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ut of Count's Family RAW novel - Chapter 712
711화.
정작 가장 표정이 복잡한 이는 에르하벤과 클로페였다. 에르하벤은 관자놀이 부근을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며 말했다.
“그러니까 네 동생의 얼굴과 이름을 훔친 놈이 현재 지금 서대륙을 난장판으로 만들려고 한다는 것이지?”
-그렇네.
“그 과정에 수많은 생명체가 죽을지도 모르고?”
-맞다.
에르하벤은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까 고민이 들었다. 그의 시선이 암흑 호랑이에게로 향했다.
‘왠지 이쪽이 조금 더 믿음이 가지만.’
레어로 들어와 살핀 검은 용은 어떠한 세뇌의 흔적도 없었다. 자신의 능력을 벗어난 고위 능력을 이용한 세뇌일 수도 있었지만.
‘서툴러.’
동료로 함께 온 최한이라는 검사와 로잘린이라는 마법사, 그리고 기사 한 명까지. 그들은 인간 사이에서 보면 강자였지만, 에르하벤에게 비하면 아직은 부족한 점이 많은 서투른 존재였다.
‘물론 최한이라는 녀석은 논외지만.’
어쨌든 섣불리 누군가를 믿을 수가 없었다. 케일이라 스스로를 소개한 하얀 별과 이 검은 호랑이. 어느 쪽을 택해야 할까?
-꼭 어디를 택할 필요는 없지.
자신의 속내를 알아챈 듯한 말에 에르하벤의 시선이 다시 검은 호랑이에게로 향했다.
-고민만 해봤자, 답이 나오지 않지. 안 그런가?
“…그렇긴 하지.”
-우릴 따라다니면서 ‘감시’해 봐. 지켜보다 보면 어느 쪽의 말이 진짜인지 판가름 낼 수 있을 테니.
톡. 관자놀이 부근을 누르던 손가락이 가볍게 테이블을 두드렸다.
답이 나왔다.
“좋다. 일단 그대들을 감시하지.”
에르하벤의 눈동자가 그를 찾아온 이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감히, 영웅의 얼굴을 훔쳐가 그 업적을 제 것으로 하려고 한다니……!”
…음.
에르하벤은 잠시 클로페 세카를 바라보며 멈칫했지만 이내 아무도 없이 텅 빈 의자를 바라봤다.
그곳엔 케일이 앉아 있었다. 그는 알베르에게 눈짓했다.
“가죠.”
-그래.
알베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왕궁으로 가지.
***
“투명화와 방음 마법. 그 두 가지만 있으면 되나?”
-그래.
에르하벤은 손에 들린 여의주를 보며 영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짧은 한숨을 내쉬며 곧 마법을 펼쳤다.
투명화, 방음 마법의 대상은 두 존재였다.
에르하벤 자신과 여의주.
“…네 동생은 필요 없나?”
-보다시피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목소리도 안 들리잖아?
“그렇긴 하지.”
에르하벤은 곧 조금의 짜증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결국 이 모든 걸 내 손으로 해야 한다?”
-그렇지.
그는 현재 로운 왕국 수도 휘스시 외곽에 자리한 숲에 와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 숲에 위치한 작은 동굴 안이었다. 그 동굴 안에는 온갖 기계 장치와 마법 장치가 설치되어 있었다.
-여기가 비밀 통로야. 여러 비밀 통로 중 왕세자 궁으로 바로 갈 수 있는 통로지.
“왕세자 궁으로 가는 비밀 통로라면, 왕세자도 이곳을 알고 있을 텐데?”
-글쎄. 아마 지금은 모를 걸세.
알베르는 씁쓸한 미소가 흘러나오려는 것을 속으로 삼켰다.
이 당시 알베르는 왕족 모두에게 공통으로 알려진 비밀 통로만을 알고 있었다. 왜냐면 제드 크로스만이 그에게 이 통로를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때의 그는 이런 통로가 있는 줄도 몰랐다. 그가 제대로 왕세자로 인정받고, 권력을 쥐면서 제드 크로스만에게 많은 것들을 이양받으며 알게 된 정보였다.
