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awaited RAW novel - Chapter 684
684
먼저 준비해 온 의상이 몸에 잘 맞는지 확인을 하고, 고데기로 머리를 이리저리 말고 돌리는 동안 인형처럼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메이크업을 받는 지루한 시간이 이어졌다.
“런웨이는 한동안 안 하셨다고 들었는데 여전히 날씬하셔서 다행이에요. 오히려 허리 부분은 약간 품이 남아서 손을 좀 봐야겠는걸요.”
오늘 촬영을 위해 협찬 의상을 받아 내느라 이리저리 뛰어다녔다는 잡지사 스타일리스트가 웃으면서 말했다.
“안 그래도 요즘 살이 붙은 것 같아서 신경 쓰고 있었거든요.”
“어머, 그래요? 전혀 모르겠는데······.”
아니라는 소리를 들어도 소현은 걱정스러운 듯 미간을 찡그렸다.
원인은 요즘 계속 혁권이 서울에 머무르고 있는 탓이었다.
서로 일 때문에 바쁠 때는 오히려 살이 계속 빠져서 문제였는데, 데이트를 하면서 여기저기 놀러 다니고 먹는 걸 반복하다 보니 위기감을 느낀 것이었다.
진주와 크리스탈로 장식된 액세서리를 걸치고 엘리 사브의 드레스를 입은 소현이 밖으로 나오자 남자 스태프들의 입에서 ‘오오!’ 하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래, 바로 이거야!”
그중에서도 사진작가의 반응이 가장 열렬했다.
그는 은방울꽃으로 만든 부케를 들고 화관까지 머리에 얹은 소현의 모습을 보자마자 자신이 원하던 그림이라며 재빨리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는데, 방금 전 인사를 나눴을 때와는 완전히 달라진 태도였기에 소현이 속으로 당황할 정도였다.
“화관을 손으로 살짝 잡고 시선은 상대방을 올려다보듯이. 아, 좋아! 방금 그 표정 최고야! 자, 그럼 이번엔 포즈를 바꿔서 옆을 비스듬히 바라보고.”
사진작가의 요청에 맞춰 자연스럽게 포즈를 이리저리 바꾸는 소현은 마치 하얀 드레스를 입고 초록빛 숲에 나타난 요정과도 같았다.
가볍게 장난치는 것처럼 그 자리에서 한 바퀴 빙글 돌자 몇 겹으로 이루어진 드레스의 치맛단이 사르르 흔들리면서 황홀한 궤적을 그렸다.
거기다 때마침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했고, 따로 반사판이 필요 없을 정도로 햇빛이 강했기에 어떤 각도로 사진을 찍든 반짝거림이 넘쳐흘렀다.
“음, 뭔가 소품을 더 추가하고 싶은데······.”
사진작가의 중얼거림에 옆에서 구경하고 있던 최현정이 냉큼 답했다.
“드레스에는 역시 웨딩 베일이죠!”
나비의 날개만큼 얇은 베일 너머에 아름다운 미녀의 얼굴이 보일 듯 말 듯 아른거리는데, 그 자태를 보고 가슴이 설레지 않을 남자는 없을 것이었다.
“맞아, 그렇지! 우리 가져온 것 있지?”
그 말을 듣고 서둘러 스타일리스트가 박스에서 웨딩 베일을 꺼내어 소현의 머리 위에 씌워 주웠다.
웨딩 베일은 진짜 얇고 섬세한 섬유로 만들었기 때문에 손톱에 조금이라도 긁히면 그대로 쭉 찢어져 버릴 수가 있기에 다루는 스타일리스의 손짓도 무척이나 조심스러웠다.
넓게 펼쳐 주면서 풍성하게 보이도록 모양을 잡아 주자 이번엔 신비스러운 분위기가 더해져서 아까와는 또 다른 느낌이 났다.
“소현 씨, 덥죠?”
잠시 옷자락을 매만지는 동안 방영실이 부채를 팔락거려 주었다.
“여기 물이라도 좀 마셔요.”
컵에 빨대를 꽂아서 입에 대 주려고 하니 소현이 조금 지친 기색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이 옷 입고는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가잖아요. 목이 말라도 참는 편이 낫죠.”
“어휴, 예쁜 건 항상 불편하다니까.”
“그래도 고생한 만큼 결과물이 좋을 것 같던데? 아까 살짝 훔쳐보니까 진짜 내가 봐도 너무 예쁘게 잘 나왔더라고.”
방영실이 나중에 잡지 나오면 꼭 봐 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럼 다행이고요.”
어쨌거나 지금은 입은 옷이 너무 덥고 햇빛이 강해서 힘들었다.
소현은 휴식 시간 동안 잠시 기분 전환이라도 할까 싶어 스마트폰을 높게 쳐들고 셀카를 찍었다.
