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awaited RAW novel - Chapter 752
752
장기 투숙을 하고 있는 호텔 객실 소파에 앉아 혁권은 김덕현 전무한테 업무 보고를 받고 있었다.
“산둥제철하고 아직도 매각 협상이 진행 중인 거야?”
탁자에 보고서를 내려놓으면서 묻자 김덕현 전무가 그와 시선을 맞추면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지난번에 이야기를 했을 때는 거의 마무리가 됐다고 하지 않았나?”
“맞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협상이 지지부진한 이유가 뭐야? 문제라도 있어?”
“그건 아닙니다.”
뒤로 몸을 기댄 혁권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제 유가가 더 오르기 전에 매입을 서둘러야 된다고 하더니, 왜 시간을 끌고 있는 거지?”
이미 미국 텍사스 퍼미언 분지에 위치한 셰일오일 광구를 인수하는 데 필요한 자금 집행을 모두 승인해 준 상태였기에 이번 사업에 가장 적극적이던 김덕현 전무가 미적거리는 것에 더욱 의문이 들었다.
“매입 금액을 조금 더 줄이기 위해서 일부러 최종 합의를 늦추고 있는 겁니다.”
“애초에 최저가로 나온 거라서 가격에 대해서는 협상의 여지가 거의 없다고 하지 않았나?”
“그랬습니다만 최근 변수가 하나 생겼습니다.”
“변수라니?”
흥미로운 얼굴을 한 혁권은 상체를 바로 하며 물었다.
“북경제철을 인수 합병하는 과정에서 떠안게 된 560억 위안(한화 9조 2천억) 규모의 부채로 인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건 중앙정부에서 국영은행을 통해서 자금을 지원해 주기로 했다고 들었는데,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거야?”
“맞습니다.”
“그러면 문제가 될 것이 없잖아.”
“계획대로 됐다면 그렇습니다만 주거래 금융기관인 중국건설은행中國建設銀行에서 약속을 깨고 일방적으로 대출 액수를 대폭 줄이는 바람에 산둥제철이 심각한 자금난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확실한 정보야?”
살짝 얼굴을 굳히면서 묻자 김덕현 전무가 시선을 마주 보며 머리를 끄덕였다.
“예. 현지 주식시장에서는 산둥제철이 다음 달에 만기가 돌아오는 기업어음(CP) 21억 위안(3,400억 원)을 상환하지 못해 1차 부도가 날 수도 있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답니다.”
단순한 루머일 수도 있었지만 부도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면 회사 상황이 상당히 좋지 않다는 반증이었다.
“은행하고 마찰이라도 있었던 건가?”
“그런 건 아니고 얼마 전에 있었던 중국 최대 민영 에너지 기업 집단인 화신에너지그룹의 연속 디폴트 사태의 유탄이 산둥제철에 튄 것 같습니다.”
회사 규모만큼 화신 에너지 그룹이 발행한 채권 액수가 무려 300억 위안에 달할 정도로 많았기에 중국 금융 시장 전체에 엄청난 타격을 줬다.
그러자 일부 전문가들이 경고를 했지만 애써 무시한 채 지금까지 수면 아래에 잠자고 있던 중국 기업들의 연쇄 디폴트 위험이 급부상하면서 위기감이 더욱 고조됐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 정부가 대출 총액 관리에 나서자 금융시장의 경색이 한층 더 심화되고 있었다.
대충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알아차린 혁권은 심각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화신에너지그룹 사태에 건설은행도 손실을 많이 봤나 보군.”
“정확한 액수는 알 수가 없지만 적어도 150억 위안 이상 피해를 입은 걸로 보입니다.”
“채권을 그렇게나 많이 가지고 있었던 거야?”
그는 액수를 듣자마자 눈을 크게 치켜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150억 위안이라면 자그마치 한화로 2조 5천억 원이 넘는 거액이었기 때문이었다.
“건설은행이 부도가 난 화신에너지그룹의 주거래은행이기도 했지만, 은행장과 회장이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어 마지막까지 대출이 나갔던 모양입니다.”
“꽌시 관계였다 이거군.”
“예.”
중국에서는 꽌시가 아니면 제대로 진행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기에 어쩌면 당연한 거였다.
