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ng live the protagonist! RAW novel - Chapter 27
27화. >
27화.
“그럼 지금부터, 아진 전자의 신제품 발표회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민식은 밝은 미소를 지으며 당당하게 외쳤지만, 속으로는 죽을 맛이었다.
그의 앞에서 날카로운 눈으로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세계 각국의 고위급 대사가 자신의 발표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안 그래도 두근대던 심장이 마치 터질 듯 날뛰었다.
“야! 당장 카메라 돌려! 지금부터 생방송 시작이다.”
갑자기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소리에 눈길을 돌려보니 무대 한편에서 어느새 설치된 국영 방송사인 KBC의 카메라가 빨간 불빛을 내며 작동하고 있었다. 아마 지금부터 그의 발표가 전국에 실시간으로 중계되고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민식은 실소가 흘러나왔다.
‘나도······ 참 많이 성공했네.’
아진 전자에 입사해서 밑바닥에서 신입사원으로 구르다 겨우 갓 신입 딱지를 떼었을 무렵, 우연히 그에게 날아온 행운과도 같은 기회. 불안하고 위태로운 줄타기 같았지만, 2년간 죽도록 노력한 끝에 결국 성공했다. 이제 이 발표만 성공적으로 해내면, 아마 그의 앞에는 찬란한 미래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민식은 자기도 모르게 미소가 나왔다. 하지만 이번에 짓는 미소는 이전의 억지 미소보다 훨씬 자연스러웠다.
그는 리모콘을 조작하여 스크린에 한 가지 이미지를 띄우며 발표를 시작했다.
“저희가 이번에 새롭게 출시할 반도체 S-98은 ······.”
발표 시간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전문적인 공정과 스펙에 대해서는 민식도 모르는 부분들이 많았지만, 벼락치기로 기본적인 반도체 기술에 대한 개념들을 학습했기에 발표 과정에서 막히는 부분은 별다르게 없었다.
“그럼······. 이상으로 이번에 새롭게 아진 전자에서 출시한 반도체에 대한 소개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민식이 살짝 고개를 숙이며 발표를 끝마쳤지만, 발표회장 전체는 침묵에 빠졌다. 하나같이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입을 벌린 채 멍하니 있을 뿐이었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적막하고 어색한 분위기에 민식은 갑자기 무안해져서 물었다.
“혹시 질문하실 분 계신가요?”
그 말에 일제히 손을 들며 그간 억눌러져 있던 화산이 폭발하듯이 엄청난 질문세례가 민식을 덮쳤다. 일제히 자기 할 말을 해 대는 통에 하나도 들리지 않아 민식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손만 드세요. 지금부터 손 안 들고 말하는 사람은 질문 기회를 박탈하겠습니다.”
그 말에 발표회장이 한순간에 또다시 조용해졌다. 민식은 잠자코 손을 들고 있는 사람 중 하나를 지목하자, 진행 요원 중 하나가 재빠르게 달려가 마이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KBC의 정현진이라고 합니다. 이번에 아진 전자에서는 반도체 S-98에 대한 구체적인 출시 일정이 잡혀 있습니까? 만약, 출시된다면 어느 국가에서부터 시작될지 알 수 있을까요?”
그 질문에 다른 기자들은 열심히 질문을 받아적으며 민식을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보며 어떤 대답을 할지 기다렸다.
“우선 이번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저희가 세웠던 대원칙은 단 하나입니다.”
기자의 질문에 민식은 알 수 없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어느 국가든, 어느 기업이든, 우리에게 가장 유리한 제의를 하는 국가에게 먼저 이번에 저희가 개발한 신제품들을 우선 출시하겠다고 말입니다. 이미 양산은 시작되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본사의 반도체 공장은 하루도 빠짐없이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 말에 발표회장 일대가 술렁였다. 단순한 개발 성공에 대한 발표가 아니었다. 이미 양산에 대한 준비까지 끝나서 실제 생산에 시작되었다는 말에 몇몇 인사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민식은 확연히 안색이 변한 자들의 힐끗 바라보고 속으로 생각했다.
‘마이크런과 도시봐에도 초정장을 보냈었나?’
일전에 발표회를 준비하면서 그런 이야기도 있었지만, 괜히 불러놓고 능욕하는 꼴이 될까 초청하지 말라고 했었는데 두 기업의 아시아 지부장이 직접 이 자리에 온 것을 보니 누군가 손을 쓴 것 같았다. 아니면 자기들이 지 발로 찾아왔거나. 민식은 태연한 표정으로 계속해서 들어오는 날카로운 질문들을 능숙하게 받아냈다. 그런데, 갑자기 가만히 그를 바라보던 외국인 한 명이 손을 들었다.
주한 미국 대사 루이스 피츠버그. 그가 마치 자기를 지목해 달라는 눈빛으로 민식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냥 무시할 수도 있었지만, 민식은 그에게 마이크를 건네주라고 신호를 주었다. 마이크를 건네받은 루이스는 목을 가다듬고는 영어로 그에게 물었다.
