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awaited RAW novel - Chapter 141
141
슬금슬금 앞으로 기어 나오고 있는 적 전차가 주포를 몇 발 쏘면 다 날아가 버릴 터였다.
뒤에서 들리는 발소리에 깜짝 놀란 아군이 총구를 돌리다 혁권인 걸 확인하곤 방아쇠를 당기려던 걸 멈췄다.
그는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채 전투를 독려하고 있던 나담을 보면서 말했다.
“전차를 막지 못하면 끝장이오!”
“알고 있습니다.”
소리를 지르면서 나담이 한쪽 팔을 들어 왼편 건물 위를 가리켰다.
고개를 돌려 나담이 가리키는 곳을 쳐다보자 RPG 발사기를 든 민병대 병사 한 명이 건물 모퉁이에 몸을 숨긴 채 전차를 겨냥하고 있었다.
장갑이 두꺼운 전차 정면밖에 각이 나오지 않는 것이 조금 걸렸지만 그래도 거리가 가까워 충분히 격파가 가능해 보였다.
그리고 흙먼지와 건물에 가려서 상대가 아직 RPG 사수를 발견하지 못했다.
긴장된 시간이 흐르고 RPG 사수가 적 전차를 향해 로켓탄을 발사했다.
푸슈욱!
앞으로 날아간 로켓탄은 이번에는 빗나가지 않고 정확하게 전차에 명중했다.
꽈아앙!
시뻘건 화염이 일면서 한순간 시커먼 연기가 전차를 뒤덮어 버렸다.
그걸 본 혁권은 주먹을 꽉 움켜쥐면서 자신도 모르게 외쳤다.
“좋았어!”
“와아아! 전차를 잡았다.”
주위에 있던 아군도 환호성을 내지르면서 기뻐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검게 피어올랐던 연기가 조금씩 걷힐 때쯤, 아군의 함성도 덩달아 잦아들었다.
“어?”
이상한 것을 보았다는 듯 누군가가 멍하니 내뱉은 목소리가 유독 크게 울렸다.
“설마…… 아니, 아닐 거야.”
“맙소사!”
병사들의 경악한 얼굴 위로 회의감, 불신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떠올랐다.
그러나 실낱같은 기대를 부수듯 곧이어 쇠 철판을 긁는 것 같은 날카로운 금속성이 모두의 고막을 세게 때렸다.
잠시 멈췄던 캐터필러가 끼릭거리며 다시 작동을 시작하는 소리였다.
그리고 한 가닥 남은 희망마저 무참하게 짓밟아 버리려는지 로켓탄을 맞은 흔적이 역력한 포탑이 옆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젠장!”
자신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으며 그가 AK47자동소총을 들어 올리는 것과 동시에 적 전차에 장착된 동축 기관총이 섬뜩한 소리를 울리면서 불을 뿜었다.
투투투퉁!
빗발치듯 쏟아진 총탄이 RPG 사수가 엄폐해 있는 건물을 마구 헤집어 놨다.
그걸로도 부족한지 주포까지 발사했다.
꽈아앙!
시멘트와 벽돌을 쌓아서 만든 건물 한 귀퉁이가 전차포탄의 파괴력을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박살이 나 버렸다.
뒤에 숨어 있던 RPG 사수 역시 미처 피하지 못하고 폭발에 휘말려 온몸이 갈기갈기 찢겨 나갔다.
눈앞에 보이는 끔찍한 광경에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갑자기 튀어나온 적들이 기관총을 마구 휘갈겨 댔다.
타타탕! 타탕! 탕!
피슝.
“큭.”
바로 자심이 이끄는 무자헤딘동맹 전사들이었다.
“낮에 당한 걸 되돌려줘라!”
자심은 AK47자동소총을 한손에 잡고 흔들면서 목청을 높였다.
앞서 사령부 습격을 실패하면서 받아야 했던 굴욕감을 여기서 풀려는지 자심은 물론이고 전사들 모두 독이 바짝 올라 있었다.
희부연 흙먼지가 시야를 가리는 가운데 부서지고 깨진 시멘트 조각들이 널려있는 길을 적들이 총을 쏘며 돌격해 들어왔다.
“막아!”
사나운 기세로 덤벼드는 적을 향해 아군도 물러서지 않고 총탄을 마구 퍼부었다.
오렌지색 예광탄이 양쪽으로 허공을 마구 가로지르면서 날아갔다.
이런 가운데 적 전차가 길을 떡하니 막고 서서는 흉측한 포신을 천천히 돌리면서 포탄을 날렸다.
꽝!
“커헉!”
