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awaited RAW novel - Chapter 857
857
#담판
홍콩 페닌술라 호텔Peninsula Hotel, 펜트하우스.
1928년 문을 연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호텔이자 숙박료가 가장 비싸기로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최고급을 지향하는 이곳에 왕민린 회장이 머물고 있었다.
현지에서 제일 좋은 곳이기도 했지만 완다 그룹이 홍콩에 진출하면서 인수한 호텔이었기에 매번 방문할 때마다 숙소를 여기로 했다.
값비싼 프랑스산 건축 자재를 사용해서 화려하게 꾸며진 펜트하우스 거실 소파에 혁권이 왕민린 회장과 마주 앉아 있었다.
“아직 멀리 떠나지 않으셔도 다행입니다.”
“원래 오늘 프랑스로 떠나려고 했는데 김 사장의 연락을 받고 일정을 잠시 미뤘소.”
“미국으로 가시려던 것이 아니었습니까?”
의아한 얼굴로 묻자 왕민린 회장이 앞에 놓여 있던 와인을 한 모금 마시고는 담담하게 이야기를 했다.
“곧장 미국으로 넘어가면 괜히 중국 정부의 심기를 건드릴 수도 있고 예전에 프랑스 남부 니스 근처에 저택과 와이너리Winery를 사 둔 것이 있어서 당분간은 거기서 머리도 식힐 겸 머물 생각이오.”
“그러시군요.”
아무리 그룹 지분을 상당 부분 넘겨주고 경영에서도 거의 손을 뗐다고 해도, 왕민린 회장 정도 되는 거물이라면 중국 정부에서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기에, 괜히 신경을 거슬려서 좋을 것이 없었다.
특히나 미국으로 간 유명 인사들 몇몇이 중국의 정치 상황을 비난하며 중앙 정부를 불편하게 만들면서 더욱 통제와 감시가 심해졌다.
아마도 왕민린 회장은 그런 것을 의식해서 행동을 조심하는 것일 터였다.
몸을 당겨 앉은 혁권은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프랑스는 다음에 가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
갑자기 찾아온 것도 그렇고 뭔가 일이 생겼다는 걸 눈치챈 왕민린 회장은 살짝 얼굴을 굳히며 그를 쳐다봤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요?”
“북경에 좀 가 주셨으면 합니다.”
“거긴 왜?”
“장양 상무위원과 친분이 있으신 걸로 아는데 만날 수 있도록 다리를 좀 놔주셨으면 합니다.”
완다그룹 회장쯤 되면 고위층에 폭 넓은 인맥을 두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애초에 부패 혐의로 공안에 조사를 받았던 이유가 상하이방하고 가깝게 밀착되어 있었기 때문일 정도였으니, 친밀하게 지내는 인물들이 많았다.
천웨이 전 주석의 정계 은퇴 이후 실질적으로 상하이방을 이끌어 가고 있는 수장인 장양 상무위원 역시 그중 한 명이었다.
“장양 상무위원은 무엇 때문에······ 설마 백수광 부부장 일로 부탁을 하려는 거요?”
“그렇습니다.”
담담하게 머리를 끄덕이는 혁권과 달리 왕민린 회장은 머리를 가로저으면서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소용없는 일이오. 아직 백 부부장한테 미련을 가지고 있는 모양인데, 시 주석도 어쩌지 못하는 걸 우리가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소. 아니, 애초에 이번 일을 꾸민 것이 상하이방 쪽인데 도움을 줄 리가 만무하지 않소?”
“부딪쳐 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지요.”
그러자 눈썹을 찡그린 왕민린 회장이 타이르듯 그를 설득했다.
“결과가 뻔히 보이는데도 덤벼드는 건 용기가 아니라 무모한 짓일 뿐이오. 그리고 까딱 잘못했다가는 장양 상무위원의 심기를 건드려서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소.”
“만약에 협상을 할 확실한 카드를 손에 쥐고 있다면 어떻습니까?”
왕민린 회장이 순간 멈칫하면서 살피는 듯한 시선으로 혁권을 바라보았다.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거요?”
“천리쥔이 해외로 빼돌린 비자금에 대한 증거 자료를 가지고 있습니다.”
“······!”
눈을 크게 부릅뜬 왕민린 회장은 자신도 모르게 등받이에서 몸을 떼고는 황급히 되물었다.
“설마 내가 알고 있는 그 천리쥔을 이야기하는 것이오?”
“맞습니다.”
“허어.”