-잡지 촬영 중인데 어때요? 이만하면 오빠 신붓감으로 합격?
갑자기 무슨 사진을 보냈나 싶어 스마트폰을 확인한 혁권은 온통 하얀색으로 뒤덮인 듯한 소현의 모습에 순간 일을 보는 중이라는 것도 잊고 액정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녹음이 우거진 숲 한가운데, 그림에서 막 튀어나온 것처럼 아름다운 레이스와 진주로 온몸을 감싼 소현이 밝은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표정은 장난스럽게 콧등을 찡그린 모습이었지만 웨딩드레스를 입은 모습이 너무나 예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연히 신붓감 합격이라 외치면서 지금 바로 시집와도 된다고 말해 주고 싶었지만, 다행히 그렇게 답장을 보내진 않았다.
‘대신 너무 예쁘다, 힘들겠지만 열심히 해라.’는 식으로 대답을 해 준 뒤 혁권은 스마트폰을 안주머니에 집어넣고는 왼편 소파에 앉아 있는 박종호 지배인을 보며 말했다.
“미안하군. 어디까지 이야기를 했지?”
“카지노 영업장 확장 승인 건에 대해서 보고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랬지. 계속해 봐.”
박종호 지배인은 몸을 앞으로 당겨 앉으며 문자가 오는 바람에 잠시 끊겼던 이야기를 이어 갔다.
“최종적으로 기존에 1,300㎡였던 카지노 영업장 면적을 3천 ㎡까지 확장할 수 있도록 주무부처와 도청의 승인이 모두 떨어졌습니다.”
“기대했던 것보다 확장 면적이 더 넓어졌군.”
“그렇습니다.”
당초 예상했던 건 2배인 2,600㎡였는데 그것보다 400㎡가 더 승인이 난 거였다.
“알아보니 서문종 제주 도지사가 카지노업감독위원회에 영향력을 행사해 줬다고 합니다.”
“돈값을 제대로 하는군.”
제주도에서 벌이고 있는 사업을 수월하게 진행하기 위해 혁권은 안기헌과 마찬가지로 서문종 도지사한테 정기적으로 상당한 액수의 정치 자금을 건네주고 있었다.
“승인받은 면적을 모두 채운다면 제주도 내에서는 두 번째로 큰 카지노가 되는 겁니다.”
“그럼 매출액도 늘어날 수 있겠군.”
“기존에 영업 중인 카지노들의 실적을 바탕으로 예상해 보면 100~200억 원 정도의 매출을 무난하게 올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 정도면 나쁘지 않군.”
“미리내 브랜드와 연계한 영업 활동을 강화하고 전문 모집인들을 고용해서 VIP 방문객 유치를 늘린다면, 매출액을 계속 늘려 나갈 수 있을 겁니다.”
너무 장밋빛 전망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으나 말만 번지르한 게 아니라 카지노를 비롯한 샹그릴라 리조트를 키워 나갈 구체적인 계획을 하나씩 차근차근 마련하고 있다는 걸 알았기에, 혁권은 흡족한 표정을 지으면서 신뢰를 나타냈다.
“카지노와 리조트 운영은 전적으로 자네한테 위임했으니까, 책임을 지고 잘해 보도록 해.”
“예.”
살짝 머리를 숙이면서 대답한 박종호 지배인은 다시 그와 시선을 맞추며 이야기를 했다.
“마침 이야기가 나왔으니 사장님께 한 가지 건의할 것이 있습니다.”
“말해 봐.”
“영업장 면적이 늘어난 만큼 카지노를 정상적으로 운영하려면 현재 있는 리조트 객실로는 부족한 상황입니다.”
“그렇겠지.”
다른 일반 호텔에 묵는 고객들을 데려와 객장을 채울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원활하게 카지노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리조트 객실을 지금보다 여유롭게 늘리는 것이 필요했다.
“그리고 향후 시설을 증축할 걸 감안해서 미리 리조트 부지를 2~3천 평 정도 더 매입하고 객실을 60개 정도 늘렸으면 합니다.”
“근처에 그만한 땅이 있나?”
“네. 카지노 부지 바로 옆에 있는 감귤 농장이 매물로 나와 있습니다.”
“면적이 얼마나 되는데.”
“3천 평이 조금 안 됩니다.”
“그걸 매입하면 지난번에 사들인 도유지까지 합쳐서 리조트 부지가 8,500평 정도가 되는 거군.”
“그렇습니다.”
몸을 뒤로 기댄 채 한쪽 손으로 턱을 매만지면서 잠시 고심을 한 혁권은 이내 고개를 들며 말했다.
