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awaited RAW novel - Chapter 359
359
알레포 주변 IS 거점들을 폭격하려는 여러 대의 터키와 미군 전투기들이 시리아 영공에 들어와 있어 통제관의 신경을 곤두서게 만들었다.
“그래도 시리아 정부군을 공격할 낌새는 없어서 다행이군. 스크램블Scramble 기체는 대기하고 있지?”
통제관의 물음에 하사관 한명이 고개를 뒤로 돌리면서 대답했다.
“SU-27 플랭커Flanker 두 대가 활주로에 대기 중입니다.”
서방의 최신 전자 기술을 대거 도입해서 제작한 방공, 장거리 요격기인 SU-27이라면 미군 전투기들과 충분히 맞상대를 할 수 있었다.
“언제든지 긴급 상황이 벌어질 수 있으니까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으라고 그래.”
“알겠습니다.”
전투 복장을 모두 갖춘 채 대기실에서 하염없이 앉아 있어야 되는 조종사들에게 미안한 일이었지만 상황이 이러니 어쩔 수가 없었다.
팔짱을 낀 채 통제관은 레이더 화면이 떠 있는 모니터를 가만히 주시했다.
초록색 스크린 위에는 항공기를 표시하는 점들이 반짝이고 있었는데, 특히 시리아 북부에 대부분이 집중되어 있었다.
서로간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서 항공기를 띄울 때마다 미리 상대편에 통보를 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좁은 공역에 여러 대의 항공기들이 얽혀 있는 만큼 돌발 상황이 언제든 발생할 수 있어 긴장을 풀지 못했다.
그렇게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통제관이 눈썹을 찌푸리면서 입을 열었다.
“저건 뭐야? 터키에서 따로 통보해 준 것 있었나?”
통제관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에는 작은 점 하나가 지중해 쪽에서 불쑥 나타나 시리아 내륙을 향해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글쎄요. 아무런 이야기가 없었는데…….”
말끝을 흐린 하사관은 황급히 마우스를 움직여서 새로 출현한 표적의 정보를 확인했다.
“어? 이건 전투기가 아니라 수송기 같습니다.”
“수송기라고?”
“예. 기종은…… AN-26기로 추정됩니다.”
이야기를 들은 통제관의 미간이 좁아졌다.
“그러면 아군기라는 거야?”
책상에 올려 둔 서류철을 펼쳐서 훑어본 하사관은 머리를 갸웃거렸다.
“비행 스케줄 표에 등록되어 있는 건 없습니다만…… 응? 피아식별장치Identification friend or foe equipment가 작동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아군기가 맞는 것 같습니다.”
통제관이 미간을 찡그렸다.
“어떻게 할까요?”
지시를 기다리면서 하사관이 그리 말하자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귀찮다는 듯 툭 내뱉었다.
“그럼 맞는 거겠지. 설마 기계가 실수를 할 리는 없으니까. 헷갈리지 않도록 표시나 정확히 해 둬.”
“알겠습니다.”
통제관은 성가신 일거리를 처리한 것에 스스로 만족하며 제자리로 돌아가 쓴 커피를 다시 들이켰다.
라타키아 기지에 주둔한 러시아 군 방공 레이더에 포착된 항공기는 바로 이반이 조종하는 AN-26 수송기였다.
경유지인 이스켄데룬에 도착해서 연료를 재보급 받은 이반은 곧장 이들리브로 날아가지 않고 지중해로 나갔다가 다시 시리아 서부 해안을 통과하는 경로를 잡았다.
크게 반원을 그리면서 날아가는 경로였기에 직선 구간하고 비교해서 시간과 연료가 두 배나 더 들어갔다.
거기다가 시리아 최대 항구 도시이자 러시아 파견군이 주둔해 있는 라타키아 항구 북쪽 지역을 지나쳐 가야 했기에 자칫 제 발로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꼴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반이 이렇게 위험한 경로를 선택한 건 어차피 국경을 바로 넘어간다고 해도 러시아군의 방해를 받으면 임무를 성공시킬 수 없었기에 아예 같은 편인 것처럼 상대를 속이기 위해서였다.
러시아 군도 바보가 아닌 이상 속인다고 해도 그대로 당할 리가 없었다.
그래서 이반이 준비한 비장의 카드가 있었는데 바로 러시아 공군에서 사용하는 피아식별장치였다.
이걸 달고 간다면 기체까지 러시아제 AN-26이니 상대가 속아 넘어갈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이걸 염두에 두고 있었던 건 아니고 혁권한테 연락을 받고 나서 떠올린 생각이었다.
