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3
3. 번아웃 증후군 (3)
“보답이라면, 어떻게?”
에트렐라는 이런 변방 차원 지성체에게 함부로 발설했다간 자신의 수배등급이 단숨에 몇 단계 올라갈 비밀을 털어놓기로 했다.
“지구에 범죄자들이 왜 이리도 많이 몰려드는지 아나?!”
더 말해보라는 듯이 턱을 까딱거린다.
“차원계 으뜸가는 점쟁이가 예언했기 때문이다! 가장 멀리 떨어진 변방의 차원에, 역사상 최악의 범죄자가 도주하며 뿌린 영혼 파편이 있다고!”
대부분의 지구인은 전혀 모르는 비밀.
“그리고 나는 그 예언 전문(全文)의 녹취록을 가지고 있다!”
에트렐라는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영혼이 숨은 위치를 설명하는 자세한 힌트가 녹취록에 있어! 이걸 판다고 하면, 현상금 노리는 놈들이 줄을 설 거다! 살려준다고 약속한다면 내가 이것을 네게···!”
“내가 그걸 받아서 누군가에게 되팔려고 하면? 위원회가 나도 지명수배 명단에 올리겠지. 지금 너보다 훨씬 비싼 몸값이 책정될 테고.”
“······!”
마지막까지 사기를 쳐서 상황을 모면하려고 했던 시도는 실패했다.
“헛소리는 잘 들었다.”
“?!”
그 순간, 에트렐라는 숨쉬는 것도 잊고 민준을 바라보았다. 시선이 꽂힌 장소는 그의 왼손이었다.
분명 흑마법이 발동했을 때 말라 비틀어진 나무껍질처럼 변했던 그 손은, 잠깐 사이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말도 안 되는!”
그녀의 상식으로 저런 일이 가능한 인간은 없었다. 흑마법의 제물로 바친 생명력은 영원히 회복되지 않는다. 이것은 차원계가 끊임없이 팽창하며 새로운 세계가 멈추지 않고 계속 태어나는 진리처럼 당연한 섭리였다.
인간이 알 리 없는 지식을 알고, 흑마법의 족쇄마저 무시한다.
에트렐라는 그제서야 상대가 평범한 지구인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어. 넌···.”
눈빛에 절망이 스민다.
“넌 대체, 무슨 종족이냐?”
민준은 시큰둥하게 중얼거렸다.
“나도 몰라.”
무언가를 직감한 에트렐라가 머리 위를 응시했다.
쾅!
그림자 괴물이 망치질하듯 주먹을 내려쳤다.
그녀가 눈으로 품은 세계는 빠직, 하는 소리와 함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머리가 피떡이 되어 죽은 외계인을 내려다본다.
민준이 장담한 대로, 노경구가 노파 머리를 깨 버리는 일은 없었다. 그 일은 민준이 대신했으니까.
‘아아, 지겹다.’
일하던 사이에는 거짓말처럼 사라졌던 권태감과 탈진감이, 임무를 완수하자 마자 스멀스멀 식도를 타고 올라왔다. 이게 지구에서 그의 손으로 깨버린 몇 번째 외계인 뚝배기일까? 기록을 보면 통계가 나오겠지만 그럴 의욕도 없었다.
‘인질은···.’
몸에 구멍이 수십 개 뚫려 있긴 했지만 일단 살아있었다.
미약한 염동력을 지닌 그는 에트렐라의 계획에 꼭 들어맞는 타겟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몇 번이나 은행을 털며 현금을 충당해 왔다. 구체적인 방법은 은행 안에 죽치고 있다가 만만한 이능력자가 들어오면 촉수를 꽂고 그녀 대신 강도짓을 벌이게 조종하는 것.
‘어설픈 이능력이 오히려 독이 되었군.’
약한 능력자를 타겟으로 삼은 것은 너무 강하면 마인드 컨트롤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꼭 이능력자여야 할 이유는 강도 성공 확률을 높여줄 뿐만 아니라 영력을 빼먹고 버릴 수 있기에. 버려진 타겟은 이능력자 범죄자로 현장에서 사살될 테니 증거 인멸도 완벽하다.
그러다가 결국은 꼬리를 잡히고야 말았지만 말이다.
‘내가 오덴스 족의 특성을 가지고 있으면, 이것보다 나은 방법을 한 100개 정도는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마인드 컨트롤과 능력 흡수를 무기로 생각해낸 게 고작 은행강도라니.’
