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awaited RAW novel - Chapter 205
205
실제 기체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시험 비행까지 끝마친 이집트 공군 관계자들은 TA-50의 성능에 상당한 만족감을 표시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다음 날 협상이 다시 시작됐다.
KAI 측 인사들은 지난번과 동일했지만 혁권은 사반 대령을 포함한 이집트 공군 관계자들하고 함께 자리해 숫자가 늘어났다.
편의를 위해서 협상은 영어로 진행됐다.
“직접 타 보신 소감이 어떻습니까?”
최오철 사장의 물음에 혁권과 나란히 앉아 있던 사반 대령이 살짝 머리를 끄덕이면서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확실히 경쟁 기종과 비교해서 뛰어난 성능을 보이더군요. 특히 디지털 비행 시스템과 강한 힘을 내는 엔진이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하하하.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방금 말씀하신 것들은 저희가 T-50 시리즈를 판촉하면서 가장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훈련기 가운데 마하 1.5 이상 속력을 낼 수 있는 기체는 흔치 않지요.”
마주 보고 있는 이집트 공군 관계자들을 보면서 최오철 사장이 자신 있게 말을 이었다.
“TA-50을 선택하신다면 절대 후회하시지 않을 겁니다.”
협상을 조금이라도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해 이집트 공군 관계자들한테 TA-50의 우수성을 은근슬쩍 피력하는 상대의 모습에 그는 내심 쓴웃음을 지으면서 입을 열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지요. 지난번에 제가 요구한 것들은 결론이 어떻게 났습니까?”
단도직입적인 물음에 최오철 사장 대신 실무자인 주동민 전무가 대답했다.
“어려움이 없지는 않았지만 다행히 공군에서 제작 중인 기체 4대를 양보해 주기로 했습니다.”
“그럼 언제 인도가 가능한 겁니까?”
“공정이 70% 이상 진행됐으니 계약을 체결하면 6개월 안에 기체를 인도할 수 있습니다.”
보통 주문에서 인도까지 몇 년이 걸리는 걸 생각하면 상당히 빠른 거였다.
노후화된 기체의 빠른 교체를 원하는 이집트 공군 입장에서는 상당히 매력적인 조건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다들 솔깃한 표정을 지었다.
“조종과 정비 훈련에 4개월 정도가 소요되니까 인도받는 즉시 기체를 운용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겁니다.”
“좋은 소식이군요.”
작게 머리를 끄덕이면서 말하는 혁권을 보며 주동민 전무가 한쪽 손가락으로 살짝 안경을 밀어 올렸다.
“하지만 판매 금액을 낮추는 것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어째서지요?”
혁권이 눈을 가늘게 뜨면서 묻자 주동민 전무 역시 얼굴을 굳히면서 이야기를 했다.
“애초에 저희가 제시한 액수가 마진을 거의 뺀 최저 금액이었습니다. 일부 장비를 빼거나 예비 부품 수량을 줄이지 않는 이상 금액을 낮추기는 힘들다는 뜻입니다.”
그 말을 들은 혁권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저 자신도 여러 번 거래를 해 봤지만 다들 항상 입으로만 마진이 없다고 할 뿐, 진짜로 손해를 보고 장사를 하는 사람은 없다.
기업의 목적이 이득을 취하는 것인데 그것을 배신할 리가 없잖은가.
“조건이 맞다면 바로 계약을 할 생각도 있었는데…… 이거, 실망이군요.”
아쉬운 듯 그가 말하자 최오철 사장이 차선책을 제시했다.
“그래서 고심 끝에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냈습니다.”
“그게 뭡니까?”
“예비 엔진 7개 중에 5기를 중고로 대체하는 겁니다.”
“중고라고요?”
“그렇습니다. 아시다시피 T-50 시리즈에 장착되는 GE사 F404-GE-102 엔진은 미국 해군이 운용하는 F/A-18 전폭기와 같은 모델입니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기에 다들 머리를 끄덕였다.
“덕분에 미해군이 새로운 기체를 배치하면서 예비로 돌려진 중고 엔진들이 꽤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새 제품 대신 이걸 구매한다면 40% 정도 저렴한 가격에 필요한 수량을 확보할 수 있을 겁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제안에 혁권은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산기를 두드렸다.
