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awaited RAW novel - Chapter 633
633
널찍한 원목 식탁에 김종원 내외와 큰아들, 둘째 아들 부부 그리고 막내인 김인철까지 모두 7명이 앉아 있었다.
태일그룹 회장 일가가 전부 다 모인 거였다.
바쁜 스케줄 때문에 가족이라도 서로 얼굴을 보기 힘든 이들이 이렇게 앉아 있는 이유는 김종원 회장의 남다른 고집이 이유였다.
그는 조손이 모두 한집에 모여 살던 대가족 시절이 익숙한 세대라, 아무리 아들들이 따로 가정을 이루어 나가 살더라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반드시 모든 집안사람들이 모여서 밥을 먹는 시간을 가져야 된다고 생각했으며, 다른 이들에게도 이를 따르길 강요했다.
덕분에 뒤로는 서로 물어뜯기 바빠도 김종원 회장 앞에서는 강제로 화목함을 연출해야만 했는데, 서로 불편한 것이야 당연했지만 괜히 눈 밖에 나지 않으려면 절대로 빠질 수 없는 자리이기도 했다.
가사 도우미가 갖다준 보리차를 한 모금 마신 김종원 회장이 제 자식들을 쭉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큰아들인 김성균에게 시선을 멈추고는 입을 열었다.
“용산 드림타워 개발은 잘 진행되고 있냐?”
김성균은 숟가락을 내려놓고는 약간 긴장한 얼굴로 대답했다.
“이번 달 안으로 터 파기 작업을 전부 끝내고 건물을 올리기 시작할 예정입니다.”
이야기를 들은 김종원 회장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이맛살을 찡그렸다.
“착공을 한 지가 언젠데 여태 터 파기도 다 안 끝난 거야! 매달 은행에 줘야 되는 이자가 얼마나 되는데 그래 가지고 2년 안에 프로젝트를 끝낼 수 있겠어?”
공사비만 10조 원에 달하는 초대형 프로젝트인 용산 드림타워 개발은 김종원 회장이 각별히 신경 쓰는 사업이었다.
“그게…… 지하수 유출로 인한 싱크홀 문제가 터지는 바람에 작업이 조금 지체됐습니다.”
애써 변명을 했지만 오히려 김종원 회장의 화를 더 돋구었다.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미리미리 손을 썼어야지. 그냥 자리만 지키고 있으라고 사장을 시켜 놓은 줄 알아!”
가족들이 다 지켜보는 곳에서 질책을 당한 김성균은 수치심에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머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쯧. 한심하기는 그래 가지고 큰 일을 할 수 있겠어.”
“…….”
무거워진 식탁 분위기에 다른 가족들도 식사를 멈추고 잔뜩 화가 난 김종원 회장의 눈치를 보기에 바빴다.
“시간이 지체된 만큼 공사를 빨리 진행시켜서 어떻게든 일정을 맞추도록 해.”
“……알겠습니다.”
이미 일정이 2개월가량 늦어진 상태에서 예정대로 공사를 끝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김종원 회장의 지시인 데다 후계자 경쟁을 벌이고 있는 두 동생이 지켜보고 있었기에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고개를 옆으로 돌린 김종원 회장은 이번에는 태일정유를 맡고 있는 둘째 아들을 보면서 말했다.
“이번에 비정유 부분에서 큰 이익이 났다면서?”
슬쩍 맞은편에 앉아 있는 큰형을 쳐다본 김문관은 어깨를 편 채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물음에 대답했다.
“네. 선제적으로 시설 투자를 한 것이 제대로 맞아떨어져서 나프타Naphtha 매출이 전분기보다 2배 이상 늘어났습니다.”
“2배라면 매출이 얼마나 되는 거냐?”
“3,800억 원가량 되고 영업이익은 2천억 원 정도입니다.”
“호오. 그래.”
나프타는 원유를 정제하면 나오는 여러 가지 부산물 중에 하나로 석유화학의 기초가 되는 에틸렌과 프로필렌, 부탄, 부틸렌 등의 원료가 된다.
작년부터 나프타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판매 가격이 급등한 덕분에 국내 정유 업체들이 큰 호황을 누리고 있었는데, 태일정유 역시 그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었다.
“그러면 4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하게 되는 거냐?”
“네. 나프타를 비롯해서 비정유 부분 주문이 계속 늘어나고 있어서 다음 분기에는 흑자폭이 더 커질 것 같습니다.”