잠시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재벌의 금고지기 목에 촉수를 꽂아버리면··· 아, 하긴. 이런 피라미가 그 엄중한 경비를 뚫을 수는 없겠군.’
재벌들의 사설금고는 일반 시민들이 이용하는 이런 은행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엄중한 경비를 자랑하니까.
‘지구 화폐를 불법 환전소에서 달란트로 환전하면 수수료를 70% 정도 떼일 테니··· 그러고 나서도 ‘사면’ 받기에 충분한 돈을 털 장소를 은행 말고 딱히 생각할 수 없었던 거군.’
범죄자가 거금을 필요로 하는 이유는 하나 밖에 없다. 차원계 공용의 화폐, 달란트를 재판소에 바쳐서 자신의 죄를 사면받으려는 것이다.
‘은행 몇 개 털어서 사면받을 만한 죄였다니, 부럽군.’
직접 죽여버린 상대였지만 자신의 입장과 대입해 보면 부러운 건 부러운 거였다.
***
안개가 걷히자 멀리 떨어져서 시민들의 접근을 막던 경찰과 자경단원들이 은행 건물로 다가왔다.
“끝났습니까?”
질문하는 박정팔 경위에게.
“끝났다. 뒷일을 부탁해.”
고개를 끄덕이며 민준이 답한다.
안에 들어선 자경단원들 사이에서 호들갑스러운 목소리가 들린다.
“와, 이거 대애애애애박! 야, 이거 사진 좀 찍어봐! 졸라 징그럽게 생긴 외계인이야!”
정팔이 단속하듯이 소리친다.
“현장 사진 함부로 찍었다가 인터넷에 돌아다니면, 알지? 전부 해고야!”
하지만 한 시간 뒤 저 곤죽이 된 이종족 사진이 온 인터넷에 쫙 깔리게 될 것이라는 것은 정팔도 알고, 저 철딱서니 없는 하루살이들도 알며, 민준도 알았다.
“인질은 일단 숨은 붙어 있다.”
정팔은 현장을 쓱 둘러보더니 상황을 바로 이해한 듯했다. 인질로 생각했던 노파가 이종족 범죄자였으며, 인질범인줄 알았던 청년이 사실은 진짜 인질이었음을.
그는 씁쓸하게 말했다.
“다행입니다. 이번에도 범인이 너무 어린 것 같아서 찝찝했는데요. 진짜 강도가 아니었고 죽지도 않았네요.”
“나이 적고 많고가 무슨 상관이야? 죄 지었으면 벌받는 거지.”
“그래도, 이마에 구멍 뚫려서 실려 나오는 아들뻘 애랑 눈 마주칠 일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꿈자리 사나워질 테니 말입니다.”
“······.”
침묵에서 힐난의 의미를 건진 듯, 변명처럼 말한다.
“요즘 젊은 애들이 죽는 걸 너무 많이 봐서 그래요.”
“내가 몇 번을 이야기했지만 그런 말랑말랑한 감성으로 이런 일 하기 힘들다?”
정팔은 대꾸 없이 오크 특유의 콧소리를 내면서 웃었다.
민준도 피식 웃었다.
그대로 등을 돌리다 말고 생각난 듯 말한다.
“아, 참. 이마는 아니지만 몸 여기 저기에 구멍이 좀 뚫려 있기는 해.”
“?”
“조만간 한잔하자.”
“네, 들어가세요.”
경찰들을 뒤로 한 채 민준은 움직인다.
몇 발자국 걷자 마자.
띵!
폴더 폰에서 문자 착신음이 울렸다.
-‘유한회사 젠킨슨 파더앤선즈 컴퍼니_국가행정서비스 민영화사업부(대한민국 정부 이민국)’님이 고객님 계좌에 223,540,000원 입금 완료.
언제나처럼 입금은 빨랐다. 민준은 이것이 그가 누리는 특혜 중 하나라는 걸 알고 있다.
대다수 계약 요원의 경우 건수를 올린 보상은 현장 실사 및 내부 품의 절차를 거쳐 지급된다. 하지만 방금 이민국에서는 민준이 ‘완료’라는 짧은 내용의 문자 메시지 한 통을 보내자 마자 바로 성과금을 통쾌하게 꽂아 주었다. 액수 역시 다른 요원에 비해 후하게 책정되었음은 물론이다.