그때 사반 대령이 정색을 하며 말했다.
“중고 엔진이라면 수명도 짧고 성능에도 문제가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러자 이런 질문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최오철 사장이 약간의 망설임도 없이 곧장 대답했다.
“그건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떻게 그리 확신할 수가 있지요?”
자칫 잘못해 엔진이 문제를 일으킨다면 값비싼 기체를 잃는 것뿐만 아니라 조종사의 생명도 위험했기에 사반 대령은 상당히 예민하게 반응했다.
하지만 최오철 사장은 입가에 미소까지 지으면서 이야기를 했다.
“중고라고 해도 엔진을 완전히 분해해서 수리하는 대규모 오버홀Overhaul을 거치면서 미해군에서 사용 가능 인증까지 받은 제품이기에 안전에는 전혀 이상이 없습니다. 더군다나 연비가 3~4% 정도 향상된 개량 모델이라 오히려 더 좋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겁니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미해군에서 인증한 오버홀 엔진이라고 하니 사반 대령도 일단은 수긍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아무리 안전하다고 해도 새 엔진 대신 미해군이 쓰던 중고를 예비 부품으로 대체한다는 것에 그다지 탐탁지 않아 했다.
그런 속내를 예민하게 눈치챈 혁권이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그 문제는 여기서 바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좀 더 생각해 보도록 하지요.”
“그러십시오.”
마음 같아서는 바로 결정을 내렸으면 좋겠지만 그게 쉽지 않다는 걸 알았기에 최오철 사장은 조급해하지 않고 이쯤에서 물러섰다.
그 뒤로도 한참 동안 협상을 이어가면서 양측은 조금씩 입장 차이를 좁혀 나갔다.
사락사락.
조용한 객실 안에 사반 대령이 넘기는 종이 소리만이 가득했다.
그가 한껏 집중하여 글자를 읽어 내려가는데, 돌연 밖에서 누군가가 노크를 했다.
“누구시오?”
보안 렌즈에 비친 것은 복도에 서 있는 혁권이었다.
상대가 누군지 얼굴을 알아본 사반 대령은 잠금장치를 풀고 그를 안으로 맞이했다.
“쉬고 계신데 제가 방해를 한 건 아닌지 모르겠군요.”
“아닙니다. 그리로 앉으십시오.”
“예.”
권하는 대로 소파에 앉은 그는 탁자에 펼쳐져 있는 서류를 힐끔 살펴보곤 입을 열었다.
“KAI에서 보내 준 자료를 보고 계셨군요.”
“TA-50에 장착되는 EL/M-2032 레이더는 처음 사용해 보는 기종이기에 공부를 좀 하고 있었습니다.”
“역시 부지런하시군요.”
EL/M-2032는 최대 탐지 거리가 무려 150킬로미터에 달할 정도로 성능이 우수한 레이더로 기계식 가운데 최상위에 속하는 모델이었다.
이집트와 국경을 마주 대고 있고 전쟁까지 벌였던 이스라엘제 레이더였기에 탑재를 하는 데 약간 트러블이 있었다.
하지만 국내 업체가 기술이전을 받아 면허 생산 중이라 직도입을 할 필요가 없고, 이스라엘 측도 경제적인 이득을 생각해서 눈을 감아 준 덕분에 장착이 가능해졌다.
이집트 쪽도 값비싸고 TA-50에 달기에는 비효율적인 위상 배열 레이더[AESA]를 구매하지 않는 이상 EL/M-2032보다 성능이 좋은 레이더를 찾기 어려웠기에 애써 모르는 척하며 넘어갔다.
서류를 덮어 한쪽으로 치운 사반 대령은 마주한 혁권과 시선을 마주치면서 말했다.
“그런데 이 시간에 어쩐 일입니까?”
“계약에 관해서 상의할 것이 있어서 왔습니다.”
“이야기해 보십시오.”
“KAI 측에서 제안했던 중고 엔진 구매 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러자 사반 대령이 살짝 미간을 좁히고는 입을 열었다.
“오버홀을 받고 미해군의 인증을 받아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중고이니 원래대로 새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좋지 않다고 봅니다.”
“물론 그렇기는 하지요.”
애매하게 말꼬리를 늘어뜨린 혁권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었다.