‘그러니 지금의 나는 모르지.’
알베르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그때, 무심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두르죠? 이러다 날 샙니다.”
당연히 케일이었다. 알베르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어서 서두르자고.
현재 동굴 밖은 밤이었다.
“…이 무슨 박복한 팔자인지…….”
에르하벤은 이 나이에 이렇게 왕궁에 숨어들어야 하나 싶었지만, 이내 손을 들어 가볍게 휘저었다. 이를 지켜보던 알베르가 입을 열었다.
-참고로, 이 비밀 통로는 초기에 만들어진 비밀 통로라, 상당히 주의를 기울여야 할 거-
달칵. 스르륵.
비밀 통로 문이 바람이라도 분 것처럼 자연스럽게 열렸다.
금빛 가루가 모든 것을 여유로이 조종하고 있었다.
지켜보던 케일, 그리고 마법을 사용한 에르하벤이 차례대로 말했다.
“이야. 비밀 통로도 별거 아니네요.”
“나 용이다.”
알베르는 하고픈 말이 많았지만 꾹 참고서 열린 문 안을 가리켰다.
-쭉 가면 돼.
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한 시간은 걸어가야 할 거야. 이리저리 길이 꼬여있거든.
문 안의 통로는 사람이 한 명씩 일렬로 서야 지나갈 수 있을 만큼 폭이 좁았다. 이는 왕세자가 도망칠 때, 그 뒤를 쫓아올 적의 숫자를 줄이기 위함이었다.
“한 시간이라.”
에르하벤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 손을 들어 올렸다.
“네 동생에게도 일단 마법이 통하니까.”
휘이잉-
케일은 제 발끝에 바람이 맴도는 것을 보았다. 가속 마법이었다. 에르하벤이 상당히 귀찮아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장애물이 없다면 금방 도달할 거다.”
케일은 동굴 천장을 보며 툭 내뱉었다.
“역시 용이 최고야.”
-…후우.
암흑 호랑이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에르하벤이 앞장섰고, 그 뒤를 케일이 따르며 그들은 아주 쾌적하고 신속하게 비밀 통로를 주파했다.
그리고 몇십 분이 채 흐르지 않아 통로의 끝에 도달했다.
통로의 문은 천장에 달려 있었다. 에르하벤은 가속 마법을 거두고는 시선을 천장에 둔 채 입을 열었다.
“여기가 어디지?”
-왕세자 집무실.
“지금 왕세자가 이곳에 머무를 시간인가?”
-아니. 지금쯤이면 연무장에 가 있을 시간이다. 한두 시간은 그곳에 있지.
“확신하나? 집무실에서 늦게까지 있을 수도 있잖아?”
-…살아남는 게 목표인 놈이야.
알베르는 한숨과 함께 나직이 말을 이었다.
-자신의 몸을 단련하는 일. 그것은 아무리 바빠도 빼먹지 않고 하는 일과지.
“보통 연무장을 이리 늦은 시간에 가나?”
-그럴 사정이 있겠지.
거기까지만 말하고 알베르는 입을 다물었다.
알베르는 이 당시 꽤 검을 다룬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실제 실력은 그보다 훨씬 더 위였다. 창을 다루었으며, 나아가 마법도 뛰어난 편이었으니까.
그렇기에 그는 스스로를 숨기기 위해 늦은 밤, 왕궁이 그나마 조용해졌을 때를 이용하여 자신을 단련하는 시간을 가졌다. 당연히 수족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그가 현재 잠든 줄 알고 있었다.
-어쨌든 한번 시작하면 끝까지 훈련을 마치는 편이니 편하게 집무실을 이용해도 상관없어.
연무장에는 알베르 혼자가 아니었다. 숨어있던 다크엘프들이 돌아가며 알베르의 대련 상대가 되어주었다.
“우리가 집무실 안을 돌아다닐 시 들킬 확률은?”
