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86
86. 불신지옥 (14) >
***
“밤이 왔습니다, 아버지.”
어둠이 내린 창가를 잠시 바라보던 요하임은 고개를 돌렸다. 탁자 위 올려 놓은 외계인의 목이 천천히 눈을 깜박인다.
“이제 이 도시에도 악몽을 퍼뜨릴 건가요?”
=······.=
잘린 머리는 고요한 시선으로 양아들을 응시했다.
“네, 알고 있습니다. 프랑크푸르트를 벗어나서부터였나요? 저희가 머무는 도시 주변에 이상한 사건이 생기더군요. 악몽을 꾸고 살인을 벌이는 사람들 말입니다.”
단어 하나를 다시 강조하며.
“그래요. 하필 ‘악몽’을 꿨다고 합니다. 이것도 아버지가 부활한 기적과 연관 있겠지요?”
그러더니 기도문처럼 읊조린다. ‘가장 행복한 꿈 속에 잠겨 있으니 그것을 악몽으로 흐릴지다. 그러하여 잠이 옅어지게 하리라.’
총대주교는 여전히 대꾸가 없다.
“아직 입을 열 생각이 없나 보군요.”
그러나 부인하지도 않았다.
“부디 바랍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오늘도 이 도시에 당신의 기적을 퍼뜨려 주십시오.”
=칼리에테르를 이곳으로 불러 들이려는 거냐?=
요하임은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
“네. 여긴 그녀의 레어 앞마당이죠. 지금 자리를 비웠다고 해도 그녀의 아이가 있는 곳 근처에서 그런 일이 발생하면 하던 일 모두 내려 놓고 돌아올 수밖에 없을 겁니다.”
=용의 분노를 살 수 있다.=
“드래곤의 사고방식을 아직 모르십니까? 그녀가 이렇게 열정적으로 사건을 캐고 다니는 건 무고한 희생자가 발생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용도 아닌 종족이 겨우 몇 백명 죽은 거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리에테르가 깊은 관심을 보인 이유가 있다.
“그녀는 단순히 근원을 알 수 없는 힘이 영지 내에 나타났다는 사실에 기겁한 겁니다. 하지만 그것의 정체가 밝혀진다면? 불확실성이 제거된 힘은 그 순간부터 유용한 도구가 되지요. 칼리에테르는 분명 ‘우리’에게 관심을 보일 겁니다.”
요하임이 노리는 것은 교단과 맺은 스폰서쉽에 따라 자신을 보호해 달라는 단순한 요청이 아니었다. 이번 기회에 드래곤과의 계약을 더 강력한 형태로 개정하는 것이다.
사제는 양부를 응시한다.
“칼리에테르가 우리를 보호해 줄 겁니다. 그러니, 이단심판관들은 당신을 못 빼앗아갑니다.”
***
민준은 창 밖을 보았다. 브레먼하펀의 어수선한 하루가 드디어 저물었다. 밤하늘에는 붉은 기운이 완전히 사라지고 검푸른 암막이 가득했다.
“통행 인구도 적당하게 줄었군. 슬슬 출발할까?”
하필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클레어였다. 그녀의 상사가 지구 반대편까지 메시지 마법을 전송하는 대신 비서를 시킨 것이다. 내용을 확인한 민준은 혀를 찼다.
– 위원회가 결국 이단재판관들의 지구 도약을 승인했네. 약 세 시간 전의 일이야. 칼리에테르가 부재중이라 정보를 입수하는 데에 시간이 걸렸어. 아마 지금쯤 프랑크푸르트 터미널에 도착했을 걸세.
이쪽 세계로 건너온 그들의 첫 행보는 지구교구 방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민준이 취조했던 주교는 그들에게 정보를 다 넘겨줄 것인가?
‘넘길 거다. 반대파 목소리가 두려우면 은밀히 흘리기라도 하겠지. 그 자의 목적은 ‘머리’를 어서 줘버리고 갈등을 일단 봉합한 뒤에 본단과 재협상에 나서는 거니까.’
그들이 이곳에 들이닥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리다.
‘서둘러야겠군.’
***
그 시각.
의견을 모은 수형자들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민준의 호텔을 감시하고 있었다.
“어? 뭔가 보인다!”
