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tto 1st prize is the easiest RAW novel - chapter 178
광고 효과는 대단했다.
천 명의 상담사도 모자라 오백 명을 추가로 투입시켰음에도 걸려오는 상담 전화를 쳐내기는 버거웠다.
그래도 콜 업무야 어떻게든 한다.
휴먼매니저 콜센터 사원들의 평균 콜수는 하루 80건,
천오백 명이라면 12만 명의 상담을 쳐낼 수가 있었다.
문제는 상담을 받기 위해 회사로 직접 찾아온 분들이었다.
너무 많았다.
맛집처럼 몰려들었다.
끊임없다.
미치겠다.
밀려오는 군중들 속에서 내가 사원들에게 소리쳤다.
“일단 줄 먼저 만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줄을 세웠다.
사무실 입구에서부터 시작된 대기인원 줄은 도일빌딩 정문을 지나 다시 U자로 꺾어 계단까지 올라갔다.
“대표니임!”
정주임이 외쳤다.
“왜에!”
“현재 지상 3층까지 줄이 올라갔어요. 어쩌죠?”
“일단 다들 모여 봐.”
-촤악
외부에서 내부를 볼 수 없도록 사무실 블라인드를 쳤다.
CCTV를 통해 정문을 확인해 본바 줄은 계속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광경을 TV에서나 봤다.
미국의 블랙 프라이데이, 명품 오픈런, 콘서트장, 등등.
사무실 내부는 정적이 감돌았다.
마치 전쟁터로 나가는 병사의 기분이랄까,
블라인드를 살짝 젖혀 외부를 확인했다.
“다들 준비됐죠?”
“…”
“문 엽니다?”
“잠시만요!”
정주임이 외쳤다.
“저희, 심호흡 좀 하고요.”
저마다 몸을 풀었다.
최부장이 목을 가다듬었고,
오과장이 물을 마셨다.
현준이가 스트레칭 했고, 정주임이 사무 책상을 정리했다.
“준비됐죠?”
“네. 열어주세요.”
그리고
-철컥.
문을 열었다.
한 젊은 남자가 사무실에 한 발짝 내디뎠다. 무표정한 얼굴에 근심이 그늘진 얼굴이었다.
사무실 전경을 한참 둘러보더니 이내 어떻게 어느 자리에 앉아야 할지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다들 서로를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을 때, 최부장이 말했다.
“이리 오시죠! 여기 앉으세요.”
“네.”
최부장을 시작으로 직원들은 창구 은행원의 모습처럼 손님들을 응대하기 시작했다.
* * *
“자 다음 분 들어오세요!”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이곳에 왔다.
상담은 그 사연을 듣고 기록하는 것, 그리고 자료를 만들어 취합하는 것이 취지다.
생각보다 수월하게 흘렀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중간착취의 행태를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정도 속도라면 현재 모여든 근로자들의 상담을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도 팔을 걷어붙여 달려들었다.
계획대로라면 오후 여섯시 이전에 마무리될 것 같았다.
한 10명 정도 상담을 끝낸 뒤 바깥으로 향했다.
어느 정도 줄이 줄어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대를 품고 사무실 문을 열었으나, 웬걸 그대로다..
심지어 줄은 더 늘어나 보였다.
“대표님?”
정주임이 내 옆구리를 쿡 찌르며 물었다.
“응?”
“밖에 많이 줄었죠?”
“…어”
내 대답에 정주임이 활짝 웃었다.
그런데 그 웃음은 얼마가질 못했다.
선의의 거짓말은 단번에 탄로 났다.
소수인원으로 쳐내기에는 버겁다.
줄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사원들도 서서히 업무에 지쳐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상담 속도는 갈수록 느려져만 갔다.
상담을 위해 찾아온 사람들의 대기시간이 서서히 길어졌다.
여기저기서 불평이 들렸다.
“언제쯤 상담할 수 있는 건가요?”
“지금 한 시간째 대기 중입니다!”
결국 한 어르신의 분노가 폭발하고 말았다.
“에이 젠장!”
정주임과 상담을 하던 어르신이었다.
“별 시답지도 않은 상담 할 거면서 왜 바쁜 사람을 불러 놓고 그래!”
대기시간도 길었고 겨우 본인 차례가 왔음에도 상담 내용이 불만이었던 게 탓이었다.
“저희가 바라는 건 피해당한 사람들을 모아서 입법이나 돈을 받을 수 있도록…”
정주임이 애써 달래봤지만 어르신은 굽힐 줄 몰랐다.
“그러니까! 내 돈 받을 수 있냐고 묻는 거잖아!”
