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awaited RAW novel - Chapter 230
230
그날 오후.
둔탁한 로터 소리를 울리면서 8대의 CH-53E 슈퍼 스탤리온 헬리콥터가 케네마 공항 상공에 나타났다.
일반 헬리콥터의 두세 배는 족히 됨직한 덩치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가 질리게 만들 정도였다.
로터가 돌아가면서 일으키는 바람은 또 얼마나 센지 왜 미국 해병들이 허리케인 메이커라는 별명을 붙였는지 이해가 됐다.
“정말 덩치가 어마어마하군요.”
“그러게.”
“잘하면 트럭 한 대가 그대로 들어가겠습니다.”
혁권은 함께 서 있던 백성균의 이야기가 농담처럼 들리지 않을 정도로 헬리콥터가 컸다.
약간 거리가 있는데도 옆에 세워진 500MD가 마치 장난감처럼 보일 정도였다.
후방 램프가 열리면서 함께 온 정비사와 승무원 들이 가져온 화물을 하역하는 가운데 이질적으로 양복을 입은 사내 한 명이 한 손에 커다란 캐리어를 하나 끌고 내렸다.
“저 사람 아닙니까?”
“그런 것 같군.”
하킴의 말에 그는 작게 머리를 끄덕이곤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상대도 혁권을 발견하고는 먼저 말을 걸었다.
“미스터 존슨.”
“그렇소.”
“샌더슨 씨께서 보내는 화물을 가져왔습니다.”
“그거요?”
그가 슬쩍 캐리어를 쳐다보면서 묻자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꽤 크군.”
캐리어 안에 든 것은 프레데터가 촬영한 영상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장비였다.
“사용을 하려면 장비를 설치해야 되는데 어디로 가면 됩니까?”
“내가 안내해 줄 테니 따라오시오.”
“감사합니다.”
혁권은 등을 돌려 임시로 사용 중인 격납고로 그를 안내했다.
“여기다가 설치하면 되오.”
지휘 텐트 안을 스윽 훑어본 CIA 요원은 이내 머리를 끄덕였다.
“그러지요.”
CIA 요원은 곧장 캐리어에서 여러 가지 장비를 꺼내서 조립하며 설치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 타머가 그 모습을 보곤 옆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이게 저번에 말했던 그 장비입니까?”
“그렇소.”
“생각했던 것보다 간소하군요.”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장비들을 바라보면서 타머가 말을 이었다.
“참, 말씀대로 헬리콥터들이 도착한 걸 봤습니다. 그 정도면 기갑 차량들까지 한꺼번에 다 옮길 수 있을 것 같더군요.”
반군을 확실히 제압하고 다이아몬드 광산을 방어하기 위해서, 구형이지만 BMP-2 장갑차 두 대와 중기관총을 탑재한 사륜구동 차량 세 대를 함께 가지고 왔다.
특히 BMP-2는 연사력이 우수한 2A42 30mm 기관포를 주 무장으로 장착하고 있어서 아군에게 막강한 화력 지원을 해 줄 수 있었다.
“프레데터처럼 48시간 동안 쓸 수 있으니까 급하게 서두를 필요는 없을 겁니다.”
“그래서 다른 물자들은 2차로 수송하기로 했습니다.”
그는 머리를 가만히 끄덕였다.
그러는 사이 CIA 요원은 백성균의 도움을 받아 옥상에 위성신호를 잡기 위한 파라볼라 안테나Parabolic Antenna까지 금방 설치를 끝냈다.
탁자에 노트북처럼 생긴 장비를 올린 CIA 요원이 버튼을 누르자 띠리릭 하는 전자음이 울리면서 전원이 들어왔다.
모니터가 켜지면서 장비는 1분 정도 천천히 부팅이 됐다.
그리고 이내 모니터에 비밀번호를 입력하라는 메시지가 떴다.
CIA 요원이 키보드를 이용해서 8자리의 비밀번호를 빠르게 입력하자 보안장치가 바로 해제됐다.
얼마 있지 않아 위성과 연결이 됐다는 메시지가 떴다.
그러자 몸을 살짝 뒤로 돌린 CIA 요원이 두 사람을 바라보며 물었다.
“지금 영상을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프레데터가 목표 지역에 도착해 있소?”
혁권의 물음에 CIA 요원이 머리를 끄덕이며 짧게 대답했다.
“네.”
“그럼 바로 봅시다.”
CIA 요원이 장비를 조작하자 이내 모니터에 프레데터가 보내오는 실시간 영상이 나타났다.