두 눈에 흰 불꽃을 띄우고 감시하던 수형자가 이변을 발견하고 말했다. 그는 현실의 호텔방 좌표와 겹친 영계의 변화를 주시하는 중이다.
“텔레포트 스펠이야. 드디어 움직이는군.”
모두들 긴장 속에서 민준의 행보를 살핀다. 그가 주문을 펼치는 것이 보였다.
그때였다.
파앗!
“뭐야?!”
다른 차원층 풍경 속에 격렬한 폭풍이 몰아 닥쳤다. 완만하게 부풀던 형광 불꽃이 갑자기 폭발한다. 민준이 의도한 것이었다. 정상적으로 텔레포트를 완성하는 대신 마력을 거칠게 긁는다. 돌맹이 위에 쇠날을 내려치는 것처럼
당연히 스파크가 튄다. 영계를 보는 마법사 입장에서는 코 앞에 내려친 번개를 맨 눈으로 목격한 현상이 일어났다. 폭력적인 색채가 방 안을 덮는다. 그 섬광은 관찰자의 영안(靈眼)을 상처 입히기에 충분했다.
비명.
“으아악! 내 눈!”
온갖 색채의 잔상이 휩쓸고 지나간 뒤 수형자는 호텔 방이 빈 걸 발견했다.
“텔레포트다!”
“추적해!”
모두 아시프-1,319,552를 바라본다. 고룡만 아니라면 어디로 텔레포트하든 뒤쫓을 수 있다고 장담한 자였다. 영계를 들여다봄으로써 말이다.
하지만.
“······젠장! 깨끗해, 흔적이 없어!”
당연히 욕설과 비아냥이 쏟아졌다.
수형자는 당황하여 중얼거린다.
“이럴 리가 없는데··· 우리가 모르는 독특한 능력이 있는 건가?”
비결은 그저 오랜 세월 쌓인 노하우와 집중력임을 그로서는 짐작할 수 없었다.
“찾아!”
수형자들은 바로 흩어져서 도시 곳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 중 바닷물 아래까지 잠수하여 찾아 헤매는 자는 없었다. 덕분에 캐시가 들키지 않고 유유히 해저로 헤엄쳐서 사라진 뒤에야 추적자들은 흔적을 찾아냈다. 캐시 말고 다른 두 사람의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흔적이 두 갈래로 나뉘었어. 서로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은닉 마법을 쓴 채 움직이는 자취가 두 개.
“왜 텔레포트를 또 안 쓰고?”
굳이 흔적을 남긴 이유는 금방 추측할 수 있었다.
“이 건방진 새끼···!”
추적자 중 가장 인식번호가 짧은 죄수는 이를 간다.
잡아볼 테면 잡아보라는 뜻이다. 그 와중에 굳이 둘이 쪼개진 이유는 추적자 전력을 둘로 나누기 위해서.
달리 생각하면 긍정적 징표이기도 했다. 아무리 아시프-666이라도 이만큼 많은 이들을 한꺼번에 처리하기는 부담스럽다는 의미니까.
“그렇다곤 해도 얕은 수로군.”
빠르게 말을 쏟아낸다.
“놈이 이렇게 나오는 이상 계획 변경이다.”
아시프-666이 요하임을 찾아가길 기다리는 대신 일단 그를 치고 나서 정보를 실토하게 만든다.
만약을 위해 인질 확보까지 동시에 진행하자고 말하며 그는 수형자를 두 그룹으로 쪼개기로 했다. 어느 쪽이 진짜인지 알 수 없으니 일단 동등한 인원수로.
혹시 둘 다 미끼라도 상관없다. 인질로 삼으면 되니까.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였다.
‘성격을 생각하면 둘 다 미끼로 뿌려 놓고 혼자 튀진 않을 거야. 동료 둘 중 하나는 텔레포트로 숨겨 놓고 나머지 하나는 미끼로 쓰는 거군. 오래 같이 일한 비서 말고 이번에 나타난 뉴 페이스가 미끼겠지. 도망치면서 시간을 벌 정도의 능력자라는 뜻.’
“자, 흩어져! 미끼를 잡은 쪽은 제압한 다음 바로 다른 그룹으로 합류해.”
그의 생각에, 아시프-666의 계획은 신통치 않아 보였다.
수형자 중 미끼를 추격한 쪽이 일을 마무리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기껏 해 봐야 5분?
