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awaited RAW novel - Chapter 366
366
얼마 뒤, 기다리던 수송기가 하늘에 떠 있는 하얀 구름 사이로 나타나서는 지상을 향해 천천히 고도를 낮췄다.
이미 한번 해 봤기 때문인지 처음보다 훨씬 안정적으로 아스팔트가 깔린 도로 위에 수송기가 내려앉았다.
“보스.”
아래로 내려진 후방 램프를 통해 수송기에서 나온 이반이 주위를 둘러보다가 그를 발견하곤 곧장 다가왔다.
“어서 와.”
혁권은 이를 드러낸 채 이반을 가볍게 껴안으며 반겼다.
“이번에도 무사히 잘 도착했군.”
이반이 약간 떨어진 곳에 서 있는 반군들을 힐끗 쳐다보곤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그러자 혁권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보다시피. 그것보다 오는 데 어렵지 않았나?”
“중간에 시리아 정부군 전폭기하고 가볍게 조우를 했습니다만 다행히 러시아군인 줄 알고 인사까지 하며 지나가더군요.”
“그런 일이 있었군.”
별거 아닌 듯이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를 하지만 자칫 정체가 발각됐다면 그대로 격추되어 버릴 수도 있었던 아주 위험한 순간이었다.
얼마나 긴장했을지 굳이 말을 듣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향을 돌리지 않고 여기까지 온 것에 혁권은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솔직히 이반과 수송기 승무원들은 그를 따르기로 한 것이 얼마 되지 않았기에 지시를 거부하고 떠난다 해도 할 말이 없었을 거였다.
온갖 위험이 가득한 시리아 영공을 그것도 한 번도 아니고 여러 차례 오가는 건 보통 배짱이 아니면 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랬기에 함께한 시간이 짧았음에도 불구하고 혁권은 이반을 크게 신뢰하게 됐다.
“그리고 이건 함단이 보스께 전해 드리라고 한 겁니다.”
손에 들고 있던 검은색 보스턴백을 내밀자 옆에 서 있던 자말이 얼른 대신 받았다.
“잘 받았다고 전해 줘.”
“예.”
개미 떼처럼 달라붙어 수송기에서 화물을 내리고 있는 반군 병사들을 보면서 혁권이 말했다.
“수송해야 될 화물이 늘어났다는 이야기는 들었겠지?”
“오기 전에 함단이 말을 하더군요.”
살짝 굳어진 얼굴에 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반을 다독였다.
“이번처럼만 한다면 크게 문제가 없을 거야.”
“지금까지는 잘 속여 넘겼지만 비행이 계속된다면 조만간 상대도 이상하다는 걸 눈치챌 겁니다. 그래서 드리는 이야기인데, 화물을 이렇게 찔끔찔끔 가져올 게 아니라 짧은 시간 동안 한꺼번에 다 옮겨 오는 것이 어떻습니까?”
“나도 그랬으면 좋겠지만 수송기에 탑재할 수 있는 화물 중량이 제한되어 있잖나.”
그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기다렸다는 듯 이반이 말을 받았다.
“탑재량이 부족한 건 비행 횟수로 만회를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설마 쉬지 않고 계속 왕복을 하겠다는 거야?”
눈을 크게 뜨면서 묻자 이반이 머리를 끄덕였다.
“이스켄데룬에서 여기까지 90킬로미터가 채 안 되니까 무리를 한다면 하루에 다섯 번까지도 수송이 가능할 겁니다.”
“너무 위험해.”
“며칠에 걸쳐 나눠서 비행을 하는 것이나 하루에 몰아서 끝내 버리는 거나 위험한 건 다 똑같습니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시리아 정부군이나 러시아군한테 노출될 가능성이 더 클 겁니다.”
“으음.”
맞는 말이었다.
아무리 비밀로 한다고 해도 정보가 새어 나갈 수밖에 없었고 수송기가 계속 들락날락한다면 라타키아 기지에 위치한 러시아 방공 기지에서도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 분명했다.
덩치가 커다란 수송기가 움직이는 걸 끝까지 들키지 않길 바라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거였다.
한쪽 손으로 듬성듬성 수염이 난 턱을 매만지면서 그가 고심하자 이반이 재차 그를 설득했다.
