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awaited RAW novel - Chapter 139
139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전투와 상관없이 부두에서는 하역 작업이 계속되고 있었다.
허리에 권총을 차고 한쪽 손에 AK47 자동소총까지 든 혁권을 보고 자말이 놀라서 다가왔다.
“선실에서 쉬시지 않고 왜 나오셨습니까?”
말은 혁권한테 했지만 뒤에 있는 하킴을 질책 어린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걸 모를 리 없는 혁권은 하킴을 감싸 주면서 말했다.
“다들 고생하는데 나만 편하게 있을 수는 없잖아. 내가 고집을 피운 거니까 뭐라고 하지 마.”
“몸도 안 좋으신데…….”
“살짝 총알이 스친 걸 가지고 중환자 취급을 할 거야.”
말린다고 다시 선실로 돌아갈 혁권이 아니었기에 자말은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입을 닫았다.
갑판 난간에 서서 한창 바쁘게 작업 중인 선착장을 살피던 혁권은 한쪽에 민병대 병사들이 하역해 놓은 화물을 트럭에 옮겨 실고 있는 걸 보곤 물었다.
“저건 뭐 하는 거야?”
“반군의 습격에 무기고가 박살 나는 바람에 여기서 필요한 탄약과 무기를 가져가고 있는 겁니다.”
처음 듣는 이야기에 그는 미간을 좁혔다.
“무기고가 당했다고?”
“예. 보스를 구하러 갈 때 도시 북쪽에서 커다란 폭발이 여러 차례 있었는데, 아마 그때 박살이 난 것 같습니다.”
“으음.”
누군지 몰라도 반군 지휘관이 민병대의 약점을 제대로 파고든 것에 그는 내심 혀를 내둘렀다.
노림수가 제대로 들어맞았다면 민병대는 속절없이 무너져 버렸을 것이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생각에 얼굴을 찡그렸다.
“젠장. 일이 더럽게 꼬였군.”
“왜 그러십니까?”
자말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그가 작게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무기고를 잃었다면 민병대의 숨통을 끊어 버릴 수 있는 약점이 바로 우리라는 뜻이잖아.”
“……!”
그때서야 상황을 알아차린 자말의 얼굴이 급격하게 굳어졌다.
“이제 어떻게 하지요?”
“지금으로서는 최대한 빨리 하역을 끝내고 여길 떠나는 방법밖에 없어.”
“작업을 더 서두르라고 하겠습니다.”
“그래.”
작업을 독려하기 위해 자말이 선원들한테로 가자 혁권은 제발 걱정이 기우에 그치기를 바라면서 미스라타 시가지를 바라봤다.
혁권의 바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깨져 버리고 말았다.
타타탕!
갑자기 들려온 요란한 총성에 그는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날카로운 기관소총 발사음이 귀에 똑똑히 들릴 정도로 가까이서 울렸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부두 창고 건물 너머로 둔탁한 폭음과 함께 시뻘건 불길이 치솟는 것이 보였다.
“보스, 교전이 벌어진 모양입니다!”
다급히 달려오며 자말이 소리치자 혁권은 총성이 들리는 곳을 바라보면서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나도 들었어.”
“적들이 방어선을 뚫고 들어와서 쌓여 있는 화물 상자에 총격을 가한다면 선착장이 다 날아가 버릴 겁니다.”
박격 포탄을 비롯한 수십 톤의 인화물질이 한곳에 쌓여 있는 상태라 만약 한꺼번에 유폭을 일으킨다면 엄청난 재앙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막아야 돼. 하역 작업은 얼마나 남았어?”
“아직 한두 시간은 더 필요합니다.”
“제길!”
당장 언제 적이 들이닥칠지 모르는데 아직 한참 더 시간이 필요하다니 곤혹스럽기 그지없었다.
“안 되겠어. 적들을 막고 있을 테니까 최대한 빨리 작업을 끝내!”
미처 말릴 새도 없이 혁권은 하킴과 함께 갑판 한쪽에 설치되어 있는 현문 사다리로 달려가며 소리쳤다.
“보, 보스!”
자말이 뒤늦게 손을 뻗었으나 이미 두 사람은 아래로 내려가 버린 뒤였다.
“이런…….”
몸도 성치 않은 상태에서 뭘 또 하려고 나선단 말인가.
