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awaited RAW novel - Chapter 583
583
다음 날 오후.
안을 들여다 볼 수 없게 짙은 썬팅이 되어 있는 벤츠 승용차와 캐딜락 에스커레이드 밴이 리조트 입구에 멈춰 섰다.
먼저 내린 백성균이 차 문을 열어 주자 혁권이 뒷좌석에서 나와 하얀 대리석으로 외관을 치장한 리조트 건물을 쭉 훑어보았다.
들어가는 입구는 깨끗하게 잘 정비되어 있었고, 잔디며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내부 장식 역시 고급스럽게 꾸며져 있어서 부자들이 여유를 부리며 취미 생활을 즐기기에 최적화되어 있었다.
직원의 인사를 받으면서 안으로 들어간 혁권은 뒤편에 조성되어 있는 야외 수영장 쪽으로 향했다.
시끄러운 클럽 음악과 술이 넘쳐 나는 일반적인 호텔이나 관광지의 풍경과는 달리, 이곳은 VIP 고객들의 취향을 반영하듯 한가로이 물살을 가르며 노는 몇몇 이들만 눈에 띌 뿐 전체적으로 느긋하니 쉬는 분위기였다.
혁권이 정장을 입은 부하들을 대동하고 들어서자 흥미롭게 보는 시선이 느껴졌으나 이내 관심을 잃은 것처럼 금방 떨어져 나갔다.
이런 고급 리조트에 드나들 정도의 인사라면 서로의 사적인 시간에 대해 크게 터치하지 않는 것이 매너와도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혁권은 미끈한 몸매를 뽐내면서 긴 선배드에 누워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 미녀들 사이를 지나 케카스 장관에게 곧장 다가갔다.
앞에 올리브를 장식한 마티니 잔을 놔두고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자리에 홀로 앉아 있었는데, 몇 발자국 뒤에 비서로 보이는 사내가 양손을 앞으로 모은 채 서 있었다.
그를 본 케카스 장관이 반색을 하고는 일어나 먼저 인사를 건넸다.
“존슨 씨, 어서 오시오.”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장관님.”
“그러게 말이오. 연락 한번 없어서 많이 섭섭했소이다.”
“비즈니스 때문에 바빠서 죄송합니다.”
“아니오. 일이 많으면 좋은 것이 아니겠소.”
가볍게 악수를 나눈 두 사람은 마주 보며 자리에 앉았다.
“모히또 한 잔.”
종업원이 옆으로 다가오자 그는 메뉴를 보지 않고 바로 주문을 했다.
“참, 사업은 잘되고 있소?”
“염려해 주신 덕분에 그럭저럭 운영을 해 나가고 있습니다.”
혁권의 말에 케카스 장관이 흰 이를 드러내면서 웃었다.
“존슨 씨야 수완이 좋으니 사업이 크게 번창할 거요.”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종업원이 주문한 모히또를 내려놓고 가자 두 사람 사이에 잠시 대화가 끊겼다.
케카스 장관이 마티니를 한 모금 마시고, 혁권도 모히또로 입술을 살짝 축이면서 속으로 다음에 할 말을 골랐다.
“그런데 긴히 할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 뭡니까?”
딱히 길게 대화를 나눌 마음이 없었기에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케카스 장관이 슬쩍 주위를 둘러보고는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용건을 꺼냈다.
“실은 존슨 씨한테 한 가지 제안할 것이 있어서 이렇게 보자고 했소.”
당연히 뭔가 원하는 것이 있을 거라 예상했기에 그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는 가만히 이야기를 들었다.
“혹시 부동산 투자에 관심이 있으시오.”
“부동산이라고 했습니까?”
“그렇소. 정부 재정을 확충하기 위해서 국유지를 대거 매물로 내놓고 있는데, 관심이 있다면 좋은 조건에 매입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소.”
“괜찮은 매물이 있습니까?”
관심을 보인다고 생각한 케카스 장관은 몸을 앞으로 당겨 앉으면서 말했다.
“아기오스 토마스라고 무인도가 하나 있는데 아테네에서 10킬로미터밖에 안 떨어져 있고 풍광도 아름다워서 리조트로 개발하면 아주 좋은 섬이 하나 있소.”
이야기를 들은 혁권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무인도라면 마음대로 개발하기에는 좋겠지만 반대로 수도와 전기를 비롯한 기본적인 인프라를 처음부터 다 깔아야 했기에 투자금이 상당히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딱히 부동산 사업을 할 의사가 없었기에 그리 흥미가 동하지 않았다.
