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awaited RAW novel - Chapter 250
250
“저 그리고 방금 시리아 정부에서 알레포 주민들한테 소개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소개령이라니?”
눈을 부릅뜨며 쳐다보는 샌더슨의 시선을 슬쩍 피하면서 루이스가 말했다.
“아무래도 곧 본격적으로 지상군을 투입하려는 모양입니다. 위성사진에도 그런 움직임이 포착됐습니다.”
그러면서 방금 전달받은 고해상도 위성사진 서너 장을 책상 위에 펼쳐 놨다.
위성사진에는 알레포로 향하는 시리아 정부군의 병력 이동 모습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는데 전차와 장갑차 같은 중화기까지 끼여 있었다.
지금까지 드러난 상황들로 볼 때 시리아 정부군이 작정하고 알레포를 탈환하려는 것이 분명했다.
“빌어먹을. 하필이면 왜 지금…… 며칠만 더 있다가 일이 벌어졌으면 됐잖아.”
반군이 필사적으로 저항한다지만 러시아의 도움으로 장비와 인력을 보강한 시리아 정부군의 총공세를 막아 내기가 쉽지 않았다.
특히나 전차 같은 중화기를 도시 내부로 들여보내서 전투를 벌인다면 더욱 상황이 어려워졌다.
“FSA는 뭐라고 그래?”
“폭격에 피해가 너무 커서 진입로를 열어 주기 어렵다고 합니다.”
“트럭에 실려 있는 화물이 제 놈들 목숨 줄인 걸 모르는 거야!”
“그게 상황이 워낙 안 좋다 보니…….”
“그럼 우리도 모르겠으니까 다 거기서 뒈지라고 해!”
짜증이 치밀어 오른 샌더슨의 목소리가 절로 높아졌다.
그때 문이 살짝 열리면서 다른 요원이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왔다.
“뭐야!”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만 랭글리Langley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랭글리라면 CIA 본부가 있는 곳이었다.
“누군데?”
“국장님이십니다.”
“이런 빨리 이야기를 해야지!”
샌더슨은 얼른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전화 바꿨습니다.”
-샌더슨 작전이 잘 안 풀렸다는 이야기는 들었네.
약간 언짢아 보이는 러셀 CIA 국장의 목소리에 그는 바짝 긴장한 표정을 지으면서 최대한 차분하게 대답했다.
“변수가 발생하기는 했지만 아직 작전이 완전히 실패한 건 아닙니다.”
-이번 작전은 백악관에서 직접 내려온 지시 사항이야. 그러니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따로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잘 알겠지?
“……예.”
-특히 러시아가 다시 본격적으로 시리아 내전에 개입하고 알레포가 국제사회와 언론의 가장 큰 이슈가 되면서 더욱 중요성이 커졌어. 백악관의 관심도 마찬가지고 말이야. 한마디로 절대 작전이 실패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야.
“그렇습니다만 상황이 그리 녹록치 않습니다.”
-알아. 곧 시리아 정부군이 대대적인 공격이 있을 거라면서?
“네.”
-그러니까 더욱 준비한 화물이 반군한테 전달되어야만 해.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걸 샌더슨은 겨우 참았다.
-이번에 화물을 가지고 간 협조자가 블랫레빗이라고 했나?
블랙레빗은 CIA에서 혁권한테 붙인 암호명이었다.
“맞습니다.”
-몇 차례 일을 함께했다니 잘 알 거 아니야. 강행돌파를 해서라도 화물을 가지고 도시 안으로 들어가라고 해.
그러자 샌더슨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도시 외곽을 시리아 정부군이 포위하고 있어서 뚫고 들어가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블랙레빗도 그런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려고 할 겁니다.”
-답답하기는 그러니까 자네가 잘 설득을 해야지. 원한다면 수용 가능한 선에서 보상을 해 줘도 좋아.
목숨을 걸어야 되는 만큼 추가로 보상을 해 주는 건 당연했다.
아니, 그 전에 혁권이 한창 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전장을 가로질러 알레포로 들어가라는 요구를 과연 받아들일지 회의적이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다른 사람을 보내기에는 시간이 너무 없었다.
-왜 대답이 없나!
“아닙니다.”
-그리고 새로 들어온 정보에 의하면 이란군 대대급 병력이 이번 알레포 공격에 투입될 것으로 보이니까 참고하도록 해.
