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live the protagonist! RAW novel - Chapter 180
180화. >
180화.
2007년 12월.
쌀쌀한 겨울바람이 불어닥치며 이제 다가오는 연말을 준비하는 사람들로 길거리의 상가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북적거렸고, 회사원들은 한 해를 마무리하고 정산하느라 정신없이 일하며 밤늦게까지도 회사 사무실에는 불이 꺼질 줄 몰랐다.
“다 모였으면 이번 달 정기회의 시작하지.”
아진 그룹의 회의실. 이준희 회장을 중심으로 모인 각 계열사 사장과 임원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앉아 각자 준비한 서류들을 이리저리 뒤적이기 시작했다.
“아진 건설부터 보고를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지하도시 언더월드에 대한 제1구역과 2구역에 대한 정식 개방이 내년 1월 1일, 신정으로 계획되어 있습니다. 현재 최종적인 마무리 작업을 진행 중이며 큰 문제 없는 이상 아무 문제 없이 이번 달 내로 완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1구역과 2구역. 그 두 구역만 해도 한강을 중심으로 서울 강북 지역 전체에 맞먹는 거대한 규모로 지어지는 도시였다. 그것도 지하에서 건설되는 그 엄청난 대규모의 프로젝트를 이렇게 짧은 시간 내에 큰 문제 없이 성공적으로 끝마친다는 것에 대해서 이준희 회장은 이민식 사장을 애틋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생했네. 그렇게 짧은 시일 내로 그렇게 엄청난 공사를 해내기에는 힘든 게 많았을 텐데.”
“아닙니다. 10만 아진 건설 직원들의 강한 열정 덕분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10만 명. 농담이 아니라 정말 10만 명의 아진 건설사 소속 직원들을 전부 그 거대한 공동 안에 때려박은 이민식 사장은 전 세계의 건축가와 설계사들을 끌어모아 완벽을 추구하는 퀄리티의 계획 신도시를 건설했다. 그의 잠재되어 있던 리더십이 폭발과 동시에 만년 백수 신세를 모면하고 아진 그룹의 사원이라는 명함을 달게 된 10만 명의 열정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며 그 짧은 3년 동안 말도 안 되는 괴물을 만들어버렸다.
“겸손이 지나치면 기만이 된다고 하는데 딱 자네를 두고 하는 말인가 보군. 부정하지 말게. 그 10만 명을 이렇게 효율적으로 부리면서 그렇게 아름다운 도시를 만드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자네의 사람 부리는 재주만큼은 여기 이 방 안의 누구보다도 뛰어날 거야.”
민식은 이준희 회장의 과한 칭찬에 낯부끄러워 몸둘 바를 모르며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런 저를 부리시는 회장님만큼이야 하겠습니까?”
“으허허허! 이게 그렇게도 볼 수 있는가? 이 친구 생각이 참 기발하구먼.”
이준희 회장은 갑자기 들어오는 그의 아부가 그리 싫지만은 않은지, 호탕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래서······. 이제 언더월드의 건설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이제 잉여 노동력은 어떻게 할 생각이지?”
“우선 기존 인원에서 절반인 5만 명은 제3구역과 4구역 공사에 투입될 것입니다. 공사 기간은 대략 5년에서 10년 정도로 잡고 있으며, 나머지 인원은 미국과 영국의 지하 도시 건설에 투입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10만 명이나 뽑았음에도 지하 도시를 탐내고 있는 수 많은 국가들 때문에 아진 건설은 눈코 뜰 새도 없이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었다. 최소 건설 수주를 받더라도 3년에서 5년은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 어떻게든 먼저 우선권을 따내기 위해서 여러 국가들이 아진 건설에 맹목적인 러브콜을 보내고 있었다.
“알겠네. 해외 수주와 관련해서는 지금까지 해 온 것처럼 잘 할 것이라 믿고 맡기겠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준희 회장은 이민식 사장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내며 아진 건설을 그에게 전적으로 맡겼다. 이미 그 능력은 충분히 입증했기에, 앞으로도 문제없이 잘 해낼 거라는 생각을 하며 이준희 회장은 다음 안건으로 넘어갔다.
“그럼 다음으로······. 아진 전자에 대해서 보고하게.”
이준희 회장은 천천히 좌중을 둘러보더니 자신의 아들이자 아진 그룹의 후계자인 이주용 부회장을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슬슬 물러날 때가 되었다고 판단한 이준희 회장이 아진 전자의 경영 일체를 그에게 맡겼기에 이 정기회의 시간은 그동안 그가 자신을 대신해 아진 전자를 잘 꾸려나갔나 점검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자신을 지목하자 이주용 부회장은 약간 긴장한 표정으로 이준희 회장을 바라보더니 이내 일어나서 최근 추진하고 있는 사업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최근 아진 전자가 개발한 프리덤이 유럽 대륙에서 가동을 시작했습니다.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이 중단되며 폐쇄된 발전소를 대신하여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되고 있습니다.”