이는 민준이 이민국 전속 요원 중에서도 항상 실적 1위를 놓치지 않는 에이스 중의 에이스라는 사실에 근거한 대접이었다. 그가 제일 우수한 요원이라는 것은 주변 사람들 중 모르는 이가 없다.
“어디로 가십니까?”
택시를 잡아탄 뒤 목적지를 짧게 말한다.
차가 출발하자 창 밖을 내다보며 멍하게 다음 연락을 기다렸다. 한국정부 이민국과는 달리, 이쪽의 대응은 살짝 늦을 수밖에 없었다. 민준도 이해하는 바였고.
그렇게 잠시 시간이 흐르자.
띠링!
기대했던 알람이 울렸다. 이번에는 민준의 10년 묵은 2G폰이 아니라, 그의 머릿속에서.
차르르르!
그의 눈에만 보이는 외계의 문자가 허공에 수놓아진다.
○수형자 신상 정보
-죄수식별번호: 아시프-666
-파견기관: 범차원 지성체 재배치 위원회
-근무부서: 집단이민 조기안정화 Task
-근무지: 지구 (차원#22-189, 극오지 4급)
-고용형태: 노동교화형 판결에 의거한 형벌성 간접고용
※ 해당 수형자에게 제한적 기억소거가 적용 중입니다.
오늘 상담을 진행할 때 의사가 보고 있던 정보보다 훨씬 디테일한 내용이 펼쳐졌다.
“······.”
민준의 주변 사람들 대부분은 독립 요원이라는 그의 공식적 신분에 대해 잘 안다.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넘버 원. 배당 받은 임무는 완수율 99%를 자랑하는 전설적인 요원.
그런데, 그 주변인들 대부분이 모르는 사실도 하나 있다.
-위장신분(성명/종족): 예민준/인간
예민준은 외계인이다.
아주 먼 옛날 그는 죄를 하나 (이상) 저질렀는데, 에트렐라와는 달리 즉결처형당하지 않고 검거되어 노동교화형 판결을 받았다.
검거 전까지 그가 살던 곳에서 지성체의 본분은 자유로운 자아실현과 행복의 추구였고 대가성 노동은 천시받았다. 기피되는 사회필수적 노동은 일시적으로 기억이 소거된 범죄자가 맡았다. 즉, 고용은 구속이며 퇴사는 석방.
민준이 지구 같은 극오지로 파견된 결정 이면에는 이런 복잡한 사회적 배경이 있었다.
그를 간접고용한 위원회는 바로 변방으로 발령을 냈다. 민준은 혼란에 빠진 원시차원에 정체를 숨기고 잠입하여 미션을 수행했고, 일 하나 해결할 때 마다 달란트를 받았다.
○계좌 정보 (죄수식별번호: 아시프-666)
-‘위원회’님이 수형자 계좌에 200달란트를 입금하셨습니다.
위장 신분으로 일하는 몇 안되는 장점 중 하나는, 같은 일을 해도 양쪽에서 보수를 받는다는 점이다.
민준은 오늘 이종족 범죄자 하나 잡은 대가로 이민국으로부터는 2억원 상당의 지구 화폐를, 위원회로부터는 200달란트를 받았다.
그리고, 입금이 완료되자 마자.
-띠링!
공교롭게도 계좌 정보가 또 한 번 갱신되었다.
-자동이체알림: ‘조세 징수 사령부’님이 수형자 계좌에서 2,000달란트를 출금하셨습니다. (수형자 정기납세액 납부 건)
200달란트가 들어왔고.
동시에 2,000달란트가 나갔다.
그리고 현재 잔액은.
-현재 계좌 잔액은 21,523 달란트입니다.
-주의하십시오. 계좌 내 달란트가 마이너스(-)로 전환된 순간 법정이자가 부과되며 과도한 연체 시 즉결 처형될 수 있습니다.
-‘죄수식별번호: 아시프-666’님에게 책정된 퇴직금(즉시석방 보석금)은 5,124,990 달란트입니다.
여기서 퇴직금의 의미는 지구와 조금 다르다. 퇴직하면 받는 돈이 아니라, 퇴직하려면 내야 하는 돈이다.
지금 수중에 2만 달란트 밖에 없는 예민준이 형벌성 고용상태에서 탈피하여, 이 철창 없는 감옥 밖으로 뛰쳐나가기 위해 필요한 돈은 자그마치 5백만 달란트였다.
