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live the protagonist! RAW novel - Chapter 18
18화. >
18화.
“이모! 여기 김치랑 단무지 좀 더 가져다주세요.”
“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회사가 즐비한 식당가의 점심시간. 좌석을 꽉 채운 식당 안은 그야말로 밀어닥치는 손님들로 조금도 정신을 놓을 수 없는 전쟁터와 같았다. 민수 엄마는 양손에 음식 접시들을 들고는 이리저리 바쁘게 돌아다녔다. 그런데 어디선가 갑자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 민수 엄마! 여기야! 여기!”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깨달은 엄마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방금 치운 테이블에 앉아 있는 수지 엄마가 반갑게 손을 흔들며 부르고 있었다. 그녀와 마주치기도 싫었지만, 손님으로 온 그들을 모르는 척 무시할 수 없었던 엄마는 작게 한숨을 쉬며 다가갔다.
“오랜만이다! 한동안 얼굴도 못 봤네? 잘 지냈어?”
누가 보면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친구라고 오해할 정도로 환하게 웃으며 수지 엄마가 반갑게 말했다. 하지만 엄마는 수지 엄마를 오랫동안 알아왔기 때문에, 그게 모두 가식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네. 잘 지내고 있어요. 점심 드시러 오셨나 보네요.”
“으응~ 오늘 또 오랜만에 우리 예전 학부모 모임 멤버들 만나서 말이야. 배도 고프고 점심때가 다 돼서 밥이나 먹으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민수 엄마가 여기서 일한다는 게 기억나서 겸사겸사 얼굴도 보고 하려고 왔지.”
수지 엄마의 말에 테이블에 앉아 있던 다른 사람들이 비웃음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서로 속닥거렸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마치 들으라는 듯이 커서 민수 엄마도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어휴······. 어떻게 애 키우는 엄마가 애는 버려두고 식당에서 일이나 하지?”
“이래서 남편이 변변찮으면 안 된다니까. 돈을 잘 못 벌면 집안이라도 빵빵해야지.”
그 말을 들은 엄마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응? 뭐?”
“왜 그래? 우리는 아무 이야기도 안 했는데?”
엄마는 태연하게 모르는 척 잡아떼는 그들을 보며 속에서 열불이 올랐다. 지금 당장이라도 머리채를 부여잡고 혼쭐을 내주고 싶었지만, 일개 종업원인 엄마에게 있어 그들은 절대적인 갑이었다. 그리고 아직 식당일을 그만두기에는 집안 상황이 그리 좋지 않았다.
“여기요! 계산 좀 해주세요!”
“여기 음식 도대체 언제 나와요!”
“아줌마! 여기 밑반찬 더 가져다주세요!”
테이블 이곳저곳에서 직원을 찾는 외침에 엄마는 이성을 되찾고 말했다.
“주문하시겠어요? 아니면 나중에 다시 올 테니 그때 주문하시겠어요?”
“응? 아냐 아냐! 우리 지금 주문할 거니까 잠깐만 기다려 봐!”
그렇게 말하고는 그녀들은 메뉴판을 하나하나 천천히 살펴보며 주문할 메뉴를 고민했다.
“우리 오늘 뭐 먹을까? 난 좀 시원한 게 땡기는데.”
“나도! 여기 시원한 메뉴 뭐 없나?”
“냉면이나 콩국수는 또 어때?”
거의 5분이 넘는 시간을 메뉴를 고민했다. 주문을 받지 못해 멀뚱히 서 있는 엄마를 바라보는 다른 직원들의 눈초리가 따가워졌다. 안 그래도 일손이 부족해 눈코 뜰 새도 없이 바쁘게 돌아다니는 상황인데 혼자 멍하니 한 테이블에 서서 가만히 있는 엄마의 모습이 그리 곱게 보이지 않았다.
“우리 이제 주문할게! 물냉면 하나, 콩국수 하나, 그리고 김치찌개랑 된장찌개 하나씩 줘.”
드디어 주문을 받은 엄마는 그들의 테이블을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서 벗어나자마자 인상을 팍 찌푸리며 식당 사장이 엄마를 보며 한소리 했다.
“아니! 민수 엄마! 안 그래도 바쁜데 주문 하나 받는데 왜 이렇게 오래 걸려?”
다른 직원들의 항의를 들은 것인지, 주방 안에 틀어박혀 있던 사장이 밖으로 나와 엄마에게 다짜고짜 따지듯이 물었다.
“한가한 시간도 아니고! 제일 바쁜 점심시간에 아는 사람이 손님으로 왔다고 그렇게 수다 떨고 농땡이 피우면 어떻게 해! 다른 사람들이 민수 엄마 때문에 피해 보는 거 안 보여?”