엄청난 폭음이 주변 대기를 뒤흔들었고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후끈한 열기와 함께 흙먼지가 장애물 뒤에 있는 그의 몸을 두들겼다.
“빌어먹을!”
자동소총을 움켜쥔 혁권은 짜증이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RPG로 두 번이나 공격을 퍼부었음에도 불구하고, 특히나 그중 한 번은 명중까지 시켰는데 대체 저건 뭐란 말인가.
마치 불사신이라도 되는 양 격파되지 않고 멀쩡하게 살아 움직이는 적 전차의 모습에 분노와 오기가 뒤섞인 감정이 그를 마구 충동질했다.
지그시 깨문 입술에서 찝찔한 피 맛이 느껴졌다.
그때 혁권의 눈에 부서진 건물 잔해 사이에 버려져 있는 RPG 발사기와 로켓탄이 든 배낭이 보였다.
그걸 본 순간 이것저것 생각할 틈도 없이 벌떡 몸을 일으켜 엄폐하고 있던 장애물을 뛰어넘었다.
그러고는 빗발치는 총탄 사이를 가로질러 달려갔다.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는 하킴 역시 아무런 망설임 없이 혁권의 뒤를 따라 몸을 움직였다.
“이런 미친!”
옆에 있던 나딤은 갑자기 미친놈처럼 총탄이 날아다니는 엄폐물 밖으로 뛰쳐나가는 두 사람의 행동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경악성을 터트렸다.
총탄이 날아다니는 전장 한가운데로 앞뒤 볼 것 없이 뛰어드는 것이 어디 제정신으로 할 만한 짓인가 말이다.
한쪽 팔을 뻗어 다시 돌아오라고 소리를 내지르던 나딤은 쏟아지는 총탄에 기겁을 하며 다시 몸을 숙였다.
고개를 든 나딤은 미친 듯 뛰어가는 두 사람을 보면서 자살 특공대도 저렇게 무모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절로 욕설을 내뱉었다.
수십 발의 탄환이 섬뜩한 소리를 내면서 양옆을 스치듯 지나갔다.
스스로 미쳤다고 몇 번을 되뇌면서도 그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악을 쓰면서 뛰었다.
그런데도 50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가 오늘따라 너무나도 멀게 느껴졌다.
“어서 엄호해!”
“쏴!”
알하바디를 비롯한 다른 부하들은 어떻게든 혁권과 하킴을 도와주기 위해 필사적으로 총을 쏘며 적의 시선을 분산시켰다.
그런 도움 덕분인지 두 사람은 무사히 길을 가로질러 반쯤 부서진 창고 건물에 도착했다.
“헉헉.”
시멘트 벽에 등을 기대고 선 혁권은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괜찮아?”
고개를 돌려 옆을 보며 묻자 하킴이 머리를 끄덕였다.
“예.”
자신 때문에 괜히 고생을 한다는 생각에 하킴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준 그는 흙을 잔뜩 뒤집어쓴 채 바닥에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는 RPG발사기를 집어 들었다.
그사이 하킴은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 있는 민병대 병사의 몸에서 로켓탄이 든 배낭을 빼내 등에 멨다.
괴물처럼 육중한 캐터필러 소리를 내며 움직이고 있는 전차를 힐끗 쳐다보며 그가 말했다.
“겁나면 안 따라와도 돼.”
그러자 하킴이 무뚝뚝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제가 보스 경호원이라는 걸 잊으셨습니까. 어디든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것이 제 임무입니다.”
“그렇군.”
피식 웃은 그는 하킴이 메고 있는 배낭에서 로켓탄을 하나 꺼내 RPG 발사기에 장전시켰다.
그런 가운데 전투 상황은 아군에 더욱 불리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건물 사이사이에 엄폐한 채 완강하게 저항하고 있었지만 상대의 공격에 너무 거셌다.
창고 옥상에 배치해 둔 기관총 진지 세 곳이 이미 무력화되어 버렸고 남은 병력도 엄폐물 뒤에서 옴짝달싹 못하고 있었다.
쏟아지는 총탄을 받아 내면서 아직까지는 버티고 있었지만 그것도 이제 한계치에 다 달았다.
서서히 내려앉은 어둠을 환하게 밝히면서 또다시 전차 주포가 불을 뿜었다.
고막을 때리는 커다란 폭음이 주위를 진동시켰고 아군이 엄폐해 있던 장애물 한쪽이 흔적도 없이 날아갔다.
몇 명의 목숨을 한순간에 앗아간 적 전차의 시커먼 실루엣을 노려보며 RPG 발사기를 꽉 움켜쥔 혁권은 짧게 소리를 치면서 앞으로 뛰쳐나갔다.
“엄호해!”