“그건 아마 민사소송을 통해서…”
“민사 소송? 그걸 내가 몰라서 여기까지 왔냐고!”
정주임이 난색해 했다.
굳이 이렇게까지 일을 해야 하냐는 심정이랄까.
상담을 멈추고 정주임에게 다가갔다.
정주임이 작성한 어르신의 상담일지를 살폈다.
그는 경비원으로 근무했었다.
4년간 한 달에 약 40만원의 금액을 착취 당했다고 추정했다.
돈을 받기 위해 업체와 노동부를 수없이 찾아갔지만 문전박대를 당했다고 한다.
“어르신?”
“당신은 뉘여?”
“휴먼매니저 대표 김도일입니다.”
“당신이 대표야? 그 따위 광고를 내서 사람들 현혹을 시켰으면 뭔가 뚜렷한 대책이라도 있어야 할 것 아냐! 대뜸 사람들 불러 놓고 이게 뭐하는 짓이야!”
“분명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좀 참고 기다려보시죠.”
“기다려라? 앞으로 살날이 얼마나 남았다고!”
“…”
“노동부나 여기나 똑같은 대답뿐이야! ‘지금 당장은 못 받는다!’ ‘기다려라!’ 민사 소송을 해라!‘ 대체 내 돈 받는데 과정이 왜 이렇게 복잡한 거냐고!”
사람들의 표정이 냉랭해졌다.
저마다 겪은 일이기 때문인 걸까.
“약속하겠습니다.”
“뭐?”
“어르신 돈, 받을 수 있도록 제가 약속해드린다고요.”
“다들 들었죠? 대표 양반이 약속한다는 거 분명히 들었죠?”
“네 들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수로? 단순 소송으로?”
“…”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소송 나에게는 의미도 없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어르신에게 소송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그런데 한 명 한명 사정을 봐주다간 일만 지체될 뿐이었다.
미안하지만, 단호히 말했다.
“그러면 나가시든가요.”
“뭐어?”
“그렇게 쉽게 포기할 것 같으면 저희도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 없습니다.”
“참나!”
“그간 잘 참아 왔잖습니까.”
“…”
“4년간 경비로 근무한 것 같은데, 이렇게 화가 많으신 분이 임금 착취당하는 것을 알면서도 어떻게 참고 일했습니까?”
“…”
“아…그때는 참고 일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서 그랬나요? 손주 기저귀 값은 벌어야겠고, 월세도 내야하고 생활비도 벌어야하고 뭐 그런 거죠?”
“이 인간이!”
“그렇게 잘 참아왔으면서, 왜 한강에서 뺨 맞아놓고 왜 엄한 곳에 와서 화풀이를 하시냐고요.”
“…”
“매번 참는 게 여기 계신 분들 특기 아닌가요?”
“지금 말…말 다했어!”
“앞으로도 부당함을 꾸준히 참고 견딜 수 있는 분들은 지금 이곳을 나가셔도 좋습니다.”
“…!”
“어르신 선택하시죠. 문은 열려 있습니다.”
“…”
어르신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대표양반!”
“네.”
“사람들에게 괜한 헛된 희망 품어주지 말아. 어차피 휴먼매니저도 일반 파견회사나 똑같은 거 아닌가?”
“다릅니다. 그걸 알면서 찾아온 거 아닌가요?”
“…”
어르신이 입술을 깨물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이내 고개를 숙였다.
자신의 머리채를 움켜쥐며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체념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부탁하네.”
“…”
“제발 부탁하네. 내 돈 좀 받아주게나.”
어르신이 무슨 사연이 있는지도 정확히 모른다.
단지 고개만 끄덕였다.
“자리에 앉으시죠. 어르신.”
* * *
상담은 계속됐다.
점심시간이 다가오고 있음에도 섣불리 일어설 수가 없었다.
오과장이 살려달라는 표정으로 나를 불렀다.
“대표님!”
“왜에!”
“저희 죽어요.”
“안 죽어 짜샤.”
“끝도 없이 몰려오는데 상담 인원도 부족하고요!”
“일단 하자. 이번 달 보너스 줄게.”
“얼마요?”
현준이가 물었다.
“이번 달 상여금 백만 원!”
금융 치료로 사원들을 북돋아 주는 거 말고는 뚜렷한 답이 없다.
결국 점심시간을 제쳤다.
초코바 하나와 커피 한 잔으로 허기를 달랬다.
직원들에게 미안했지만 기다리는 대기인원들 또한 밥시간을 전부 제쳤다.
