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40
39화.
쾅, 큰소리와 함께 만찬장의 문이 다시 굳게 닫혔다. 테일러 스텐은 휠체어에 앉아있음에도 멋들어진 예복을 입고 있었고, 그의 입가에는 여유로운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신관 케이지는 죽음의 신 신관복을 입고 있었다.
‘아예 대놓고 둘 다 정체를 드러내기로 했군’
현명한 판단이라 케일은 생각했다. 죽음의 신 교단은 골치 아파지겠지만, 그게 케이지 그녀의 알 바이겠는가.
“이게 무슨…!”
경악에 가득찬 목소리. 케일은 서북쪽 테이블로 시선을 돌렸다. 베니온이 벌떡 일어서서 경악한 얼굴로 테일러를 보고 있었다.
베니온의 평소 모습 상 있을 수도 없는, 귀족적 예의에 어긋난 광경이었으나 베니온은 지금 예의를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케일은 단상 제일 위를 바라봤다. 왕세자 알베르가 두 팔을 살짝 벌리며 입을 열었다.
“스텐 후작가의 장남 테일러 스텐과 죽음의 신 신관님을 여기서 보게 될 줄은 몰랐어.”
왕세자는 즐거워보였다. 테일러는 휠체어에 앉은 채로 간단한 예를 표했다.
“왕국의 귀족 자제들에게 왕세자 저하를 뵙고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하여, 이리 초대장이 없음에도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왕세자 알베르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걸렸다. 케일은 그 미소에서 그가 ‘이야기 할 수 있는 기회’라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하긴 나는 각 가문의 대표가 오라고 하였는데, 대표가 없는 가문이면 누가 와도 상관 없지. 괜히 한장을 보내 테일러 공자가 섭섭했겠어?”
“조금 섭섭하였습니다. 저하.”
케일은 슬쩍 베니온을 쳐다봤다. 대표가 없는 가문. 왕세자는 정식 공표하지 않은 후계자 베니온을 은근슬쩍 돌려까고 있었다. 하긴 스텐 후작가는 현재 3왕자와 친밀했다.
‘그게 이상하단 말이야.’
케일은 그 사실이 이상했다. 자신이 아직 알아보지 않았고 신경쓰지 않고 있었던 부분이었지만. 아무리 국왕이 3왕자를 아낀다고 하여도 왕세자를 폐위 시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영웅의 탄생’ 속에서 왕세자는 2, 3왕자를 경계하며 불안해하였고 스텐 후작가는 3왕자와 친밀했다. 다른 귀족들도 각기 미는 왕자가 있었다.
‘뭔가 있긴 있나보네.’
물론 케일이 굳이 알고 싶지 않은 ‘뭔가’였다.
“섭섭했다니 참으로 아쉽군. 그래도 오랜만에 본 테일러 공자의 모습이 건강한 것 같아 참으로 내가 기뻐.”
왕세자의 말에 테일러는 미소와 함께 답했다.
“저하. 제가 비록 다리가 움직이지 않지만, 아직 손이 남아있고 제 머리, 눈, 귀, 입. 모든 것들이 아직 살아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더 강해졌지요.”
“그렇군. 그래, 아직 자네는 살아있지. 끝까지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임을 내가 잊고 있었군.”
케일은 왕세자가 완전히 테일러에게 흥미가 생겼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베니온은 다시 귀족적인 표정을 지었지만, 뚫어질 듯 테일러를 쳐다보고 있었다.
케일은 이 상황이 꽤 재밌었다.
‘관전을 하는 것도 좋은데?’
왕세자, 테일러, 베니온. 그리고 각 세력의 귀족들. 그 얼굴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괜히 팝콘이 그리워져 갔다. 일촉즉발의 상황 같았다.
케일은 그저 가만히 있는 상황이 아주 쏙 마음에 들었다.
“그럼 이쪽은 죽음의 신 신관님이신가?”
“영원한 안식의 종인 케이지가 왕세자 저하께 인사올립니다.”
선한 신관의 표본을 연기하는 케이지는 그야말로 성녀 같아 보였다. 하지만 저 안에는 수많은 저주술에 대한 지식이 가득했다.
왕세자는 케이지의 인사까지 받고 테일러에게 말했다.
