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awaited RAW novel - Chapter 711
711
직접 만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카셈 솔레이마니 사령관은 혁권도 잘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이란 무력의 주축인 혁명수비대 안에서도 정예인 쿠두스Quds의 사령관인 카셈 솔레이마니 소장은 차기 대통령으로 공공연하게 거론될 정도로 군부의 최고 실세였다.
이런 인물이 자신을 알고 있다는 것도 의외인데 팔레를 통해서 따로 전언傳言까지 보냈다니 쉽사리 넘길 수가 없었다.
“친구라······.”
솔레이마니 사령관쯤 되는 인물이 아무런 말이나 그냥 했을 리는 없고 이번 오더를 받아들인다면 그를 이란, 아니 자신의 친구로 대하겠다는 뜻일 터였다.
상대가 가진 권력과 위상을 생각하면 그가 가진 최고의 인맥 중 하나인 만수르 회장하고 비교해도 절대 뒤떨어지지 않았다.
이런 사람과 끈이 닿을 수 있는 건 흔하게 오는 기회가 아니었다.
한참 동안 말이 없던 혁권은 고개를 들면서 굳게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오더를 맡겠소.”
그러자 긴장하고 있던 팔레의 안색이 밝아졌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솔레이마니 사령관님도 크게 기뻐하실 겁니다.”
마음을 굳힌 혁권은 빠르게 태도를 바꿔 협상을 할 자세를 취했다.
“그럼 이제 오더에 대해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그러시죠.”
위험부담이 크기는 했지만 앞으로 이란 정부의 수장이 될지도 모르는 솔레이마니 사령관과 친분을 맺을 수 있다면 충분히 감수할 만한 일이었다.
물론 아무런 대책도 없이 무턱대고 이란 측의 오더를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대화를 끝내고 나온 혁권은 부드럽게 움직이는 승용차 뒷좌석에 몸을 기댄 채 잠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다가 위성 전화기를 꺼내 샌더슨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결음이 들리는 동안 고개를 옆으로 돌려 차창 밖을 바라봤는데, 어느새 온갖 화려한 간판을 내건 가게들이 늘어서 있는 골목을 빠져나와 넓은 도로에 들어서고 있었다.
위성 전화기를 통해 들리는 샌더슨의 목소리에 그는 시선을 바로 했다.
-먼저 전화를 다하고 어쩐 일이오.
“지난번에 나한테 했던 제안 아직까지 유효한 거요?”
-······!
잠시 말이 없던 샌더슨이 이내 활기를 띠며 되물었다.
-제안을 받아들이겠다는 거요?
“몇 가지 조건을 맞춰 준다면 그럴 의향이 있소.”
-흐음. 조건이라······ 뭔지 말해 보시오.
신중한 태도를 보이자 그는 생각해 둔 것들을 차분히 이야기했다.
“먼저 결과에 상관없이 난 이란 측 인사를 협상장에 나오도록 하는 걸로 역할이 완전히 끝나는 거요.”
-가능하면 긍정적인 태도를 보여 준다면 좋겠지만, 어차피 결과를 만들어 내는 건 정치인들의 몫이니 알겠소.
솔직히 미국 입장에서는 이스라엘은 물론이고 자신과도 날 선 대립을 이어 가고 있는 이란이 협상을 받아들이는 것만도 큰 성과였다.
“그리고 이란 정부를 설득하기 위해서 VLCC(Very Large Crude oil Carrier)급 초대형 유조선 25척 분량의 원유를 먼저 가져오고, 그에 상당하는 각종 물품을 반입하는 걸 묵인해 주시오.”
샌더슨이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혁권이 말한 물량이라면 미국 정부가 실행하고 있는 대이란 경제 제재의 효과가 상당 부분 약해질 게 불을 보듯 뻔했기 때문이었다.
이건 자칫 미국의 중동 정책 전체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는 아주 민감한 문제였다.
아니나 다를까 대답하는 샌더슨의 목소리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욕심이 너무 과한 거 아니오?
“홍콩에서 만났을 때 비슷한 제안을 나한테 했지 않소?”
-대충 계산을 해 봐도 거래 물량이 수십억 달러어치는 될 것 같은데, 이건 규모가 너무 크잖소.
상대가 난색을 보이자 혁권이 단호하게 말했다.
“이란 정부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이 정도 선물은 가져가야 조금이라도 관심을 보이지 않겠소.”
-그렇기는 하지만 상대가 협상 테이블에 나온다는 보장도 없는 상황에서 이런 큰 양보를 먼저 한다는 것이······.