그들은 타겟을 제압한 뒤 바로 아시프-666을 쫓는 쪽으로 복귀하면 되니 전력 분산의 의미가 사실상 없다.
‘우릴 너무 과소평가했군.’
***
흔적은 하나는 동쪽, 다른 하나는 서쪽으로 이어져 있었다.
서쪽 흔적을 추격하던 수형자들은 곧 투명화 주문을 뒤집어쓴 채 하늘을 날아가는 형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밤하늘에 뭔가 지나가는 걸 눈치채지도 못했겠지만 그들은 수형자다. 자세한 용모는 안 보이지만 공기를 찢으며 비행하는 뭔가 있다는 건 확신할 수 있다.
“쳇, 이쪽이 미끼겠군.”
바람결과 영계의 잔상이 알려준다. 비행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지고 있었다. 이동하는 궤적 역시 직선을 그리지 않고 조금씩 비틀거린다.
“아시프-666이 벌써 지칠 리가 없지. 예상외로 시원찮은 능력자다. 공격해! 안 죽게 조심하고!”
수형자들은 일제히 주문을 쏟아냈다. 대부분 타겟을 보호한 투명화 마법과 결계를 깨뜨리기 위한 것이었다.
아시프-666이 조치를 취한 것인지 좀처럼 쉽게 깨지지 않던 장막은 결국 쇄도하는 공격 속에 산산조각이 났다. 단단한 것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은닉이 무너진다.
그리고 뒤쫓던 대상의 모습이 밤공기 속에 나타난 찰나.
“······코끼리?”
그들은 예상하지 못한 것을 보았다.
거대한 코끼리가 하늘을 날고 있었다. 아니, 날고 있다기 보다는 천천히 추락하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른다.
“아니, 코끼리가 아니야. 저건···!”
누군가 말을 이으려는 순간.
쿵!
쿠르르르!
도시를 벗어나 숲 위를 날던 타겟은 결국 땅으로 고꾸라졌다. 불도저처럼 대지를 밀어내고 나무를 뿌리 채 뽑으며 뒹군다.
=으아악! 아야야야야야!=
뒤따라온 수형자들이 차례로 땅 위에 내려섰다. 그리고는 육중한 몸집을 뒤틀며 흙투성이가 되어 몸을 일으키는 존재를 보았다.
그리고 누군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설마.”
망막에 담은 ‘저것’을 감히 그 단어로 지칭하는 게 옳은지 확신 못한 목소리로.
“······용?!”
길게 뻗은 목과 독특한 비늘, 뿔, 날개와 꼬리 등 용의 특징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적자들이 처음에 하마나 코끼리를 떠올린 이유는 단순했다.
“세상에 저렇게 살찐 용이 어디 있어!”
뒤에서 바라본 펑퍼짐하고도 거대한 엉덩이는 도저히 용으로 여길 수 없는 형태였기에.
“하지만, 진짜 용이다!”
폴리모프의 흔적은 없었다. 긴장 속에 시선이 쏟아진다. 수형자들 머리는 혼란스러웠다. 아시프-666이 미끼로 도주시킨 동료 뒤를 쫓는데 왜 용이 나오는가?
쿠르르!
아마도 전차원계 최고의 체지방률을 자랑할 그 용이 몸을 일으킨 순간. 수형자들은 다른 이유로 몸을 굳혔다.
‘뭐야, 쟤 누구야?!’
사람들은 종종 미지 앞에서 공포를 느낀다지만 지금 수형자들이 느끼는 것은 그 이상이었다.
서로 재빠르게 텔레파시를 주고받는다. 저거 뭐야, 누구야? 아는 사람 있어? 난 모르겠는데!
지구에 파견된 수형자라면 이 별에 거주하는 모든 드래곤의 인적사항을 외우는 건 기본이다. 그런데 눈 앞의 상대는 초면이었다. 그들이 아는 한 지구에 저런 용은 없다.
그렇다면 수형자들이 모르는 용이란 어떤 용인가?
아직 용족회의에 나간 적 없는 드래곤이다. 종족 차원에서 필사적으로 보호하여 사진조차 공개하지 않는, 그들 기준으로 연약하기 짝이 없거나 뭔가 흠이 있는 드래곤들.