“이번에 아진에서 개발한 반도체에 대한 발표. 인상 깊게 들었습니다. 미국에서도 하루빨리 아진 전자의 반도체 제품이 출시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외교관답게 매끄럽고 자연스러운 수사적 표현들로 아진 전자를 칭찬하고 나섰다. 그리고 그는 주머니에서 한 가지 물건을 꺼내면서 물었다.
“그런데······. 발표는 이게 다가 아닐 텐데요. 이번에 본 대사관으로 보내주신 이 물건에 대한 소개를 빨리 시작해 주시죠. 지금 상황을 보아하니, 저희만이 아니라 한국에 주재하는 모든 대사관에다가 전부 보내신 것 같은데요. 이번에 아진이 참 재미있는 시도를 했네요.”
마지막 말을 하면서 일순간 루이스는 날카로운 눈빛을 민식에게 보냈다. 철저하게 기밀을 유지하던 아진이 갑자기 일순간에 태도를 바꿔 전 세계 대사관에 자신들이 개발한 신제품의 샘플을 보냈다. 그리고 그 샘플을 받아본 여러 국가에서는 한바탕 난리가 났다. 지금 이 자리에 앞다투어 등장해 발표를 듣고 있는 수십 명의 외교 대사급 인사들만 봐도 사안의 중대함을 알 수 있었다. 루이스의 발언에 카메라맨들과 기자들은 미친 듯이 무대 상석에 자리하고 있는 외교 대사들의 모습을 카메라 담았다. 민식은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알겠습니다. 이거 바쁘신 와중에도 이 자리를 빛내주신 각국의 외교 대사님들을 너무 기다리게 했군요.”
그렇게 말하면서, 대형 스크린에는 새로운 무언가가 떠올랐다.
“그럼 시작하죠. 이번에 저희가 새롭게 선보일 아진 전자의 신제품. G-1에 대한 소개를.”
*
“크으······. 지린다.”
미국 대사의 질문에 답하는 민식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한창 신제품 발표회가 진행 중이었지만, 나는 팝콘을 먹으며 나만의 아지트에 처박혀 생방송으로 중계되고 있는 아진 전자의 발표회를 보고 있었다. 괜히 발표회 주변에 얼쩡거리면서 남들 눈에 띄지 말라는 이준희 회장의 엄포에 잠자코 있는 상황이었지만, 민식이 대중 앞에 나서서 화려하게 G-1을 소개하고 시연하는 것을 보면서 약간 아쉬움이 들었다.
“내가 저기서 섰더라면 엄청 난리가 났겠지?”
나 같은 관종에게 있어서는 꿈만 같은 자리였겠지만, 12살인 내가 저기에 나갔다가는 당장에라도 납치당해 어딘가로 끌려가도 이상할 것 없는 상황이었기에 입맛만 다시는 게 전부였다. 나이라도 빨리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사실 어른이라고 납치·유괴를 당하지 않는 건 아니었기에 별 상관이 없었다. 아니, 지금 유괴라도 당하면 난리가 나서 사람들이 찾기라도 하지, 어른인 상태로 납치를 당하면 아마 가출이나 단순 실종으로 처리되어 찾는 시늉만 할 것이다.
“힘을 기르는 게 우선이란 말인데······.”
어린아이의 몸으로는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기 때문에 아진에게 붙었지만, 아진의 영향력이 아무리 강대하다 해도 국가 권력이 가지는 힘을 이길 수는 없다. 아무리 거대한 기업이라 할지라도 기업은 기업이니까. 만약 국가가 독하게 마음먹고 악랄하게 아진을 공격한다면 아무리 막강한 영향력과 금력을 지녔다 하더라도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만큼 공권력이 현대 사회에서 가지는 힘은 절대적이고 막강하니까. 그렇기에 내가 일선에 나서기 위해서는 그 권력을 가질 필요가 있었다.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권력을 말이다.
“문제는······. 도통 이놈의 정치인들이란 것들을 믿을 수가 있어야 말이지.”
이번에 아진 전자에서 철저하게 기밀로 유지하던 G-1을 각 국가에 선 공개하게 된 이유는 다름 아닌 한국 정부 때문이었다. 김이중 대통령이 차세대 국가 산업을 위해서 추진했던 막대한 광케이블 인프라 투자 사업. 그리고 정보통신과 IT 산업의 활성화를 꾀했던 모든 정책들이, 일순간에 아진 전자의 스마트폰 출시와 함께 무너지게 생겼기 때문이다.
T-band 라는 이름의 중계기. 무선 통신을 중계하는 그 중계기는 애써 깔아두었던 광케이블과 같은 연결선 없이도 방대한 용량의 데이터를 빠르게 송수신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아진 텔레콤이라는 새로운 통신사를 설립하려는 시도는 정보통신부를 통해 무산시키는 데 성공했지만, 조선통신과 협력하여 T 네트워크라는 새로운 통신망을 구축하려는 그들을 방해했다.