설상가상 또 다른 악재에 샌더슨의 얼굴이 구겨졌다.
“이란군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래. 이란 혁명수비대(IRGC) 직속 병력이라고 하더군.
“끄으응.”
이란 혁명수비대[Iran’s National Guard Corps]는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체제 수호를 위해 만들어진 군사 조직이었다.
정규군과 별도로 이슬람최고혁명위원회에서 창설한 군사 조직으로 20만 명에 이르는 병력에 육, 해, 공군은 물론이고 내부에 특수전 부대와 정보대까지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경제에도 손을 뻗혀 이란 국내총생산[GDP]의 약 10%를 이들이 장악하고 있었고 핵개발까지 맡아서 진행했었다.
정교일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일종의 친위대로 이란 내부에서도 상당한 강경파에 속했다.
최정예 병력인 이들이 그것도 대대급으로 알레포에 투입된다는 건 가뜩이나 절벽 위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반군의 마지막 숨통을 끊어 놓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니까 더욱 우리가 준비한 화물이 제때 반군한테 전달돼야 된다는 거야.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지?
“……네.”
-그러면 좋은 소식을 기다리고 있겠네.
통화를 끝낸 샌더슨은 길게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책상 앞에 서 있던 루이스가 눈치를 보며 물었다.
“뭐라고 하십니까?”
아무런 말없이 잠시 고심하던 샌더슨이 고개를 들며 입을 열었다.
“정오까지 얼마나 남았지?”
루이스가 손목시계를 보며 대답했다.
“이제 1시간 남았습니다.”
“당장 FSA에 연락해서 무조건 진입로를 열라고 해!”
“정부군의 공격을 막아 내는 것도 어려운 판에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루이스가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자 샌더슨은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못 해내면 다 죽는 거지.”
그 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며 그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알겠습니다.”
루이스가 방을 나간 뒤 샌더슨은 흐트러졌던 호흡을 가다듬고 책상 한쪽에 있던 위성전화기로 손을 뻗었다.
그러고는 엄지손가락으로 버튼을 눌러 혁권한테 전화를 걸었다.
띠리리릭.
쌍안경으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알레포 시가지를 바라보고 있을 때 전화벨 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
녹색 액정에 뜬 번호를 확인한 혁권은 통화 버튼은 누르며 딱딱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됐소?”
-해가 지기 전에 반군이 계획대로 진입로를 열어 줄 거요.
그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살짝 미간을 좁혔다.
다시 또 반나절 이상을 여기서 기다려야 된다는 것이 마음에 안 들었을 뿐만 아니라, 새벽부터 시작된 시리아 정부군의 무차별 폭격에 큰 피해를 입은 반군이 반격에 나서 포위망을 뚫어 낼 수 있을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확실한 거요?”
-…….
잠시 말이 없던 샌더슨은 이내 가라앉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솔직히 말해서 반군의 피해가 너무 커 공격에 나선다고 해도 진입로를 확보해 줄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소.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위성전화기를 고쳐 쥔 혁권은 이를 악물었다가 풀었다.
“그런데도 지금 날 보고 알레포로 들어가라고 한 거요!”
화가 치밀어 오른 혁권의 언성이 높아지자 샌더슨이 얼른 설득을 했다.
-쉽지는 않겠지만 반군이 최대한 정부군의 시선을 끌어 줄 테니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닐 거요.
“그럴 것 같으면 난 못하겠으니까 샌더슨 당신이 직접 오든가 아니면 부하들을 보내 트럭을 몰고 가도록 하시오.”
-그러지 말고 이번 한 번만 좀 도와주시오. 미스터 김이 이대로 돌아간다면 도시 안에 있는 반군들은 정부군의 공세를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오.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군요. 값싼 동정 따위에 난 물론이고 부하들의 목숨까지 위험에 빠뜨릴 생각은 전혀 없소.”
그는 딱 잘라 선을 그었다.
-물론 그냥 해 달라는 건 아니오. 화물을 무사히 전달만 해 준다면 매년 500만 달러어치의 오더를 10년간 아테네에 있는 봉제 공장에 주도록 하겠소.
뜻밖의 제안에 혁권은 눈을 가늘게 떴다.
갭GAP과 거래를 유지하고 있다지만 그래도 봉제 공장을 정상적으로 운영하기에는 일감이 부족했다.