마음에 쏙 드는 이야기에 김종원 회장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거 듣던 중 아주 반가운 말이구나.”
김종원 회장의 기분이 좋아 보이자 김문관이 조심스럽게 생각해 두고 있던 말을 꺼냈다.
“그래서 드리는 말입니다만 매출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생산 설비를 좀 더 확장시켰으면 합니다.”
“얼마를 늘리겠다는 거냐?”
“1차로 80만 톤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렇게나 많이.”
약간 걱정스러운 반응에 김문관이 몸을 앞으로 당겨 앉으며 김종원 회장을 설득했다.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나프타 공급 부족 사태를 고려하면 그것도 충분하지 않은 겁니다. 최종적으로 3년 안에 생산 능력을 150만 톤 이상 늘릴 계획입니다.”
“필요한 자금이 만만치 않을 텐데.”
“그동안 쌓인 이익금을 쓰고 부족한 액수는 금융권 융자로 해결할 생각입니다.”
“흐음.”
잠시 팔짱을 낀 채 고심하던 김종원 회장이 이내 머리를 끄덕이면서 허락했다.
“나프타 업황이 그렇게 좋다면 설비를 확충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한번 계획대로 해 보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아버지.”
활짝 웃으며 머리를 숙이는 김문관과 달리 큰아들인 김성균은 주먹을 꽉 움켜쥐면서 끓어오르는 화를 애써 삼켰다.
비교가 되게 칭찬을 하는 아버지도 서운했지만, 무엇보다 최근 들어 대놓고 후계자 자리를 욕심내는 둘째 동생의 모습이 자꾸 눈에 거슬렸다.
나프타 설비 확장 계획만 해도 얼마 전까지 용산 드림타워 개발에 들어가는 공사비를 일부 융통해 달라고 했을 때는 여유 자금이 없다고 단번에 거절하더니, 아버지 앞에서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해서 자신의 뒤통수를 쳤다.
이가 갈렸지만 여기서 그걸 따져 봤자 좋을 것이 없었기에 김성균은 서늘한 눈빛으로 김문관을 노려볼 뿐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런 가운데 상체를 반듯이 세운 김종원 회장이 이번에는 막내인 김인철에게 시선을 주며 이야기를 했다.
“회사 업무는 이제 좀 적응을 했냐?”
“아직 배워야 될 것이 많지만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괜히 허튼 곳에 눈길을 주지 말고 회사 일만 착실히 하도록 해.”
“……네.”
두 형과 달리 훈계만 하고 더 이상 관심을 주지 않자 김인철은 살짝 머리를 숙인 채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룹 경영에서 배제당한 듯한 느낌에 불안과 서운한 감정이 온몸을 뒤덮었다.
그런 걸 아는지 모르는지 김종원 회장은 앞에 놓인 물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불편한 식사를 끝낸 가족들은 얼마 있지 않아 김종원 회장 부부에게 인사를 하고 집을 나왔다.
큰형 부부가 먼저 떠나고 복잡한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잠시 마당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을 때 등 뒤에서 김문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직 안 가고 있었냐?”
몸을 돌린 김인철은 형수와 함께 있는 둘째 형을 보곤 떨떠름한 얼굴로 대답했다.
“담배 좀 피우려고.”
그는 보란 듯이 허공에 연기를 후 뿜어냈다.
독한 냄새에 둘째 형수가 인상을 찡그리자 김인철이 입가를 삐뚜름하게 하며 웃었다.
“당신은 먼저 차에 타 있어.”
“금방 올 거죠?”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는 제 남편의 팔을 한 번 강하게 잡았다 놓고는 날렵하게 아이라인을 뺀 눈꼬리로 김인철을 흘겨보며 지나갔다.
“형수 취향은 여전하네.”
“뭐가?”
“예전부터 샤넬 향수밖에 안 쓰잖아. 나는 저거 개나 소나 다 써 대서 싸구려 느낌만 나던데.”
“뭘 쓰든 우리 와이프 맘이지 네가 무슨 상관이야.”
“그냥 그렇다고. 왜 이리 신경질적으로 받아쳐?”
김인철은 화내는 둘째 형이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 느물거리는 태도였다.
“이 자식이.”