-이 비밀 통로를 제외한, 왕세자가 아는 모든 외부 통로는 현재 마법 알람 장치와 공격 장치가 설치되어 있어. 그러니 그것들만 건들지 않으면 돼.
“그렇다면 다행이군.”
-더불어 이 집무실에는 들켜도 상관없는 것 혹은 들켜도 파악이 불가능한 것들만 남아있어.
들켜도 파악이 불가능한 것?
에르하벤은 그게 무슨 말인지 의문이 들었지만, 더 묻지 않았다.
‘궁금한 것은 직접 보면 될 터.’
그의 손이 허공을 휘저었다.
통로의 문이 아주 소리 없이 열렸다.
“나 먼저 올라갈 테니, 동생보고 뒤따르라고 해.”
에르하벤은 훌쩍 위로 솟구쳐 올랐다.
‘깔끔하군.’
둘러본 집무실 안은 깨끗해도 너무 깨끗했다. 고룡은 새삼 왕세자라는 녀석이 철두철미할 것이란 생각을 하며 집무실 책상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때, 검은 호랑이는 한숨을 내쉬며 작게 말했다.
-그, 내 동생에게 비행 마법을 해줬으면 좋겠군.
“마법?”
-…이 녀석의 운동 신경이 부족해서 천장의 통로까지 못 솟구쳐.
“아.”
천족이라면 신체 능력이 뛰어나지 않나?
순간 의문이 들었지만, 에르하벤은 군말 없이 마나를 움직였고 마나의 뒤틀림이 생기는 곳에 비행 마법을 사용하였다.
비행 마법을 품은 무언가가 위로 솟구쳐 올라 집무실 바닥에 내려서자, 에르하벤은 마법을 거뒀다.
“그럼 나는 책상 쪽을 보지.”
-아니. 볼 필요 없어.
여의주 속 호랑이는 책장을 가리켰다.
-저기 책장을 내 말대로 조작하면 뭔가 나올 거다.
“…그래?”
에르하벤은 일단 이 호랑이 녀석의 말대로 움직였다.
그는 암흑 호랑이가 일러주는 대로 손을 움직였다.
-…거기서 세 번째 책. 그다음에 오른편 책장 기둥에 미세한 흠이 있을 거야. 거길 눌러. 그다음에…….
몇 번의 설명이 더 이어졌고, 에르하벤은 이를 막힘없이 해내었다.
-이제 열린다.
그 말과 함께.
달칵.
작은 소리가 나며 책장이 저절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호오.”
책장 뒷면에 벽이 나타났고 에르하벤은 탄성을 흘렸다.
벽은 수많은 글자들로 뒤덮여 있었다.
“음. 암호군.”
하지만 어느 하나 해석이 불가능한 암호임을 깨닫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거 해석하려면 오래 걸리겠는데?’
하루 이틀로 될 문제가 아니었다.
‘왕세자라는 녀석, 철두철미해도 너무 철두철미한데.’
보통 이렇게까지 하지는 않을 텐데.
주위에 믿을 사람이 없나?
아니면.
“…많이 절박한 상태인가?”
저도 모르게 내뱉은 말에 에르하벤이 잠시 멈칫했을 때.
-그럴지도.
차분한 음성이 들려왔다. 암흑 호랑이였다. 그는 벽을 뚫어질 듯 바라보며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때의 나는 꽤 절박했지.’
그는 곧 벽에서 시선을 돌렸다.
“음.”
동시에 에르하벤은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그의 손에 들려있던 여의주는 어느새 허공에 떠올라 있었다.
아니, 그의 동생이라는 자의 손아귀로 옮겨가 있었다.
-살펴볼까?
“해석 부탁드립니다.”
케일은 여의주를 손에 쥔 채 암호로 가득한 벽에 다가갔다.
-암호의 패턴은 기억하나?
이곳으로 오기 전, 밤이 될 때까지 기다리며 케일은 알베르에게 암호 해석 방식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케일이 대답이 없자, 힐끗 쳐다본 알베르는 피식 바람 빠지는 웃음을 터트렸다.
