없는 상태일 거야. 내가 차기 로드가 되고 싶은 건 맞지만, 드래곤 하트는 그 자리에 따라오는 부산물일 뿐이야. 보물보다는 오히려 일거리에 가깝겠지. 난 그걸 각오하고 출마하려는 걸세.”
다른 고룡들 생각과 정반대였다.
그들은 드래곤 하트가 주목적이고, 로드직은 그에 따라오는 부수물로 여겼으니까.
“······.”
칼리에테르는 잠시의 침묵 뒤 말했다.
“그 생각에는 나도 공감이다.”
무언가 결정을 내린 듯, 그녀의 눈동자에 강렬한 빛이 일순 감돌았다.
그리고 의외의 말이 이어졌다.
“제안하지. 한 가지 조건에 응해 준다면 나와 내 영향하에 있는 유럽 지역의 드래곤들은 당신을 차기 드래곤 로드로 지지하겠어.”
“······?!”
젠킨슨으로서는 상상도 못 한 반응이었다.
“뭐야, 로드직에 출마할 생각이 아니었나?”
“미쳤어? 내 아이는 아직 해츨링이야.”
“그럼 왜···.”
아직 다른 고룡들은 젠킨슨과 연대하려 들지 않았다. 애초에 생각이 너무 다른 걸 알기 때문이다.
칼리에테르가 그의 의문에 답해 주었다.
“지금 후보로 나서겠다고 설치는 드래곤 중, 로드의 유지를 제대로 이해한 건 당신밖에 없다고 생각하니까.”
젠킨슨은 자문한다. 그녀와 로드가 그리 가까운 사이였던가?
기억을 뒤져 보지만 뚜렷하게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칼리에테르는 시선을 살짝 비껴 낸다.
“사실 그의 사상은 나와 잘 맞지 않았지. 다른 드래곤들은 무시하는 시시콜콜한 부분에 집착했으니까. 감정 더듬이가 지나치게 길고 넓다고 해야 할까? 용 말고 다른 종족까지 챙기려 드는 오지랖이 대표적이야. 임금 몇 푼에 종속된 부품들을 위해 그토록 공들이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어. 우리보다 열등한 자들을 위해서 말이야.”
젠킨슨이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하지만 그가 입을 열기 전 칼리에테르가 먼저 말했다. 여전히 무심한 어조였다.
“그래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잠깐 주저하더니 말한다.
“이번 유언 내용을 보니 그 지나친 더듬이 때문에 ‘우리’도 도움을 받은 것 같아서 계속 신경이 쓰이더군.”
젠킨슨은 그녀 역시 직계 상속자가 아님에도 유언에 언급된 사실을 떠올렸다. 그 내용은 분명···.
-해룡속 사파이어 드래곤 칼리에테르에게는 암스테르담의 사설 미술관을 남긴다. 그녀의 아이가 기뻐하기를 바라며.
그러고 보니 의아하긴 했다. 로드와는 혈연관계가 없는 그녀의 아이를 왜 굳이 언급했을까?
“아무튼, 조건은 이거다.”
이어진 말 때문에 젠킨슨의 상념이 깨졌다.
“이번 용족 회의에서 다룰 안건 중에 그 돌연변이 용이 있지? 거미와 드래곤이 섞인.”
“돌연변이라기보다, 혼종이라고 봐야겠지.”
“지금까지 그 괴물에 대해 연구한 결과를 전부 내게 넘겨줬으면 해. 원래 용족 회의에 공개하려고 추려 둔 내용을 넘어서, 당신이 알아낸 모든 것을.”
그걸 원하는 이유를 물었지만 칼리에테르는 대답하지 않았다.
로우 데이터(Raw data)에는 젠킨슨이 자체적으로 개발한 고유 술식 같은 지적 재산이 포함되었기에 다른 드래곤에게 공개할 생각이 없었지만, 그는 고심 끝에 그녀와의 거래를 받아들였다.
그 결과 젠킨슨은 칼리에테르와 그녀를 따르는 유럽 내 드래곤들의 표를 확보하게 되었다. 차기 드래곤 로드를 향한, 작지만 확실한 첫걸음이었다.
***
민준은 속내를 감춘 채 드래곤에게 묻는다.
“여기까진 어쩐 일이십니까?”
“거래를 제안하려고 한다.”
로드의 장남, 켄티우스는 그리 말하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민준은 그 머릿속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위대한 드래곤이 수형자 따위에게 명령하거나 지시하는 대신 거래를 하자고 제의하는 현실이.
하지만 이러는 수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렸으리라. 그의 실력으로는 위원회에게 들키지 않고 수형자를 납치하거나 고문할 자신이 없기에. 민준이 두렵다기보다는 위원회가 무서운 것이다.
그걸 증명하듯 민준을 보는 눈에서는 오만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상대가 이 제안을 거절할 수 없으리라 장담한 것. 이 세계의 절대자인 드래곤 성질을 건드려서는 안 되니까.
