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212
213. 마음의 발명(The Invention of Heart) (10)
***
엘라후-프라가 교단 교황직을 대리하는 자는 매우 지친 상태로 관저로 돌아왔다.
교단 본부는 여러 고층 빌딩이 지상 및 지하로 연결된 거대한 콤플렉스(Complex)이며, 그의 방은 단지 중앙의 150층짜리 빌딩 최상층에 있었다.
검소함을 덕으로 내세우는 교리가 아니기에 한 층을 다 쓰는 거처는 넓고도 호사스러웠다. 사물과 감각을 비롯한 모든 것이 종국에는 무(無)로 돌아갈 것이이니, 사라지기 전에 실컷 쾌락을 느끼고 도취감 속에서 신의 숨결을 느끼라는 수백 년간 교리 해석의 결과였다.
투명한 크리스털 잔에 담긴 독주를 들이켰다. 신의 숨결까지는 모르겠지만, 기척 정도는 느껴지는 맛이었다. 하지만 쾌락이 뇌를 스치는 건 찰나다.
교황 대리는 근심에 빠진다.
‘펠릭스를 비롯한 회의론자들의 목소리가 너무 거세다.’
난상 토론은 며칠간 이어졌고, 오늘 날이 밝으면 약속한 3일을 채우게 된다. 화신에게 교단의 대답을 전해야 할 말미가 다가오는 것이다.
‘하지만 완전히 비관적이지만은 않아.’
민준이 화신이라고 확신하지도 부인하지도 못하던 중도파들이 점점 넘어오고 있다. 그는 반대파들 설득에는 실패했지만 갈피를 못 잡던 이들을 끌어오는 데에는 성공한 것이다.
3일째 토론에서도 결론을 못 내면 다수결로 정한다. 결국 교황 대리가 원하는 대로 될 확률이 높았다.
다만 그 유서 깊은 문제 해결 방법의 부작용은 남을 터다. 상대를 설득 못한 상태에서 결정을 내리면 분열된 양측 갈등이 쉽게 봉합되지 않는다.
그런 후에 펠릭스를 비롯한 회의론자들이 어떻게 나올지 교황 대리는 우려하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군. 펠릭스 주교는 왜 그리도 화신을 믿지 못하는 것이지?’
그의 판단에 화신이 틀림 없는 민준을 사기꾼 취급하던 펠릭스를 떠올린 교황 대리는 화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믿음을 모욕당한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절로 호흡이 가빠진다.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이대로면 잠을 잘 수 없다. 자신을 진정시킬 필요를 느끼고 애써 경전 구절을 외운다.
-선지자가 이르되, 너희 민족은 도움 없이 스스로 행복과 황홀에 이르는 재주를 가졌도다. 복락(福樂)에 이르기 위해 한 줌의 환약도 피로 빚은 벌레도 필요치 않으리.
그 즉시, 뇌 내에 쾌락을 유도하는 호르몬이 분비되었다.
스트레스와 분노의 기세를 적당히 잃은 순간 교황 대리는 기도를 멈췄다. 이대로 더 몰입하면 황홀경에 빠져 피를 뿜으며 쓰러질 것이기 때문이다. 격분을 억누르는 것으로 족했다.
그때였다.
팟!
“아니?”
갑자기 방이 어두워졌다.
‘정전?’
이상한 일이었다. 이 행성 주민들은 마정석 수입이 끊긴 후 화석 연료 채굴량을 대폭 늘렸다. 어느 정도냐면, 남은 매장량이 5년도 못 버티고 고갈된다는 분석이 나왔을 정도였다. 그 데이터는 대중에 공개되지 않았다. 어차피 우주 전체가 1년 안에 꿈결로 부서져 사라질 테니 무의미한 정보였기 때문이다.
여튼, 그 정도로 아낌없이 쏟아부었기에 전력 공급에 문제가 생긴 적은 없었다.
‘기술적 문제인가?’
의아해하던 교황 대리는 곧 더욱 수상한 낌새를 느꼈다.
‘이건, 어두워도 너무 어둡지 않은가?’
창이 있던 방향을 보며 교황 대리는 굳었다.
시야에 들어오는 본부 전체가 어둠에 잠겨 있었다. 거대 도시 속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소도시가 통째로, 정전이 되어 버린 것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다급히 통신기를 집어 들었다. 외부 전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 기기인데도 먹통이었다.
이상하다. 전력과 통신이 동시에 마비된다고?
이건 마치···.
쾅!