칙칙한 빛깔의 삼림지대 한가운데 누런 흙을 드러낸 노천 다이아몬드 광산이 눈에 들어왔다.
항공사진에서 봤던 것처럼 목조 건물들이 세워져 있었고 인부들이 흙을 파내면서 채굴 작업을 하는 모습도 보였다.
두 사람은 정찰 영상을 아주 진지한 얼굴로 한참 동안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이렇게 보니까 더 입체적으로 적진을 파악할 수 있군요.”
지도에도 등고선이 표시되어 있었지만 직접 영상을 확인하자 작전 지역 지형을 세밀하게 알 수 있었다.
모니터를 유심히 바라보던 혁권이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여기 있는 차량들은 지난번 항공사진에 없던 것 아닙니까?”
CIA 요원이 마우스를 클릭해서 화면을 확대하자 정말 목조 건물 앞 공터에 못 보던 픽업트럭 네 대가 세워져 있었다.
잠깐 사이에 그걸 파악한 혁권을 대단하다는 듯이 쳐다보면서 타머가 살짝 얼굴을 굳혔다.
“흐음. 그렇군요. 픽업트럭 네 대면 적어도 열 명 이상의 인원이 움직였다는 소린데…… 예상치 못한 변수이기는 해도 작전을 진행하는 것에는 크게 지장이 없을 거 같군요.”
그는 동의하듯 머리를 끄덕이면서 힐끔 무표정하게 앉아 있는 CIA 요원을 바라봤다.
느낌상 갑자기 나타난 픽업트럭들이 CIA에서 노리는 마싱가와 관련이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마싱가에 대한 건 타머한테는 비밀이었기에 그는 궁금증을 꾹 눌렀다.
얼마간 프레데터가 전송하는 정찰 영상을 더 살펴본 뒤 격납고를 나온 혁권은 한적한 곳으로 가서는 위성전화기를 꺼내 다이얼을 눌렀다.
한참 신호가 간 뒤에 전화가 연결됐다.
-무슨 일이오?
위성전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샌더슨이었다.
“광산에 새로 나타난 픽업트럭들에 대해서 아는 것이 있소?”
쓸데없는 이야기는 다 빼고 직접적으로 알고 싶은 걸 묻자 샌더슨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대답했다.
-이것 참. 안 그래도 귀띔해 주려고 했는데, 마침 물어보니 이야기를 해 주겠소.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분명 그가 캐묻지 않았다면 모르는 척 넘어갔을 것이 분명했다.
-픽업트럭을 몰고 온 놈들은 마싱가를 국경 너머로 데려갈 경호대인 걸로 파악됐소.
“경호대라면?”
눈썹을 꿈틀거린 그가 다시 묻자 샌더슨이 자세히 설명을 해줬다.
-그동안 채굴해서 모은 다이아몬드를 운송하려는 것이오. 이미 기니 쪽에 구매할 중간 구매상들이 와서 기다리고 있는 걸 확인했소.
순간 혁권의 머릿속이 빨리 돌아갔다.
샌더슨의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현재 마싱가가 상당한 수량의 다이아몬드를 가지고 광산에 있다는 뜻이었다.
그건 곧 잘하면 생각지도 못했던 부수입을 올릴 수도 있다는 거였다.
-다 합쳐서 스무 명 정도 되는데, 작전에는 그다지 큰 영향이 없을 거요. 대신 언제 국경으로 출발할지 모르니까 가능한 한 내일 안에 작전을 시작해야만 되오.
어차피 내일 새벽에 움직일 생각이었으니 상관이 없었다.
흥분한 마음을 애써 가라앉힌 혁권은 일부러 정색을 하며 말했다.
“작전은 예정대로 진행될 거요. 그런데 이런 중요한 정보가 있으면 곧바로 알려 줘야 되는 것 아니오?”
-좀 더 확실히 하려고 조사를 하다 보니까 조금 늦어졌을 뿐이오.
“처음이니 그냥 넘어가겠지만 앞으로는 절대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소이다.”
-흠. 알겠소.
역시나 켕기는 것이 있는지 샌더슨 약간 불편한 기색을 보이면서도 순순히 대답했다.
통화를 끝내고 방금 들은 이야기에 대해 혁권이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짧은 총성이 울렸다.
타아앙!
“어디서 나는 총성이야?”
그러자 옆에 있던 하킴이 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보곤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했다.
“아까 김선호가 작전에 나가기 전 영점 조준을 다시 한다고 하더니, 지금 사격을 해 보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렇군.”
