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awaited RAW novel - Chapter 367
367
다른 수송기로 옮겨 실린 유물들은 스위스로 보내져 거기서 압둘라흐만 측에서 구해 온 전문가한테 정밀 감정을 받았다.
띠리릭. 띠리릭.
밤새 계속된 정부군과 반군의 교전에 아침이 되어서야 겨우 잠이 들었던 혁권은 시끄럽게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몸을 뒤척이면서 침대에서 일어났다.
손목에 찬 시계를 확인하자 이제 막 오전 10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제기랄. 3시간 정도밖에 못 잤군.”
푹 쉬지를 못해서 그런지 온몸이 뻐근하고 무거웠다.
어제 반쯤 먹고 침대 머리맡에 놔 둔 생수를 집어서 두세 모금 마신 혁권은 그때까지 시끄럽게 울리고 있는 위성전화기를 주워 들었다.
그러고는 통화버튼을 누르고 위성전화기를 귀에 가져다 댔다.
“여보세요.”
-미스터 김, 자넨 정말 행운아군.
위성전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압둘라흐만의 들뜬 목소리에 그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객실 한쪽에 있는 소파로 가서 앉으면서 묻자 압둘라흐만이 웃으면서 이야기를 했다.
-자네가 보내 준 유물들 말이야.
“예.”
-시간이 없어서 몇 개밖에 감정을 못 했지만 전부 다 값어치가 아주 높고 구하기 어려운 것들이라는군.
“그거 반가운 소식이군요.”
기껏 위험을 감수하고 넘겨받은 유물이 그저 그런 것들이라면 상당히 화가 났을 텐데 아니라고 하니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감정을 다 끝내 봐야 되겠지만 1천만 달러 정도는 너끈하게 챙길 수 있을 것 같네.
그 정도면 반군한테 넘겨줄 물품 값을 빼고도 꽤 많은 이익을 챙길 수 있었다.
“기대 이상이군요.”
-후후후. 자넨 아직 잘 모르겠지만 귀한 유물이나 미술품에 대한 수요는 항상 차고 넘칠 정도라네. 물건을 구하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일단 내놓기만 하면 파는 건 문제가 아니지.
“그렇군요.”
-오죽했으면 IS의 주요 자금원이 원유 판매와 유물 밀수출이겠나.
우상숭배라는 이유로 점령지에 산재한 고대 유물들을 무차별적으로 파괴하는 한편 박물관과 유적지에서 수거한 대량의 유물을 몰래 반출시켜서 운영비를 벌어들이는 이중적인 행태를 IS가 하고 있다는 건 그도 오래전부터 알던 사실이었다.
오죽했으면 유적지를 파괴하는 것이 종교적인 이유가 아니라 유물을 밀매한 증거를 없애려는 거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였다.
“나중에 문제가 될 일은 없겠지요?”
-이런 거래를 한두 번 하는 것도 아니고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으니 아무 염려하지 말게.
“압둘라흐만 씨만 믿고 있겠습니다.”
-그리고 자네가 말한 물품들은 내일 오후까지 모두 이스켄데룬으로 보내질 걸세.
“시간이 촉박했을 텐데 고맙습니다.”
-아닐세. 그것보다 가능하면 이들리브에서 빨리 빠져나오도록 하게. 아무래도 분위기가 심상치가 않아.
혁권이 목소리를 낮추면서 물었다.
“더 나빠질 일이 있습니까?”
그러자 상대가 길게 숨을 내뱉으면서 이야기를 했다.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잘 훈련된 헤즈볼라 민병대 1개 대대 병력이 이들리브로 이동 중이고 수헤일 알하산 소장이 전투에 투입될 수도 있다고 하네.
흠칫 놀란 혁권이 눈에 힘을 주면서 말했다.
“타이거 대령…… 아니, 타이거 장군이 온다는 겁니까!”
-그러네.
“이런…….”
와락 혁권이 이맛살을 구겼다.
타이거는 수헤일 알하산 소장의 별명으로 시리아 정부군 가운데서도 그가 이끄는 군대는 연전전승을 거두면서 반군과 IS에게는 저승사자와도 같은 존재였다.
알라위파Alawites이자 엄청난 전과 덕분에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의 전폭적인 신임과 지원을 받고 있었다.
여러 가지 전과가 있었지만 그중에서 반군과 IS가 나눠서 점령하고 있던 사헤르 가스 유전지대를 단번에 탈환한 일은 위기에 처해 있던 정부군의 숨통을 단번에 트이게 만들었다.