떨떠름한 반응에 마음이 닳은 케카스 장관이 얼른 말을 덧붙였다.
“관심이 있다면 아주 저렴한 가격에 매각하는 건 물론이고 개발도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도록 편의를 봐주겠소. 굳이 운영을 하지 않더라도 리조트로 개발한 뒤에 매각하면 족히 서너 배는 차익을 거둘 수 있을 거요.”
“가격이 얼마입니까?”
슬쩍 물음을 던지자 케카스 장관이 눈을 반짝이면서 대답했다.
“원래는 1,500만 유로(192억 원)에 내놓은 물건이지만 나한테 소개료로 200만 유로를 준다면 절반인 750만 유로에 매입할 수 있도록 해 주겠소.”
그러자 혁권은 국유 재산을 헐값에 넘기고 뒷돈을 챙기려는 수작이라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
어디에 쓰려고 돈이 필요한지도 대충 짐작이 됐는데, 보나 마나 선거 자금을 이용하려는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경제 위기로 인한 긴축 재정하에서 국가를 재건하기 위해 노력해야 될 정부 고위 관리가 오히려 뒤로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모습에 그리스 국민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그거고 잘하면 괜찮은 국유지를 헐값에 사들일 수도 있겠다는 판단에 그는 잠시 고심을 하는 척하다가 입을 열었다.
“갑작스러운 제안이라 이 자리에서 대답을 드리기는 곤란하고 조금 더 생각을 해 보도록 하지요.”
그러자 케카스 장관은 더 설득을 하지 못하고 아쉬운 입맛을 다시면서 말했다.
“가능하면 이번 주 안으로 대답을 해 줬으면 좋겠소.”
“그러지요.”
지금 있는 자리에서 나오기 전에 거래를 마무리 지어야 될 테니까 여유가 그리 많지는 않을 거였다.
두두두두.
눈이 부시도록 푸르른 지중해 바다를 아래에 두고 헬리콥터 한 대가 하얀 구름 위를 빠르게 날아가고 있었다.
-저기가 아기오스 토마스 섬입니다!
앞에 탄 조종사의 말이 머리에 쓰고 있는 헤드폰을 통해 들리자 혁권이 고개를 들어 방풍창 아래를 내려다 봤다.
그러자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섬 하나가 보였다.
사방이 절벽으로 둘러싸인 돌섬이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면적은 꽤 넓어 보였다.
옆에 앉아 있는 백성균한테 건네받은 쌍안경을 한쪽 손에 든 채 혁권이 조종사한테 지시를 내렸다.
“자세히 살펴볼 수 있게 좀 더 가까이 내려가 봐!”
손가락을 동그랗게 말아 OK 신호를 한 조종사는 고도를 천천히 내리면서 섬을 가운데 두고 한바퀴 크게 선회를 했다.
기암괴석들로 이루어진 가파른 절벽 사이로 그리 크지는 않지만 해수욕장을 써도 됨 직한 모래사장이 있었고, 지형이 대체로 평탄해서 개발을 하기도 용이해 보였다.
단점이라면 식수食水로 사용할 물이 없다는 것하고, 넓게 초지만 펼쳐져 있을 뿐 뜨거운 태양을 피할 나무를 거의 보기 어렵다는 거였다.
잠시 뒤 혁권은 헬리콥터를 착륙시켜서 직접 섬에 내려 주변을 둘러봤다.
천천히 풀밭을 거닐다가 절벽 끝에 다다르자 혁권은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고 아래에 시선을 두었다.
절로 아찔해질 만큼 높은 위치였음에도 불구하고 고소공포증이라는 단어하고는 거리가 먼 혁권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심지어 돌을 던져서 높이를 가늠해 보기까지 했다.
때마침 부는 바람에 펄럭거리는 셔츠 자락을 붙잡고 그 자리에 선 그는 흡족한 표정으로 허리에 손을 올렸다.
“위험합니다. 조금만 뒤로 오시죠.”
“뭘, 이 정도 가지고.”
부상 중이라 쉬라고 이야기를 했는데도 괜찮다며 따라온 하킴의 말에 혁권은 오히려 장난기 가득한 소년처럼 농담을 던졌다.
“자네도 여기 와서 서 봐. 바람이 무척 시원하군.”
경치가 아주 절경이라고 하는 혁권에게 하킴은 고저가 없는 무감각한 말투로 정중히 사양했다.
“전 여기도 괜찮습니다.”
