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er on the Frontier RAW novel - Chapter 98
99. 부부싸움은 칼로 목 베기 (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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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시아가 호명했을 때 바로 대답 못 한 것은 다른 생각에 몰두 중이기 때문이었다.
“카인?”
두 번째로 불리고 나서 민준은 고개를 돌렸다. 아내와 함께 행성 XB-610에 파견 중인 그는 간만에 모함에 들러 회의에 참석 중이다. 주요 안건은 모두 다뤘고 남은 것은 뻔한 마무리 발언이기에 잠시 딴청 피우다 걸리고 말았다. 민준은 결혼 80주년 선물에 대한 진지한 상념을 잠시 멈췄다.
“어?”
“잠깐 이야기 좀 해. 카인만 남고 나머지는 해산.”
다른 수형자들이 나가고 둘만 남자 텔레시아는 바로 본론을 꺼냈다. 허공에 홀로그램을 띄우며.
“개인 임무 하나 맡아 줘야겠어.”
“암살?”
“응, 늘 그렇듯.”
민준은 최고의 암살자인 동시에 불사신으로 불리는 능력자다. 한 번은 심장이 뚫린 상태에서 회복한 적도 있다. 그런 초재생력은 생사가 오가는 임무에 탁월한 궁합을 보였고 텔레시아는 민준에게 크게 의존했다. 덕분에 그는 지금까지 누구보다 큰 성과를 올렸다.
수형자들의 리더는 타겟에 대해 설명했다. 민준은 그녀의 말을 듣는 동시에 빛이 엮어낸 문자를 읽는다. 그러다 한 대목에서 시선이 멈췄다.
“교주? 그 얼간이들이 이제는 대놓고 종교 흉내를 내나 보지?”
이번에 죽일 대상은 어떤 집단의 우두머리다.
민준은 투덜거렸다.
“독재자 추모회 놈들이 이렇게 클 줄이야. 초반에 뿌리를 뽑았어야 하는데.”
3백 년 전 사망했다고 알려진 아쉬탈의 옛 지배자를 신격화하고 우상화하는 조직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민준의 반응은 이랬다. ‘자기들 인생을 나락으로 빠뜨린 원흉을 숭배한다고? 너무들 쉽게 잊고 왜곡하는군. 제정신이 아니야.’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숭배의 대상이 생전 저지른 짓을 생각하면.
반군과의 전쟁에서 패하여 숙청을 눈앞에 둔 순간 독재자는 공화국의 에너지, 식량, 통신, 수송 등 기간 시설 9할 이상을 자폭시켰고 우주 벌레를 막아 내던 방어막까지 찢어발겼다.
문명 붕괴 직전까지 몰린 아쉬탈 주민들이 돌덩어리와 나무 몽둥이를 들고 짐승 골 깨부수는 처지를 면한 건 위원회의 개입 때문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이런 개입을 불쾌하게 여기는 이들이 생겼다. 독재자를 그리워하고 위원회는 적대시하는 자들.
“그새 사상이 비슷한 조직들을 흡수 통합해서 덩치를 불렸군.”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수준이지. 더군다나··· 여기를 좀 봐.”
화면을 넘기자 민준의 표정이 착잡해졌다.
“종교집단인 동시에 테러조직으로 변하고 있다는 거지? 정체성 전환이 너무 빠른데.”
“놈들 다음 목표는 외차원과 연결되는 터미널이야. 방법은 자살 폭탄 테러가 유력하고.”
“프로파간다는 여전히 그건가? 외계 자본의 침략을 거부한다고?”
위원회는 수형자들을 필두로 차원 내 치안을 유지하는 한편 터미널을 통해 각종 구호 물품 및 산업재를 공급하여 폐허를 재건 중이다.
하지만 그중 무엇도 ‘무료’가 아님을 민준은 안다.
위원회는 원조에 대응되는 아쉬탈의 채무를 칼같이 장부에 기록하며 때가 오면 냉혹한 정산을 시작할 것이다.
대부분 주민은 그것을 불가피한 일로 여겼지만 어떤 이들은 위험천만한 덫으로 판단했다. 이 세계 모든 인간들이 몇 세대에 걸쳐 노력해도 못 갚을 빚더미 위에 앉게 될 것이라고.