이미 언론에서는 아진 전자가 개발한 프리덤을 통해 미국에서 생산하는 전력이 그 광활한 대서양을 가로질러 유럽 대륙 전체에 공급되고 있다고 대서특필되고 있었기에 이준희 회장도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 문제와 관련해서는 꽤 기발한 잔머리를 썼더군. 프리덤의 양산을 꾀하기보다는 그 규모의 확대를 노리다니 말이야······.”
엄청나게 까다로운 생산 공정 때문에 전 세계는커녕 한국과 미국 내에서도 극히 일부에서만 적용되는 상황에서 유럽 대륙 전체에 프리덤의 혜택을 선사하라는 민수의 요구에 난감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주용의 기발한 아이디어로 그 문제는 너무나도 간단하게 해결되었다.
“현재 기가급 규모로 제작되는 프리덤의 경우 한 기당 120GW의 에너지 전송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 5기가 실전에 배치되었으며 추가로 영국과 독일에 2기가 배치될 예정입니다. 이 정도면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 중단으로 인해 모자란 에너지는 물론, 그 이상의 전력을 실시간으로 공급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휴대전화나 자동차 등과 같은 가전 제품에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건물 크기에 맞먹는 초대형 프리덤을 폐쇄된 발전소에 설치해 기존의 이미 만들어진 전력망을 이용하자는 이주용 부회장의 발상은 보기 좋게 먹혔고, 결국 유럽 연합은 러시아로부터 완전한 에너지 독립을 이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민식 사장과는 다르게 이준희 회장은 그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더 던졌다.
“러시아의 파산에 대해서 아진 그룹의 부회장으로서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러시아의 파산. 한국을 중심으로 미국과 유럽 연합 전체가 가담한 경제 제재 조치. 그로 인해서 러시아의 경제는 파탄에 이르는 수준으로 추락했다. 그나마 남아 있던 외화 보유고도 루블화에 대한 방어에 나선다며 밑 빠진 독에 물 붓듯이 부어댄 것 때문에 남아있던 외채를 갚을 돈도 부족해진 탓에, 결국 이들은 전 세계에 배짱을 부릴 수밖에 없었다.
‘갚고 싶어도 갚을 돈이 없다. 배 째라. 씨발!’
나중에 갚을 의지가 있으면 지불유예 (모라토리엄:Moratorium)을 선언했겠지만, 전혀 갚을 생각 없으니 배 째라며 파산(디폴트:Default)을 선언하자 러시아에 돈을 떼어먹힌 여러 국가가 이를 갈며 정말로 러시아의 배를 째기 위한 대응에 나섰다.
떼먹힌 돈을 받아내기 위해서 떼먹힌 국가들이 합심해서 철저하게 자국 내부에 존재하는 러시아 소유의 자산을 탈탈 털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러시아의 고위 정치인들의 비밀 계좌들이 하나둘 밝혀지면서 전 세계가 떠들썩해졌다.
[ 러시아 정부의 고위층 인사들의 은닉 자금으로 추정되는 해외 계좌들이 계속해서 적발되고 있습니다. 비밀 자금의 규모만으로도 이미 천억 달러를 넘어가고 있으며, 이 중에는 러시아의 대통령인 블라디미르 빅토르의 것으로 추정되는 계좌도 있어 커다란 논란이 예상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전 세계의 클라스가 남다른 막장 국가로 그 위엄을 보여주면서 국가 이미지는 시궁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며 이주용 부회장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이준희 회장에게 말했다.
“지금이라도 가능한 한 빨리 러시아에서 모든 사업을 철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면 사업 철수. 그 말에 회의장 안의 모두가 놀란 눈빛으로 이주용 부회장을 쳐다보았다.
“사업 철수라······. 왜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된 것이지? 아무리 러시아가 파산을 선언했다고 하지만 너무 극단적인 것 아닌가?”
아무리 파산했다고 하더라도 1억이 넘는 막대한 인구를 자랑하는 국가. 내수 시장만으로도 충분히 자급자족이 가능한 성장 여력을 지닌 국가였기에, 단순히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수익성 악화로 포기하기에는 매력적인 시장이었다. 하지만 이주용 부회장은 생각이 조금 달랐다.
“이번 러시아 사태가 일어나게 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인 암살 공작 사건과 관련해서 러시아는 아직까지도 사실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전기찬 대통령이 공식적인 인정과 사과를 하기 전까지 경제 제재를 풀 생각이 없다고 인정한 이상, 사태는 계속해서 장기화할 것이고 러시아에 있는 사업체들의 수익성은 지속해서 악화할 것입니다.”