“후후후.”
작게 웃은 혁권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뱉으며 말을 이었다.
“직접 와서 보니까 나쁘지 않은 것 같군.”
그러자 하킴이 약간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
“정말로 이 섬을 매입하실 생각입니까?”
“왜, 자네는 여기가 마음에 안 드나?”
“솔직히 식수도 없는 데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이런 무인도를 750만 유로나 주고 산다니 너무 비싼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전기하고 식수야 해저 파이프를 깔아서 연결하면 되고 무엇보다 이 섬의 위치를 고려할 때 절대 비싼 가격이 아니야.”
확실히 그리스의 수도이자 주요 관광지인 아테네에서 10킬로미터밖에 떨어지지 않고 코린트 섬하고 인접해 있다는 건 상당한 이점이었다.
“리조트로 개발을 해도 좋겠지만 피레에프스 항구하고도 가깝고 별다른 제약없이 외해로 곧장 빠져나갈 수 있으니, 새로운 거점으로 여기만큼 적당한 곳이 없을 것 같지 않은데 어때?”
이야기를 들은 하킴은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설마 부동산 개발이 아니라…….”
흰 이를 살짝 드러내며 웃은 혁권은 파도가 치는 바다를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맞아. 외부하고 격리된 곳이니까 비밀을 유지하기에도 쉽고 선착장을 하나 만들어 두면 화물을 보관하고 옮기기에 딱 좋을 것 같지 않아.”
“말씀을 듣고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아테네의 외항인 피레에프스 항구 세관원과 노무자 들을 매수해 뒀다고는 해도 보는 눈이 많기에 항상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 있는 거점은 이미 한번 노출이 됐고 습격에도 취약했기에 아기오스 토마스 섬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외부에 보여서는 안 되는 민감한 화물을 은밀히 보관하고 운반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었다.
섬을 매입하기로 마음을 굳힌 혁권은 다음 날 바로 케카스 장관하고 약속을 잡았다.
여비서가 커피를 내려놓고 나가자 케카스 장관이 잔뜩 기대에 찬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어떻게 결정은 내렸소?”
“예. 직접 가서 둘러보니 말씀대로 괜찮은 것 같더군요.”
긍정적인 이야기에 케카스 장관이 활짝 얼굴을 펴며 말했다.
“매입을 하면 크게 이득을 볼 거라고 내가 그랬지 않소.”
“그렇기는 한데 몇 가지 걸리는 것이 있더군요.”
“그게 뭐요?”
“우선 오랫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고 방치된 무인도이기에 전기와 선착장 같은 기반 시설이 전혀 안 되어 있는 데다 사방이 절벽으로 둘러싸인 돌섬이라 관광객들이 쉴 수 있는 백사장이 거의 없더군요. 거기다가 중요한 식수도 나지 않아, 물을 사용하려면 멀리 떨어진 육지에서 파이프로 끌어와야 되고 말입니다. 이걸 다 해결하고 개발을 하려면 투자비가 만만치 않게 들어갈 것 같았습니다.”
차분히 문제점을 지적하자 케카스 장관의 얼굴에 조바심이 떠올랐다.
“흠흠. 위치적 이점이 있으니 그런 걸 다 감수하더라도 개발을 한다면 충분히 이익을 볼 수 있지 않겠소.”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들어가는 시간과 자금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손해가 될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지금보다 부동산 상황이 안 좋아질 수도 있다는 위험부담도 있고 말입니다.”
하는 말마다 족족 정곡을 찌르는 탓에 케카스 장관이 불편한 듯 크흠 소리를 내며 몸을 뒤척였다.
그러자 혁권은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고 은근한 투로 그를 달랬다.
“그래서 말씀인데, 이리하면 어떻겠습니까?”
“뭘 어떻게 한단 말이오?”
확확 태도를 바꿔 가면서 슬슬 자신의 페이스로 몰고 가는 혁권의 말솜씨에 케카스 장관은 저도 모르게 이미 한 발을 들여 놓고 있는 상태였다.
“매각액을 500만 유로로 낮춰 주신다면 바로 매입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말을 들은 케카스 장관의 표정이 대번에 찡그려졌다.
“이미 절반을 깎아 주는 건데 거기서 300만 유로 가까이 빼 달라니 그건 너무 하지 않소.”
“대신 사례비를 100만 유로 더 얹어 드리겠습니다.”
“……!”
불편한 태도를 보이던 케카스 장관은 이어진 제안에 눈을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