그들은 더 이상 위원회의 개입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며, 차원민 전체의 동의를 얻지 않고 멋대로 설치한 기간 시설을 파괴했다. 모든 것을 부당한 일로 치부하고 부채를 무(無)로 되돌리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시도에 대한 민준의 평가는 회의적이다.
‘어리석은 짓이야. 위원회가 그 정도 저항에 물러날 리 없다. 애초에 위원회가 반군 임시 정부와 맺은 계약서는 그 정권이 붕괴하고 나서도 효력을 유지하고 있어. 안 갚겠다고 버텨 봤자 오래 못 간다.’
옛 정부와의 연속성을 부정하며 채무 상환을 거절한 후손들의 케이스는 흔하지만, 그중 위원회의 고소와 추심을 이겨 낸 자들은 전무하다.
‘그리고 테러는 이곳 사람들만 괴롭힐 뿐이지.’
그저 동족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행위.
그 사상적 기반에는 종교적 신념이 있었다.
교인들은 겪어 보지 못한 3백 년 전 생활을 부러워했다. 수십억을 굶어 죽게 한 독재자였지만 충성을 바친 일부 특권층은 사치를 누렸고 그 시절 기억과 기록은 미화되어 전해졌다.
그런 이야기에 심취한 이들은 독재자의 시대를 그리워했다. 현실의 삶이 너무나 혹독했기 때문이다.
다들 배불리 먹고 행복을 누렸던 것으로 왜곡된 과거 속에서 그들을 이끌던 지도자는 신으로 승격되었다.
“더 심각한 건 그들 중 정말로 신성력을 각성한 케이스가 속속들이 보고된다는 거야.”
“정말인가?”
“그래, 아샤민이 잔류 사념을 대조해서 확인한 정보야.”
“오마라 학파 쪽에 알리면 입에 거품을 물고 달려들 소식이군.”
신성력은 신의 실존 여부와 관련 없다는 그들 주장에 힘을 실어 줄 것이다. 설마 아쉬탈의 옛 독재자가 진짜 신성을 얻어서 은총을 내리는 중은 아닐 테니.
“이대로 덩치를 불리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될 거야. 구심점을 없애야 해.”
사상이 종교의 색을 입은 순간 논리와 이성은 빛을 잃는다. 그리고 한없이 약해진 저항을 뚫고 사람들 마음에 침투하며 전파 속도는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이 빨라진다. 그들의 지친 심리와 의존하고픈 마음, 희망하려는 욕망을 따스하게 적셔 주므로.
텔레시아는 그것을 경계하고 있었다.
“알았어. 바로 계획을 짜서 보고하지.”
이야기는 이걸로 끝이냐는 질문을 담아 바라보자, 텔레시아가 뜬금없이 화제를 돌렸다.
“넌 어떻게 생각하지? 그들 주장을.”
답을 내기 위해 오래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나도 위원회가 하는 짓에 100% 찬성하는 입장은 아니야. 하지만 부채를 탕감하고 싶다면 위원회와 테이블에 앉아 협의를 해야지. 테러를 저지를 게 아니라.”
무엇보다 더 이상 투자를 받기 싫다면 자력으로 전차원민을 먹여 살릴 능력을 입증해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놈들 주장은 결국 부채를 줄이기 위해 인구를 감소시키겠다는 거나 마찬가지잖아? 그것도 폭력적이고 급격한 방법으로.”
전쟁과 기아, 재해로 급감했던 아쉬탈 인구는 위원회의 지원이 시작된 후 급격히 늘어났다.
지금 인구 수준을 유지하거나 늘리기 위해서는 계속적인 원조가 필수. 갑자기 손을 떼고 나가면 우주 전체가 쇼크에 빠질 것이고 굶어 죽는 사람이 속출할 터다.
또한 그 과정에서 제일 먼저 목숨을 잃는 이들은 가장 취약한 계층일 것이다. 어떤 세계든, 어떤 시기든 항상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재자의 추종자들은 주장한다. 그런 재앙을 감수하고서라도 독립해야 한다고.
“그렇지?”
텔레시아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지나가는 이야기처럼 덧붙였다.