부모의 레어 밖으로 나간 적이 없기에 태어났다는 소식만 전해질 뿐 실제로 어떻게 생겼는지 알 길이 없는 드래곤.
그런 드래곤을 사람들은 헤츨링이라고 부른다.
‘헤츨링? 그럼 부모는···.’
힘들게 머리를 굴릴 필요도 없었다. 이곳이 어떤 드래곤의 집 앞마당인지를 생각하면.
‘칼리에테르의 헤츨링이구나!’
눈앞의 용은 그녀와 같은 해룡속(屬)의 특성이 보이지 않았지만 남편을 더 많이 닮았다고 이해하면 이상할 것도 없다. 더군다나 저 용의 외모에는 해룡이냐 화룡이냐 구분하는 것 보다 더 큰 문제점이 있었다.
지방으로 뒤룩뒤룩 덮인 용이라니? 세상에 저런 용은 없다. 정상이 아니다. 그럼에도 존재한다면···.
수형자들 머릿속에서 이런 결론이 도출된다.
‘칼리에테르가 기형아를 낳았구나!’
전염병에 완전 면역이며 어떤 종족보다 강인한 육신을 지닌 드래곤이지만 약점은 있다.
다름아니라, 극히 낮은 확률로 돌연변이가 탄생하는 것. 자존심 덩어리인 드래곤은 그렇게 태어난 자식들이 적정한 나이를 넘겨도 레어 안에서만 감금하다시피 하며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헤츨링 취급을 한다.
물론 수형자들 지식이 좀 더 깊었다면 저건 기형이 아니라 순도 100%의 지방이며, 헤츨링과 동급의 보호가 필요할 정도의 장애가 없다는 걸 깨달았겠지만 아쉽게도 그들 중에는 전문가가 없었다.
“허억!”
공기 속에 공포가 퍼져 나간다. 누군가는 두려움 속에서 이빨 부딪치는 소리까지 냈다. 몸을 일으킨 용이 팔등을 내려다보며 정신파로 이렇게 중얼거렸기 때문이다.
=아이 씨··· 다쳤네?=
그가 바라보는 곳에 비늘 하나가 뜯어져서 덜렁거리고 있었다. 그곳을 물끄러미 응시하며 용은 이렇게 중얼거렸다.
=······엄마 부를까?=
“자, 잠깐만요!”
수형자들은 하늘이 노래지는 것을 느꼈다.
정당한 이유 없이 용을 해한 자에게 복수의 철퇴를 내리는 건 드래고닉 코드에 명시된 용의 의무다. 더군다나 상대가 헤츨링이라면 그들은 상당히 신경질적이고 편집적으로 변하며 그런 심리는 매우 폭력적으로 표출된다.
자식의 부상에 분노한 칼리에테르가 ‘재물손괴죄’ 따위를 신경쓸 것인가? 더군다나 선빵을 이쪽에서 먼저 날린 상황에?
정당방위라고 주장하면 위원회에서도 결국 적당한 손해보상금을 받고는 수형자들을 포기할 것이다. 드래곤과 마찰을 일으키기 싫을 테니까.
“잠깐만, 우··· 우리 이야기 좀 먼저 합시다!”
그들은 이 상황이 아시프-666이 설계한 함정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무서운 작자다. 죽을 각오를 하지 않고서야 헤츨링으로 함정을 꾸밀 생각을! 조금만 실수하면 자기가 고룡의 분노를 뒤집어쓸 텐데! 아니, 애초에 레어 밖으로 어떻게 꼬셔낸 거지?’
안절부절 못하는 수형자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드래곤은 이렇게 답했다.
=무슨 이야기?=
하은성은 요원이 예견한 대로 상황이 흘러가자 내심 놀라고 있었다. 이 비늘을 뜯어 놓은 것은 물론 민준이었다. 얼마나 아팠는지 하은성은 용이 하품할 때 외에도 눈물을 흘린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나, 의외로 연기에 소질이 있나 본데? 감쪽같이 속아넘어가네?’
한편 수형자들은 하은성이 대화에 응할 낌새를 보이자 눈에 띄게 안도했다. 또한 상대가 용외종족을 대하는 태도가 드래곤 답지 않고 어수룩하기 짝이 없다는 부분에 주목하고 있었다.
‘그래. 기형은 종종 정신지체를 동반하지. 이 헤츨링, 저능아로구나. 잘하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겠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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