적아를 구별하는 용도로 쓰이는 중요한 부품인 만큼 보안 물품으로 분류되어 있는 피아식별장치를 구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소련 붕괴 이후 군기가 문란해지고 장교부터 병사들까지 돈맛을 알게 되자 암시장에서 구하지 못할 물건이 없었다.
피아식별장치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함단에게 부탁해서 5만 달러에 은밀히 빼돌려진 부품을 구해 출발 직전에 부착할 수 있었다.
기대한 대로 피아식별장치 덕분에 러시아 군의 눈을 멋지게 속일 수 있었다.
“벌써 시리아 영공을 60킬로미터 이상 들어왔는데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걸 보면 정말 녀석들이 속아 넘어간 것 같은데요.”
조종간을 잡고 있던 이반은 옆자리에 앉은 알란의 이야기에 머리를 작게 끄덕였다.
“거봐, 내가 뭐라고 그랬어.”
우쭐하며 말했지만 사실 이반 역시 속임수가 들통날까 봐 내심 조마조마해하고 있었다.
실패한다면 자신뿐만 아니라 수송기에 타고 있는 동료들까지 전부 다 위험에 처하게 만드는 거였기에 더욱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정말 피아식별장치 하나 달았다고 아무런 의심도 안 하다니 다행이기도 하지만 정말 어처구니가 없네요.”
“미군 말고는 적수가 될 상대가 없으니까 긴장이 풀린 거겠지.”
속임수가 통한 건 다행이었으나 한때 러시아 공군에 몸을 담고 있었던 만큼 이반은 너무나도 허술한 경계에 쓴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하긴 시리아 영공에서 누가 러시아군을 공격하겠습니까.”
시리아에서 러시아군을 상대할 수 있는 건 미군 정도밖에 없었는데, 두 세력이 부딪친다면 그건 3차 세계대전의 시작을 의미했다.
동의하듯 작게 머리를 끄덕인 이반은 손목에 찬 시계를 확인하고는 말했다.
“이 상태로 간다면 10분 정도면 이들리브에 도착하겠군.”
그러자 알란이 고개를 돌려 이반을 보면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2시간 정도면 해가 질 텐데 괜찮을 까요?”
일반 도로를 비상 활주로처럼 사용해서 이착륙을 해야 되기 때문에 어두워지면 시야를 확보할 방법이 없는 걸 염려하는 거였다.
아직 시간이 있어 착륙은 문제가 없겠지만 하역 작업이 늦어져서 해가 떨어져 버린다면 문제가 심각했다.
무리하게 이륙을 시도하다가 자칫 도로를 이탈했을 때는 대형 사고가 날 수 있었다.
이반 역시 그걸 모르지 않았다.
“쯧. 이스켄데룬에서 급유가 늦어지는 바람에 시간을 너무 많이 까먹었어.”
원래 계획대로라면 1시간 안에 급유를 끝내고 떠나야 했지만, 급유차가 늦게 오고 공항 관제탑에서 이륙 차례를 자꾸 뒤로 미루는 바람에 예정보다 2시간이나 더 지체되고 말았다.
그 때문에 비행을 포기하고 그냥 안전하게 다음 날 출발하는 걸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급한 혁권의 상황을 고려해서 위험을 각오하고 비행을 강행했다.
“조금 시간이 빡빡하기는 해도 하역 작업을 빨리 끝낸다면 늦지 않게 이륙할 수 있을 거야.”
“그러길 바라야겠지요.”
희망적으로 들리길 원했으나 불안감이 가슴 한쪽을 무겁게 짓누르는 마음은 감출 수가 없었다.
대화가 끊어지자 두 사람 다 수다를 떨 기력은 없는 듯 조종석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감돌았다.
열기를 품은 건조한 바람이 마른 대지를 훑고 지나갔다.
사막을 연상케 하는 끝없이 펼쳐진 들판.
내리쬐는 태양빛을 피할 건물이나 천막도 하나 없이 그저 어디까지고 쭉 뻗어 나간 오래된 도로 하나만이 존재할 뿐인 삭막한 장소였다.
혁권은 도로 한쪽에 세워진 픽업트럭 화물칸에 올라서서 쌍안경으로 눈이 시리도록 푸른 하늘을 관찰했다.
“보스.”
자말의 목소리에 그는 쌍안경을 눈에서 떼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작업이 다 끝났습니다.”
곡괭이와 삽을 들고 도로 양옆에 모여 있는 인부들을 쳐다본 혁권은 작게 머리를 끄덕였다.
“제때 마무리를 지을 수 있을지 걱정이었는데, 다행이군.”
