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awaited RAW novel - Chapter 284
284
“사장님이 오신다고 해서 다들 기합이 잔뜩 들어가 있었습니다.”
“그냥 평상시대로 하면 되지. 그건 그렇고 오늘 보니까 채굴 시설이 꽤 많이 자리를 잡았군.”
“그런대로 구색은 갖춰 가고 있지만 제대로 돌아가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그래도 사흘 전에 벨트 컨베이어가 완성돼서 작업 능률이 대폭 늘어났습니다.”
김덕현 전무의 이야기에 그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군.”
“이제 선별기[Selector]까지 갖춰지면 원석을 채굴하는 작업이 한결 빨라질 겁니다.”
“기대되는군.”
각종 채굴 장비들이 쉬지 않고 돌아가면서 다이아몬드 원석을 캐낼 걸 상상하니 혁권은 절로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 고개를 돌려 김덕현 전무를 보며 물었다.
“그런데 래리가 안 보이는군.”
“험비 세 대를 끌고 주변 정찰을 나갔습니다. 사장님이 오시는 걸 아니까 해가 지기 전에는 돌아올 겁니다.”
“정찰을 자주 나가나 보지?”
“아무래도 위협 세력이 있으면 광산 근처까지 오기 전에 막아 내는 것이 여러모로 좋으니까요.”
“그렇군.”
“그동안 캐낸 다이아몬드 원석이 있는데, 보러 가시겠습니까.”
“원석은 전부 서울로 보냈다고 하지 않았나?”
혁권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이송시킨 것은 최상품들이고 나머지는 아직 이곳에 보관하고 있습니다.”
“그래? 그럼 한번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고개가 살짝 끄덕여지자 김덕현 전무가 일행을 이끌고 약간 떨어진 곳에 위치한 현장 사무소로 향했다.
평소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곳인 만큼 생활감이 물씬 느껴지는 장소였다.
책상에는 먹다 남은 커피 찌꺼기가 달라붙어 있는 머그컵이 놓여 있었고, 엉덩이 부분이 푹 꺼진 의자엔 담요 뭉치가 내던져져 있는 것이 그가 어찌 지내는지 여실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하하, 나름 청소한다고 했는데…….”
새삼스럽게 부끄러운 듯 김덕현 전무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하지만 혁권 역시 타지 생활을 여러 번 해 본 터라 이 정도로 어질러진 것쯤이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저 안에 있나?”
“예. 특별히 아주 튼튼한 걸로 주문한 놈이지요.”
김덕현 전무는 제 책상 뒤편, 벽에 붙어 있는 커다랗고 투박하게 생긴 금고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삑삑거리는 전자음을 내면서 번호를 눌러 금고를 연 그는 안에서 큼지막한 상자를 꺼내어 다른 사람들이 모두 다 함께 볼 수 있도록 책상에 올려놓았다.
상자의 뚜껑을 열자, 한순간 방 안이 갑작스레 환하게 밝아진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화려한 광채가 쏟아졌다.
비록 기분 탓일지언정 그 정도로 다이아몬드란 압도적인 존재감을 발하는 것이었다.
“이게 전부 다…… 그 다이아몬드입니까?”
“그러네.”
상자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정도로 쌓인 크고 작은 다이아몬드 원석에 넋을 놓고 있던 알아바디가 멍한 얼굴로 그리 묻자 김덕현 전무가 자랑스러운 듯이 대답했다.
“맙소사.”
탄식 같은 감탄사가 모두의 심정을 대변하듯 흘러나왔다.
그야 다이아몬드를 캐는 광산이니 원석이 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렇게 많은 수가 한자리에 모여 있는 것은 쉽사리 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니었다.
혁권 역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는데 얼핏 봐도 상자 안에 들어 있는 다이아몬드 원석이 60~70개는 넘어 보였다.
“정말 많군.”
그러자 김덕현 전무가 살짝 어깨를 으쓱이면서 이야기를 했다.
“채굴 장비를 써서 작업량이 늘어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이곳 광산의 품위[Grade]가 저희 예상보다 훨씬 더 높은 것 같습니다.”
단위 면적당 채굴되는 다이아몬드 원석의 양이 많다는 뜻으로 그만큼 광산의 경제성이 좋다는 말이었다.
“호오. 그래.”
작게 머리를 끄덕이던 혁권은 이내 의아한 얼굴로 김덕현 전무를 봤다.
“그런데 이건 왜 서울로 보내지 않고 여기 놔둔 건가?”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먼저 보낸 건 크고 품질이 좋은 최상품이고 이건 보시다시피 약간 떨어지는 원석들입니다.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가공해서 보석으로 쓰기 어려운 공업용이라는 거지요.”