그가 죽인 에트렐라의 경우 구속을 면하기 위한 보석금은 몇 만 달란트 수준이었을 것이다.
지구 화폐를 훔쳐서 달란트로 바꾸고, 구속 전에 보석금을 내려고 발악한 이유는 일단 수형생활을 시작하게 되면 달란트를 얻는 난이도가 지옥처럼 변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에트렐라는 민준의 신세가 되지 않기 위해 발악한 것이었다.
-수형자가 합법적으로 달란트를 입수할 수 있는 경로 및 보상 범위는 다음과 같습니다.
A.지명수배자 검거/살해: 고시 현상금의 10%를 달란트로 지급.
B.기관이 의뢰한 특수 임무 수행: 보상은 건별 상이. 상세 내용 아래 참조.
1.차원 #31-490의 고질적인 식량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제시: 40,000 달란트
2.수배자 페치노그가 이끄는 차원해적단의 비밀기지 위치 파악 및 제보: 45,500달란트
3.260년 마다 창궐하는 전차원적 전염병 ‘세게르 파피노 바이러스’의 백신 및 치료법 개발: 47,700달란트
4.일부 종족 특이 개체에게 다른 종을 유혹하는 페로몬이 발현되는 원리 규명: 50,000달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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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포되어 수형생활이 시작되면 에트렐라처럼 도둑질도 할 수 없다. 영혼에 찍힌 죄수 인장 때문에 항상 감시를 받기 때문이다.
민준은 지금까지 주로 범죄자를 잡아서 달란트를 모았는데 이대로는 퇴사/석방이 요원하기만 했다.
그래서 이전엔 비현실적이라고 여겨 제쳐 두었던 돈벌이 방법에 눈길을 주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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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고스트(Ghost)의 발생 원인을 과학적으로 증명: 52만 달란트
46. 예언 특성자의 능력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하여 상용화 단계까지 턴키(Turn-key) 방식으로 솔루션 제공: 53만 달란트
47. 오래 전 멸종한 것으로 알려진 다음 종족의 완벽한 DNA 샘플을 확보하여 제공.
(1) 데모닉 고블린 (2) 금속 이끼 제7형 (3) 성간부유 슬라임 중 그 색이 황금색을 띄는 종류
: 1개종 당 58만 달란트
48. 자체 격리에 들어간 차원 #77-102 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직접 목격하여 보고: 61만 달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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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트를 쭉쭉 내린다.
옛날엔 거들떠보지도 않던 목록이지만, 민준은 더 이상 오래 버틸 수 없다고 생각했다. 지구는 그가 파견된 일곱 번째 차원이었다. 일곱 개의 세계를 순회하는 사이에도 수형생활은 끝을 맺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민준은 지쳤고, 지겨웠다.
쉬익!
의지를 전달하자 리스트가 빠른 속도로 아래로 내려간다.
미션 목록 중 가장 아랫단에 있는 항목에 그의 눈이 멎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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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2. 영혼의 구성물질을 완벽하게 해독: 380만 달란트
443. 차원계가 끊임없이 확장하고, 수없이 많은 세계가 생겨나는 창조의 원동력을 규명: 400만 달란트
444. ((대외비)) 죄수인식번호 ‘아시프-1’의 영혼 파편을 입수하여 제출: 700만 달란트
*** 리스트의 마지막 장입니다 ***
**** 더 나은 내일을 위해, 교정국은 희망찬 수형생활로 인도하는 길잡이가 되겠습니다. ****
그가 주목하는 마지막 444번째 항목.
단번에 그의 퇴직금을 충당하기에 충분한 보상이었다.
민준은 다짐을 새겼다. 일곱 번째로 파견된 세계, 이곳 지구에서는 반드시 퇴사에 성공하겠노라고.
“······이번에는 꼭 퇴사한다. 때려 치우고야 만다!”
저도 모르게 중얼거린 말을 택시 기사가 들은 모양이었다.
“회사 생활이 힘든가 보지요? 하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 무슨 일을 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바짝 붙어 계시는게 좋을 텐데요.”
무신경한 오지랖을 그냥 흘려들을 수도 있었지만.
민준은 각오를 다지듯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뇨, 조만간 꼭 할 겁니다. ······너무 오래 다녔거든요, 이 회사.”
수형생활을 처음 시작할 무렵만 해도 민준이 간과한 것이 있었다.
그는 이 강제적 고용상태가 800년 넘게 이어질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