이곳을 통해 가스와 원유를 다시 수출할 수 있게 된 아사드 정부는 내전이 오래 지속되면서 서서히 바닥을 보이던 재정을 회복하고 막대한 전쟁 비용을 충당하게 됐다.
이런 인물이 온다니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타이거 장군은 팔미라에서 IS와 교전을 벌이고 있지 않습니까?”
팔미라는 고대 유적지이자 수도인 다마스커스로 직행하는 고속도로가 지나가는 중요한 길목이었기에 양측 모두 꼭 차지하려는 전략 요충지였다.
-터키군이 국경을 넘어가 락까Raqqa로 진격해 들어가니까 본거지가 공격받게 생긴 IS가 팔미라 탈환을 포기하고 병력을 이동시키는 바람에 여유가 생긴 모양이야.
시리아 중북부 지역에 위치한 락까는 자칭 이슬람국가(IS)의 수도였기에 여길 먼저 지키려고 드는 것이 당연했다.
-최정예 병력을 놀릴 이유가 없었던 시리아 정부가 터키와 IS가 부딪치는 틈을 이용해 이들리브를 포함해서 서북부 반군 점령지를 전부 회복하려고 타이거 장군의 부대를 비롯해 병력을 총집결시키는 것 같네.
“으음.”
갈수록 악화되는 상황에 혁권은 낮게 침음을 흘렸다.
-재작년에 지슈르 앗슈구르에서 반군 연합체한테 당했던 패배를 설욕하기 위해 타이거 장군도 이를 갈고 있을 테니 이들리브를 지켜 내기가 쉽지 않을 거야.
일명 북서부 대공세로 불리는 이 전투에서 타이거 장군을 상대하기 위해서 그동안 반목하던 3개 반군 조직이 서로 힘을 합쳐 정부군에게 파상 공격을 퍼부었다.
3개월에 걸친 전투에서 타이거 장군은 측근 경호원까지 저격을 받아 목숨을 잃어버릴 정도로 큰 타격을 받고 치욕적인 퇴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서 이들리브를 비롯한 시리아 서북부 일대가 반군의 손에 완전히 들어가 버리게 됐다.
정부군이 후퇴를 거듭하면서 한때 러시아 기지가 있는 라타키아 북부 인근까지 반군이 진격해 왔으니 타이거 장군으로서는 절대 잊을 수 없는 패배였다.
-그러니까 이번 거래가 끝나면 어떻게 해서든 거길 빠져나와야 된다는 걸세. 내 말 알겠나?
“명심하도록 하죠.”
잠시 더 이야기를 나눈 뒤 통화를 끝낸 혁권은 위성전화기를 내려놓고도 딱딱하게 굳은 표정을 좀처럼 펴지 못했다.
그러고는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최정예인 타이거 부대까지 온다면 이들리브 함락은 시간문제군.”
새삼 길게 시간을 끌지 않고 이반의 의견을 받아들여서 화물 운송을 하루에 다 몰아서 하기로 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만약 그러지 않았다면 탈출로가 막힌 채 도시 안에서 꼼짝달싹 못하는 신세가 됐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한동안 생각을 거듭하던 혁권은 복잡해진 머리를 식힐 겸 욕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호텔 전체가 단수였기 때문에 시험 삼아 틀어 본 수도꼭지에서도 물 한 방울 떨어지지 않았다. 혁권은 한숨을 쉬고 옆에 미리 물을 받아 둔 것으로 세수를 했다.
마음 같아선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싶지만 지금같이 물이 귀할 때는 세수를 할 수 있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해야 했다.
이마 위로 몇 가닥씩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면서 거울에 비친 제 얼굴을 잠시 살핀 혁권은 그나마 깨끗한 수건을 한 손에 들고 나왔다.
몇 분 전보다 훨씬 개운해진 기분으로 얼굴의 물기를 닦으면서 아무 생각 없이 창가에 기대 바깥을 바라보는데, 폐허에서 뛰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무너진 콘크리트 잔해와 녹슨 철근 들이 그대로 드러나 있어 자칫 넘어지기라도 하면 큰 부상을 입을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그곳이 놀이터인 양 익숙하게 웃으면서 장난질을 치고 있었다.
여전히 도시 외곽에서 폭음이 들려오는 상황에 한쪽에서는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다니 정말 아이러니한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그 광경에 반사적으로 눈살을 찌푸린 혁권은 곧장 문을 열고 맞은편 객실에 머물고 있는 자말의 이름을 소리쳐 불렀다.
“자말, 이리 와 봐.”
그러자 금세 자말이 복도를 건너 그의 방으로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약간 화난 듯한 목소리였기 때문에 자말은 자신이 모르는 사이 안 좋은 소식이 들어오기라도 했나 싶어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카바트 사령관을 만나러 갈 거니까. 차를 준비해 놓도록 해.”