그런 상황에서 매년 500만 달러 한화로 50억 원이 넘는 오더를 10년간이나 고정적으로 받을 수 있다면 공장을 안정화시키는 것이 훨씬 수월할 터였다.
다른 때 같았으면 망설임 없이 받아들였겠지만 그 대가로 자신과 부하들의 목숨을 걸어야 했기에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차라리 자신이 금전적으로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천천히 공장을 운영해 나가는 것이 낫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너무 위험했다.
제안을 거부하는 걸로 마음을 굳히려고 할 때 이어진 샌더슨의 이야기에 그는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리고 이번에 시에라리온 반군을 부추겨서 아테네로 킬러를 보내도록 만든 배후가 누군지 알려 주겠소.
“지금 뭐라고 했소? 반군 놈들이 스스로 찾아온 것이 아니라 배후가 있다는 말이오!”
그러자 샌더슨이 의도적으로 한 호흡 뜸을 들이고는 입을 열었다.
-물론이오. 그게 아니라면 저들이 어떻게 미스터 김이 블러드 다이아몬드를 처분한 건 물론이고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아테네로 왔겠소.
“으음.”
혁권은 자신도 모르게 침음을 내뱉었다.
그러고 보니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시에라리온에 위치란 다이아몬드 광산을 떠나 런던에 들렀다가 아테네로 온 건 단 며칠 사이였다.
그런데 그걸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시에라리온 반군이 다 파악하고 쫓아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샌더슨의 이야기대로 누군가 정보를 흘려 준 조력자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대충 누군지 짐작되는 인물이 있었지만 확실히 하는 것이 좋았다.
“그게 누구요?”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바로 알려 주겠소.
얼굴을 구긴 혁권은 잠시 고심을 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배후가 누군지는 혼자서도 얼마든지 알아낼 수 있소.”
-물론 그렇겠지만 이미 미스터 김의 거처가 노출된 이상 문둥가 사령관이 또다시 사람을 보내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지 않겠소. 특히나 다이아몬드 광산을 두고 대립하는 사이라면 더욱 이를 갈 테니 말이오.
“그쪽에서 그걸 막아 줄 수 있다는 거요?”
-이번에도 우리가 먼저 알고 귀띔해 준 것이지 않소.
확실히 샌더슨이 정보를 주지 않았다면 큰 곤혹을 치렀을 터였다.
거점을 다시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옮기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닌 데다 무엇보다 그렇게 해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제일 좋은 건 위험 요소 자체를 제거해 버리는 거였다.
그러나 시에라리온 정부도 어쩌지 못하는 걸 혁권이 해결하는 건 어려웠다.
결국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었다.
세계 곳곳에 촘촘한 정보망을 가지고 있는 CIA라면 문둥가가 움직이는 즉시 파악하고 자신한테 알려 줄 수 있으니 충분히 대비가 가능했다.
어쩔 수 없다는 걸 알아도 또다시 CIA의 의도대로 움직여야 된다는 것이 그다지 내키지 않았다.
그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한쪽 입술을 일그러뜨리면서 말했다.
“대신 나도 한 가지 조건을 걸어야겠소.”
-뭐든 말해 보시오.
혁권은 가볍게 숨을 내쉬면서 호흡을 골랐다.
“일이 끝나면 현금으로 100만 달러를 추가로 주고 험비HMMWV 무장형 10대를 넘겨주시오.”
험비는 미군이 사용하는 고성능 사륜구동 장갑 수송차로 60도의 경사각을 등판할 수 있고 높은 수직 장애물이나 참호도 거침없이 통과해 내는 엄청난 기동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험비의 탁월한 성능을 크게 발휘할 수 있는 시에라리온 광산에 배치해서 자체 방어 능력을 보강하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현금은 목숨을 걸고 도시 안으로 들어가야 되는 부하들의 몫이었다.
-좋소. 원하는 대로 해 주겠소.
“확실히 해 둘 건 반군이 안에서 진입로를 열어 주지 않는다면 절대 움직이지 않을 거라는 것이오.”
-……알았소.
더 이상 강요를 하면 기껏 결심을 한 혁권이 판을 엎어 버릴지도 몰랐기에 샌더슨은 어쩔 수 없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럼 반군이 행동을 개시하면 다시 연락을 주시오.”
통화를 끝낸 혁권은 멀리 보이는 알레포 시가지를 굳은 얼굴로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