“나도 이번에 알았는데, 그들이 재미있는 주장을 하더라고.”
“무슨?”
“독재자가 살아있던 시절 위원회는 이 세계에 몇 번이나 교류를 제안했다고 해. 그들이 이런 변방 차원에 컨택하는 기준은 알지?”
“차원 내 주민들 의견을 적정 규모로 취합할 수 있는 주체가 존재할 것.”
“아쉬탈의 독재 정부는 한마디의 명령으로 모든 행성과 콜로니를 움직일 수 있었지. 대표성 측면에서는 이미 위원회 기준에 합격했던 거야.”
하지만 그 시절 아쉬탈은 교류를 일관되게 거부했다.
“그러니 위원회는 당연히 독재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겠지?”
민준은 그녀의 말이 함의하는 바를 알아차렸다.
“음모론인가?”
“교인들은 위원회가 비밀리에 반군을 지원했다고 생각해. 독재자와 싸우고 승리하여 아쉬탈에 친위원회 정부가 새로 수립되도록 꾸몄다는 거지.”
“하지만 지금 꼬라지를 보면 실패나 마찬가지잖아? 독재자를 몰아냈지만 차원 전체가 엉망이 되었으니.”
“위원회도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게 아닐까? 자기가 못 가질 것은 누구도 못 가진다는 식으로, 독재자가 지독한 악의를 차원 곳곳에 숨겨 놓은 걸. 그래서 공화국을 지금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을 거라고는··· 그 정도로 미친 인간일 거라고는 생각 못 한 거지. 매번 느끼지만 정말 끔찍한 인간이야.”
민준은 잠시 침묵하며 방금 들은 말을 곱씹었다.
그럴수록 위원회가 저지를 만한 짓이라는 생각이 강해진다.
하지만 증거 같은 것은 없다.
그리고.
‘설사 증거가 있다 해도 나랑 무슨 상관이지?’
텔레시아가 말했다.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 재미있는 이야기인 것 같아서 덧붙였는데 괜한 짓이었네.”
“그럼 나는 이만···.”
“미안, 한 가지만 더.”
텔레시아의 용무는 아직 끝난 것 같지 않았다. 그녀는 홀로그램을 넘긴다. 화면이 바뀌었다.
-복구 진척도: 38%
위원회와 수형자들이 아쉬탈에서 벌이는 재건 사업 진척도를 표시하고 있었다.
“이번에 위원회 본부를 다녀오면서 들은 게 있어.”
텔레시아는 다른 수형자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고급 정보도 입수하곤 했다. 이번에 민준에게 흘리는 이야기도 그런 내용이었다.
“위원회는 이곳에 파견된 수형자 부대를 현재 대비 1할 규모로 축소 개편하려고 계획 중이야. 목표 시점은 진척도가 50%를 기록하는 때로 정했고.”
민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순간 공기 속에 팽팽한 긴장이 흐른다. 분위기가 일순 변한 것을 안 그녀는 꾸물거리지 않고 본론을 짚었다.
“이젠 이런 대규모 수형자 부대가 없어도 치안이 유지될 수 있다고 판단한 거지. 당장 올해부터 점진적으로 수를 줄여 나갈 거야.”
민준의 안색이 급속도로 굳는다. 텔레시아는 짐작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알아. 나만큼이나 아쉬탈에 계속 머물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너와 델이라는 걸.”
민준과 델이 아쉬탈에 남지 않을 경우, 혹은 둘 중 하나만 재배치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당연히, 둘이 계속 붙어 있을 확률보다 찢어질 확률이 훨씬 높다.
그러고 나서 언제 다시 두 사람이 만날 수 있게 될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일.
민준과 델이 언젠가는 올 것이라 예상했지만, 제발 오지 않기를 기원하던 그날이 드디어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텔레시아는 담담한 어조로 말한다.
“아쉬탈의 사회 기반이 어느 정도 복구된 뒤부터 위원회는 오히려 원조 규모를 늘리고 있어. 지금 수준까지 올라오는 데 300년 가까운 시간이 걸리지만 앞으로는 가속도가 붙을 거야. 아마 50%를 달성할 때까지 몇 년 걸리지 않을 수도 있어. 나와 대화한 위원회 간부는 3년을 예상했어.”