자동문이 터져 나가고, 사제들이 어둠 속에서도 능숙하게 실내로 밀려 들었다. 모두 야간투시경을 하나씩 끼고 있다. 교황 대리 입장에서는, 저런 게 교단에 비치된 사실도 잊고 있던 물건이었다.
침입자들은 순식간에 주변을 둘러싸며 포위했다. 교단의 대표는 눈을 몇 번 깜박인 뒤에 어둠에 적응했다. 상대의 면면을 확인한 뒤 그는 끓어오르는 목소리로 외쳤다.
“당신들이 감히!”
교황 대리 다음으로 높은 교위(敎位)를 지닌 자들, 총대주교가 다수 눈에 띄었다.
하나같이 ‘Yeh-min-choong’의 화신위 인정에 반대한 자들이다.
그 중심에 선 자의 얼굴을 본 순간 교황 대리는 본능적인 거부감을 느꼈다. 그 남자는 자신의 정의를 실현한 감동과 도취감에 빠진 것처럼 보였다.
“펠릭스 주교!”
총대주교, 펠릭스가 말했다.
“반항해도 소용없습니다. 조용히 우리와 함께 가시지요.”
“이게 대체 무슨 짓입니까?”
그는 함께한 주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긴 시간의 논의와 고민 끝에, 우리는 당신과 당신을 따르는 총대주교들을 이단으로 선언키로 했습니다.”
교황 대리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찰나 말을 잃었다.
잠시 후, 일그러진 표정으로 노호한다.
“내 허가도 없이 어찌 절반 가까운 총대주교를 이단으로 낙인 찍는단 말이오!”
상대는 뻔뻔스럽게 대꾸했다.
“고통스러운 선택이었음을 고백합니다. 계시의 날이 임박한 시점에서, 이단의 속삭임에 이지가 흐려진 교우들이 전부 망쳐 버리는 걸 그냥 보고있을 수 없었습니다. 선조들이 대를 이어 지킨 신혈을 근본도 알 수 없는 수형자에게 넘길 수 없었습니다.”
“그분은 신의 증거가 맞···!”
“아니요, 불가능합니다. 화신이 그런 몸을 빌려 올 수는 없습니다. 두눈박이라니요? 우리는 선택받은 종족입니다. 신이 가장 사랑하는 종족은 우리여야 합니다. 신이 필멸자의 형태로 강림한다면 우리, 레파탐의 모습으로 와야 합니다.”
회의장에서 교리 논쟁을 벌일 때 몇 번이나 되풀이된 논리였다.
교황 대리는 절망감을 느꼈다. 펠릭스는 애초부터 상대 의견에 귀기울일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상황이 불리해지자, 자기 주장을 예상 못한 방식으로 관철하려 하고 있었다.
“형태가 필연적으로 본질을 결정하지는 않소!”
“형태는 본질을 상징합니다. 신의 사랑을 상징합니다. 우리가 포용할 수 있는 형태와 이질성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관용을 함부로 확장하도록 강요하는 것 역시 폭력입니다. 당신들은 우리가 긴 세월 지켜 온 전통적인 가치를 무너뜨리려 하고 있습니다.”
“뭐라고?!”
“두눈박이를 신의 분신으로 인정한다면, 며칠 후 혐오스러운 초록색 피부의 외계인이 나타나서 그럴싸한 이야기를 늘어놓으면 그도 인정할 것입니까? 나중에는 저능한 고블린이 와서 똑같이 주장해도 믿을 것입니까? 그렇게 계속 관용의 범위를 넓혀 나가다가, 종국에는 아예 지성체도 아닌 거머리나 지렁이 따위를 화신으로 인정할 겁니까? 우리에겐 이런 고민할 시간도 없습니다. 계시의 날이 코앞입니다. 오랜 시간 준비한 일을 마무리지어야 합니다. 우리가 알던 전통적이고 바른 방식으로요. 근본도 모를 두눈박이에게 교단의 전부나 다름없는 걸 넘길 수는 없습니다.”
사제들이 그를 둘러쌌다.
교황 대리는 자신의 미래보다도, 저들이 화신에게 어떤 짓을 저지를지가 더 두려웠다.
“화신을 어찌할 생각이오?”
펠릭스는 담담하게 말했다.
“거짓으로 교단을 우롱하며 신을 사칭한 죄는 깊고도 무겁습니다. 그렇다고 위원회에 넘길 수는 없으니 우리의 방식으로 속죄할 기회를 줘야겠지요. 그에게 벌을 내릴 것입니다.”