너무 놀란 나머지 헛바람을 내뱉는 왕민린 회장을 보며 혁권이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이 정도 카드라면 상대도 그냥 무시하기는 어렵지 않겠습니까.”
“흐음. 확실히 약점을 제대로 잡은 것 같기는 하군.”
천리쥔을 잡으면 상하이 방의 중심인 천웨이 전 주석까지 여파가 미칠 테니 백수광 부부장과 비교했을 때 무게추가 확실히 기울어졌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왕민린 회장은 그리 내키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그런 거라면 직접 나서지 말고 차라리 시진핑 주석 측에 증거자료를 넘기는 것이 낫지 않겠나?”
“그건 안 됩니다.”
“나중을 생각해서라도 불필요하게 적을 만들어서 좋을 것이 없을 걸세.”
협상을 원하는 대로 잘 끝낸다고 해도 장양 상무위원을 비롯한 상하이방하고 척지게 될 가능성이 컸기에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혁권은 단호하게 머리를 내저었다.
“뭘 염려하시는지는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만 이번 일은 직접 담판을 지어야만 됩니다.”
계속 고집을 부리자 왕민린 회장이 이맛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꼭 그래야 되는 이유라도 있는 건가?”
“그렇습니다.”
“그게 도대체 뭔가?”
약간 짜증을 내며 묻자 혁권이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원하는 것과 다른 용도로 이 카드를 써 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저희만 닭 쫓던 개 꼴이 되지 않겠습니까?”
“으음.”
이야기를 들은 왕민린 회장은 낮게 침음을 흘리고는 아무런 반박을 하지 못했다.
백수광 부부장이 측근이기는 하지만 시진핑 주석 입장에서는 조금 아쉬울 뿐 얼마든지 다른 인물로 대체가 가능했다.
그에 반해서 천리쥔은 완전히 달랐다.
천리쥔을 잡으면 부자 관계인 천웨이 전 주석은 물론이고 상하이방에 관련된 인물들이 줄기 엮듯이 와르르 딸려 나올 수밖에 없었다.
말 그대로 가뜩이나 세력이 많이 위축된 상하이 방에 치명상을 안겨 줄 수 있는 한방이 되는 거였다.
이번 사건으로 상하이 방을 견제하는 마음이 커진 데다가 장기 집권의 야심을 가지고 있는 시진핑 주석이 이런 절호의 기회를 백수광 부부장하고 바꿀지는 의문스러웠다.
“김 사장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것도 그런 거 같군.”
“힘드시다면 다른 쪽을 찾아볼 테니 부담 가지실 필요는 없습니다.”
가만히 혁권은 바라보던 왕민린 회장이 이윽고 가볍게 머리를 가로저으면서 입을 뗐다.
“아닐세. 지난번 공안에 끌려갔을 때 상하이방에서 날 버리는 패로 쓴 이후로 그쪽에 더 이상 지킬 의리 따위는 없네. 그리고 백 부부장이 복귀할 수 있다면 나한테도 이득이 되지 않겠나.”
“그럼······.”
“미안하지만 내가 직접 북경에 가는 건 어려워도 장양 상무위원과 만날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어 보겠네.”
이미 한차례 공안에 잡혀 들어가 크게 곤욕을 치렀던 만큼 지금처럼 민감한 시기에 다시 북경으로 돌아가는 건 부담스러울 터였다.
그런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던 혁권은 원하던 이야기가 나오자 이를 드러내며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만 해 주셔도 충분합니다.”
왕민린 회장은 새삼스러운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정말 대단하오. 솔직히 말하자면 난 완전히 포기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전혀 생각지도 못한 카드를 들고 나타나다니.”
“아뇨. 저도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가까스로 길을 찾아낸 것뿐입니다.”
고개를 저으며 겸손한 태도를 보이는 혁권이었지만 왕민린 회장은 여전히 칭찬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그것도 김 사장의 운이지 않겠소. 그런 운이야말로 성공하려면 제일 필요한 것이지.”
왕민린 회장은 와인 잔을 들고 그에게 말했다.
“자, 그럼 일이 잘 풀리길 기원하면서 한잔합시다.”
그 말에 혁권도 웃으며 와인 잔을 서로 맞부딪혔다.
북경 중남해, 국가 주석 집무실 소파에 시진핑 주석과 장양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이 마주 보며 앉아 있었다.
탁자에는 주치의의 권유로 몇 년 전부터 시진핑 주석이 마시기 시작한 보이차普洱茶가 진한 향을 풍기며 놓여 있었다.
