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awaited RAW novel - Chapter 482
482
무심코 고개를 돌린 노석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콘크리트로 된 지하 주차장 기둥 뒤에서 여러 명의 사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혁권과 부하들이었다.
마치 이리로 내려올 처음부터 알고 기다렸다는 듯이 앞으로 다가와 약간의 거리를 두고 멈추어 섰다.
“어디서 온 놈들이야!”
혁권이 노석대와 시선을 맞추고는 입술 끝을 살짝 올렸다.
“날 찾고 있었던 걸로 아는데.”
바로 그를 알아보지 못한 노석대는 미간을 좁혔다.
그때 혁권의 사진을 본 적이 있는 피흥수가 놀란 얼굴로 황급히 입을 열었다.
“큰형님, 도 사장을 납치해 갔다는 그놈입니다.”
“확실해?”
“예. 주호 형님이 넘겨준 사진을 봤는데 저놈이 분명합니다.”
“이제 내가 누군지 알았나 보군.”
인상을 찡그린 노석대가 그를 째려봤다.
지금처럼 여러 가지로 골치 아픈 일이 많은 시점에 설마하니 혁권이 제 발로 찾아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마치 이쪽을 지켜보고 있기라도 한 듯이 노석대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고 나타났으니 더욱 기가 막혔다.
“내가 보낸 선물은 잘 받았나 몰라.”
“……!”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에 노석대가 퍼뜩 눈썹을 치켜 올렸다.
“설마 네놈이!”
“그러게 사람을 봐 가면서 건드려야지. 미친개처럼 아무나 막 물려고 하면 몽둥이로 맞는 거야.”
“죽고 싶어서 환장을 했구나.”
“어디 할 수 있으면 해 봐.”
혁권의 도발에 이를 부드득 갈아붙인 노석대는 주위에 있는 조직원들을 보며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뭣들 하고 있어! 당장 저 새끼를 내 앞으로 끌어 와.”
“옛.”
험악한 기세를 내뿜으면서 조직원들이 앞으로 나오자 혁권은 여유 가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정리해.”
하킴을 제외한 나머지 부하들이 망설임 없이 뛰어 나갔다.
삽시간에 양쪽이 서로 뒤엉켜서 싸움을 벌였다.
우두머리인 노석대의 경호를 맡고 있는 만큼 제법 주먹깨나 쓰는 이들이었지만, 목숨이 오가는 위험한 상황을 일상생활처럼 겪어 온 혁권의 부하들 상대가 되지는 못했다.
뒤늦게 합류한 지병하 역시 격투기 프로 선수 생활을 할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다.
“아아악!”
“크흑.”
이제 권총 대신에 삼단봉을 쓰는 것에 익숙해진 알아바디와 동료들은 금방 상대를 두들겨서 피투성이로 만들었다.
백성균은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아주 날렵한 동작으로 주먹을 날렸다.
힘이 제대로 실린 주먹질에 가격당한 사거리파 조직원은 얼굴이 온통 피투성이가 된 채 몸을 비틀거렸다.
퍽!
“흐윽.”
낭심을 세게 걷어차 버린 지병하는 상대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몸을 오그라뜨리자 한쪽 손으로 머리카락을 움켜쥐고는 그대로 머리를 박아 버렸다.
조직원들이 일방적으로 당하는 모습에 노석대가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리고는 옆에 있는 피흥수를 보며 소리쳤다.
“멍청하게 보고만 있지 말고 너도 가서 싸워!”
“옛.”
짧게 대답한 피흥수는 긴장한 표정으로 허리에 차고 있던 시퍼렇게 날이 선 사시미를 꺼내 들었다.
부하들이 밀리는 걸 보고 상대가 만만치 않다는 걸 알았기에 섣불리 덤벼들지 않고 신중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절반 가까이 되는 조직원들이 신음을 흘리면서 차가운 바닥에 뒹굴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계속 여유를 부릴 수는 없었다.
마침 백성균이 옆구리를 드러내고 있는 걸 보고 재빨리 달려들면서 사시미를 휘둘렀다.
“형님 옆에!”
지병하의 외침에 고개를 돌린 백성균은 눈을 번들거리면서 덤벼드는 피흥수를 발견하곤 황급히 상체를 뒤로 젖혔다.
그러나 거리가 너무 가까웠기에 상대의 공격을 완전히 다 피하지는 못했다.
츄악!
입고 있던 양복 윗도리가 잘려 나가면서 팔뚝에서 시뻘건 피가 배어 나왔다.
“크윽.”
다행히 부상이 깊지는 않은지 백성균은 사시미를 든 피흥수의 손목을 쳐 내고는 곧바로 당한 걸 배로 갚아 줬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날렵하게 품으로 파고든 백성균은 피흥수의 멱살을 세게 움켜쥐고는 업어치기 기술로 단단한 콘크리트 바닥에 그대로 매다 꽂아 버렸다.