“그게 무슨?!”
“윰투스가 이미 자백했지요. 대체 어떤 사술(邪術)을 부린 것인지, 그의 영혼에는 이미 상당한 양의 신혈이 흡수된 상태로 여겨집니다.”
교황 대리는 심장이 얼어붙는 기분을 느꼈다.
저 자가 지금, 설마?
“네. 그 가짜 신이 품은 신혈을 우리 손으로 다시 뽑아내겠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교단이 모아온 보물에 그것을 더하겠습니다.”
교황 대리는 분노와 두려움을 동시에 마주했다.
“당신은 뒷일이 무섭지도 않소?”
펠릭스는 신념이 가득한 미소를 보였다.
“강하고 담대한 믿음 앞에, 두려움이란 없습니다.”
***
엘라후-프라가 교단 본부.
캄캄한 어둠 속을 이방인들이 걷고 있다.
인간처럼 보이는 남녀와 어린 드래곤 한 명이었다.
하은성에게 상황을 들은 뒤, 민준은 그에게 드래곤의 몸으로 따라오라고 지시했다. 교단목적지는 달란트를 저장한 제단이 있는 곳이다. ‘부활의 성당’이라고 불리는 건물 위치는 윰투스를 통해 알고 있었다.
“으아아악!”
“주교! 이게 대체 무슨 짓이오!”
“사, 살려 줘!”
모퉁이마다 비명과 고함, 그 밖의 소름 끼치는 소음이 울려 퍼졌다.
하은성이 본 바에 따르면 지금 상황은 펠릭스 측에 유리했다. 당하는 쪽은 설마 상대가 이런 식으로 나올 것을 전혀 예상 못한 것처럼 보였다.
양측의 충돌은 물질계는 물론 영적인 영역에서도 이어졌다. 통신이 마비되자 교황 대리를 따르는 쪽은 사태를 외부에 알리려고 했다. 그들 일부는 유체이탈을 한 뒤, 육신을 버리고 영혼 상태로 날아올랐다. 목적지는 신이 잠든 차원이 아니라 본부 바깥의 거주 지역이었다.
하지만 펠릭스 일당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성직자가 망령이나 유령 따위를 쫓을 때 쓰는 이능력이 펼쳐졌다. 곳곳에서 찬란한 빛이 번뜩이고, 생령(生靈)들은 고통에 몸부림치거나 강제로 몸속으로 다시 빨려 들어갔다.
“그런데.”
밤하늘에서 영체들이 잔인하게 포획되는 장면을 보며 섬뜩해진 하은성이, 가까스로 눈동자를 돌리며 물었다.
그는 민준이 되찾아야 할 달란트를 걱정하고 있었다.
“우리, 굳이 천천히 걸어갈 필요가 있나요? 사방이 어둡다지만 이렇게 큰 길을 따라 걷다 보면 결국 누군가 우릴 목격할 텐데. 어디로 가는지 알아차리고 그들이 제단을 먼저 건드리면 어떡해요?”
목격자에 대한 우려는 곧 현실이 되었다.
어둠을 뚫고 사제 한 명이 달려왔다.
“으, 으아아아! 됴와워(도와줘)!”
사제의 발음은 매우 불분명했는데, 그 이유는 더 가까이 온 순간 드러났다.
도망치던 그의 얼굴은 부풀어 오른 종기로 덮여 일그러진 상태였다. 주먹만한 종기는 입 안까지 차올랐는지 호흡도 힘들어 보였다. 얼굴 외에도 왼쪽 허벅지와 등에도 큼지막한 살덩어리가 부풀어 있었다. 지금까지 뛰어온 것이 신기할 정도.
그는 교황 대리를 따르는 쪽 같았다. 민준을 본 두 눈이 커진다.
“화, 화이이여(화신이여)···!”
화앗!
그의 등 뒤에서 빛이 번뜩이더니 도망치던 뒤통수에 직격했다. 머리 뒷편에 큼지막한 종양이 또 하나 부풀어 오르고, 혈액이 급격하게 그곳으로 쏠리며 현기증이 몰아쳤다.
사제는 쓰러지며 기절한다.
잠시 후, 그를 그렇게 만든 장본인 역시 모습을 드러냈다. 당연히도 펠릭스를 따르는 사제였다. 그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다가 뒤늦게 민준 일행을 보고 굳었다.
“그 사기꾼!”
용이 으르렁대며 불을 뿜을 준비를 했지만 민준은 저지했다. 뒤따르던 델 역시 그의 의중을 짐작한 듯 조용했다.