-이미 해석하고 있군.
스윽. 케일은 윗 단추 하나를 풀었다. 그의 눈동자는 벽 맨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하나하나 작은 빈틈조차 놓치지 않고 모두 담고 있었다.
‘기록’이라는 특수 능력을 지닌 채 살아온 케일에게 있어, 암호를 기억하고 해독하는 일은 굳이 능력을 쓰지 않더라도 숨 쉬듯이 해온 일 중 하나였다. 수많은 길드와 단체의 비밀을 파헤치려면 이 정도는 기본이었으니까.
“확실히 하얀 별을 만났군요.”
알베르는 벽에 모든 것을 기록하지는 않았다.
다만 핵심은 기록해두었다.
“위퍼 왕국의 은둔 마법사와 연금술 종탑의 비주류 학파라.”
단어와 단어의 나열.
“이동이라는 단어도 보이고.”
-대강 알겠군.
“그렇네요.”
에르하벤은 케일과 알베르 간의 대화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지만 팔짱을 낀 채 가만히 관찰했다.
두 사람 역시도 그 시선을 신경 쓰지 않은 채 대화를 이어나갔다. 케일의 손이 한 지점을 가리켰다.
암호를 해석하면 이런 뜻임을 가리키는 글자였다.
케일은 평온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하얀 별이 왕세자 저하께 찾아와 거래를 제안한 것 같군요.”
-위퍼 왕국의 은둔 마법사와 연금술 종탑 비주류 학파를 로운 왕국으로 이동시키자는 제안인 듯싶고.
“그리고 거래라고 하지만 왕세자 저하께서는 하얀 별의 의도를 의심 중이신 것 같습니다.”
-당연하지. 은둔 마법사들이 툰카를 피해 로운으로 도망치는 건 은둔 마법사들에게 이득이다. 더불어 비주류 학파가 로운으로 와서 이 왕국에서 주류가 된다면 이득이다.
알베르는 과거의 알베르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하얀 별. 그놈이 가지는 이득은 딱히 없다. 적어도 왕세자에게서 얻는 것은 없지.
그는 지금 스스로를 타인처럼 불렀다. 에르하벤 때문이기도 했지만, 단순히 그런 이유라기엔 알베르의 눈동자에 맺힌 씁쓸함은 감출 수가 없었다.
케일은 힐끗 그 눈동자를 보고는 다시 벽으로 시선을 돌렸다.
“답은 뻔하군요.”
-내가 봐도 그래.
“위퍼 왕국 은둔 마법사들은 분명 하얀 별 아래, 암에 소속된 마법사들일 겁니다.”
-그렇지. 그리고 비주류 학파라고 하지만, 제국에서 올 연금술사들은 모조리 흑마법사들일 것이고.
흑마법사.
그 단어에 에르하벤이 눈을 크게 떴다. 그러거나 말거나 알베르와 케일은 대화를 이어나갔다.
-하얀 별이 로운 왕국을 타깃으로 잡았다면, 분명 제 수족인 마법사와 흑마법사들을 로운으로 끌어들여 이곳에서-
그 뒷말을 알베르가 차마 잇지 못할 때, 케일이 이어 말했다.
“전투 혹은 전쟁이 벌어질지도 모르죠.”
-그래. 그럴 확률이 높지. 그것도 국왕 전하 탄신일 기념행사가 곧 있을 예정이니까.
탄신일 기념행사.
그 암호문을 케일과 알베르가 뚫어질 듯 바라봤다.
케일의 모습을 한 채로 하얀 가면을 쓴 존재.
그 존재는 스스로를 상대에게 하얀 별 혹은 케일이라고 소개하였다.
그자는 현재 흑마법사와 마법사들을 로운 왕국 수도로 불러들이려고 한다.
수도 깊숙이, 왕성까지 불러 모아 무슨 짓을 벌이려고 할 터.
-사건이 터지면 모든 원망과 책임은 왕세자에게로 가겠군. 그가 데려온 자들이니.