“나중에 이야기를 하기로 하고, 이제 만찬을 다 함께 즐겨야 할 것 같은데. 그대들의 자리가 어디가 좋을지 모르겠군.”
왕세자의 입에서 아예 이야기를 하겠다는 확인 사살이 내려왔다. 케일은 제 테이블의 사람들을 슬쩍 훑어보았다. 모두 근심과 고민으로 가득 차 있었다. 특히 네오 톨스는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케일은 그런 네오 톨스를 보며 씩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 네오는 이런 멍청하고 상황 파악 못하는 놈이 있냐는 듯 얼굴을 구기며 고개를 훽 돌렸다.
이를 흐뭇한 미소로 지켜보던 케일은 이내 고개를 들어 테일러 쪽을 바라봤다. 그 때였다.
‘음?’
왕세자와 케일의 시선이 딱 마주쳤다. 우연이었다. 왕세자 알베르는 어느 자리가 좋을까 하며 둘러보다가, 케일은 테일러를 보려고 하다가. 둘의 시선이 딱 부딪쳤다.
그 순간 케일은 직감했다.
‘여기네.’
“마침 좋은 자리가 있는 것 같군.”
왕세자는 자리를 정했다. 케일은 그 결정이 무엇일지 알아챘다.
‘하긴 여기 밖에 없지.’
대귀족이 없는 곳. 각 파의 대귀족에게 줄을 댄 가문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힘의 균형이 잡혀있는 곳. 더불어 다른 대귀족들이 섣불리 건들 수 없고, 개별 가문 중 가장 그 지역에서 부유하고 강한 자가 중립으로 있는 곳.
“테일러 공자는 저기 동북부 테이블에 앉으면 되겠어. 마침 다른 쪽보다 자리도 널널하고.”
헉. 네오의 숨 들이마시는 소리와 에릭의 근심 걱정 가득한 표정을 보며 케일은 테일러와 케이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자리를 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하.”
“감사합니다, 저하.”
“아닐세. 왕국에 이바지할 인재가 될 이들인데 함께 하면 좋지.”
그리 말하며 왕세자는 동북부 귀족자제들이 모인 테이블을 바라봤다. 시종 몇이 급히 테이블로 다가왔다. 동시에 왕세자 알베르가 입을 열었다.
“자리 좀 잠시 정리해도 되겠는가.”
왕세자의 말에 싫다고 할 이가 누가 있겠는가. 특히 에릭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그 말에 응했다.
“당연히 됩니다, 저하.”
동북부 해안 투자건을 따내야 하고, 이미 다른 대귀족 밑에 들어가길 거부한 에릭은 이런 행동이 가능했다. 그의 행동에 다른 귀족 자제들도 어물쩍 일어났고 시종이 왕세자의 손짓을 따라 빠르게 새로이 자리를 마련했다.
생각보다 어수선하지 않았고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그 광경을 지켜보던 케일의 표정이 묘해졌다. 그리고 에릭은 다시 근심걱정이 가득한 표정이 되어 케일의 옆에 다가와 속삭였다.
“케일 알지? 가만히. 가만히다.”
케일은 에릭의 말을 무시하며 제 자리를 쳐다봤다. 새 손님들의 자리는 케일의 옆자리였다. 이것도 왕세자가 정한 자리일 터.
‘하긴 대귀족들 밑에 들어간 놈들 옆자리로 할 수는 없을테고. 그나마 나머지 네 가문 중에선 우리 가문이 제일 강하니까.’
자리 정리를 마친 시종들이 고개를 숙여 인사하곤 물러섰다.
“앉게나.”
왕세자 알베르가 말했고 케일은 성큼성큼 걸어가 제 자리에 털썩 앉았다. 그의 옆자리는 의자가 없었다. 대신 곧 휠체어가 와 그 자리를 채웠다.
“반갑습니다.”
테일러가 동북부 자제들에게 인사하며 웃는 낯으로 함께 하게 되었다. 그리고 테일러 옆에는 당연히 케이지가 앉았다. 둘 다, 아니 케일까지 셋 다 그들은 서로 처음 보는 사이인 척 했다.
– 이 상황 재밌다.
케일은 머릿속으로 들려오는 검은 용의 말에 깊게 동의하며 왕세자를 쳐다봤다.