“하지만 도입 비용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약간의 융통성을 보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비용은 넉넉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상체를 바로 한 사반 대령이 깐깐하게 나오자 그는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능숙하게 말을 받아 넘겼다.
“기체 도입 부분만 생각한다면 그렇지요. 장착되는 각종 무기 구매까지 포함시키면 빡빡한 금액입니다. 거기다가 기타 부대비용도 있고 말입니다.”
“으음.”
부대비용이라는 것이 뭘 뜻하는지 알았기에 사반 대령은 낮게 침음성을 흘렸다.
그도 눈치가 있었기에 이번 고등 훈련기 도입 사업을 통해 고위층이 뒷주머니를 채우려고 한다는 걸 모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모하메드 무르시 대통령으로부터 시작되는 권력 피라미드의 한쪽에 사반 대령도 포함되어 있었기에 입을 다물고 있었다.
“알자파리 소장님 또한 그래도 좋다고 허락을 하셨습니다.”
“사실입니까?”
“전화를 거셔서 직접 확인해 보셔도 상관이 없습니다.”
괜히 알자파리 소장의 심기를 건드릴지도 몰랐기에 사반 대령이 쉽사리 확인 전화를 할 수 없을 거라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설사 한다고 해도 상관이 없었다.
그는 안주머니에서 봉투를 하나 꺼내 탁자에 올려놨다.
“30만 달러가 들어 있는 시티 은행 통장입니다. 계좌 비밀번호와 카드를 함께 넣어 두었으니 언제든지 필요하실 때 꺼내 쓰실 수 있을 겁니다.”
“이보시오.”
“대령님이 반대를 하시더라도 중고 엔진으로 바꿔서 계약을 진행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걸 아시면서 굳이 알자파리 소장님의 눈 밖에 나실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혁권의 목소리는 낮았으나 힘이 실려 있었다.
잠시 그를 지그시 바라보던 사반 대령이 손을 뻗어 앞에 놓인 봉투를 집어 들자 혁권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면 동의하신 걸로 알고 협상을 진행하겠습니다.”
사반 대령이 가만히 머리를 끄덕이자 그는 볼일이 끝났다는 듯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전 이만 가 볼 테니 쉬십시오.”
몸을 돌린 혁권은 그대로 사반 대령의 객실을 나갔다.
호텔 꼭대기에 위치한 스카이라운지.
서울처럼 화려한 야경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 운치가 있었다.
한쪽에서 피아노 연주 소리가 은은하게 들리는 가운데 혁권은 창가에 앉아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와인 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얼핏 보면 한가롭게 느껴졌지만 그는 머릿속으로 KAI와의 협상을 어떻게 마무리 지을 것인지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혁권이 잔에 와인을 따르고 있는데 누군가 가까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
“이거, 제가 좀 늦었나 봅니다.”
최오철 KAI 사장이었다.
“아닙니다. 앉으시죠.”
가볍게 악수를 나눈 뒤 마주 보면서 앉자 치마 정장을 입은 늘씬한 여종업원이 잔을 하나 더 가져다주고는 물러났다.
그는 와인병을 들어 빈 잔을 채워줬다.
와인병에 붙은 라벨을 힐끗 본 최오철 사장은 약간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프랑스산 에세조 그랑크뤼군요.”
“이걸 좋아하신다고 해서 주문했는데, 마음에 드시는지 모르겠군요.”
“끝 맛이 오랫동안 입안에 머무는 것이 아주 좋지요.”
한 손으로 와인 잔을 들어 가볍게 흔들면서 최오철 사장이 이야기했다.
“역시 와인 애호가답군요.”
“진짜 고수들에 비하면 전 아직 멀었습니다. 명품을 앞에 두고 말만 주절주절 늘어놓는 것도 예의가 아니지요.”
그러면서 최오철 사장이 와인 잔을 앞으로 내밀자 살짝 부딪치며 건배를 했다.
“으음. 역시 아찔할 정도로 향이 화려한 것이 최고군요.”
그러곤 다시 한 번 음미하듯 와인을 천천히 한 모금 넘긴 그가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한데, 시음회를 하려고 만나자 한 것은 아니실 테고…….”
지그시 바라보는 눈길에 혁권이 빙긋 미소 지었다.
“과연 혀만큼이나 눈도 예리하시군요.”
몸을 뒤로 조금 기댄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