그토록 조심하라고 귀가 닳도록 말해도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혁권의 태도에 자말은 허탈한 듯 혀를 차고는 어쩔 수 없이 남은 사람들을 향해 돌아섰다.
“뭐 하고 섰어, 이틈에 빨리 서두르지 않고!”
근처에서 들린 총격전 소리에 엉거주춤 서 있던 선원들이 그제야 허둥지둥 자기가 하고 있던 일로 돌아갔다.
그사이 경계를 서고 있던 부하 절반을 이끌고 창고 쪽으로 이동하는 혁권의 뒷모습을 자말이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제발 아무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아군이 빨리 복귀할 수 있도록 선원들을 다그쳐 하역 작업을 더욱 서둘렀다.
어슴푸레 저녁노을이 지고 있는 가운데 커다란 창고 건물들이 늘어선 구역에서 반군과 민병대가 서로 총을 쏘며 치열하게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투투투투!
반군의 기관총이 경쾌한 소리를 내면서 불을 뿜어 대자 회색 건물 외벽이 깨져 나가며 여기저기 구멍이 움푹 파였다.
시뻘건 예광탄 줄기가 허공을 어지럽게 수놓았다.
씨웅. 피잉.
“큭!”
답답한 신음을 내지르면서 옆에 있던 부하가 뒤로 벌러덩 나자빠지자 선착장 경비 임무를 맡은 민병대 장교 나딤이 고개를 뒤로 확 돌렸다.
하지만 미처 달려가 생사를 확인하기도 전에 사지가 축 늘어져 미동도 없는 것을 보고는 그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이걸로 열 명째였다.
처음 적과 조우했을 때까지만 해도 충분히 격퇴해 낼 수 있을 거라 자신했다.
그러나 창고 건물 옥상에 설치한 기관총 진지가 상대의 RPG-7 공격을 받아 한순간에 무력화되는 것과 동시에 악몽이 시작됐다.
엄폐물을 이용해서 조금씩 거리를 좁혀 오며 거세게 몰아치는 반군의 공격에 민병대는 겨우 방어선을 지켜 내고 있었다.
그것도 이제 한계에 도달해 더 이상 버텨 내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총을 쏘고 있지만 잔뜩 위축되어 있는 병사들을 보며 후퇴를 해야 될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 반군 뒤편에서 수류탄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꽈앙! 꽝!
그리고 이어서 울린 콩 볶는 듯한 총성에 적들이 몸을 이리저리 비틀면서 쓰러졌다.
“뭐, 뭐지?”
고개를 들어 전방을 살피던 나딤의 눈에 반군 후방에서 일단의 무리가 불쑥 모습을 드러내며 적을 마구 사살하는 것이 보였다.
뒤에서 공격이 있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 못 하고 무방비 상태에 있던 적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아악!”
“으윽.”
피를 흩뿌리며 썩은 짚단처럼 쓰러지는 적들의 모습에 민병대원들은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잠시 주춤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뒤에서부터 커다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아군이다!”
“드디어 지원군이 왔어! 이제 살았다고!”
환희에 넘치는 고함소리가 파도처럼 넘실거리고, 시들어 가고 있던 민병대원들의 얼굴에 생명력을 불어 넣었다.
나딤도 주먹을 불끈 쥐었다.
민병대를 위기에서 구해 준 이들은 바로 전투가 벌어진 걸 보고 급히 달려온 혁권과 부하들이었다.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상황을 확인하곤 수세에 몰린 민병대에 합류하기보다 즉시 옆으로 돌아가 반군의 뒤를 친 거였다.
과감한 혁권의 행동은 제대로 들어맞아서 반군의 기세를 단번에 꺾어 버렸다.
민병대도 호응을 하면서 반격에 나서자 졸지에 앞뒤로 협공을 당하게 된 반군은 허둥지둥 물러섰다.
그렇게 일단 적을 격퇴하는 데 성공한 혁권은 부하들과 함께 민병대와 합류했다.
혁권을 알아본 나딤은 위기에서 구해 준 고마움을 담아 경례를 하면서 약간 더듬거리는 영어로 말했다.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피곤해 보이는 얼굴과 지저분해진 군복만 봐도 민병대가 얼마나 힘겹게 버티고 있었는지 굳이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한 혁권은 손에 든 AK47 자동소총을 한쪽 어깨에 메면서 이야기를 했다.