충격을 고스란히 다 받은 피흥수가 몸을 일으키지 못하고 쓰러져 있자 구둣발로 얼굴을 세게 걷어찬 백성균은 오른쪽 팔을 잡아 인정사정없이 옆으로 꺾었다.
“끄아아악!”
뼈가 부러지는 끔찍한 고통에 피흥수는 비명을 크게 내질렀다.
“제길!”
믿었던 피흥수마저 맥없이 제압을 당하자 노석대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이대로 있다가는 위험하다는 생각에 노석대는 재빨리 승용차 뒤를 돌아가 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았다.
열쇠가 키 박스에 꽂혀 있는 걸 확인하고는 지체 없이 시동을 걸었다.
부르르릉.
엔진 소리가 울리자 노석대는 사이드 브레이크를 풀며 한쪽 발로 가속 페달을 밟았다.
“어어!”
타이어가 바닥을 긁는 마찰음에 반사적으로 시선을 돌렸다가 차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는 그 앞에 있던 이들이 서둘러 양옆으로 흩어졌다.
끼이이익.
방향을 틀며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가려고 하자 혁권이 짧게 혀를 옆에 있던 하킴한테 시선을 줬다.
그러자 하킴이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품속에서 권총을 꺼내 방아쇠를 당겼다.
타아앙! 퍼엉.
지하 주차장을 가득 울리는 총성과 함께 한쪽 타이어가 터진 승용차는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다가 두꺼운 콘크리트 기둥을 들이박았다.
꽈아앙.
앞 범퍼가 심하게 부서지고 유리창이 거미줄처럼 깨진 승용차로 백성균이 다가갔다.
벌컥 운전석 차 문을 열자 충돌 순간 터진 핸들 에어백에 얼굴을 처박은 채 작게 신음을 흘리고 있는 노석대가 눈에 들어왔다.
에어백이 터져 큰 부상은 피했지만 안전벨트를 하고 있지 않은 상태였기에 허리와 목에 가볍지 않은 타박상을 입었다.
백성균은 다짜고짜 노석대의 머리를 주먹으로 내려쳤다.
퍽!
“끄윽.”
“개자식. 두목이라는 새끼가 혼자 튀려고 해.”
“으으…….”
고개를 옆으로 돌린 노석대가 사납게 노려보자 백성균이 다시 주먹을 날렸다.
“눈 안 깔아, 이 새끼야!”
얼굴을 피투성이로 만들고 난 뒤에야 백성균은 뒷덜미를 움켜쥐고는 노석대를 거칠게 밖으로 끌어 내렸다.
그러고는 혁권 앞에 데려가서는 정강이를 차서 억지로 무릎을 꿇리고 앉혔다.
다른 조직원들도 모두 제압돼 한쪽에 기죽은 얼굴로 꿇어 앉아 있었다.
“노석대.”
몰골이 엉망이었지만 눈에 살기가 아직 남은 노석대는 고개를 든 채 대답을 하지 않고 그를 노려봤다.
그러자 뒤에 서 있던 백성균이 주먹으로 등을 세게 가격했다.
“큭.”
“대답 안 해!”
힘겹게 몸을 바로 한 노석대는 악문 입술 사이로 이를 부드득 갈면서 독기에 찬 표정을 지었다.
“너 내가 누군지 알고 이러는 거야!”
발악하듯 외치는 소리에 혁권은 피식 웃으면서 상대를 내려다 봤다.
“내가 묻고 싶은 질문이군. 주제도 모르고 아무한테나 이빨을 들이대면 이렇게 되는 거야.”
“이익.”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혁권의 서늘한 눈빛에 눌려 섣불리 덤벼들지 못했다.
“그럼 여긴 장소가 그러니까, 남은 이야기는 천천히 나눠 보자고.”
“날 어떻게 할 셈이냐!”
“그건 네놈 하기에 달렸지. 발에 돌덩어리를 매달고 바다에 버려지기 싫으면 고분고분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좋을 거야.”
“…….”
“뒤로 챙겨 둔 돈이 꽤 될 텐데 이대로 그냥 죽기에는 너무 아깝잖아.”
결코 겁을 주려고 내뱉는 말이 아니라는 걸 느낀 노석대의 등을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한풀이 꺾인 노석대의 얼굴에 그는 고개를 들어 백성균을 봤다.
“저것들을 다 묶어서 차에 다 태워. 뒷정리는 다른 쪽에서 알아서 해 주기로 했으니까 그냥 놔두고.”
“옛.”
노석대를 거칠게 일으켜 세운 백성균은 허튼짓을 하지 못하도록 케이블 타이로 손발을 묶은 뒤 사거리파 조직원들과 함께 승합차에 태웠다.
잔뜩 굳은 표정의 방갑수가 창가로 다가가 커튼을 열자 멀리 보이는 남산 타워 위로 별들이 몇 개 반짝이고 있었다.