그런 행동이 더 신경에 거슬린 김문관은 눈썹을 치켜 올린 채 김인철을 사납게 노려봤다.
“그러다 한 대 치기라도 할 것 같네.”
“얌전하게 지낸다기에 정신을 좀 차렸나 했더니 그대로구나.”
“형이나 잘해.”
지지 않고 계속 대거리를 하자 김문관이 정색을 하며 말했다.
“그 사고를 쳐 놓고 반성은 고사하고 뉘우치는 기색 하나 없다니, 너 같은 놈을 아버지는 왜 다시 한국으로 불러들였는지 모르겠다만, 구멍가게 같은 태일기획이라도 상속을 받으려면 까불지 말고 죽은 듯이 바짝 엎드려 있는 것이 좋을 거야.”
“지금 말 다 했어!”
김인철의 목소리가 마당을 가득 채웠지만 김문관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주제 파악을 똑바로 하라는 소리야.”
오히려 차가운 냉소와 함께 동정이라도 하는 듯 어깨를 툭 치면서 지나가는 것을 보고 김인철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이, 이……!”
형이고 뭐고 멱살을 잡고 드잡이질을 하고 싶은 것을 김인철은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눌러 참았다.
아직 본가 안인데 또 소동을 피웠다간 이번에야말로 아버지의 눈 밖에 나 후계자 구도에서 완전히 멀어져 버릴 것을 본인도 스스로 잘 알고 있었던 탓이었다.
김인철은 매섭게 치뜬 눈으로 차에 올라타는 둘째 형의 등을 노려보면서 이를 갈았다.
“언제까지 무시할 수 있나 두고 보자고!”
반드시 저 코를 납작하게 해 주리라.
그렇게 들끓는 화를 식히면서 김인철이 구둣발로 땅을 세게 짓뭉갤 때 안주머니에 넣어 둔 스마트폰 진동이 울렸다.
액정 화면에 뜬 이름을 확인한 그는 눈을 번득이고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무슨 일이야?”
귀에 가져다 댄 스마트폰에서 노형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준비가 다 끝났습니다.
눈을 가늘게 뜬 김인철은 막 승용차 뒷좌석에 올라타는 둘째 형의 모습을 날카롭게 노려보면서 입을 뗐다.
“꼬투리를 잡히지 않게 확실히 조치를 취했겠지?”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언제 일을 벌일 거야?”
-길게 끌어서 좋을 것이 없으니 일주일 안에 마무리를 짓도록 하겠습니다.
“알았어. 나중에 탈이 나지 않도록 뒤처리까지 깨끗하게 끝내.”
-예.
통화를 끝낸 김인철은 아무런 일도 없는 듯이 스마트폰을 집어넣으며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이른 아침 혁권은 서울 모처에 있는 빌딩 지하 주차장에 차를 대 놓고 있었다.
검은색 케딜락 에스커레이드 밴 뒷좌석에 앉아 있던 혁권은 소매를 걷어 손목시계를 확인하고는 입을 열었다.
“9시에 나온다고 하지 않았어?”
그러자 조수석에 탄 하킴이 몸을 뒤로 돌리면서 말했다.
“이제 곧 나올 겁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보시죠.”
“흐음.”
한쪽 다리를 반대편 무릎에 올리면서 혁권은 푹신한 가죽 시트에 등을 기댔다.
지금 있는 이곳은 대명 상사라는 간판이 걸려 있지만, 사실 국정원에서 중요 탈북자들을 보호하며 조사를 하는 비밀 시설이었다.
중국에서 우연히 인연을 맺게 돼 탈북을 도운 주정화 남매와 서은하가 드디어 조사를 다 끝내고 사회로 나오는 날이라 직접 마중을 나온 거였다.
해커 집단인 121부대 소속이었던 만큼 중요한 정보를 많이 알고 있었기에, 다른 탈북자들보다 훨씬 조사 시간이 길어졌다.
얼마쯤 시간이 더 지났을까 한쪽에 위치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더니 한 무리의 사람들이 지하 주차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색 양복을 입은 사내들 사이에 기다리던 주정화 남매와 서은하가 있었고 옆에 심인성 과장도 보였다.
중국에 있을 때보다 확실히 밝아진 얼굴에 그사이 살도 조금 쪄 있었고 한쪽 손에는 제법 큰 여행용 캐리어를 하나씩 끌고 있었다.
그걸 본 혁권은 차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