저녁이 돼서야 겨우 상담을 끝낼 수 있었다.
사원들이 업무에 지쳐 하나둘 씩 의자에 널브러졌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심리적 소모가 심했다.
감정 노동이 이래서 힘들구나 싶다.
오전의 어르신 같은 사람들이 꽤 많았다.
대뜸 돈 달라고 떼쓰는 사람들도 몇몇 있었다.
그럴 때마다 불필요한 감정소모를 해야 했다.
“휴우.”
정주임이 물 한 컵을 마시며 단숨을 내쉬었다.
“고생했다.”
사원들의 책상에는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상담 내용이 빼곡히 쌓여 있었다.
* * *
콜센터 업무도 마비가 걸릴 수준이었다.
콜센터 상담원의 인당 콜수는 평균 80건,
그런데 천오백 명의 상담사가 오늘 하루만 18만 명의 상담을 했고, 인당 120건의 콜을 맡은 꼴이었다.
120건, 숫자로 따지고 봤을 때는 적게 보일 수도 있으나,
상담 내용 특성상 인당 상담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으니 밥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종일 자리에 앉아서 업무를 봐야만 쳐낼 수 있는 수준이었다.
첫날이라 이렇게 몰린 건지, 앞으로 더 몰려올 건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이지혜 팀장을 만난 건 회사 옥상이었다.
그녀가 종아리를 연신 주무르며 벤치에 앉았다.
하루 종일 서서 돌아다녔더니 종아리가 당기는 모양이다.
“고생 많으셨어요.”
이지혜 팀장에게 음료수 한 캔을 건네며 말했다.
사실 너무 고마웠다.
내가 콜센터 업무에 신경 쓰지 않도록 전부 전담해주고 있었다.
“사원들이 고생 많았죠.”
“다들 퇴근 하셨나요?”
“방금 퇴근 시켰어요. 그런데 걱정이네요. 인원이 부족해서…”
“저도 그럴 것 같았습니다. 인당 콜수가 120건이면 많은 편인데요.”
“맞아요. 지금 안 그래도 그 부분에 관해서 상의 드리고 싶어서요.”
“네. 말씀해주세요.”
“현재 은행이나, 통신사 쪽 가용인원이 현저히 부족합니다. 지금 이곳에만 매진하고 있어서요. 구인을 더 진행해야할 것 같습니다.”
“네. 그렇게 하시죠. 이번에 특별하게 만든 프로젝트라 보너스도 지급 될 거라고 말씀해주세요. 인당 백만 원 정도로요.”
“그렇게나 많이요?”
“노고에 비하면 많은 거 아닙니다.”
이지혜 팀장이 캔 커피를 두 손에 꼭 쥐며 나를 바라봤다.
“내일도 이렇겠죠?”
“아마, 그러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실…새삼 놀랍지도 않아요.”
“네?”
이지혜 팀장이 생각에 잠겨 입술을 꾹 다물더니 말문을 열었다.
“화승에서… 기억나시죠?”
“그럼요. 기억나죠. 팀장님과 제가 처음 만났던 회사잖아요.”
“김한성 대표에게 뺨 맞고, 터지고, 울고 불고 난리 피우고, 불과 엊그제 같아요.”
이지혜 팀장은 콜센터 화승에서 5년 동안 2,400만 원을 중간 착복 당했다.
“…”
“그때, 대표님이 했던 말, 아직도 뚜렷이 기억에 남아요. 착취를 당하고 있는 걸 알면서도 아무 항변도 하지 못하는 우리를 보고 했던 말이 있었어요.”
“제가 뭐라 했던가요?”
이지혜 팀장의 눈이 뚜렷해졌다.
“해고가 두렵냐고요.”
“아…제가 그랬나요?”
“그러시더니 그게 윗사람들이 바라는 당신들의 공포래요.”
“공포라…”
“최저임금 줘가면서 월급을 착취해가면서도 해고가 두려운 당신들이 얼마나 절박한지 아니까, 그걸 너무 잘 아니까 계속 찔러보고 참으니까 더 찔러 본 거라고요.”
“…”
“그래서 여기까지 왔대요. 아무런 발전도 없이요.”
“기억나네요.”
“대표님 말이 맞았어요.”
“네?”
“오늘 상담을 해보니까 다들 두려움이 있었더라고요.”
“…”
이지혜 팀장이 다 마신 캔 커피를 찌그러뜨렸다.
“제가 겪었던 감정을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겪고 있었어요.”
“…”
“이번 일 정말 잘한 것 같아요. 대표님.”
“고마워요. 알아봐 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