금방 중앙당 회의를 끝내고 시진핑 주석의 요청에 자리를 옮겨 마주 앉아 독대하는 시간을 가지게 된 거였다.
한참 동안 양쪽이 다 입을 다물고 날카롭게 신경전을 벌이는 가운데 방 안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그렇게 얼마쯤 있었을까 시진핑 주석이 먼저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고는 굳게 닫혀 있던 입을 뗐다.
“정말 이대로 끝장을 볼 생각이오?”
그러자 장양 상무위원이 아무것도 모르는 척 시치미를 떼며 말했다.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군요.”
“백수광 부부장의 일을 말하는 거요.”
“그 일이라면 공안 책임자나 중앙당 기율위 간부를 불러서 이야기를 하셔야지요.”
능청스러운 대답에 시진핑 주석은 눈썹을 찡그렸다.
“그쪽에서 손을 쓴 걸 다 알고 있으니 솔직히 말을 해 보시오.”
정색을 하며 묻자 잠시 상대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장양 상무위원은 이내 자세를 바로하며 말했다.
“사기史記 항우본기에 양호유환養虎遺患이라는 말이 있지요.”
시진핑 주석이 눈을 무섭게 치켜뜨고는 버럭 언성을 높였다.
“지금 나보고 은혜를 저버린 범이라는 것이오!”
사나운 기세에 주눅이 들 만도 했지만 장양 상무위원 역시 중앙 정계에서 닳고 닳은 인물이었기에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차분한 태도를 유지했다.
“주석께서 지금 자리에 오르는 데 저희들의 공이 컸다는 걸 부인하지는 못하실 겁니다. 그런데 공신 대접은 고사하고 토사구팽兔死狗烹을 하려고 드니 저희라고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이지 않겠습니까.”
“이보시오, 장양!”
“솔직히 지금까지 참은 것도 많이 인내를 한 겁니다.”
“그래서 나하고 싸우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원하는 건 아니지만 지금처럼 계속 저흴 핍박하신다면 어쩔 수가 없지요.”
“뭐라!”
화가 치밀어 오른 시진핑 주석은 주먹을 말아 쥔 손으로 앉아 있는 소파 팔걸이를 세게 내려쳤다.
그러자 장양 상무위원도 지지 않고 같이 날을 세웠다.
“방금 전에도 이야기를 했지만 먼저 칼을 들이민 건 우리가 아니고 주석이십니다.”
“이런다고 내가 흔들릴 것 같나!”
“밑동을 흔들지는 못해도 가지 정도는 쳐 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노려보는 시진핑 주석의 눈빛을 장양 상무위원이 피하지 않고 똑바로 맞받아쳤다.
“다시 예전처럼 서로 존중하는 관계로 돌아간다면, 이번 일을 조용히 넘길 수도 있습니다.”
“······.”
“가령 무고한 모함을 받아 조사를 받고 있는 양진산 청두 군관구 사령관을 풀어 준다면 아주 좋은 시작이 되겠지요.”
시진핑 주석은 기가 찬다는 듯 헛웃음을 내뱉었다.
“허어. 고작 이깟 일로 날 아주 손에 쥐고 흔들려고 드는군.”
“결정권은 주석께 있으니 알아서 하십시오. 그리고 한 가지 더 이제부터는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테니, 우리 쪽 사람들을 쳐 내려면 주석도 팔 하나 정도는 내놓으셔야 될 겁니다.”
할 이야기를 다 한 장양 상무위원은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돌려 성큼성큼 집무실을 나가 버렸다.
“이야기가 잘 안 되신 모양입니다.”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온 유상 중앙판공청 주임이 눈치를 보며 묻자 시진핑 주석이 이를 부드득 갈아 붙이면서 말했다.
“백수광이 가지고 있는 모든 직책을 거둬들이고 대기 발령을 내리도록 해.”
뜻밖의 지시에 유상 중앙판공청 주임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
“이대로 백 부부장을 포기하시는 겁니까?”
“안타깝지만 이번 일을 가지고 저들이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고 있으니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하는 수밖에.”
대충 상황을 파악하고는 굳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으음.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그만 나가 봐.”
“예.”
유상 중앙판공청 주임이 머리를 숙이고 나가자 시진핑 주석은 소파에 몸을 크게 기대고 목을 뒤로 젖혔다.
찡그린 그의 미간은 펴질 기미가 없었고, 얼굴에는 서늘한 한기가 내려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