“피해가 큰 것 같은데, 남아 있는 병력이 얼마나 되오?”
그러자 나딤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마흔 명 정도가 있지만 그중 절반이 중상자라 전투에 나서기는 어렵습니다.”
“으음.”
주위를 둘러보니 나딤의 말대로 피를 흘리면서 쓰러져 있는 민병대 병사들이 군데군데 보였다.
그중에서도 몇몇은 지금 당장 응급실에 실려 가야 할 정도로 위급해 보이는지라 혁권은 이맛살을 찡그리며 말을 이었다.
“분명 적들이 이대로 물러나지는 않을 텐데, 대책은 있소?”
“사령부에서 지원 병력을 보내 준다고 했으니 그때까지만 버틴다면 방어선을 공고히 할 수 있을 겁니다.”
희망적인 이야기에 혁권의 표정이 살짝 펴졌다.
“그럼 지원 병력이 올 때까지 우리가 돕도록 하겠소. 일단 무기가 부족한 것 같으니까 급한 대로 선착장에 있는 걸 가져와서 씁시다.”
내심 그래 주길 기대하고 있던 나딤은 반색을 했다.
“감사합니다.”
고개를 옆으로 돌린 혁권은 부하들을 보며 서둘러 지시를 내렸다.
“중화기를 가져와서 길목에 배치하고 부상자들을 뒤로 빼. 시간이 없으니까 어서들 서둘러!”
“옛.”
대답과 함께 혁권의 부하들이 일사불란하게 행동하자 민병대 병사들도 기운을 내 지친 몸을 움직였다.
자신들이 살려면 탄창에 총알을 하나라도 더 채워 넣고 엄폐물을 단단히 쌓아 올려야 된다는 걸 알았기에 누구 하나 꾀를 부리는 사람이 없었다.
부산하게 움직이는 부하들을 뒤로하고 혁권은 적들이 도망친 방향을 향해 굳은 표정으로 얼굴을 돌렸다.
무하마드는 탁자에 펼쳐 놓은 지도를 내려다보며 인상을 썼다.
공항 점령이 계속 지체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민병대의 숨통을 끊어 놓기 위해 부두를 공격하러 보낸 병력이 큰 피해를 입고 퇴각했다는 보고가 방금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아직까지는 우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도시를 점령하기가 어려웠다.
당장 시간이 갈수록 민병대가 초반의 혼란을 수습하고 방어선을 점점 안정시키고 있었다.
반면에 자신들은 피해가 누적돼 부담스러울 지경이었다.
도시를 함락시키더라도 피해가 너무 크다면 오히려 득보다 실이 많았다.
“선착장에서 하역 중인 무기와 탄약을 계속 보급받고 있어서 초반 습격으로 민병대 무기고를 박살 낸 효과가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하필이면 이때 무기가 도착하다니.”
저항 의지를 일거에 꺾어 버릴 회심의 일격이 무위로 돌아간 상황이라 무하마드 입장에서는 정말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었다.
“이 상태로 전투가 계속된다면 저희 피해가 너무 커질 겁니다.”
우려 섞인 우스만의 이야기에 무하마드는 얼굴을 굳힌 채 잠시 고심을 하다가 짧게 혀를 차며 입을 열었다.
“할 수 없지. 가능하면 트리폴리 공략 때까지 아껴 두려고 했지만, 당장 상황이 이러니 가진 패를 다 꺼내 쓸 수밖에.”
짐작되는 것이 있는지 우스만이 눈을 크게 뜨며 무하마드를 봤다.
“계속 이렇게 발목을 붙잡혀 있을 수는 없어. 전차대를 투입해서 부두를 접수하고 적 지휘부가 있는 시내까지 단번에 밀고 들어가라고 해! 그리고 자심도 같이 딸려 보내. 멍청하기 짝이 없는 자식이지만 제 몫 하나 정도는 해내겠지.”
“알겠습니다.”
무하마드의 갈고리처럼 휘어진 손끝에서 구겨진 지도가 바스락거렸다.
“어디 이렇게 해도 버틸 수 있는지 두고 보자고.”
그로서는 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패를 빼 든 거였다.
민병대의 방어선이 불바다가 되어 타오르는 것을 상상하며 무하마드는 희미하게 느껴지는 피와 살육의 향기에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