“거래가 이루어지면 카셈 솔레이마니 사령관하고 만날 거요.”
말을 중간에 끊고는 가지고 있던 히든카드를 꺼내 들자 잠깐 침묵하던 샌더슨이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이야기를 했다.
-내가 아는 그 솔레이마니 소장을 말하는 거요?
“그 정도면 충분히 베팅해 볼 만하지 않겠소.”
-으음······.
이란의 최고 실세 가운데 한 명인 카셈 솔레이마니 사령관의 이름이 주는 무게감이 있었기에, 샌더슨은 낮게 침음성을 내뱉으면서 아까와 달리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제 결정은 상대편의 몫이었기에 그는 가만히 대답을 기다렸다.
얼마간 침묵이 흐르더니 샌더슨이 무겁게 입을 떼었다.
-이건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 같으니, 잠시 시간을 주시오.
혁권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언제까지 기다리면 되겠소?”
-하루. 내일 다시 전화하지.
그렇게 통화를 끝낸 혁권은 위성 전화기를 옆에 내려놓고는 길게 한숨을 쉬며 시선을 멀리했다.
몇 시간 뒤.
러셀 CIA 국장은 급히 약속을 잡고 브랜스테드 국무장관을 찾아갔다.
마호가니Mahogany로 만든 가구들로 고풍스럽게 꾸며진 관저에는 브랜스테드 국무장관과 또 다른 정부 실세인 로스 재무장관이 연락을 받고 도착해 있었다.
한쪽 다리를 꼬고 상석에 앉은 브랜스테드 국무장관이 손에 든 위스키 잔을 탁자에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이것 참 당황스럽구먼.”
“유럽 각국들의 불만을 무시한 채 대이란 경제 재제를 지키라고 강한 압박을 넣고 있는데, 수십억 달러어치의 원유와 물품들이 오가는 걸 묵인한다니 이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로스 재무장관이 안경을 치켜 올리면서 반대 의견을 표시하자 맞은편에 있던 러셀 CIA 국장이 차분히 말을 받았다.
“물론 조금 과한 측면이 있긴 하지만 이스라엘과 이란이 정말로 전면전을 벌이게 됐을 때 발생될 피해를 생각한다면,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일이라고 봅니다.”
“이게 조금이라니 숫자를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맞소.”
이맛살을 찡그린 로스 재무장관은 가늘게 뜬 눈으로 러셀 CIA 국장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그쪽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건 알지만 솔직히 국경을 마주 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수백 킬로미터나 멀리 떨어진 이란이 이스라엘하고 과연 전쟁을 벌일 수 있을지 의심스럽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현재 중동 지역의 복잡한 상황을 자세히 들여다보신다면 곧 잘못된 판단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을 겁니다.”
“어째서 그렇소?”
“분명 지도로 볼 때는 페르시아만에 위치한 이란과 지중해와 접한 이스라엘이 정반대에 위치한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IS 소탕전을 치르면서 이란하고 밀접한 관련이 있는 시아파 민병대와 헤즈볼라Hezbollah가 이란 본국에서 이라크 북부를 거쳐 시리아 남부까지 이어지는 통로를 장악하게 되면서 더 이상 거리상의 문제는 사라졌다고 봐야 될 겁니다.”
탐탁지 않아 하던 로스 재무장관은 어느새 심각한 얼굴로 러셀 CIA 국장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더욱 심각한 건 이란 정규군보다 강력한 무력을 보유한 군사 조직인 혁명 수비대 병력이 내전 중인 시리아 남부에 영구적인 군사기지를 여러 곳 건설하고, 상당한 병력과 무기를 배치해 놨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정부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고 말입니다.”
“으음.”
낮게 신음을 흘린 로스 재무장관이 옆으로 몸을 기울여 브랜스테드 국무장관과 잠시 귓속말을 나눴다.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는 몰라도 굳은 얼굴을 한 그가 다시 러셀 CIA 국장을 보았다.
“경재 제재가 재개되어 내부 상황이 좋지 않은 걸로 알고 있는데, 정말 이란이 전면전이라는 강수強手를 둘 것이라 생각하시오.”
러셀 CIA 국장은 약간의 머뭇거림도 없이 확신에 찬 얼굴로 대답했다.
“그렇기 때문에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더욱 이스라엘과 전쟁을 벌일 가능성이 높을 겁니다.”
가만히 대화를 듣고 있던 브랜스테드 국무장관이 미간을 좁히면서 입을 열었다.
“내부의 불만을 바깥에 있는 적한테 돌려서 위기를 넘기려 할 거라는 말이군.”