“알겠습니다.”
대답을 한 자말이 객실을 나가자 혁권은 어깨를 들썩이며 크게 숨을 내뱉고는 침대 머리맡에 놔 둔 권총을 챙겼다.
그러고는 이반한테 받았던 보스턴백을 침대 밑에서 꺼내 탁자에 올려놓고는 지퍼를 열었다.
보스턴 백 안에는 50달러와 10달러짜리 돈뭉치가 한가득 들어 있었다.
얼핏 봐도 족히 수십만 달러어치는 되어 보였다.
달러 뭉치를 하나 꺼내 살펴본 혁권은 다시 보스턴백에 집어넣고는 지퍼를 잠갔다.
잠시 뒤 호텔 앞으로 나가자 차량 두 대가 세워져 있고 자말과 부하들이 무장을 갖춘 채 모두 나와 있었다.
보스턴백을 자말한테 건네주고 뒷좌석에 타려고 할 때 감시조로 붙어 있던 반군 장교가 굳은 얼굴로 다가왔다.
“어딜 가려는 거요?”
그러자 혁권은 고개를 돌려 힐끔 반군 장교를 쳐다보고는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안 그래도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잘 왔소. 카바트 사령관을 만날 일이 있으니 길을 안내하시오.”
사령부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었지만 전투 상황이라 곳곳에 검문소가 설치되고 병사들이 배치되어 있어 반군 장교가 안내를 해 주지 않으면 길을 통과하기가 쉽지 않았다.
당장 호텔 앞에만 해도 모래주머니를 쌓아서 만든 진지에 AK47 자동소총을 어깨에 멘 반군 병사 서너 명이 들어가 있었다.
반군 장교는 작게 머리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잠깐만 기다리시오.”
얼마 안 있어 혁권 일행은 앞뒤로 픽업트럭을 탄 반군 병사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중심가에 위치한 반군 사령부로 향했다.
“도대체 전차를 몇 대나 끌고 온 거야?”
탁자에 펼쳐 둔 커다란 지도를 내려다보면서 카바트 사령관 얼굴을 잔뜩 구긴 채 신음 같은 한숨을 내뱉었다.
혁권이 가져온 재블린 대전차 미사일을 써서 벌써 시리아 정부군 전차 9대를 격파시켰지만 또다시 러시아제 T-72전차 여러 대가 방어선을 위협하고 있었다.
정부군이 도시로 들어오는 상수도 파이프를 파괴하자, 재빨리 취수장을 포기하고 도시 외곽에 전력을 집중시킨 덕분에 수차례 계속된 공격에도 돌파당하지 않고 방어선을 잘 지켜내고 있었지만 피해가 만만치 않았다.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해 몇 개 없는 병원마다 부상병들로 가득 차 병상이 부족할 지경이었다.
거기다 전투가 벌어지자 가뜩이나 부족한 보급품마저 빠르게 소모되고 있어 앞으로 얼마 버틸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려웠다.
불리한 상황을 말해 주듯 며칠째 제대로 쉬지 못한 카바트 사령관은 눈이 붉게 충혈되고 얼굴이 초췌해져 있었다.
“정부군 전차가 서쪽 아파트 단지로 난입해 들어오고 있다는 보고입니다.”
부관의 말에 카바트 사령관은 한쪽 뺨을 실룩이면서 지시를 내렸다.
“거기가 뚫리면 서쪽 방어선 전체가 위험해져.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 내라고 해!”
“병력 피해도 크고 무엇보다 대전차 미사일을 비롯한 중화기가 부족해서 방어가 쉽지 않을 겁니다.”
“제길!”
자신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은 카바트 사령관은 잠시 고심을 하다가 이내 고개를 들면서 말했다.
“체육 경기장에 있는 병력 일부와 중기관총을 탑재한 픽업트럭 두 대를 빼서 이쪽으로 돌리도록 해.”
“그러면 60번 도로에 대한 방어가 취약해 질 겁니다.”
“당장 여기가 뚫리게 생겼는데 어쩔 수가 없잖아. 일단 급한 불부터 꺼야지!”
“그런 거라면 예비대로 빼 둔 병력이 있지 않습니까.”
말을 듣자마자 카바트 사령관이 단호하게 머리를 흔들었다.
“예비대는 안 돼. 더 위급한 순간을 위해서 아껴 둬야 돼.”
“후우. 알겠습니다.”
부관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몸을 돌려 한쪽에 앉아 있는 무전병들한테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