“그로 인해서 큰 손실을 입은 건설은행이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추가 기업 대출은 물론이고 예정되어 있던 자금 지원까지 대폭 줄였다고 합니다.”
“대출이 취소된 액수가 얼마나 되는 거야.”
“절반이 넘는 300억 위안 정도가 줄어든 걸로 보입니다.”
팔짱을 낀 채 몸을 다시 뒤로 기댄 혁권은 낮게 침음성을 흘렸다.
“으음. 그 정도라면 부도가 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주식시장에 돌 만하군.”
그러다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을 이었다.
“돈코릴리 철광산 매각 대금으로 받은 채권이 휴지조각으로 변해 버리는 거 아니야?”
가지고 있는 채권이 15억 달러어치나 됐기에 만약 정말로 산둥제철이 파산하거나 지불 불능 상태에 빠지면 손해가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니었다.
혁권이 우려를 표하자 김덕현 전무가 안심하라는 듯이 말했다.
“이런 경우에 대비해서 돈코릴리 철광산 지분을 담보를 잡아 뒀으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참, 그랬지.”
계약 내용을 떠올린 그는 굳어 있던 표정을 풀었다.
“이런 이유로 해서 셰일오일 광구 매입 대금을 최대한 낮춰 보려고 합니다.”
“하긴 급한 건 우리가 아니니까.”
“그렇습니다.”
한쪽 팔을 뻗어 앞에 놓인 찻잔을 집어 든 혁권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김덕현 전무를 보며 물었다.
“매입 액수를 얼마까지 낮출 생각인가?”
시선을 받은 김덕현 전무는 약간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대답했다.
“2억 달러입니다.”
혁권이 미간을 좁히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아무리 상황이 안 좋다지만 5천 달러나 낮춰 주려고 할까?”
“그래서 산둥제철 측에서 거부하기 어려운 조건을 제시하려고 합니다.”
“그게 뭔데?”
혁권의 물음에 김덕현 전무가 몸을 앞으로 당겨 앉으며 진지한 눈빛으로 이야기를 했다.
“매입 대금 전액을 채권으로 지불하는 걸 바꿔서 절반인 1억 달러를 현금으로 주겠다고 제안하는 겁니다.”
“흐음. 확실히 자금 사정이 안 좋은 상황에서 그런 제안이라면 상대가 솔깃해할 만하겠군.”
“최근 국제 유가 상승도 주춤하면서 옆으로 횡보를 이어 가는 중이라 더욱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어 갈 수 있을 겁니다.”
한쪽 손으로 턱을 매만지면서 잠시 고심한 혁권은 이내 고개를 들었다.
“이번 일은 김 전무한테 모든 걸 일임했으니까 하고 싶은 대로 진행을 하도록 해.”
“감사합니다.”
그렇게 김덕현 전무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백성균이 옆으로 다가와 꾸벅 머리를 숙이면서 말했다.
“급히 보고드릴 일이 있습니다.”
“나중에 하면 안 되는 거야?”
“급한 일입니다.”
듣고 있던 김덕현 전무가 탁자에 흩어놓았던 서류들을 모아 파일에 집어넣었다.
“아닙니다, 그냥 이야기를 들으시죠. 저는 보고해야 할 건 다 말씀드렸으니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그러겠나? 미안하군.”
“별말씀을요.”
김덕현 전무는 양해해 줘서 고맙다고 살짝 머리를 숙이는 백성균하고도 짧은 눈인사를 나누고는 깔끔하게 자리를 비켜 주었다.
김덕현 전무가 나가자 혁권은 편하게 소파에 등을 기대면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찰칵 소리를 내며 라이터를 열어 불을 붙인 뒤 길게 연기를 뿜어내고 조금 느슨해진 표정을 한 혁권이 물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야?”
“오늘 태일그룹 지주사인 태일산업의 주주총회가 열렸지 않습니까?”
“거기서 뭔 일이라도 있었던 거야?”
“김인철이 그룹 부회장으로 선임됐다고 합니다.”
“······!”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에 혁권이 눈을 부릅뜨면서 소리쳤다.
“그게 정말이야!”
“예. 대리인으로 참석한 우리 쪽 변호사가 급히 소식을 알려 왔습니다.”
“그런 안건은 없었잖아?”