“화물을 낙하산으로 투하하는 거니까 오히려 지금보다 부담이 덜할 겁니다. 그리고 정부군의 공세가 계속된다면 반군이 언제까지 수송기를 착륙시킬 장소를 지켜 낼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지 않겠습니까.”
“정말 할 수 있겠어?”
“못할 것 같았으면 아예 말을 꺼내지 않았을 겁니다.”
“어떻게 생각해?”
옆으로 고개를 돌리면서 묻자 가만히 대화를 듣고 있던 자말이 작게 머리를 끄덕이면서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반의 말대로 상황이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 할 수 있다면 가능한 한 빨리 일을 끝내고 여길 벗어나는 것이 나을 겁니다.”
확실히 교전이 점점 격렬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리브에 오래 머물러서 좋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
이내 결정을 내린 혁권이 앞에 있는 이반을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좋아. 그렇게 하도록 하지.”
“잘 생각하셨습니다.”
“몸도 힘들겠지만 언제 정체가 발각될지 모르는 만큼 각오를 단단히 해야 될 거야.”
그러자 이반이 다부진 얼굴로 대답했다.
“알고 있습니다.”
수송기에 적재된 화물을 다 내리고 유물을 포장한 나무 상자를 다시 옮겨 싣는 데 거의 2시간이 걸렸다.
화물이 많기도 한 데다 지게차 하나 없이 전부 인력으로 움직이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이리저리 흔들리지 않게 화물을 단단히 고정까지 다 시킨 수송기는 쭉 뻗은 도로를 힘차게 달려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산등성이 너머로 붉은 노을이 졌지만 지난번하고 달리 아직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이라 수송기가 이륙하는 데 그리 큰 지장은 없었다.
무사히 이륙한 수송기가 금방 구름 저편으로 사라지자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혁권이 차 문을 열고 사륜구동 차에 올라타면서 말했다.
“이제 출발해.”
“옛.”
그를 태운 사륜구동차가 시끄러운 엔진 소리를 내면서 움직이자 화물을 가득 실은 트럭 세 대를 가운데 두고 다른 차량들도 뒤따라 시가지를 향해 달려갔다.
한편 혁권 말고도 작은 점이 되어 멀어지는 수송기를 주시하는 시선이 하나 더 있었다.
모래바람을 막기 위해서 머리에 케피야Keffiyeh를 쓰고 먼지가 잔뜩 묻은 군복을 입은 사내가 커다란 바위 위에 서서는 한참 동안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가 눈에 쌍안경을 대고 있다가 아래로 내렸다.
턱수염이 잡초처럼 지저분하게 나 있는 사내는 놀랍게도 쿠두스 지휘관인 테흐칸 대령이었다.
눈을 가늘게 뜬 테흐칸은 수송기가 사라진 방향에서 시선을 거두지 못한 채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저건 대체 어디서 나타난 거지?”
그러자 뒤에 서 있던 부관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했다.
“기종은 러시아제 AN-26 같습니다만…….”
러시아제 수송기는 서방 비행기하고 외관에서 확연히 차이가 있을 뿐만 아니라 무려 1,500대 이상 생산된 AN-26은 이란에서도 사용되고 있었기에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럼 저게 러시아 비행기란 거야?”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서 묻자 부관이 대답했다.
“그게 아니라면 저렇게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겠습니까.”
“흐음.”
미국이 국내 문제로 인해서 주춤하고 있는 사이에 시리아 하늘은 정부군과 러시아가 거의 장악하고 있었다.
터키 항공기들이 가끔씩 날아와 폭격을 하고 있었지만 그건 사전에 이쪽의 양해를 받아 IS 점령지에 한해서 제한적으로 이루어지는 공격일 뿐이었다.
이런 상황이니 이들리브 하늘을 날아다니는 항공기는 시리아 정부군 아니면 러시아 기체라고 보는 것이 맞았다.
하지만 여러 가지 납득할 만한 요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꾸만 마음속에 걸리는 가시 같은 것을 느꼈다.
“아군이라면 이들리브에서 비행기가 날아오를 리가 없잖아.”
“…….”
잠시 말문이 막힌 부관이 약간 자신 없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혹시 저공 폭격을 하고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요?”
말을 듣자마자 테프칸이 콧방귀를 뀌었다.
“흥. 폭음은 고사하고 연기도 피어오르지 않는데 폭격을 한 거라고.”