“그것보다 큰 인명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과거, 케일이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서 부서지지 않는 방패를 사용하게 만들었던 수도 테러 사건.
그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큰일이 로운에서 벌어질지도 몰랐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절망이군.
“그렇군요. 절망이 찾아오겠군요.”
봉인된 신이 만들려는 사건이 무엇인지, 그가 세운 계획의 윤곽이 어느 정도 보였다.
“막아야겠습니다.”
-막아야겠군.
두 사람의 시선이 에르하벤에게로 향했다. 고룡은 끼고 있던 팔짱을 풀며 그들에게로 다가왔다. 그는 알베르의 말밖에 듣지 못했지만, 대강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었다.
“너흴 도와야겠군. 이제 무엇을 하면 되지?”
알베르는 케일을 바라보았다. 케일이 창 바깥쪽으로 고갯짓을 하였고 알베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오늘 왕세자를 만나러 가는 건 취소다. 먼저 동료들을 만나러 가야겠어.
***
“그러니까, 지금 하얀 별이 흑마법사와 제 수하인 마법사들을 로운 왕국 수도로 끌어들이려고 한다는 거죠?”
-그럴 거라 예상한다.
알베르는 에르하벤의 눈치를 보며 로잘린에게도 일단 반말을 했다.
-그래서 내 동생이 자네들에게 부탁할 것이 있다는군.
“말씀하시면 바로 하겠습니다.”
최한이 틈도 없이 즉시 답했다. 알베르의 시선이 케일에게로 향했고, 케일은 눈을 감은 채 입을 열었다.
지금 그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정보들이 오가고 있었다.
“일단 우리는 강하지만 소수다. 연금술 쪽이 가담하기로 한 이상 아딘 황태자도 이 일에 일부 가담했다는 뜻이니 적의 숫자가 많을 확률이 매우 높다.”
제국, 더불어 암, 나아가 곰족, 사자족까지 합세해 로운을 노릴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북부 연합과 브렉 왕국의 병력을 로운으로 바로 끌어들일 순 없어.”
로잘린과 클로페가 각국을 대표하는 인사라고 하지만.
“그것이 아무리 하얀 별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각국 입장에서, 그리고 로운 입장에서, 국왕의 입장에서 침략으로 판단될 확률이 높으니까. 그렇다고 설득을 하여 차근히 진행하기엔 국가 간의 협상으로 오랜 시간이 소요되겠지.”
알베르를 통해 듣고 있던 로잘린의 입이 열렸다.
“그렇다면 우리가 끌고 올 병력이 거의 없지 않나요?”
현재 이들은 2년 후의 그들보다 동료도, 협력자도 턱없이 부족했다. 바로 이용 가능한 병력이라고 해봤자, 그나마 클로페의 와이번 기사단이었다.
하지만 케일은 로잘린의 물음에 희미한 미소를 띠웠다.
“있습니다. 우리가 끌고 올 병력이 있어요.”
케일의 머릿속에 지도가 펼쳐졌다.
“우리는 제3의 병력을 확보한다.”
제3의 병력?
순간 듣고 있던 모든 이들의 얼굴에 의문이 서렸을 때.
“합법적 외부 병력이 있지.”
케일의 입꼬리가 점점 위로 올라갔다. 그는 최한을 바라봤다.
“최한. 로잘린 씨와 함께 정글 1구역 해안가로 간다. 내가 알려주는 언덕에 도달해서 그 땅을 파면 상당량의 최상급 마정석을 구할 수 있을 거다.”
과거 케일이 정글의 지배자 리타나와 함께 정글 1구역으로 가 아딘 황태자가 은밀히 만든 거대한 불을 끈 적이 있었다.
케일은 그 대가로 정글 1구역 해안가 땅을 일부 별장용으로 얻었다. 케일이 그 땅을 원한 이유는 그 아래에 묻혀있던 거대한 상자 속 수많은 최상급 마정석 때문이었다.
“그것을 가지고 동대륙으로 가.”
최한이 멈칫했다.
“동대륙이요?”
“아!”