신규 투자가 금지된 이상, 러시아에 남아 있는 사업체들은 그 안에서 자급자족해야 하는데, 그게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남는 것은 그저 지속적인 적자와 함께 파산이라는 결말이었다.
“조금이라도 건지려면 지금이라도 러시아에 있는 모든 자산을 청산하고 철수해야 합니다.”
이주용 부회장의 말에 회의실 안의 분위기는 침울해졌다. 현재 상황도 그의 말대로 흘러갈 가능성이 크기에 지금이라도 깔끔하게 철수를 결정하고 사업체를 철수한다면 어느 정도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준희 회장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렇게 되면 그나마 외화를 벌어오던 양질의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사실에 러시아 정부의 공분을 살 위험성이 있을 텐데? 그걸 감수하면서까지 철수를 할 가치가 있다고 보는가?”
안 그래도 있는 것 없는 것 죄다 끌어모아 사활을 걸고 외화 반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러시아 정부의 심기를 거스르는 짓을 벌일 필요가 있느냐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이주용 부회장은 진지한 얼굴로 대답했다.
“회장님. 아진 그룹이 진정으로 무서워해야 하는 것은 러시아가 아니지 않습니까.”
“뭐라고······?”
이준희 회장은 주용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침음성을 내뱉었다.
“끄으응······. 그건 그렇군······.”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이준희 회장과 이주용 부회장, 그리고 이민식 사장만큼은 알고 있었다. 러시아가 파산하게 된 그 배후에는 절대 자신을 엿 먹인 자를 잊지 않고 처절하게 더 크고 우람한 엿으로 되돌려주는 악마보다 더한 꼬맹이가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러시아의 미움을 받는 게 그 아이한테 찍히는 것보다는 낫겠군.’
괜히 러시아 정부의 눈치를 보다가 오히려 아진 그룹이 위태로울 수도 있다는 위기감에 이준희 회장은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네. 그러면 아진 전자만이 아니라 아진 그룹은 러시아 시장에서 전멸 철수하는 것으로 방침을 세우고 그에 대한 계획을 세우도록 하게. 그 대신 인도나 동남아시아 쪽 시장을 공략하는 데 집중하도록.”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 다른 안건으로······.”
위이이잉.
갑자기 울려 퍼지는 전화기 소리에 이준희 회장의 말이 끊기자, 일제히 모두의 시선이 한 사람에게 꽂혔다.
“정말 죄······죄송합니다.”
당황한 듯, 허겁지겁 전화기를 끄려고 꺼내든 이민식 사장은 이내 발신자를 확인하고는 이준희 회장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그는 그 전화를 건 사람이 누구인지를 눈치채고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가서 받고 오게.”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허둥지둥 밖으로 나간 이민식 사장은 이내 숨을 크게 들이마쉬고는 긴장한 얼굴로 전화를 받았다.
“네. 여보세요.”
그러자 전화기 너머로 쾌활함이 가득 묻어나오는 친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아, 이민식 부장······. 아니, 이제 사장님이구나.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셨어요? ]김민수. 그와 직접 이야기를 나눈 것도 몇 년 전이 마지막이었기에, 갑자기 연락을 직접 했다는 사실에 한껏 긴장한 민식은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민수님은 잘 지내고 계시는가요?”
[ 저야 뭐 평소처럼 그냥 이것저것 하면서 보내고 있죠. 그보다······. 이번에 한 가지 부탁이 있어서 전화를 드렸는데요. ] “부탁이요? 어떤 것 말입니까?” [ 그게······. 이번에 언더월드 완공식 행사를 저희 부모님이 엄청나게 보고 싶어 하시거든요? 그런데 입장권을 못 구했다고 하셔서 그런데 혹시 하나 구해줄 수 있나요? ]언더월드에 대한 완공식. 전기찬 대통령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퇴임식과 같이 화려하게 준비된 그 이벤트는 엄청난 경쟁률을 기록하며 일반인들에게 추첨 방식으로 입장권이 배포되었다. 하지만 민수의 부모님은 아쉽게도 탈락했는지, 자신에게 입장권을 부탁하는 그를 보며 민식은 흔쾌히 대답했다.
“그 정도는 제가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정말요? 잘됐네요. 정말 고마워요. ]“네. 입장권을 자택으로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네. 네. 들어가세요.”
생각보다 간단한 부탁이었다며 전화를 끊은 민식은 다시 회의실로 향하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별 것도 아닌 일 가지고 괜히 걱정했네.”
하지만 민식은 몰랐다. 이 민수의 사소한 부탁 하나가 얼마나 엄청난 대형 사고를 불러오게 될지 말이다.
끝
ⓒ 군만두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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