“그게 아니라 저기 테이블에서······.”
상황을 설명하려 했지만, 사장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됐고! 빨리 여기 나와 있는 음식들 얼른얼른 서빙하고 와! 지금 주문 엄청나게 밀렸어!”
주방 서빙 트레이에 길게 늘어져 있는 음식들을 가리키며 사장이 말했다. 엄마는 억울했지만, 우선 이미 완성된 음식들을 들고 주방 밖으로 나섰다. 늦어진 만큼 빨리빨리 움직이지 않으면 주문이 계속 밀릴 거라는 걸 알았다. 바쁘게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밀린 주문을 소화하고 나니 어느새 수지 엄마의 테이블 주문 음식이 완성되어 있었다.
“글쎄 요즘 백화점에 나온 신상 백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사 달라고 남편한테 바가지를 얼마나 긁었는지 결국은 사 주더라고.”
“그러니까. 조를 때는 포기하지 말고 들어줄 때까지 계속 바가지를 긁어야 한다니까.”
“호호호호. 나도 한번 이번에 곧 생일 핑계로 한번 그래 볼까?”
식당 안이 떠나가라 시끄럽게 수다를 떨고 있는 그들에게 다가가 무표정한 얼굴로 주문한 음식들을 앞에 내려놓았다.
“주문하신 음식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보글보글 끓고 있는 뚝배기를 수지 엄마의 앞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김치찌개가 많이 뜨거우니 조심하세요.”
깔끔하게 서빙을 끝내고 다음 주문을 위해 돌아선 엄마의 뒤로 갑자기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렸다.
“꺄아아악!”
뒤를 돌아본 엄마는 아프다는 듯이 한 손을 부여잡는 수지 엄마 주위에서 호들갑을 떠는 다른 엄마들을 볼 수 있었다.
“어머나! 수지 엄마 괜찮아?”
“내 손! 아이고! 아이고!”
“화상 입은 거 아냐? 한번 봐 보자.”
갑작스레 들려온 비명에 식당 안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테이블 곳곳의 손님들의 시선이 수지 엄마네 테이블로 쏠렸다.
“아이고! 손님. 괜찮으세요? 무슨 일이신가요?”
식당 사장이 허둥지둥 달려와 수지 엄마에게 물었다. 그러자 수지 엄마가 벌컥 화를 내며 사장에게 소리쳤다.
“도대체 김치찌개를 이렇게 뜨겁게 해서 가지고 오면 어떻게 해요! 화상 입었잖아요!”
그 말에 사장은 잠깐 당황한 듯싶더니 고개를 숙이며 연신 사과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괜찮으세요? 혹시 다치시진 않으셨나요?”
그 말에 수지 엄마는 흥분한 얼굴로 손을 내보이며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보세요! 화상 입은 거 안 보여요? 이거 어떻게 할 거에요?”
살짝 피부가 빨갛게 달아오른 그녀의 손등 일부가 엄마의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유심히 살펴보지 않으면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희미하게 빨개진 것을 보면 확실히 그렇게 심한 화상은 아니라는 것은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상황이었다. 사장도 그런 상황은 알고 있었지만, 괜히 꼬투리를 잡히기 싫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저희 직원이 뭘 모르고 실수를 했나 보네요. 죄송합니다. 민수 엄마! 뭐하고 있어! 빨리 사과하지 않고!”
사장이 엄마를 흘겨보며 빨리 고개 숙여 사과하라고 재촉했다. 그러자 엄마는 딱딱하게 얼어붙어 꼿꼿하게 서서 그들을 바라보기만 했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사과하기를 바라는 수지 엄마와 기분 나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다른 엄마들을 바라보며, 이들이 왜 이 식당에 일부러 찾아왔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제가 왜 사과해야 하죠?”
“뭐······?”
사장은 엄마의 반응에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되물었다.
“전 분명히 뜨거우니 조심하라고 말했어요. 그런데도 그릇에 손을 대서 화상을 입은 건, 손님의 부주의 때문이지 제 잘못이 아니에요.”
억울한 일이었지만, 그냥 눈 꾹 감고 사과를 했다면 간단히 끝날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마는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아니, 그러고 싶지 않았다. IMF로 인해 어려워진 집안 형편 때문에 식당 일에 뛰어든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지막 남은 자존심까지 완전히 버릴 수 없었다. 그것도 저렇게 일부러 악의를 가지고 괴롭히려는 목적으로 찾아온 수지 엄마에게는 더더욱. 그래서 엄마는 사과를 거부하고 당당하게 나왔다. 그러자 걸렸다는 듯 수지 엄마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머? 언제 저한테 그런 말 했다는 거예요?”