“보석으로 못 쓴다고?”
뜻밖의 이야기에 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렇습니다. 흠집이 있거나 투명도가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흐음.”
상자에 들어 있는 원석을 하나 집어 자세히 살펴보자 육안으로도 안에 뭔가 이물질이 같은 것이 보였다.
“P1 이하 등급인 데다 균열이나 흠이 원석 내부에까지 연결된 인클루전Inclusion까지 있어서 보석용으로 쓸 수 없는 것들입니다.”
“얼핏 보기에는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는데 정말 아쉽군.”
상자에 든 원석들이 전부 보석용이었다면 정말 어마어마한 가격이었을 거였기에 그는 아쉬운 얼굴로 입맛을 다셨다.
“그만큼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시켜야 되기에 다이아몬드가 비싼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긴.”
김덕현 전무의 이야기에 그는 수긍하듯 머리를 끄덕였다.
“보석이 되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공업용으로 쓸 수 있으니 이것들도 나름 가치가 있습니다.”
하지만 실망이 큰지 혁권의 얼굴에 아쉬움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자 김덕현 전무는 뒤에 있는 금고에서 손바닥보다 조금 큰 상자를 하나 더 가지고 왔다.
상자를 열자 역시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을 받아 환하게 빛나는 다이아몬드 원석이 들어 있었다.
처음 본 것보다 개수가 적지만 그래도 30개는 넘어 보였다.
“이건 또 뭔가?”
“VS(Very Slightly) 등급 이상에 색깔과 무게도 충분히 나가는 보석용 다이아몬드 원석들입니다.”
김덕현 전무가 원석 가운데 가장 큰 걸 하나 집어서 그한테 건네줬다.
15캐럿은 훌쩍 넘어갈 것 같은 다이아몬드 원석은 확실히 아까 본 공업용하고 달리 내부가 깨끗하고 광택이 났다.
“정말 빛깔부터 다르군.”
“귀한 다이아몬드 원석 가운데서도 고르고 고른 것들이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요.”
김덕현 전무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면서 계속 이야기를 이어 갔다.
“지금까지 채굴한 결과를 보면 대략 보석과 공업용의 비율이 4 : 6 정도인 걸로 나오는데 다른 광산하고 비교해 봐도 아주 높은 수치입니다.”
“그만큼 경제성이 좋다 이거지.”
“맞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혁권은 손에 든 다이아몬드 원석을 가만히 내려다보면서 얼굴 가득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잠시 휴식을 취한 혁권은 광산을 운용하는 핵심 인물들과 저녁 식사를 했다.
김덕현 전무와 태영준 팀장 그리고 정찰을 나갔다가 막 돌아온 래리가 참석했다.
보급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걸 보여 주듯 음식이 상당히 다양하게 차려졌는데, 프랑스산 와인도 한 병 놓여 있었다.
특히 닭고기 훈제 요리가 일품이었는데 그는 한쪽 손에 닭다리를 들고 맛있게 뜯어 먹었다.
태영준 팀장과 용병대를 이끄는 래리도 멀리 나갔다 오느라 배가 고팠는지 게걸스럽게 식사를 했다.
그렇게 배가 어느 정도 채워지자 혁권은 유리잔에 든 와인을 한 모금 마시고는 왼편에 앉은 래리를 보며 말했다.
“요즘 정찰을 자주 나간다고 하던데 광산 주변 상황이 어떻소?”
상체를 바로 한 래리는 입가에 묻은 소스를 냅킨으로 닦아 내고는 대답했다.
“근처에 있던 반군 병력이 몽땅 다 코이두로 몰려가 버려서 그런지 가끔씩 출몰하는 강도떼나 탈영병 무리를 제외하곤 아주 조용한 편입니다.”
“반군이 국경 지역을 다 비웠다는 것이오?”
“움부야 소장이 코이두를 노린다고 하니 그걸 막기 위해서 부랴부랴 병력을 집결시키고 있는 거지요. 한동안 반군이 주변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병사로 쓸 남자를 닥치는 대로 마구 끌고 가는 바람에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옆에 있던 김덕현 전무가 약간 굳은 얼굴로 말을 덧붙였다.
“사실입니다. 그 때문에 인근 주민들이 반군을 피해 저희 광산 근처로 몰려드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수송대와 함께 광산으로 오면서 지나친 마을에 그가 알던 것보다 주민들이 많았던 것 같기도 했다.
“전투는 마케니Makeni를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고 움부야 소장의 근거지도 여기서 먼 북부 지역이지 않았나?”