스스로 생각해도 앞뒤가 안 맞았기에 부관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뭐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러자 잠시 멀리 보이는 이들리브 시가지를 쳐다보던 테프칸이 눈을 번들거리면서 입을 열었다.
“반군 놈들한테 물자를 공급하는 것이 분명해.”
부관이 설마 하는 얼굴로 말했다.
“이들리브에는 공항은 고사하고 임시 활주로조차 없는데 어떻게 커다란 수송기가 뜨고 내린다는 말씀이십니까?”
“이착륙을 하는 데 꼭 활주로가 있어야 된다는 법은 없지.”
“그게 무슨…….”
테프칸이 한쪽 팔을 들어 산등성이 아래에 나 있는 도로를 가리켰다.
“저 정도면 충분히 활주로로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나.”
오랫동안 관리가 되지 않아 군데군데 파이고 흙먼지가 쌓여 아스팔트가 뿌옇게 보였지만 직선으로 곧게 뻗은 도로는 수송기가 충분히 뜨고 내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거기까지 생각이 다다른 부관의 얼굴에 당혹감이 떠올랐다.
“짐작하신 것이 맞다면 큰일이지 않습니까?”
수송기 한 대로는 싣고 오는 물자에 한계가 있었지만 어찌 됐건 외부와 연결된 통로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도시를 포위 공격해서 반군을 고사枯死시키려는 작전에 상당한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이제 서서히 어둠이 뒤덮이기 시작하는 도시를 바라보면서 테흐칸이 지시를 내렸다.
“병사를 배치해서 수송기가 또 나타나는지 감시하고 외곽 방어선을 빨리 무너뜨리고 시가지로 진입하라고 해.”
“알겠습니다.”
부관이 차렷 자세를 취하면서 대답하자 테흐칸은 쌍안경을 한쪽 손에 든 채 몸을 돌려 언덕을 내려갔다.
한편 이들리브를 떠난 수송기는 바다 쪽으로 크게 우회를 해서 날아가 이스켄데룬 공항에 착륙했다.
이스켄데룬 공항에 착륙했을 때는 이미 사방이 어두운 밤이 되어 있었다.
규모가 작은 공항인 데다 일반 여객기 운항이 일찍 끊어지기 때문에 유도등과 관제탑에 켜져 있는 불빛을 제외하곤 그야말로 암흑천지였다.
격납고 앞에 수송기를 멈춰 세우고 이반이 내리자 미리 이집트에서 넘어와 기다리고 있던 함단이 다가왔다.
“고생 많았어.”
약간 지친 얼굴을 한 이반이 턱으로 활짝 열린 후방 램프 안에 가득 쌓여 있는 나무 상자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가져온 화물이 많은데 저건 어떻게 처리할 겁니까?”
“격납고에 잠시 보관했다가 내일 다른 수송기로 옮겨 갈 거니까 신경 쓸 필요 없네.”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한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지게차와 일꾼들이 수송기 쪽으로 가서 하역 작업을 시작하고 있었다.
비행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계속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고 있느라 정신적으로 많이 피곤했던 이반은 안도한 얼굴로 머리를 끄덕였다.
“보스하고 통화를 했어. 계획대로 하려면 체력이 축나서는 안 되니까 다음 비행 때까지 푹 쉬도록 하게.”
“새로 보낼 화물은 언제 다 도착하기로 되어 있습니까?”
그러자 함단이 약간 갈라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틀 뒤면 모든 준비가 끝날 거야.”
48시간이나 발이 묶여 있어야 했지만 이것도 압둘라흐만의 도움까지 받으면서 최대한 서두른 거였다.
“그동안은 딱히 내가 할 일이 없겠군요.”
함단이 작게 머리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근처에 호텔을 잡아 놨으니 여긴 나한테 맡기고 승무원들과 함께 가서 휴식을 취하도록 해.”
지난 며칠 간 제대로 쉬지를 못한 데다 여기에 남아 있는다고 해서 딱히 할 일도 없었기에 이반은 순순히 시키는 대로 했다.
“그러지요.”
피곤했지만 그래도 뒷마무리는 해야 됐기에 화물을 안전하게 다 하역한 뒤에야 이반은 승무원들과 함께 함단이 마련해 준 차량을 타고 호텔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