“현장에서 주주 가운데 한 명이 안건을 상정시켰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김인철이 가진 지분을 가지고는 안건을 통과시킬 수 없었을 텐데?”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꽤 많은 소액 주주들이 찬성표를 던졌고 결정적으로 국민연금이 김인철의 손을 들어 줬다고 합니다.”
와락 얼굴을 구긴 채 혁권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러려고 갑자기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법원에 성년후견인 자격에 대해 이의를 제기해서 김종원 회장의 지분을 활용하지 못하도록 미리 손을 쓴 거였어.”
그동안 의문스러웠던 것이 모두 풀린 혁권은 별일 없을 거라는 생각에 방심하고 있던 후회했지만 이미 늦어 버렸다.
그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천천히 내뱉으면서 머릿속으로 지금 상황을 냉정하게 천천히 정리했다.
그러고는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있던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서 끈 뒤 약간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이미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지. 이번 주주총회에서 김인철한테 찬성표를 던진 자들이 누구누구인지 파악해서 보고하고 양쪽의 움직임을 주시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흐려진 안색으로 소파에 푹 파묻힌 혁권은 머리가 아픈 듯 관자놀이를 짚으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김종원 회장의 저택 거실에는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아 있었다.
상석에 앉은 이영순 여사를 비롯해 김성균 사장과 측근들이 소파를 가득 채우고 있었지만 다들 얼굴을 굳힌 채 누구 하나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렇게 탁자에 놓인 차가 차갑게 식어 갈 때 이영순 여사가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큰아들인 김성균 사장을 보며 말했다.
“이제 어떻게 할 거냐?”
김성균 사장은 핏발이 선 눈동자로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원래대로 다 되돌려 놓을 겁니다.”
그러자 이영순 여사는 심란한 표정을 하고선 눈을 내리깜았다.
이미 최악으로 치달아 버린 상황이지만 이제는 정말로 손 쓸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애초에 형제로 태어나선 안 되는 사이였던 걸까.
이영순 여사는 대체 어디서부터 길을 잘못 들어 버린 건지 후회하면서 큰아들에게 물었다.
“따로 생각해 둔 거라도 있니?”
“곧바로 임시 주주총회를 열어서 녀석을 해임시켜 버릴 겁니다.”
“지분을 12%나 가진 국민연금이 셋째를 지지해 줬는데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구나.”
“성년후견인 자격을 다시 회복해서 아버지가 가지고 계시는 지분만 쓸 수 있게 되면 충분히 판을 뒤집어 버릴 수 있으니까 아무 염려 하지 마세요.”
하지만 이영순 여사의 얼굴은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고문 변호사한테 들으니 그룹 경영권이 달린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재판으로 가면 판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다고 하던데······.”
“그렇게 안 되도록 해야지요.”
고문 변호사를 통해서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걸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현재로써는 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이영순 여사는 어깨를 늘어뜨리며 말했다.
“오늘따라 네 아버지가 더 원망스럽구나.”
“······.”
김인철이 그룹 경영권에 욕심을 가지고 있더라도 김종원 회장이 시퍼렇게 눈을 뜨고 있다면 감히 이런 행동을 하지는 못했을 터였다.
“아버지가 계셨다고 해도 음흉하기 짝이 없는 인철이 그놈은 언젠가는 지금처럼 일을 벌였을 거예요.”
형제간에 적대감과 분노가 깊이 쌓인 모습에 이영순 여사는 머리를 가볍게 내저으면서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하아. 그나저나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둬 주는 것이 아니라고 하더니 회사도 떼어 줬는데, 이런 상황에서 다른 이들은 몰라도 둘째 며늘애까지 내 뒤통수를 칠 줄은 정말 몰랐구나.”
주주총회가 끝나자마자 찬성표를 확인한 김성균 사장 모자는 우군이라고 생각했던 국민연금공단의 배신도 뼈아팠지만, 둘째 며느리인 홍수연이 대리인을 통해 김인철을 지지했다는 것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이번 주주총회가 끝나면 홍수연이 가지고 있는 태일산업 주식을 회수해서 자신의 지분을 늘릴 생각을 했던 김성균 사장은 어머니 앞이라 차마 욕설을 내뱉지는 못했지만, 분노에 가득 찬 얼굴로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