“그렇습니다. 실제로 경제가 흔들리면서 국민들이 불만을 드러내자 이란 정부와 종교 지도자들이 나서 ‘미국이 제재를 부활해 이란 국민의 꿈을 산산이 깨뜨리려고 한다.’거나 ‘중동의 평화를 위해 이스라엘을 신성한 땅에서 몰아내야 한다.’는 과격한 발언을 쏟아 내며 국민들을 선동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스라엘이 어떻게 대응할지는 굳이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알 것 같군.”
“이미 예비군 일부에 동원령이 내려졌고 최정예 기갑 여단이 언제든지 국경을 넘어갈 수 있도록 골란 고원 쪽으로 전진 배치된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스라엘 정부가 진행하고 있는 일련의 조치들은 이미 전쟁을 기정사실화하고 움직이는 것이란 걸 어린아이들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충돌이 벌어진다면 시리아 남부에서 활동하는 헤즈볼라는 물론이고 시아파 민병대가 곧장 이란 측에 가세해 이스라엘과 싸울 것입니다. 여기에 이교도의 발아래 더럽힌 성지를 되찾는 성전聖戰이라는 대의명분까지 내걸린다면 시아파가 권력을 잡은 이라크와 시리아 정부군까지 급속도로 전쟁이 확산되어 갈 겁니다.”
이것도 여파를 최소한으로 잡은 거였다.
이란하고 사이가 좋지 않은 데다 친미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와 UAE는 중립을 지킬지 몰라도, 이집트를 비롯한 다른 대부분의 중동 국가들이 내부적으로 문제가 많은 상황이었기에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소위 이란이 주도하는 성전을 돌파구로 삼으려고 할 가능성이 아주 컸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브랜스테드 국무장관은 얼굴을 딱딱하게 굳힌 채 혀를 찼다.
“쯧. 이거 잘못하면 중동 문제가 다시 우리 미국의 발목을 잡게 될지도 모르겠군.”
9.11테러 이후로 10년 넘게 지속된 테러와의 전쟁으로 인해 미국이 입은 인적 물적 손실은 추산하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났다.
많은 비난과 손해를 감수하고 이제 겨우 그 끝없는 수렁에서 한 발을 빼냈는데 또 다시 그것보다 더 크고 거센 전화戰火의 모래 지옥 속으로 끌려 들어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응접실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숨이 길게 내뱉은 로스 재무장관이 처음과 달리 한껏 심각해진 목소리로 브랜스테드 국무장관을 보며 말했다.
“이제 겨우 경기가 살아나 양적완화를 끝내려는 시점에 러셀 국장의 예상대로 산유국들이 집중되어 있는 중동에서 큰 전쟁이 터진다면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경제에 어마어마한 재앙이 될 겁니다.”
브랜스테드 국무장관 역시 월가의 대형 투자은행 출신이었기에 중동 불안이 전 세계 경제에 미치는 파장이 얼마나 클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멀리 볼 것도 없이 경제 회복과 성장을 가장 큰 치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현 행정부 입장에서 중동 전쟁으로 인해 또다시 불황이 찾아오는 건 어떻게든 피해야 되는 일이었다.
팔짱을 낀 채 머릿속으로 차분히 생각을 정리한 브랜스테드 국무장관은 이내 고개를 들어 오른편에 앉아 있는 러셀 CIA 국장을 봤다.
“블랙 래빗이라는 자가 확실히 이란 정부를 협상 테이블로 데려올 수 있는 거요?”
중요한 물음에 러셀 CIA 국장은 브랜스테드 국무장관의 시선을 마주 바라보면서 진지하게 대답했다.
“가능성은 반반입니다. 하지만 차기 대통령으로 거론되는 군부 실세인 카셈 솔레이마니 사령관하고 직접 담판을 지을 수 있다면, 다른 루트를 통하는 것보다 일을 성사시킬 확률이 더 크지 않겠습니까?”
“흐음.”
위스키 잔을 집어 든 브랜스테드 국무장관은 딸그락 얼음 부딪치는 소리를 내면서 술잔을 살짝 기울였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대이란 경제 제재가 느슨해지는 하겠지만 더 큰 재앙을 막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지. 로스, 당신 생각은 어떻소?”
그러자 로스 재무장관이 썩 마음에 들진 않는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다른 방법이 없으니 그렇게 하는 수밖에요.”
“좋소. 그럼 내일 아침 백악관에 가서 대통령을 뵙고 내가 말씀드리도록 하겠소. 상황을 설명해 드려야 되니 러셀 국장 당신도 함께 갑시다.”
“그러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