“스마트폰 G-1에 필요한 T 네트워크를 한국에 구축하고 싶다면, 무선 데이터 송수신 프로토콜과 네트워크 장비에 대한 설계와 기술을 조선통신에 이전하시오.”
협상에 나선 정보통신부 고위급 국장의 말에 아진은 격렬하게 항의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김이중 정부에 입장에서는 이 이상의 아진의 독주를 막아야 한다고 보고 있었기 때문에 협상은 결국 아무런 진전 없이 무산되었다. 결국 아진은 고민 끝에 새로운 타개책을 모색했다. 그것은 바로······.
“한국에서 먼저 출시하는 건 결국 불가능하겠네.”
나는 TV에서 생방송으로 G-1에 대한 발표를 마치고 미친 듯이 들어오는 질문에 답하는 민식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다시 말하지만, 이번에 출시하는 반도체 S-98이나, 스마트폰 G-1 모두 어느 국가든, 어느 기업이든, 우리에게 가장 유리한 제의를 하는 국가에서 우선 출시하겠습니다.”
스마트폰 G-1의 소개와 시연이 끝나자 발표회장은 마치 금방이라도 폭동이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에 휩싸였다. 기자들은 하나같이 벌게진 얼굴로 고함치듯이 무언가를 말하기 시작했고, 자리에서 일어나 무대로 달려들 것 같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기존의 행사를 통제하고 안내하던 진행 요원들이 전부 투입되었지만, 광기에 물든 기자들을 막아서기에는 무리였다.
“이거······ 너무 시끄러워졌군.”
루이스 피츠버그는 뒤에서 시끄럽게 소리치며 자신들이 있는 곳까지 다가오려는 기자들의 무리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보안 요원에게 눈짓하며 말했다.
“가서 도움 좀 주고 오게. 이러다 나까지 저 난리에 휩싸이겠어.”
그 말에 SS (Secret Service) 요원까지 나서 기자들의 폭주를 막아서기 시작했다. 검은 양복을 입은 외국인들이 나타나 그들을 막아서기 시작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발표회장은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 그리고 그는 자연스럽게 마이크를 잡아 쥐며 민식을 바라보았다.
“발표. 잘 들었습니다. 앞으로 아진의 행보에 깊은 관심이 들 정도로 정말 놀랍고도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한 것 같군요. 개인적으로도 욕심이 나는 제품이네요.”
빙긋 웃으며 루이스가 말했다. 사람 좋은 미소를 짓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민식은 알 수 없는 기시감이 들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궁금한 것이 있어서 묻겠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아서요. 어떻게 아진 전자가 이렇게 갑자기 꿈에서나 상상하던, 그야말로 미래에나 가능할 것만 같던 이런 제품을 뚝딱하고 만들었는지 호기심이 들더군요.”
그 말에 민식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하지만 루이스는 아직 질문이 끝나지 않았는지,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혹시 이 반도체와 스마트폰 G-1을 만든 개발자가 누구인지 말해줄 수 있습니까?”
그 말에 민식은 일순간 철저하게 유지하고 있던 포커 페이스가 깨어질 것 같았다. 이번 발표에서 제일 피하고 싶은 질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간신히 억지 미소를 지으며 침착하게 말했다.
“글쎄요······. 그간 연구 개발에 몰두한 우리 연구소 직원들과 더불어 개발에 모든 힘을 다한 아진 전자 임직원 모두가 아닐까요?”
그 말에 루이스 피츠버그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하나 더 묻겠습니다. 스마트폰 G-1의 우선 출시국가를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고 하셨는데, 그 말은 한국조차 예외가 아니라는 의미입니까?”
그 말에 민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 말에 자리에 앉아 있던 대사들의 눈빛에 이채가 서렸다. 아마 이번 발표회가 끝나자마자 아진 전자와의 물밑 접촉을 앞다투어 진행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루이스 역시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는지, 누구보다도 빠르게, 그리고 공개적으로 선수를 쳤다.
“그렇다면, 저 루이스 피츠버그. 미합중국의 특명전권대사의 자격으로 아진 전자에서 요구하는 모든 조건을 가능한 선에서 최대한 수용할 것을 약속하며 미국을 스마트폰 G-1의 우선 출시국으로 지정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네?”
뜬금없이 날아온 돌직구에 민식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의 요청과 동시에 각국의 대사들이 얼굴을 붉히며 벌떡 일어나 그에게 뭐라고 항의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기자들이 아니라 각국의 대사들끼리의 말다툼으로 일대 소란이 벌어졌다.
“대박이다······.”
생방송으로 발표회장을 찍고 있던 누군가가 말했다. 그리고 기자들 역시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희열에 가득 찬 미소를 지었다. 아마 오늘만큼 기삿거리가 많은 신제품 발표회는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렇게 아진 전자의 신제품 발표회는 화려하게 막을 내렸다.
끝
ⓒ 군만두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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