대략 3년 내 아쉬탈의 수형자 열 중 아홉은 재배치되어 떠날 것이라는 뜻.
“모두가 아쉬워하겠지. 이런 차원은 드물잖아? 워낙 굵직한 이슈가 많다 보니 걸핏하면 돌발 임무가 쏟아져서 생존세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
모든 수형자가 같은 조직에 속해 있고, 임무가 끝나면 개인과 집단 양쪽 측면에서 평가 및 보상을 받기에 다른 세계처럼 수형자끼리 견제하고 훼방 놓을 필요가 없다.
또한 능력 있는 자라면 생존세 충당을 넘어 괜찮은 액수를 저축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니 누구나 이곳에 남고 싶어 한다.
텔레시아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위원회에 물어봤어. 10%의 선정 기준을. 물론 답해 주지 않았지. 난 지금까지 내가 이룬 업적을 들면서 이 정도면 유임자로 선별되지 않겠냐고 의중을 떠봤지만···.”
“답이 어땠지?”
“한 차원에서 훌륭한 성과를 낸 수형자일수록, 그리고 그곳에 지나치게 오랜 시간 머문 자일수록 다른 차원에 재배치될 확률이 높아진다는 이야기만 하더군. 원론적이지?”
그건 사실이긴 했다. 민준이 그동안 보고 겪어 온 일이었으니까.
“난 그래서 질문을 바꿨어. 내가 그 10% 안에 들기 위해 어떻게 해야겠냐고. 이기적이라고 말해도 좋아. 하지만 난 정말 이곳에 남고 싶었어.”
물론 민준은 그녀를 비난할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그 질문에는 위원회가 답을 해 주더군.”
그녀는 쓸쓸하게 웃으며 화면을 띄운다. 민준이 읽었다.
“···파견지 유임 특별 신청 제도?”
“원래 존재하지 않는 제도야. 이번에만 특별히 한정된 기간 동안 허락한다고 해.”
민준은 빠른 속도로 그 글을 읽었다.
그리고 이를 악물었다.
“결국, 달란트를 내면 이곳에 남을 수 있게 보장해 주겠다는 거잖아?”
개새끼들.
민준은 타오르는 눈으로 문장을 마저 읽었다. 텔레시아가 옆에서 부연한다.
“몇 가지 조건이 있어. 유임을 신청했다가 나중에 자의로 취소해도 이미 지불한 달란트는 반환하지 않아. 도중에 해당 수형자가 ‘특별 사면’ 등으로 퇴직해도 환불은 없어. 뭐, 애초에 그런 식으로 석방되는 수형자를 본 적이 없으니 의미 없는 일이고···. 본래 이곳에 유임되기로 선별되었던 수형자가 그 사실을 모르고 신청해도 위원회는 알려 주지 않고 달란트를 돌려 주지도 않아.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부분은, 필요한 달란트만 지불한다면 다른 누구와 경쟁할 필요가 없어. 돈을 낸다는 전제하에 제한 인원이 없다는 뜻이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그제서야 하필 민준에게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를 밝힌다.
“신청자가 다른 수형자와 함께 유임을 희망할 경우 이번 경우에 한해 특별증여세는 면제야.”
한 명을 이곳에 유임시키는 데에 드는 달란트는 15만이었다.
평범한 수형자 한 명의 퇴직금에 해당하는 금액.
그리고 두 명이 함께 남기 위해서는 증여세 적용 없이 30만 달란트가 소모된다는 이야기다.
민준은 위원회가 하필 이 타이밍에 텔레시아에게 이 제안을 한 이유도 눈치챘다.
“너, 혹시 잔액이?”
“간신히 15만 달란트는 낼 정도야. 그래 봤자 내 퇴직금 10분의 1 수준이지만.”
텔레시아는 수형자들 사이에서도 좀처럼 공유하지 않는 정보를 털어놓는다.
그러자 민준은 자연스레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화면을 바라보았다.
-현재 계좌 잔액은 311,049달란트입니다.
-주의하십시오. 계좌 내 달란트가 마이너스(-)로 전환된 순간 법정이자가 부과되며 과도한 연체 시 즉결 처형될 수 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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