그리고 로잘린은 탄성을 터트렸다. 케일은 그 모든 것을 눈에 담으며 말을 이었다.
“동대륙으로 가서 용병왕을 만나 그를 고용하고, 레인저 부대원 200여 명을 고용해.”
아.
최한의 눈이 커졌다. 그 와중에도 케일은 계획을 읊어나갔다.
“이백여 명을 옮겨야 하니 대단위 텔레포트를 실시해야 하지만. 최상급 마정석이라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할 거다.”
용병왕과 부대원을 고용하는 비용.
대단위 텔레포트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마정석과 돈.
모두 최상급 마정석들로 감당 가능할 것이다.
“용병왕에게는 로잘린 씨가 신분을 밝히고, 서대륙에 진출할 물꼬를 터준다고 하면 레인저 부대원을 기꺼이 내줄 겁니다. 전부도 아니고 이백여 명이니까요. 그리고 남은 최상급 마정석으로.”
케일은 로잘린을 바라봤다. 그녀도 케일이 있을 곳,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남은 최상급 마정석. 그 수도 꽤 많을 것이다.
“그것으로 시간을 당기세요.”
2년이라는 그 시간. 로잘린의 경험과 지식이라면 충분히 메꿀 것이다.
“그리고 최한과 클로페. 두 사람은 당초 계획대로 고대의 힘을 가진다.”
최한이 살짝 놀라며 입을 열었다.
“…고대의 힘을 가질 것이 남아 있을까요?”
케일의 것은 이미 하얀 별이 대부분 가졌다. 케일도 이를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케일이 가진 정보의 전부는 아니었다.
“클로페. 그릇은 괜찮나?”
“충분합니다.”
이미 세 가지 고대의 힘을 가진 클로페였지만, 그는 아직 자연 5대 속성은 가지지 않아 충돌할 고대의 힘은 없었다. 그러니, 고대의 힘을 감당할 그릇만 되면 한 가지 정도 고대의 힘을 더 가져도 되었다.
소드 마스터 클로페 세카. 그는 케일보다도 단단한 그릇을 가졌으니까.
“비록 내가 가진 힘은 아니지만, 너에게 충분히 도움이 될 힘이다.”
케일은 잠시 눈을 감았다.
수많은 활자들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었다.
언젠가 케일은 용병 길드에서 인명부를 본 적이 있었다.
인명부에는 용병 길드에서 기록한 강자들의 정보가 담겨 있었다. 그중 고대의 힘의 소유자들도 존재했고, 그 정보는 고스란히 케일의 머릿속에 남았다.
“너도 동대륙으로 간다. 그곳에서 내가 알려주는 위치에 있는 힘을 얻어.”
클로페도 케일이 있을 허공을 바라보며 고개를 숙였다.
“반드시 얻어오겠습니다.”
“그래, 최한.”
케일은 마지막으로 최한을 바라보았다.
“너는 지배하는 아우라. 그리고 무서운 짱돌을 가져라.”
어둠의 숲. 그곳에 남은 두 고대의 힘. 그것은 최한의 몫이었다. 케일은 거기서 끝내지 않고 최한에게 질문을 했다.
“최한. 만약 전투가 벌어지면 네가 나 대신이 되어야 할 수도 있다. 가능하겠나?”
씨익. 최한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제가 선봉에, 그리고 중심에 늘 서겠습니다.”
케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그러면 모두 각자 할 일을 하도록.”
***
-여기 앉게?
“네. 한번 앉아보고 싶습니다만. 안 되겠습니까?”
-하. 편한 대로 해 봐.
케일은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며 정면을 응시했다.
그는 현재 에르하벤, 여의주와 함께 왕세자 궁을 다시 방문했다.
장소는 저번처럼 왕세자 집무실이었고, 케일은 왕세자가 집무를 보는 책상 의자에 앉은 채 정면의 문을 응시했다.
끼이익-
곧 문이 열렸고 케일은 들어서는 왕세자 알베르 크로스만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이야기를, 아니, 거래를 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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