“맞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왜 코이두를 공격한다는 거지?”
래리는 와인 병을 들어 자신의 잔에 따르면서 담담하게 말했다.
“다이아몬드 때문이지요.”
“아…….”
시에라리온에서도 다이아몬드 매장량이 많기로 유명한 곳이라는 걸 떠올린 혁권은 낮게 탄성을 내뱉었다.
“내전이 길어질 것 같자 군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움부야 소장이 코이두에 위치한 다이아몬드 광산을 확보하려는 거고, 반군 역시 같은 이유로 도시를 지키려는 겁니다. 아마 조만간 큰 전투가 벌어질 겁니다.”
내전에 휘말려 많은 사람들이 아무런 잘못도 없이 죽어 나갈 걸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문제는 여파가 저희한테까지 미칠 수 있다는 겁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양쪽이 보유한 전력으로 볼 때 반군이 패할 가능성이 높은데, 그렇게 되면 코이두에서 밀려난 패잔병들이 이리로 쫓겨 올 테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저희와 충돌이 벌어지지 않겠습니까.”
혁권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군자금 확보가 급한 반군과 군부 세력에 이곳은 아주 탐나는 먹잇감으로 생각될 겁니다.”
이미 한차례 반군을 격퇴시켜 만만치 않다는 걸 보여 줬지만 상황이 다급해지면 그런 걸 생각할 여유가 없을 터였다.
이제 겨우 광산이 자리를 잡아 가는데 또다시 전투를 치르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그는 미간을 찡그렸다.
다이아몬드 광산을 개발하기로 마음먹었을 때부터 어느 정도 각오한 일이기는 했어도 상황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다.
여기 함께 앉아 식사를 하고 있는 사람이 목숨을 잃어버릴 수도 있고 최악의 경우 광산 자체를 빼앗기게 될지도 몰랐다.
제아무리 매장량이 풍부하고 경제성이 높아도 이런 식으로 계속 적대 세력의 위협이 계속된다면 다이아몬드 광산을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뭔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한 시점이었지만 그건 나중 문제고 지금은 당장 눈앞에 닥친 위협부터 이겨 내는 것이 급했다.
혁권은 사뭇 진지한 얼굴로 래리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대책은 세워 뒀소?”
김덕현 전무와 태영준 팀장도 있었지만 광산 경비를 맡은 용병대 지휘관이 래리였기에 그한테 질문을 하는 거였다.
래리는 몸을 뒤로 살짝 기대면서 대답했다.
“방어를 단단히 굳힌 상태에서 전황을 주시하다가 변하는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대처할 생각입니다.”
틀에 박힌 듯 뻔한 대답에 그는 약간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 딱히 다른 방법도 없다는 걸 알았기에 이내 얼굴을 펴며 말했다.
“위협이 있는 만큼 광산 경비에 더욱 신경을 써 주시오.”
“염려 마십시오.”
이야기가 마무리되자 조금 가라앉은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김덕현 전무가 자연스럽게 다른 화제를 꺼냈다.
“아까 낮에 보여 드린 공업용 다이아몬드 원석들을 처분하려는데, 사장님 생각은 어떠십니까?”
“나야 당연히 찬성인데 마땅한 매수처가 있소?”
“제가 예전에 몸담고 있던 회사와 거래하던 곳 중에 공업용 다이아몬드 원석을 취급하는 업체가 있어 접촉을 해 봤는데 긍정적인 답변이 왔습니다.”
“가격은 어떻게 하기로 했소?”
“국제 시세대로 거래하는 걸로 이야기가 됐습니다.”
어차피 앞으로 광산이 정상 가동되면 공업용 다이아몬드 원석이 계속해서 나올 테니, 그냥 움켜쥐고 있는 것보다 적당한 거래처를 찾아 판매하는 게 여러모로 이익이었다.
“이왕이며 지속적으로 원석을 거래할 수 있으면 좋은데…….”
“그 부분도 이야기를 했는데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물론 가격을 조금 낮추는 조건이 붙었지만 말입니다.”
장기 계약을 맺는다면 약간 손해를 본다고 해도 나쁘지 않았다.
“협상을 해서 괜찮다 싶으면 알아서 계약을 맺도록 하시오.”
“그래도 되겠습니까?”
“김 전무의 능력을 믿소.”
혁권이 강한 신뢰를 보이자 김덕현 전무는 살짝 부담스러워 하면서도 싫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말씀을 하시니 손해가 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이후로도 대화가 계속 이어졌지만 비교적 가벼운 내용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