몸을 돌려 한쪽 벽에 걸려 있는 시계를 보자 새벽 4시가 막 넘어가고 있었다.
방갑수는 호텔 객실 한쪽에 있는 소파로 가서 길게 몸을 기대며 앉았다.
그러고는 담배를 한 개비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심복인 서필수는 조직원들과 함께 바깥 거실에 머물고 있었다.
혁권이 사거리파를 친다고 하자 괜히 불똥이 튈까 봐 재빨리 시내 호텔에 들어와 이틀째 잠수를 타고 있는 중이었다.
단번에 올림픽파를 박살 내고 허종철을 무릎 꿇릴 만큼 혁권이 대단하다는 건 알았지만 이번에는 훨씬 더 센 상대였기에 몸을 사릴 수밖에 없었다.
만약 일이 잘못된다면 노석대가 조직원들을 빌려준 자신부터 잡으려고 할 것이 틀림없었다.
강남을 주름잡는 노석대의 상대가 안 된다는 걸 스스로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방갑수는 계속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이거, 내가 썩은 동아줄을 붙잡고 있는 거 아냐.”
밤새 후회와 망설임이 계속됐지만 이미 일은 벌어졌고 지금 와서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어 버렸다.
그저 혁권이 허종철 때처럼 사거리파를 박살 내기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것밖에 그가 할 일이 없었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 여차하면 바로 노석대를 피해 해외로 달아날 수 있도록 현금을 끌어모아 침실 한쪽에 놔둔 여행용 가방 두 개에 가득 채워 뒀다.
담배가 반쯤 타들어 갔을 때 노크를 하며 서필수가 안으로 들어왔다.
이십 대 초반에 불과한 서필수는 폭주족 출신으로 칼을 아주 잘 썼는데, 기존 올림픽파 조직원들을 견제하기 위해 뒤를 밀어주면서 심복으로 옆에 항상 데리고 다녔다.
“사장님.”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서 방갑수가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새로 들어온 소식이라도 있어?”
“경찰에 잡혀 들어간 정식 형님이 풀려났다고 합니다.”
뜻밖의 말에 방갑수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사실이야?”
“예. 방금 정식 형님하고 직접 통화를 했습니다.”
“사거리파가 운영하는 성인 오락실을 습격하고 출동한 경찰에 체포됐다고 그랬잖아.”
“맞습니다.”
“그런데 벌써 풀려났다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이야기를 듣기로 사거리파 조직원이 여러 명 중상을 입은 데다 양구태는 불구가 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사건 벌어진 곳에서 현행범으로 붙잡혔는데 불과 몇 시간 만에 그냥 풀려나다니 절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사거리파 놈들도 같이 나온 거야?”
방갑수의 물음에 서필수가 머리를 흔들었다.
“그쪽 애들은 경찰 유치장에서 못 나왔다고 합니다.”
“으음.”
습격을 당한 사거리파 조직원들은 그대로 유치장에 갇혀 있는데 오히려 먼저 손을 쓴 윤정식과 부하들이 먼저 풀려났다니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입술을 꾹 다문 채 방갑수가 의구심 어린 표정을 짓고 있자 서필수가 눈치를 보며 말했다.
“큰형님께서 미리 손을 써 놓으신 것이 아닐까요?”
서필수가 말한 큰형님은 바로 혁권을 지칭하는 거였다.
“큰형님이?”
몸을 살짝 앞으로 당기면서 쳐다보자 서필수가 작게 머리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지난번에도 허종철이 총에 맞았는데 아무런 일 없이 그냥 넘어갔지 않습니까.”
“그렇지.”
“뭔가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이렇게 일을 벌인 거겠지요.”
“그 말이 맞아.”
확실히 그가 봐도 혁권이 아무 생각 없이 일을 저지를 성격은 아니었다.
가끔씩 무모하게 행동하는 것 같아도 나중에 보면 절대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들어온 정보가 있는데 우세진이 저희를 치려고 조직원들을 잔뜩 소집했다가 경찰에 다 잡혀갔다고 합니다.”
사거리파가 이쪽을 치려고 했다고 하자 움찔하던 방갑수는 이어진 말에 눈을 번득였다.
“우세진까지 체포됐다고!”
“네. 그것도 40명이나 되는 사거리파 조직원들하고 함께 말입니다. 지금 강남 경찰서 유치장이 사거리파 애들로 가득 찼다고 합니다.”
“그렇단 말이지…….”
방갑수는 몸을 뒤로 기댄 채 머릿속으로 재빨리 계산기를 두들겼다.
행동대장인 김상섭과 중상을 입고 병원에 누워 있는 양구태에 이어서 우세진까지 경찰에 붙잡혔다면 사거리파 노석대는 양팔을 다 잃은 것이나 다름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