“이왕 손을 대는 거 주변 토지를 더 매입해서 1만 평을 채우도록 해.”
리조트 부지가 늘어나면 그만큼 부대시설을 많이 갖출 수 있고 쾌적한 환경이 만들어지기에 박종호 지배인이 반색을 하며 되물었다.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필요할 때마다 찔끔찔끔 부지를 늘리는 것보다 미리 한꺼번에 넓게 확보해 두는 것이 이득이지 않겠어?”
“맞는 말씀입니다.”
“내가 따로 지시를 해 놓을 테니까, 자금은 걱정하지 말고.”
“알겠습니다.”
기대한 것보다 훨씬 더 넓은 부지를 확보하게 된 박종호 지배인은 잔뜩 고무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카지노 객장 공사는 언제부터 시작하는 거지?”
“예상했던 것보다 영업장 면적이 더 나온 부분만 설계 변경을 끝내면 바로 공사에 들어갈 겁니다.”
“그러면 아무리 빨리 공사를 진행한다고 해도 내년 말이나 되어야 겨우 끝낼 수 있겠군.”
“아무래도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뜻밖의 일들로 인해 카지노 개장이 늦어지는 건 아쉬웠으나 장기적으로는 이득이 됐기에 그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수긍했다.
“아, 그리고 리조트를 드라마 촬영 장소로 제공하기로 했다면서?”
“네. 손님으로 오셨던 정현태 PD님이 고급스러운 리조트 시설과 주변 풍경이 마음에 드신다면서 준비 중인 차기 작품 촬영지로 쓰고 싶다며 인터내셔널 매니지먼트를 통해 요청을 해 왔습니다.”
KBN 방송국을 나와서 새롭게 인터내셔널 매니지먼트로 자리를 옮긴 정현태 PD한테 휴식과 차기 작품 구상을 겸해 VIP 객실에서 기한없이 머물 수 있도록 해 줬는데, 샹그릴라 리조트가 상당히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자네 생각은 어때?”
“중국과 일본을 비롯한 외국에서 한류 드라마가 다시 유행하고 있으니, 홍보로 괜찮다고 봅니다. 제작사 측하고 좀 더 협의를 해 봐야 되겠지만, 카지노 객장이 나오는 장면을 집어넣는다면 자연스럽게 우리 리조트를 광고하고 손님들도 끌어모을 수 있으니, 금상첨화일 겁니다.”
“드라마 촬영을 내년 중순부터 시작한다니까 스케줄만 잘 조종하면 카지노 개장하고 얼추 시간을 맞출 수도 있겠군.”
“말씀대로 된다면 더욱 효과가 극대화 될 것 같습니다.”
박종호 지배인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인터내셔널 매니지먼트하고 잘 협조해서 일을 진행시켜 보도록 해.”
“알겠습니다.”
그 뒤로도 한참 동안 리조트 운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박종호 지배인은 다시 제주도로 내려갔다.
화보 촬영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소현을 만나 데이트를 할까 하는 생각에 혁권은 소매를 걷어 손목에 찬 시계를 확인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한쪽에 서 있는 하킴을 보면서 물었다.
“이제 다른 일정이 없지?”
“예.”
“오늘 저녁에는 개인 시간을 보낼 테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하킴은 혁권의 말뜻을 바로 알아채고 얌전히 머리를 끄덕였다.
저녁에 만날 생각을 하니 저절로 기분이 좋아진 혁권은 케이스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그때 스마트폰이 웅웅거리면서 울리는 소리를 듣고 액정 화면을 확인한 그는 백수광 부부장의 이름이 떠 있자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얼른 통화 버튼을 눌렀다.
“부부장님께서 어쩐 일이십니까?”
틈날 때마다 개인 교습을 받고 있지만 아직은 어색한 중국 말로 전화를 받자 특유의 묵직한 백수광 부부장의 목소리가 스마트폰을 타고 들렸다.
-잘 지냈소?
“덕분에 편히 지내고 있습니다.”
-다른 것이 아니라 시간이 되면 북경에서 좀 봤으면 하는데 괜찮겠소.
“갑자기 무슨 일로 그러시는 겁니까?”
-자세한 얘기는 만나서 하는 게 좋겠구려.
전화로는 쉽게 설명해 주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혁권은 미간을 살짝 좁히고 재차 물었다.
“급한 일이십니까?”
-그렇소.
바로 대답하는 걸 보니 뭔가 중요한 일이 있는 것 같아 혁권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제가 내일 북경에 가서 찾아뵙도록 하죠.”
-기다리고 있겠소.
통화를 끝낸 혁권은 한쪽 다리를 꼰 채 갑자기 왜 백수광이 자신을 보자고 하는지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좀처럼 짚이는 것이 없자 살짝 눈썹을 찡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