“그럼 잠시 지체되었지만, 다시 이어가도록 하지.”
왕세자는 만찬의 시작을 알렸다.
“이 왕국의 미래를 이끌어 갈 인재들을 한 자리에 모아 한 번 식사를 한끼 했으면 했네. 이리 내 초대에 모두 응해줘서 고맙고, 즐거운 만찬이 되길 바라네.”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시종들이 들어서며 각 테이블에 음식들을 하나 둘 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귀족들 테이블 뒤편으로 악단이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이게 진짜 만찬과 다른 점이었다. 연회의 형태가 뒤섞인 모습으로, 조금 더 대화와 자리 이동이 자연스러운 분위기였다.
“케일 공자. 잠시 뒤에 인사갈 예정이에요.”
아미르 영애의 말에 케일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며 접시 위의 음식에 집중했다. 하지만 그 머릿속은 조금 복잡했다.
‘의도가 뭐지?’
정말 고마워서 왕세자가 귀족들을 부른 것은 아닐 것이다. 분명 이유가 있을 터. 물론 후보는 몇가지 있었다.
‘곧 서대륙 남부에서 터질 전쟁 때문이거나 혹은 위퍼 왕국에서 벌어질 내전의 기미를 눈치채서거나.’
로잘린 왕녀가 가려고 했던 마탑이 있는 나라, 위퍼 왕국. 그곳에 곧 내전이 터진다. 마법사들의 나라. 마법사와 비마법사 간의 전쟁이 펼쳐진다.
여러가지 생각들로 머릿속이 가득 찼지만 케일은 이내 그 생각들을 집어치웠다.
‘가만히 있을 건데 무슨 상관이야.’
케일이 알 바는 아니었다. 그는 제 앞에 놓인 음식들을 음미하기 시작했다.
– 맛있겠다. 맛있겠다. 하찮은 인간들은 요리를 잘한다.
검은 용의 무뚝뚝함으로 포장한 칭얼거림을 들으며 케일은 음식들을 여유로이 즐겼다. 역시 왕실 음식은 그 맛이 뛰어났다.
그의 손이 저절로 시종이 놓아두고 간 와인잔으로 향했다. 하지만 와인잔은 사라졌다.
“케일. 오분만.”
간절한 에릭의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이며 케일은 다시 음식을 즐겼다. 그런 그를 동북부 테이블의 사람들은 가만히 지켜봤다. 안 그래도 동북부는 10개의 가문이 여러 갈래로 나뉜 상태라 불편한 상황이었고, 더불어 마법 폭탄과 같은 버려진 장남 테일러가 끼어들었다.
이 상황에서 태연히 음식을 먹는 케일을 사람들은 묘하게 바라봤다.
그 때 케일의 머릿 속에 용의 말이 들려왔다.
– 그런데 여기 구석 구석에 마법 영상구가 숨겨서 설치되어 있다.
“오.”
케일은 나지막히 탄성을 흘리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누가 보아도 맛있는 음식을 먹고 감탄하는 모습이었다.
‘하나는 알겠군.’
그리고 케일은 왕세자의 목적 중 하나는 알 것 같았다.
왕세자는 일단 하나, 귀족 자제들을 지금 감시중이다. 물론 2, 3왕자도 아는 사항일 것이다. 즉, 이는 왕실 전체의 뜻이다.
케일의 입꼬리가 살짝 삐뚜름하게 올라갔다. 그 미소에 불안해하던 에릭은 벌떡 일어났고 덩달아 아미르와 길버트도 일어났다. 이미 왕세자에게 인사를 하고 오는 귀족들이 많았다.
케일은 그 세 명의 모습에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섰고 가벼이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말했다.
“가죠.”
케일은 세 귀족을 앞세우며 단상으로 향했고 곧 왕세자와 마주했다.
“오, 우리 동북부의 인재들이군!”
왕세자는 환한 미소로 네 명을 반겼다. 왕세자는 아까부터 아예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오는 이들과 악수를 한번씩 하고 있었다.
알베르 크로스만. 그는 금발에 푸른눈으로 꼭 동화책 속 왕자가 세상 밖으로 나온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저 화려한 금발은 로운 왕국을 다스리는 크로스만 왕족들의 특징이었다. 태양 신의 가호를 받는 증거라 하였다.