이미 영점 조준을 끝낸 총기라고 해도 이런저런 이유로 틀어질 수 있었기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점검을 해 두는 것이 좋았다.
특히 장거리 저격을 해야 되는 저격수의 경우에는 영점 조준이 더욱 중요했다.
근거리 사격이라면 그나마 큰 문제가 없지만 300미터 이상 멀리 떨어진 목표를 맞히는 저격수는 자칫 쏜 총탄이 형편없이 빗나가 버릴 수도 있었다.
그랬기에 더욱 정밀하게 관리를 해 둬야만 했다.
잘하고 있나 살펴보려다가 괜히 자신이 가면 방해가 될 것 같아서 관두고 다시 격납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이른 새벽이었지만 케네마 공항은 곳곳에 환한 조명이 켜진 채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헬리콥터 승무원들이 단단히 포장된 화물과 기갑 차량을 싣고 있는 동안 치우 팀과 용병들은 활주로 옆 공터에 모여 MRE로 아침 식사를 했다.
“에구. 이건 몇 끼 먹지도 않았는데 벌써 질리네.”
“그러게.”
아무래도 한국 사람 입맛에는 맞지 않는 느끼한 MRE에 대원들이 투덜거리자 태영준이 플라스틱 숟가락으로 미트볼을 떠먹으면서 말했다.
“입에 안 맞아도 억지로라도 먹어 둬. 전투가 시작되면 언제 다시 밥을 챙겨 먹게 될지 모르니까 말이야.”
“예.”
“알겠습니다.”
그냥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알았기에 대원들은 숟가락을 들고 꾸역꾸역 음식을 비워 나갔다.
잠시 뒤 시간이 되자 대원들은 각자 장비를 챙겨 들고는 경광등을 흔드는 승무원의 신호에 따라 줄을 맞춰 헬리콥터에 탑승했다.
군복으로 갈아입은 혁권도 한쪽에 서서 타머와 악수를 나눴다.
“조심하십시오.”
“그럼 나중에 봅시다.”
혁권이 수행원들과 함께 헬리콥터 안으로 들어가자 유승우가 빈자리에 놔둔 군장을 치우면서 말했다.
“이쪽으로 앉으십시오.”
“고마워.”
대형 헬리콥터가 여덟 대나 됐기에 치우 팀은 흩어지지 않고 한 대에 모두 탈 수 있었다.
내부는 며칠 전에 탔던 수송기만큼이나 삭막했다.
군데군데 철제 프레임이 그대로 드러나 있고 양옆에 설치된 좌석은 딱딱하고 좁아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가운데에는 철판을 덕지덕지 붙인 사륜구동 차가 와이어에 묶인 채 실려 있었다.
상체에 찬 방탄복 끈을 살짝 느슨하게 풀고 얼마쯤 기다리자 후방램프가 천천히 닫히고는 엔진이 시끄럽게 가동되기 시작했다.
이내 기우뚱하는 느낌과 함께 헬리콥터가 떠오르자 로터블레이드 바람이 활주로에 쌓여 있던 모래를 사방으로 날렸다.
그렇게 하나둘 하늘로 떠오른 헬리콥터들은 편대를 이룬 채 다이아몬드 광산이 있는 북쪽으로 날아갔다.
두두두두.
밀폐된 공간이라 더욱 더웠기에 금방 땀이 흘렀다.
얼굴에 바른 위장 크림과 땀이 섞여 찐득거렸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갈증이 난 혁권은 생수 뚜껑을 따고는 한 모금 마셨다.
그러자 조금 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때 머리에 쓴 헤드셋에서 조종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랜딩 존Landing Zone 도착 10분 전.
짧은 말이었지만 그게 의미하는 건 컸다.
두려움보다는 짜릿한 흥분이 온몸에 퍼져 나가는 걸 느끼면서 태영준의 어깨를 손으로 가볍게 두드리곤 말했다.
“준비해.”
“알겠습니다.”
머리를 끄덕인 태영준은 허리에 찬 안전벨트를 풀고 일어났다.
얼마 있지 않아 치우 팀 대원들은 각자 분주하게 장비를 챙기기 시작했다.
그도 가지고 있던 자동소총의 안전장치를 풀고는 노리쇠를 당겨 총알을 장전했다.
철컥.
둔탁한 쇳소리가 오늘따라 유달리 더 크게 들렸다.
붉은색으로 빛나는 펜 라이트를 한쪽 어깨에 붙인 승무원이 가까이 다가와서는 한쪽 손을 활짝 폈다.
이제 착륙 지점까지 5분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