그사이 사제는 신성력에 목소리를 담아 쏘아 보냈다. 본부 바깥까지는 닿지 못하더라도, 근거리에 있는 동료들에게는 충분히 닿을 음성이였다.
막으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지만 민준은 그러지 않았다.
“여기는 28번 대로! 영빈관과 부활의 성당 연결 지점에서 가짜 화신 발견! 긴급 지원 바람! 긴그 지워 바···.”
사제의 마지막 말이 뭉개졌다.
그가 뒤쫓던 교황 대리 진영의 사제가, 민준에게 도움을 요청할 때 뱉은 음성처럼.
“으··· 으어어··· 이어 왜 이애···.”
그는 혓바닥이 농담처럼 비대해지며 구강을 가득 채우는 걸 감지했다. 동시에 바늘로 찌르는 듯한 아픔과 비릿하고도 짭잘한 농액의 맛이 느껴졌다.
그의 혀에서 크고 작은 수포가 끓어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으읍!”
민준은 불신과 불순종이 그의 혀끝에서 완성된 것을 안다.
저주가 제일 먼저 혀를 덮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으어어어어!”
입 속의 물집은 부풀어 올랐다가 터지며 진액을 쏟아내고 또 부풀다 터지기를 반복했다.
곧 비슷한 일이 뺨, 목, 가슴, 배를 따라 이어졌다. 살거죽 밑에 기포(氣泡)가 부글거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톡! 톡! 토토톡! 추적자의 온몸을 셀 수 없는 수포가 덮었다가 다시 으스러진다. 그는 곧 진분홍색 고름과 피투성이가 되었다. 쉼없이 부글거리는 그의 표피는 들끓는 주전자에 담긴 액체 같았다.
그는 발악하며 신성력을 발산한다. 황금색의 빛이 폭발했다.
파앗!
그는 스스로를 회복시키려고 발버둥쳤지만 아무는 속도보다 수포가 돋고 찢기는 속도가 더 빨랐다.
꽃망울처럼 터지는 물집은 개화(開花)를 멈추지 않는다. 눈은 진작에 멀었다. 각막에 수포가 솟아올라 터지고, 나중에는 수정체까지 물집 형태로 응집되었다가 터지는 게 일 초에도 수십 번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부위에도 멀쩡한 외피는 남아 있지 않았다. 그다음부터는 살가죽이 까지고 찢어지며 드러난 분홍 내피까지 부풀고 붉은 물집이 형성되었다가 터진다. 사제의 피부는 곧 걸레 조각 같은 것이 되었다. 외피 밑 기저층이 닳아 없어진 다음에는 피하지방층이, 그것마저 다 마모된 뒤에는 근육에 물집이 생기기 시작했다.
—-!
그는 짐승 같은 비명을 질렀다.
뇌에서 자의적으로 쾌락 유도 호르몬을 분비하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 터나 본능적으로 그러지 않았다. 고통에 대한 저항을 멈춘 순간 그대로 죽어버릴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살아남기 위한 본능 때문에 그는 긴 시간 참혹한 괴로움에 시달렸다.
가장 먼저 뼈가 보인 곳은 손가락과 광대, 이마 따위의 가죽과 뼈가 맞닿은 것이나 마찬가지인 부위였다. 사제는 근육과 신경을 모두 드러낸 상태에서도 죽지 않았다. 그가 마침내 단말마의 비명을 지른 건 동맥을 보호하는 섬유성 외피가 터진 뒤였다.
“······.”
사제의 숨이 끊어졌다.
드래곤은 이미 진작부터 토하고 있었다.
하은성이 시선을 돌려 외면한 곳에는, 큼지막한 종기 몇 개에 덮여 간신히 숨쉬는 사제와, 온몸이 터졌거나 터지기 직전인 물집에 덮여 죽은 사제가 나란히 쓰러져 있었다. 눈을 감아도 방금 본 장면이 머릿속에 화상처럼 남았다.
그 현상을 하은성이 아는 말로 표현하면, 방금 죽은 사제는 되로 준 것을 말로 돌려받은 것 같았다.
민준은 하은성을 오래 기다리지 않았다. 저들의 믿음에 따르면, 용 또한 중요한 상징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가자.”
게워내느라 눈물이 일렁거리는 눈으로, 용은 민준을 보았다. 이제서야 그의 의도 역시 이해했다.
죄는 필연적으로 벌을 수반한다.
그의 채권자는 자신을 믿지 않은 이들을 벌하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