“반갑습니다. 저하. 오랜만에 에릭 휠스만이 인사 올립니다.”
“그래, 그래. 에릭 공자. 우리 할 이야기가 있지?”
먼저 동북부 해안 투자 건에 대해 말하는 왕세자의 모습에 에릭은 환한 얼굴로 답했다.
“네! 그 이야기 할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연히 나도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네. 우리 동북부의 초입을 맡아주며 이 왕국의 한 축을 담당하는 휠스만 백작가의 영민한 에릭 공자가 아닌가. 내 어찌 그 시간을 미루겠는가.”
슬슬 시작이네. 케일은 가만히 서서 슬슬 기름칠한 혀를 발휘하는 왕세자와 환하게 웃는 에릭을 바라봤다. 길버트와 아미르에게도 왕세자의 칭찬이 쏟아져 내고 있었다.
‘재밌네.’
케일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고 마지막으로 그의 차례가 되었다. 왕세자는 살짝 고개를 숙이는 케일에게 손을 내밀었다.
“우리 동북부의 끝을 담당하는 헤니투스 백작가의 케일 공자 아닌가. 내 자네는 처음 보지만, 백작가 덕에 어둠의 숲이 두렵지 않아. 이 얼마나 잠자리가 든든하고, 내 마음에 평온이 찾아오는지 모르네.”
케일은 오늘 한가지 목표가 있었다.
“또 케일 공자는 참으로 자유로운 이라 들었네. 이는 헤니투스 영지 조각가들의 자유로운 영혼이 그대에게 영감을 주어서겠지? 자네는 자유로운만큼 그 영혼이 순수할 것 같네.”
망나니로 유명한 이에게 이렇게 칭찬을 하기도 참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런 의미로 왕세자는 대단했다.
하지만 그의 입장에서는 케일이 정말로 여기서 망나니 짓을 하지 않는 이상, 좋게 말하고자 할 것이다. 왕실에서도 동북부를 손에 넣고 싶을테니까. 그리고 묵묵히 영지를 잘 다스리는 헤니투스 백작가를 미워할 왕족은 없었다.
‘그러니 사람에 대한 선호가 가문에 영향을 미칠 일은 없다는 거지.’
케일은 왕세자의 손을 정중히 잡으며 살짝 입안의 혀를 굴렸다. 이제 자신의 차례였다.
금발에 흰 정장의 왕세자, 그리고 적발의 검은 정장인 케일. 두 사람은 여유로워 보였다. 케일의 담담한 목소리가 주변 공간을 채웠다.
“저 또한 오늘 왕세자 저하를 보고 느꼈습니다. 현 태양이신 국왕 전하와 더불어 밤에도 백성들의 어둠이 걱정되어 달처럼 비출 저하가 계신다는 것을요. 이 케일의 눈이 개안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참으로 담담하고 담백한 목소리였으며 그의 자세는 당당했다.
“…그런가?”
그러나 왕세자의 표정은 살짝 떨떠름해졌다가 본래의 안색으로 돌아왔다. 케일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케일은 잔잔하면서도 진중한 목소리로 여유롭게 말했다.
“그렇습니다, 저하. 이 케일은 우리 왕국민들의 마음 속 별이신 왕세자 저하의 존안을 이리 뵙게 되어 오늘 감동으로 잠을 자지 못할 것 같습니다.”
에릭은 입을 벌린 채, 길버트와 아미르는 흔들리는 동공으로 케일을 바라봤다. 케일은 왕세자의 눈빛이 떨떠름해지는 것을 보며 ‘왕세자와 멀어지기’ 목표를 한발짝 내딛었다 생각했다.
그 때, 검은 용의 의아한 목소리가 머릿 속에 울렸다.
– 이 왕세자라는 하찮은 인간은 왜 마법으로 머리칼을 염색했지? 위대한 용 정도는 되어야 알아차릴 수준인데. 다른 용이 염색 시켰나? 아닌가, 다른 힘인가?
제기랄. 지금 이 순간 케일은 자신이 또 쓸데없는, 남한테 티도 낼 수 없는 비밀을 하나 알아버렸음을 깨달았다.
이번엔 출생의 비밀인가. 케일은 그딴 건 알고 싶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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