“그리 단단한 지반이 아니라서 금방 땅을 팔 수 있었습니다.”
잠깐 머뭇거린 자말이 얼굴을 굳히며 말을 이었다.
“시리아 정부군과 러시아군의 방공망을 뚫고 수송기가 여기까지 무사히 올 수 있을까요?”
“온다고 했으니까, 말을 지킬 거야.”
솔직히 혁권 역시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이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기에 이반이 화물을 싣고 나타나기만을 기도할 뿐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담배를 꺼내 입에 물던 혁권은 등 뒤에서 들리는 은은한 폭음에 이맛살을 찌푸렸다.
“아침보다 소리가 더 가까워진 것 같군.”
자말이 지포라이터를 켜서 담배에 불을 붙여 주면서 말했다.
“정부군이 취수장뿐만 아니라 시가지에도 포격을 시작한 모양입니다.”
포격을 한다는 건 곧 지상군 투입이 임박했다는 뜻이었다.
혁권은 힐끗 약간 떨어진 곳에서 반군 병사들한테 뭐라고 지시를 내리고 있는 압둘 대위를 쳐다보며 하얀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아직 별다른 말이 없지?”
그러자 뭘 묻는 건지 바로 알아차린 자말이 작게 머리를 끄덕이고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하지만 정부군이나 쿠두스가 이쪽으로 진격해 오고 있더라도 화물을 넘겨받기 위해서 제대로 이야기를 해 주지 않을 겁니다.”
“그렇겠지.”
정부군의 대규모 공세를 막아 내야 되는 반군 입장에서는 이반이 가져오는 화물이 너무나도 절실하게 필요했기에 어떻게든 수송기를 착륙시키려고 할 것이 뻔했다.
계획이 실패하면 그의 목숨도 장담하기 어려웠기에 정부군이 나타나기 전에 일을 모두 끝내고 여길 빠져나갈 수 있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때 안주머니에 넣어 둔 위성전화기 벨이 시끄럽게 울렸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혁권은 반쯤 피운 담배를 바닥에 버리고는 황급히 위성전화기를 꺼내 안테나를 펼치고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이반, 자넨가?”
-하하하. 목소리를 들으니 절 많이 기다리신 모양입니다.
위성전화기 스피커를 타고 들리는 이반의 목소리에 그는 반색을 하며 말했다.
“지금 어디야?”
-머리 위를 보십시오.
“……?”
반사적으로 머리를 들자 멀리서 비행기 엔진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이내 하얀 구름 사이로 그토록 기다리던 AN-26 수송기가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정말 왔군!”
-제가 온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반이 좋아할지 모르겠지만 앞에 있으면 포옹이라도 해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지금 바로 착륙해도 괜찮겠습니까?
“그래. 붉은 깃발을 세워 둔 곳부터 도로를 깨끗하게 치워 놨으니까 안심하고 내려오도록 해.”
-알겠습니다. 그럼 조금 있다가 뵙도록 하지요.
통화를 끝내자 어느새 앞으로 다가와 있던 압둘 대위가 약간 상기된 얼굴로 다그치듯 물었다.
“저 비행기에 화물이 실려 있는 거요?”
“그렇소.”
혁권의 대답에 압둘 대위는 지휘부에 상황을 보고하기 위해서 허리에 차고 있던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
“약속한 대로 화물을 가져왔으니 병원에 있는 샤레프를 이리로 데려다주시오.”
고개를 돌린 압둘 대위는 이내 떨떠름한 얼굴로 대답했다.
“알았소.”
압둘 대위가 멀어지자 그는 다시 쌍안경을 눈에 가져다 대고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수송기를 바라봤다.
“이제 착륙한다. 다들 꽉 잡고 있어.”
기내 통신망으로 승무원들한테 경고를 한 이반은 조종간을 내밀면서 천천히 수송기를 아래로 하강시켰다.
커다란 방풍창 너머로 허허벌판 사이에 나 있는 아스팔트 도로가 시야에 들어왔다.
다행히도 직선 구간이 상당히 길어서 착륙 거리는 충분히 확보되어 있었지만 문제는 도로 상태였다.
통화를 했을 때 혁권이 괜찮다고 했지만 까딱 잘못해서 착륙 도중에 바퀴가 부러지거나 다른 이상이 생기면 큰일이었기에 마음을 놓지 못했다.
“후우.”
이반은 입안에 바짝 마르는 걸 느끼면서 자신도 모르게 숨을 깊게 내뱉었다.
속도를 줄이면서 내려온 수송기는 이내 희뿌연 흙먼지를 일으키면서 도로에 내려앉았다.
터엉. 끼이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