“······뭐라고요?”
너무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는 나머지 엄마는 할 말을 잃었다. 수지 엄마는 전혀 그런 기억이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사장에게 말했다.
“저는 그런 말 들은 적이 없는데요?”
“그게 무슨······. 제가 아까 분명히 말했잖아요! 김치 찌개 올려 놓으면서······.”
엄마가 아니라고 반박하고 상황을 설명하려 했지만, 테이블에 앉아 있던 엄마들이 수지 엄마의 편에 서서 맹공격을 펼치기 시작했다.
“맞아요! 아무 말 없이 음식만 탁하고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갔어요. 안 그래도 음식만 내려놓고 가버려서 얼마나 불친절하다고 생각했는데요!”
“맞아. 수지 엄마! 나도 바로 옆에 앉아 있었는데, 그런 말 들은 적 없었어.”
다수가 일제히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하자 엄마는 그제야 이게 함정이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무슨 이런 식당이 다 있어! 자기 잘못은 인정도 하지 않고 손님한테 잘못을 뒤집어씌우고 사과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직원이라니. 도대체 직원 교육을 어떻게 하시는 거예요? 네?”
“맞아! 손님한테 이래도 되는 거예요?”
그 말에 주변 손님들도 매서운 눈초리로 사장을 바라보았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막장 가게로 소문이 나게 될 처지에 놓인 사장은 잠깐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머릿속으로 궁리하였다. 그리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한 가지 묘안을 생각하며 자신을 난처하게 만든 민수 엄마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민수 엄마! 앞치마 이리 줘.”
“사장님!”
사장이 내미는 손의 의미를 깨달은 엄마가 소리쳤다. 하지만 사장은 차가운 시선으로 엄마를 바라보며 말했다.
“자기 잘못도 사과하지 않고 손님한테 잘못을 뒤집어씌우는 그런 직원은 우리 식당에 필요 없어. 오늘부터 해고니까 앞으로 나오지 마.”
엄마는 뭐라 항변하려는 듯 입을 연신 달싹거렸지만, 주변에서 지켜보던 손님들의 시선은 싸늘했다.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는 상황이란 걸 깨달은 엄마는 아무 말 없이 앞치마를 풀어 사장에게 건네주었다. 사장은 앞치마를 받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돌아서며 손님들에게 연신 고개 숙여 사과하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부족해서 일어난 일이니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앞으로 저런 불친절한 직원들의 서비스를 받는 일이 다시는 없도록 철저하게 주의하고 또 교육하겠습니다.”
사장의 즉각적인 대처에 여러 손님들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자신들의 식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해고를 당한 엄마는 잠깐 멍하니 서 있다가 어디론가 떠나버렸다. 그리고 그런 엄마의 뒷모습을 끝까지 지켜보던 수지 엄마는 희열에 가득 찬 미소를 지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흥! 그러니까 어딜 감히 나한테 대들어.’
전부터 맘에 들지 않았다. 어딘가 모자란 것 같은 아들 한 명 데리고 처음 만났을 때, 똘망 똘망하고 예쁜 수지랑 너무 비교되는 것 같아서 강렬한 우월감이 느껴졌다. 게다가 알고 보니 아빠가 남편의 부하 직원이라는 것을 알고 행동 하나하나마다 굽신대는 그녀의 태도에 희열을 느낀 복자는 자연스럽게 자주 민수네와 연락하고 가깝게 지냈다. 다만, 그 관계는 오로지 그녀의 마음속 우월감을 채워주기 위한 목적일 뿐. 그런데, 어느 날 그녀가 민수 자랑을 시작한 날부터, 희열을 느끼게 해주던 우월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평소에 자기 밑에서 굽신대던 그녀가 대들기 시작한 순간부터, 마음 깊은 곳에서 엄청난 괘씸함과 불쾌함이 밀려왔다.
그래서 일부러 작년부터 집요하게 보복을 해 왔다. 작년 학교 선생님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해 수지와 민수를 같은 반으로 배정되게 수를 썼고, 왕따를 시키게 했다. 그리고 식당 인테리어 공사로 안면이 있던 사장에게 민수 엄마에 대한 험담을 엄청나게 해댔고, 남편에게는 민수 아빠를 자르라고 온갖 바가지를 긁고 있던 참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 기다리며 탐스럽게 익은 그 복수의 열매들을 따서 음미할 차례였다.
‘어디 두고 보자. 이게 끝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야.’
웃으며 맛있게 밥을 먹고 있는 복자의 눈이 서슬 퍼렇게 빛났다. 아직 그녀의 보복은 끝나지 않았다.
끝
ⓒ 군만두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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