‘어린 용들은 저게 문제야. 지금까지 이룬 것도 모은 것도 없고, 가장 큰 성취라고 해 봤자 드래곤으로 태어난 것이니 거기에 집착하고 종족에 자아 의탁을 해서 자존심을 채우지. 아직 자기 위치를 객관적으로 못 보는 놈들.’
소속감을 자존감으로 착각하는 젊은 용 앞에서, 민준은 시치미를 떼며 말했다.
“거래라. 제가 당신에게 뭘 드릴 수 있을까요?”
“내가 아버지의 유산을 빼앗으러 왔다고 생각했겠지? 그 사설 금고 말이야. 하지만 난 그 정도로 절박한 드래곤은 아니야. 물론··· 내 배다른 형제 중에는 입장이 다른 녀석들이 있지만.”
이 도시에서 민준을 주시하는 자들 중에는, 그가 사설 금고에서 꺼낸 큐브를 노리는 자들도 있다는 암시였다.
하지만 자기는 다르다는 듯 켄티우스는, 여유롭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그건 그냥 네가 가져라.”
큰 은혜를 베푸는 듯한 말투였다.
민준은 그것이 로드의 유언에 따라 정당하게 손에 넣은 것임을 굳이 지적하지 않았다. 용 귀에 경 읽기니까.
“대신 내가 원하는 건 이거야.”
그의 눈동자에 불꽃이 일렁였다.
“이미 알겠지만, 나를 비롯한 상속자들은 로드를 죽인 범인을 찾아야 해. 서로 경쟁해야 하지. 당신이 날 도와줬으면 해.”
자가당착적인 주절거림이 이어진다.
“소문을 들었어. 너, 잡재주가 꽤 뛰어나다지? 너무 하찮아서 용족들이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도 않고 배우려 들지도 않는 잡다한 기술 말이야. 증거를 탐색하거나 범인을 추적하는 데에는 당신만 한 자가 없다고 들었어. 그러니 날 도와줘. 혹시라도 위원회와 대치될까 걱정할 필요는 없어. 증거는 깨끗하게 지워 줄 테니까. 그리고 내 짐작에··· 애초에 범인은 위원회와 관련이 없는 자야.”
“······?”
“이 부분은 손을 잡고 나서 더 자세하게 이야기하지.”
호기심을 느끼며, 민준은 일단 더 들어 보기로 했다.
“도와드리는 대가로 제가 뭘 얻을 수 있습니까?”
켄티우스는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자유를.”
“······?”
민준은 조용히 팔짱을 낀다. 그대로 싱크대에 기대어 섰다. 그리고는 시큰둥한 어투로 물었다.
“제 퇴직금이라도 대신 내 주겠다는 소리입니까?”
“왜 아니겠어? 난 어차피 로드의 재산을 분할해서 상속하게 되어 있어. 거기에 드래곤 하트까지 얻으면 나는 지구 제일의 부자가 되는 거야. 당신 퇴직금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갚기에는 충분하지. 그나저나, 얼마야? 한 30만 달란트 정도 되나?”
민준은 다시 한번 짜증을 참으며 말했다.
“저, 혹시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알아, 특별증여세.”
“······?!”
“물론 그 막대한 세금을 위원회 주머니에 던져 넣을 생각은 없어. 다 계획이 있단 말이지. 위원회의 감시를 피할 방법을.”
민준은 조용히 생각했다.
이 제안은 저 말랑말랑한 대가리에서 나올 생각이 아니다.
특별증여세를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걸 우회할 방법까지 언급했다. 정말 그런 것이 존재하는지 아닌지는 차치하더라도, 개념 자체가 켄티우스의 좁은 세계관 밖에 위치한 영역일 터.
민준은 생각을 바꿨다. 이건 혼자 벌이는 짓이 아니다. 저 뒤에 누군가 버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아마도 켄티우스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다른 드래곤이.
민준은 차분한 음성으로 답했다.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군요. 식사는 하셨습니까?”
“······?”
“아직 안 하셨으면 함께 점심이라도 먹으며 자세한 부분을 조율해 볼까요?”
긍정적인 피드백으로 여겼는지 켄티우스의 표정이 환해졌다.
민준은 그런 그의 변신체를 바라보았다. 용과 인간의 특성에서 장점만 딴 몸.
드래곤이 흔쾌히 답했다.
“좋지. 마침 인간 몸으로 폴리모프 했으니, 인간 스타일의 레스토랑이 좋겠군. 내가 주변에 아는 곳이 있는데···.”
“어차피 민감한 이야기인데 굳이 나가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평소라면 모르겠지만, 지금 이 주변에는 눈이 너무 많기도 하고.”
민준의 손에는 어느새 꺼내든 검은색 후라이팬이 들려 있었다.
“말씀하신 대로 제가 익힌 잡재주가 꽤 많습니다만··· 그중에서도 아주 탁월한 재주가 하나 있습니다.”
용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뭔데? ···설마?”
민준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은 채, 담담한 낯짝으로 말했다. 묵직한 목소리였다.
자신감이 서린 눈빛.
“사실을 고백하자면, 저는 증거 탐색이나 범인 추적보다도 요리를 더 잘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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