잔해 더미 밖으로 나오는 것과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 적군의 총격이 날아들었다.
금방이라도 몸을 꿰뚫어 버릴 것처럼 총탄들이 공기를 가르면서 지나갔지만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뒤에서 엄호 사격을 해 주는 하킴의 입 안이 바짝 타들어 갔다.
미리 봐 둔 뒤집혀 있는 트럭 뒤로 몸을 숨긴 혁권은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을 틈도 없이 목표를 확인했다.
다행히 아직까지 적 전차는 그를 발견하지 못한 것 같았다.
하지만 주위에 있는 적병들이 공격을 방해하려는 듯 마구 총격을 가했다.
티팅! 팅!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차체 여기저기에서 불꽃이 튀었다.
얼른 머리를 숙인 그는 얼굴을 구겼다.
이래서는 RPG를 쏠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해야 될지 망설이고 있을 때 가까이에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크악!”
고개를 번쩍 들자 어느새 바로 코앞까지 다가와서 그를 노리던 적병 한 명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하킴이 지켜보다 총을 쏴서 죽인 것이다.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는 걸 깨달은 그는 크게 숨을 들이쉬고는 총격이 뜸해진 틈을 노려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희뿌연 흙먼지 사이로 보이는 적 전차의 캐터필러 부분을 노리고 어깨에 올린 RPG-7을 쐈다.
“뒈져라!”
곧장 날아간 로켓탄은 겨냥한 곳에 정확히 틀어 박혔다.
커다란 폭음이 울리면서 육중한 전차가 흔들렸다.
꽈아앙!
반응 장갑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차체와 달리 캐터필러 쪽은 아무런 방어 장치가 되어 있지 않아 약했다.
상처 입은 맹수처럼 으르릉거리는 엔진 음을 내면서 전차가 움직이는 것과 동시에 강철로 만들어진 궤도가 끊어져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바퀴도 부서졌는지 전차는 움직이지 못하고 그대로 멈춰 서 버렸다.
“RPG 맛이 어떠냐, 개자식들아!”
혁권은 적을 향해 손가락 욕을 날리면서 야유를 퍼부었다.
전차의 발을 묶었으니 적어도 한고비는 넘긴 셈이었다.
그렇게 잠시간의 안도와 기쁨을 만끽하던 혁권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어 버린 것은 바로 다음 찰나였다.
드르륵, 하며 톱니바퀴가 굴러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전차 포탑이 혁권을 향해 옆으로 머리를 틀었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전차포를 맞는다?
설령 명중이 아니더라도 충격파만으로 몸이 갈기갈기 찢겨 나갈 것이 분명했다.
턱 아래에 사신의 낫이 들이밀어진 듯한 서늘한 감각에 혁권의 몸이 얼음처럼 꽁꽁 얼어붙었다.
‘어떻게든 피해야 돼! 움직여, 움직이라고!’
살아남으려고 필사적으로 명령을 내리는 뇌와는 달리 몸뚱아리는 손끝 하나 꼼짝하지 않았다.
마치 눈을 뜬 채로 가위에 눌리고 있는 것처럼 정신과 육체가 두 개로 완전히 분리된 것만 같았다.
저를 향해 커다란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주포의 검은 구멍이 이윽고 완전히 직선 방향으로 놓이기 직전.
쿠웅!
전차의 기다란 포신이 길가에 심어 놓은 야자수 나무에 가로막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쿵, 쿠웅!
당황한 듯 몇 번이나 포신이 나무에 부딪혔지만, 웬만한 가로수보다 훨씬 굵은 나무는 그 충격에도 좀처럼 꿈쩍하지 않았고 다만 애꿎은 잎사귀만이 바닥에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기적과도 같은 우연에 혁권의 눈동자가 서서히 생기를 되찾았다.
나무가 가로막고 있는 한 저 각도에서는 전차 주포가 혁권이 있는 자리를 맞히지 못한다.
혁권의 몸이 재빨리 움직인 것은 그 사실을 깨달은 것과 거의 동시였다.
이것저것 생각할 틈도 없이 용수철처럼 다리가 바닥을 박차고 튀어나갔다.
“어딜 가십니까!”
옆으로 와 있던 하킴이 다급히 외치는 말에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오직 적 전차만 노려보고 뛰어 가면서 소리쳤다.
“마무리를 지어야지!”
뭘 하려는지 눈치챈 하킴은 그를 따라 움직이면서 가지고 있던 AK47자동소총으로 엄호 사격을 했다.
그사이 혁권은 무사히 돈좌되어 있는 적 전차 옆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전차에도 기관총이 장착되어 있었지만 사각死角 때문인지 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